Islam in focus -in korean language.

646 views

Published on

please read carefully and if you want to ask any question
Don't hesitate to contact me

0 Comments
0 Likes
Statistics
Notes
  • Be the first to comment

  • Be the first to like this

No Downloads
Views
Total views
646
On SlideShare
0
From Embeds
0
Number of Embeds
6
Actions
Shares
0
Downloads
6
Comments
0
Likes
0
Embeds 0
No embeds

No notes for slide

Islam in focus -in korean language.

  1. 1. 본서는(World Assembly of Muslim Youth, WAMY) 에서 출판되어 한글로 번역되었습니다 이슬람의 실상 함무다 압달라티 박사 저 http://www.quran.or.kr
  2. 2. 헌정사진정으로 머리 숙여 당신의 도우심에 감사하나이다.오, 하나님!진실한 이슬람의 정신으로 당신의 은혜에 감사하나이다.오, 하나님!온 마음 다 받쳐 당신께 감사하나이다. 오, 하나님!당신의 인도와 사랑이 없다면,이 책이 나올 수 없었기에,당신의 도우심과 대의가 없다면,이 보잘 것 없는 글이 결코 빛을 볼 수 없었기에,그리고 이 책이 바쳐질 만한 가치가 있다면부디 가납하시어 이를 축복하여 주소서삼가 당신께 이 책을 바치나이다.오, 하나님!-함무다 압달라티-
  3. 3. 머리말본서는 단지 일반독자에게 이슬람의 기본을 알려 주는데 그 목적이 있다. 분명해지겠지만, 본서에서 이슬람의 깊이와 폭을 드러내 보일 의도는 없다. 의도한 바는 단지 교양 있는 일반 독자로 하여금 문제를 올바로 꿰뚫어 보게하고 이슬람이 나타내는 제 원칙을 인식하게 하자는 것뿐이다. 일단 처음에생긴 관심을 계속 발전시키면 스스로 보다 깊이 있는 지식을 추구할 수 있기 때문이다.서반구의 무슬림들, 그 중에서도 특히 외딴 지역에 거주하는 젊은 무슬림들은 복잡한 문제에 직면한다. 주위의 상황이 전부 이슬람에 관한 한 불리하다.라디오논평, TV쇼, 잡지기사, 영화 그리고 심지어 학교 교과서까지 모두가이슬람을 잘못 전하고 있는 바, 여기에 반드시 악의가 없다고는 할 수 없는것이다. 게다가 어떤 극성스러운 단체들은 무슬림이 이 교파나 혹은 저 종파로 개종하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에서, 이런 무슬림들의 상황을 이용하려고든다. 한편, 살다 보면 사람들의 주의와 관심을 올바른 신앙의 길로부터 다른 데로 돌리게 하는 유혹을 많이 받게 된다. 이는 극히 해로운 것이다. 특히 젊은 무슬림들의 경우에는 더욱 해로우며, 세계의 이쪽에서 오해받고 있는 종교인 이슬람의 경우에는 더 한층 해롭다. 일부 무슬림 부모들이 자기자녀들을 종교적으로 인도하고 가르치려고 애쓰고 있는 건 사실이다. 그러나이런 제한된 노력이 무슨 소용이 있겠으며 이와 같이 주위에서 자꾸 압력을가해 오는데 어떻게 그것이 효과를 거둘 수 있겠는가?그렇다면 사정은 어떤가? 이처럼 어려운 상황이 가져 온 결과는 무엇인가?사태가 암담해 보이기는 하지만 절망적인 것은 아니라는 점을 아주 솔직히인정해야 한다. 일부 무슬림들은 주위에서 가해 오는 심한 압력에 무고한 피해를 입어 무관심해지고 말이 없는 사람이 되어 버린다. 이들은 부끄러워하고 두려워하거나 자기 주위를 의심한다. 결국 이들은 자기들이 속해 있는 사회에 아무런 가치 있는 기여도 할 수 없게 되며 그 사회로부터 아무런 실속있는 혜택도 받지 못한다. 그런가 하면 유행에 뒤지지 않고 남의 마음에 들고 싶은 나머지 사회의 조류에 휩쓸려 버리는 무슬림들도 있다. 이들 역시자신이 살고 있는 사회에 기여할 수 없거니와 그로 하여 수치스러운 일을당하게 될지도 모른다. 왜냐하면 이들에게는 실효성 있는 종교적 도덕이라는것이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이처럼 무관심해지고 위축되거나 해이해진 무슬림 말고도, 어떻게 해봐도 개선의 여지가 없어 보이는 무슬림들이 있다. 이들은 대개의 경우, 어떤 종교집단의 고도로 능률적인 조직 같은 것이나 세속적인 종교 단체가 사회에 널리 유포시킨 것에 빠져 있는 수가 없다. 이런 사람들은 대게 그저 가입하고있을 뿐 실상은 주변인들에 불과하다. 이들은 현대 사회의 특징을 이루고 있http://www.quran.or.kr
  4. 4. 는 고독한 군중 속에서 방황하는 영혼들로도 볼 수 있다. 이 혹은 저 특수집단의 신념이 철저히 주입되었기 때문에 이들이 가입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이들이 타집단에 가입하는 것은 자기 자신의 이슬람적 유산을 올바로인식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런 데다가 비무슬림적 환경 속에서 살고 있기때문에 무슬림으로 나서서 버텨 가는데 필요한 지식과 용기를 가질 수 없게된다. 이런 “무슬림”들이 종교에 진정 어린 관심을 가진다면 이슬람의 길에서 벗어나지는 않을 것이다. 이슬람이야말로 그 종교적 발전과 인간적 열망의 수준에 있어 타의 추종을 불허하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이들에게 인류의 정신적 도덕적 복지에 진정한 관심이 있다면, 이슬람의 체제 내에서 가장 커다란 만족을 누리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다른 집단에 가입해 봐야 항상 그 관심이 피상적(皮相的)일 수밖에 없으며 더 좋은 것을 찾다가 보다 못한 것으로 만족할 수밖에 없게 될 것이다. 결국 이들은 같은 무슬림들과의정신적 유대를 잃고 새로 들어간 집단의 주변에서 맴도는 신세에서 벗어나지 못한다.상황 전체의 최종적인 결과를 분석해 보면 그 결과가 관련 당사자 모두에게도 애처롭고 유해하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무슬림 강령에 의해 해가 되는 것은 다른 모든 훌륭한 강령에 대해서는 더 큰 해가 된다. 진정한 무슬림이야말로 책임질 줄 아는 시민 정신과 세계의 평화 상호 이해와 인류의 형제애, 양심의 자유와 인간 존엄성 보존의 실현에 가장 보람있는 기여를 할수 있다. 이러한 모든 원칙들은 이슬람의 중요한 부분을 이룬다. 바로 이런원칙들이 무슬림에게 부과, 위임되어 있다. 만일 이런 원칙들을 지킨다고 하는 무슬림들이 방황하거나 무관심해져 버리면 인류 일반이 그의 가치 있는기여를 받을 수 없게 될 것이니 이는 이만저만한 손실이 아니다.무슬림들이 자신들의 성서(聖書)인 영광의 꾸란이 최고의 계시서이며 종교적진리의 기준이라 믿을 만한 이유는 충분하다. 이들도 또한 이슬람이 영원한하나님의 메시지를 재확인하고 과거의 종교적 분쟁을 해결하여 인간이 각계각층에서 건설적인 창조 활동을 할 수 있게 해 주었다고 믿는다. 그렇다고무슬림들이 나머지 인류와 다르게 혹은 그들보다 우월하게 선별된다는 것은아니다. 이들은 이슬람을 강요하려 하지 않으며 인류를 열등 계급과 우수 계급으로 나누려 하지도 않는다. 어떤 민족은 은총을 받고 어떤 민족은 저주를받는다는 개념을 달가워하지 않으며, 선민이니 이방인이니 하는 교리를 인정하지 아니한다. 오히려 이들에게는 하나님의 메시지를 인류에게 전하고 필요불가결한 공헌을 할 임무가 부과되어 있는 것이다. 바꿔 말하면 무슬림들에게는 무관심해지거나 배타적이 되거나 오만을 부릴 여지가 있을 수 없다. 실생활의 모든 면으로 마음을 활짝 열고 신분과 교의(敎義)와 인종과 국적을불문하고 모든 사람에게 팔을 내밀어 환대하는 것이 그들의 엄숙한 의무이http://www.quran.or.kr
  5. 5. 다. 이들이 이슬람을 실천하고 친절하고 진정 어린 이슬람의 정신으로 다른사람들과 화합해야만이 비로소 이들이 베풀 수 있는 선행과 바칠 수 있는봉사가 그 의의를 갖게 될 것이다.이런 모든 상황에 비추어 이슬람을 참신하게 소개해 보고자 한다. 무슬림들을 맹목적인 광신자나 편협한 사람들로 만들려는 것은 아니다. 이슬람이 이에 강경하게 반대하고 있기 때문이다. 다만 이러한 무슬림들과 그에 상당하는 사람들에게 이슬람의 진리를 재인식시키고 세계에 대한 영적인 통찰력과인간 조건에 대한 윤리적 접근법을 갖게 해 주고 싶을 따름이다. 이러한 희망이 이루어진다면 무슬림들로 하여금 각기 자기네 나라의 책임감 있는 시민, 인류의 존경할 만한 일원 그리고 무엇보다도 하나님을 염원하는 사람들이 되게 할 수 있을 것이다.이제까지, 현대 세계에서 이슬람이 처한 미래에 대한 전망을 비관적으로 그려본 것일까? 아니면 무슬림들이 겪고 있는 절망감과 무력감을 허심탄회하게 고백한 것일까? 혹은 무슬림들이 신세계에서 종교적 싸움에 패할 것을예상하고 그 결과를 반성해 볼 것인가? 결코 그렇지 않다. 비관론과 절망감은 이슬람의 정신에 위배되며 무력감은 하나님에 대한 신앙과 양립할 수 없다. 이슬람의 미래가 곧 인류의 미래이며 인류에게 미래라는 것이 있다고 한다면-나는 있다고 믿는다-이슬람의 앞에도 위대하고 밝은 미래가 가로 놓여있다. 비록 그 진전이 더디어 보이기는 하지만 무슬림들은 지금 전개하고 있는 종교적 싸움에서 패배하지는 않는다. 어떤 이유에서건 무슬림들이 이 종교적 싸움에서 패배한다면 인류는 돌이킬 수 없는 손실을 보게 될 것이다.신세계의 무슬림들이 당면하고 있는 상황을 실감 있게 그려내는데 본 머리말의 의의가 있다고 하겠다. 부모와 자녀에게 다 같이 위험이 다가오고 있다는 것과 손실을 방지해야 한다는 경고를 해 주자는 것이다. 또 인류의 영적인 복지에 진정한 관심을 가진 사람 모두로 하여금, 정신을 바짝 차려 인류와 인류가 당면한 문제를 새로운 마음가짐으로 보아야 한다는 것을 깨닫게하려는 것이다.알라의 배려에 우리의 무슬림 형제들을 맡기는 바이다. 그 분을 무한히 신뢰하기에 우리의 노력이 헛되지 않을 것이다.“ 나는 오직 힘을 다하여 개혁(改革)을 바랄 뿐이니 나의 (과업의)성공은 오직 하나님께서 비롯됨이라. 그 분을 나는 신뢰하며 그 분을 나는 의지하노라.”(성꾸란 11:88)함두다 압달라티http://www.quran.or.kr
  6. 6. 제 1장 이슬람의 이념적 기초알라(하나님)하나님에 대한 지식과 믿음이 바로 이슬람의 기초를 이룬다. 주제가 매우 중요해서 철저하고도 이것은 명백한 논의가 요구된다. 명료를 기하기 위해서몇 가지 간단한 논증을 하게 될 것이다.)) 많은 세기 동안 하나님의 존재에대한 회의가 위인들의 정신을 사로잡아 오고 있다.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은유한한 인간의 지능이 무한한 하나님의 존재를 입증할 수 없다는 데 의견이일치한다. 인간의 지능은 인간의 호기심을 만족시켜 주기 위하여 그분의 존재를 설명할 수 있을 뿐이다. 하나님을 부인하는 자들은 과학이나 철학 혹은특수한 인식론을 신뢰한다고 공언한다. 이들의 논법은 사리에 맞지 않거나부적절한 경우가 있는가 하면 항상 복잡한데다, 이해 할 수 없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계발된 자유로운 정신은 하나님께로 가는 길을 찾기 마련이다.그 길을 찾지 못한다고 해서 길이 없는 것은 아니다. 실체를 부인한다고 해서 그 실체가 실재하지 않게 되는 것은 아니다. 흥미 있는 비교 견해론에 대해서는 다음을 참조할 것.Jacques Maritain, 하나님에의 제접근방법(NewYork: The Macmillan Company, 1954);Muhammad Zafrulla Khan, 이슬람 :현대인에 대한 의미. (New York: Harper & Row, 1962);John Hick, ed., 하나님의 존재(New York: The Macmillan Company, 1964) 이것은 이 주제에 대해 사전 지식이 있는 사람들에게는 지루하거나 너무 단순하게 들릴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렇게 알고 있는 사람들도 문제의 중요성을 인식하여 참고 읽어 주기를 당부한다. 과학의 이름으로 혹은 경험과 이해가 부족한 탓으로 하나님의 개념에 의문을 던지기 좋아하는 사람들이 있다. 이런 사람들의 태도는, 비록 이들이박학한 지식인으로 자처하지만, 불안한 심리 상태를 드러내는 것이다. 나는그들의 주장에 관심을 두지 않을 것이다. 오히려 관심을 두고자 하는 것은그들이 처해 있는 정확한 입장이다. 이렇게 하자니, 논의의 상당 부분이 마치 성인이 아닌 아이를 주 대상으로 하는 것처럼 단순하게 꾸며지게 된 것이다. 다른 한편으로, 본서는 젊은 무슬림에게 이슬람에서의 하나님의 올바른 개념을 알려 주는 것을 주요 목적으로 한다. 여기서 고려해야 할 또 한가지 사실은 비무슬림으로서 소위 하나님을 믿고 종교를 옹호한다는 사람들이많이 있는데, 이들이 생각하는 이슬람에서의 하나님의 개념이 왜곡되어 있다는 것이다.이제부터 몇 가지 단순하면서도 초보적인 논증을 하는 것은 이상의 이유들때문이다. 그러나 논증의 단순성이 오히려 많은 성인들에게는 심오한 사색을http://www.quran.or.kr
  7. 7. 유도하는 결과가 될지도 모른다. 그렇게 된다면 이러한 단순성은 바람직하고창의적인 단순성이 될 것이다. 이러한 단순성 단체가 이슬람의 뚜렷한 특징이다.우리 주위를 돌아보면 가정마다 가장이 있고, 학교마다 교장이 있으며, 도시마다 시장이 있고, 주마다 주지사가 있으며, 국가마다 국가의 원수가 있다는것을 알 수 있다. 또한 모든 산물은 어떤 생산자의 작품이며, 모든 아름다운예술품은 어떤 예술가의 창작품임을 우리는 의심 없이 안다. 이 모든 것이명백하기는 하지만, 인간의 지식에 대한 갈구와 세계의 범상치 않는 사물에대한 호기심을 만족시켜 주지는 못한다. 수려하고 절묘한 경치를 보여주는자연의 미, 끝없는 하늘의 지평선, 그리고 그 지평선 멀리의 아스라함, 쉬지않고 질서 정연하게 이루어지는 낮과 밤의 교대, 해와 달과 행성의 궤도, 생물계와 무생물계, 대대로 이어지는 인간의 부단한 과정과 진보, 이 모든 것을 보고 인간은 종종 경탄해 마지아니한다. 우리가 더불어 살고 있고, 무한히 향유하고 있는 이 모든 것들은 도대체 누가 만들어 유지시켜 나가고 있는지 알고 싶어 자주 의문에 사로잡힌다.거대한 우주를 설명해 낼 수 있는가? 존재의 신비가 납득할 수 있게 풀어져있는가? 책임을 진 가장이 없이는 가정이 제 구실을 할 수 없고, 행정이 정상적으로 이루어지지 않고서는 도시가 번창해 나갈 수 없으며 어떤 식으로든 수반이 있지 않고서는 국가가 존재할 수 없음을 우리는 안다. 또 무엇이든지 스스로 생겨날 수 없다는 것도 안다. 게다가 우리는 우주가 존재하고가장 질서 정연하게 운행되고 있으며 헤아릴 수 없이 오랫동안 존속해 오고있음을 본다. 그런데도 이 모든 것이 우연의 산물이라고 말할 수 있는가?인간과 인간의 존재를 단순한 우연에 맡겨 버릴 수 있는가?인간이 단순히 우연에 생겨난 것이라면, 인간의 전 생애도 우연의 지배를 받게 될 것이고 그 전 존재가 무의미해질 것이다. 그러나 지각 있는 사람이라면 자신의 인생을 무의미하게 여길 수 없으며, 합리적인 사람이라면 누구나가능한 한 자기 인생을 의미 있게 만들고 스스로 어떤 계획에 따라 행동의모범을 설정하고자 한다. 개인이나 단체, 국가는 자기의 행동방침을 설정하고자 한다. 개인이나 단체, 국가는 자기의 행동방침을 계획하며, 용의 주도한 계획은 모든 어떤 원하는 결과를 낳는다. 주목할 만한 사실은 인간이 어떤 종류로든 계획을 세우고 있으며 훌륭한 계획의 가치는 올바로 인식할 수있다고 하는 것이다.그러나, 인간은 거대한 우주의 조그만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 그리고 인간이http://www.quran.or.kr
  8. 8. 계획을 세우고, 이렇게 세운 계획의 가치를 올바로 인식할 수 있다고 한다면,인간 자신의 존재와 우주의 존립 역시 어떤 계획된 방침에 의지하고 있다고보아야 한다. 이것은 우리의 물리적 존재의 배후에 계획하는 의지가 있으며사물을 존재하게 하고 질서 있게 운용시키는 유일무이한 정신이 세계에 있음을 뜻한다. 우리의 세계가 보여 주는 경이로움과 생명의 신비는 단순한 우연의 산물이기에는 너무나 엄청난 것이다.그렇다면 이 세계에는 만물의 질서를 유지시키는 한 거대한 힘이 작용하고있지 않으면 안 된다. 이 아름다운 자연 속에는 가장 매력적인 예술 작품을창조해 내고, 만들어 내되, 그 존재에 어떤 특수한 목적을 부여하는 위대한예술가가 있음에 틀림없다. 이 힘은 모든 힘 중에서 가장 강한 힘이며 이 예술가는 모든 예술가 중에서 가장 위대한 예술가다. 진실한 신앙인들과 사리에 밝은 사람들은 그분을 알라 혹은 하나님이라 부른다. 하나님이라 부르는것은 그분이 창조자이며 세계 제일의 건축가이며, 생명의 창시자이며 만물의존재를 유지시키는 부양자이기 때문이다. 인간이 다른 인간을 창조하거나 만들 수 없기에, 그분은 인간이 아니다. 그분은 어떤 동물이나 혹성이 아니며우상이나 신검(身檢)같은 것도 아니다. 이런 것들은 모두 스스로 생겨날 수도 다른 것들을 창조해 낼 수도 없기 때문이다. 그 분은 기계도 아니다. 태양도 달도 아니며 그렇다고 별도 아니다. 이러한 것들은 하나의 거대한 체계에 의해 통제되며 그 누군가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기 때문이다. 그분은 이모든 것들을 만들고 유지시켜 주는 분이기에 이 모든 것들과 구별된다. 만든자는 만들어진 것과는 다르며 그보다 위대하다는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다.우리는 또한 그 어느 것도 스스로 생겨날 수 없으며 경이로 가득찬 이 세계가 우연히 존재하게 된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안다.세계에서 생성되는 부단한 변화가 그것이 만들어진 것임을 증명하고 있는바이며 만들어진 것이면 무엇이나 그것을 만든 자가 있어야 하는 것이다.세계를 창조하고 유지시키는 분, 인간을 창조하고 부양하시는 분, 자연 속에서 작용하는 효율적인 힘, 이 모두가 하나로서 동일한 바, 알라 혹은 하나님으로 알려져 있는 분이 바로 이에 해당한다. 이분이야말로 신비중의 신비이며, 만유 중에서 가장 지고한 분이다. 하나님의 진리의 책, 성꾸란은 이렇게말한다.2)) 훌륭한 문학작품을 다른 언어로 완전하게 번역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꾸란의 경우가 특히 그렇다. 꾸란은 자국의 아랍어와 문학의 대가들에게 도전을 제기하였던 바(지금도 도전하고 있다) 그 가장 짧은 장(章)을 놓고도 이와 근소하게 유사한 것조차도 이들이 만들어 낼 수 없음을 입증하였다. 그러므로 어떤 형태로든지 꾸란의 의미와 미와 매력을 재현하는 것은 불http://www.quran.or.kr
  9. 9. 가능하다. 그러므로 어떤 형태로든지 꾸란의 의미와 미와 매력을 재현하는것은 불가능하다. 그러므로 여기에 나온 것은 꾸란의 완전 번역이 아니며,설사 그것이 가능하다 할지라도 본래의 꾸란은 아니다. 오히려 이것은 다른언어를 써서 내린 인간의 해석에 지나지 않는다. 이러한 해석은 하나님의 원전의 힘찬 문체에 훨씬 미치지 못한다. 그러므로 여기에 제시된 번역에는 인용부호의 삽입이 엄격히 배제될 것이다.너희에게 밤을 만들어 주어 쉬게 하시며, 낮을 만들어 주어 볼 수 있게 하신분은 하나님이시라. 진실로 하나님은 사람에 대한 은혜와 자비로 충만하시거늘 감사할 줄 아는 사람이 적도다. 너희의 주, 만물의 창조자이신 하나님은그러한 분이신 것을. 그 분 외에 신은 없나니, 너희는 어찌하여 그분을 외면하느뇨. 하나님의 표징을 부인하는 자들이 도리어 외면 당할 것을. 하나님께서는 땅을 만들어 너희의 안식처로 삼으셨고 하늘을 만들어 너희의 은신처로 삼으셨도다. 너희에게 형체를 주시되, 그 형체를 아름답게 하셨으며, 너희에게 맛나고 정결한 음식을 마련하여 주셨도다. 너희의 주, 하나님은 이런분이시니, 그분을 영예롭게 할지어다. 그분은 세계의 주이시도다! 그분은 살아있는 분이시며 그분 외에 신은 없나니 그분에게 요청하며 그분에게 진실하게 헌신할지니라. 세계의 주이신 하나님을 찬양할지어다.(꾸란, 40:61-65)너희에게 바다를 복종시켜, 그분의 명으로 배가 항해할 수 있게 하며, 너희가 그분의 선물을 구하게 하고 감사함을 보일 수 있게 하신 분은 하나님이시다. 또 그분은 천지의 만물을 당신께로부터 너희에게 복종시키셨도다. 보라, 진실로 그 가운데 숙고하는 자들을 위한 표징이 있으리니:(꾸란, 45:12-13)전세계의 최고주인이요, 만물의 창조자이신 분은 알라(하나님)이다. 그토록위대하고 다른 존재들과 구별되는 분이시기에, 사람은 다만 성찰과 명상을통해서만 그 분을 알 수 있다. 그분은 무소부재하시며 그분의 큰 힘은 세계어디에서나 작용하고 있다. 세계의 만물이 그분의 존재를 증명하는 이상, 인간은 그분의 존재를 믿어야 한다. 하나님과 그분의 위대한 힘을 믿어야만 인류는 생명의 그 많은 신비를 가장 만족스럽게 설명할 수 있게 된다. 이것이올바른 지식과 종교적 통찰력을 얻는 가장 안전한 방법이며, 실행과 건전한윤리에 이르는 정로(正路)요, 행복과 번영으로 이끄는 가장 확실한 지침이다.일단, 하나님이 존재한다는 것을 믿은 다음에는 그분의 속성과 명칭을 알아야 한다. 일반적으로 말해서, 완전한 모든 것과 절대적 선은 그분에게 속하지만, 결점이나 악은 그 어느 것도 그분에게 해당이 없다. 특히 다음 사항을알고 믿어야 한다.http://www.quran.or.kr
  10. 10. 1. 하나님은 유일하신 분이므로 동반자나 자식이 없으며 누구를 낳지도누구에게서 태어나지도 않는다. 그분은 영원히 만인의 간구를 받으시며 시작도 끝도 없으며 그 무엇도 그분과 동등하지 못하다.(꾸란, 112:1-4)2. 그분은 자비롭고 자애로우신 분이시며, 보호자요, 진실한 안내자이시며, 공평한 분이고 최고의 주이시며, 창조자요, 감시자이시며, 처음이요 마지막이시며, 전지(全知)하시고 지혜로우신 분이시며, 듣고 아시는 분이시며,증인이요, 영예로운 분이시며 유능하고 유력한 분이시다.(예, 꾸란, 57:1-6,59:22-24)3. 그분은 사랑하는 분이요 부양자이시며, 관대하고 자비로운 분이시며, 부유하고 독립 자존하는 분이시며, 용서해 주는 분이요, 온화한 분이시며, 인내심 있고 안식(眼識)있는 분이시며, 유일무이한 분이요 보호자이시며, 재판관이요 평화로운 분이시다. (예, 꾸란, 3:31, 11:6,35:15, 65:2-3)이러한 하나님의 명칭과 속성들 하나 하나가 성꾸란의 여러 곳에 언급되어있다. 우리는 모두 당신의 창조물에게 지극한 사랑과 친절을 베푸시는 하나님의 배려와 자비 속에 살고 있다. 그분이 우리에게 베푸시는 은총은 헤아릴길이 없으니, 이는 그분이 헤아릴 수 없는 분이기 때문이다. (꾸란, 14:32-34, 16:10-18)하나님은 지고하시지만, 생각 깊은 경건한 사람들에게는 아주 가까운 분이시다. 그분은 이들의 기도에 응하여 도움을 베푸신다. 그분은 당신을 사랑하는사람들을 사랑하시며, 이들이 지은 죄를 사하여 주신다. 그분은 당신과 화해하고자 하는 사람들을 환영하며, 결코 그 누구도 배척하지 않으신다. 사람에게는 선량해지고, 옳은 일을 하며, 악을 멀리하라고 가르치신다. 그분은 선함과 사랑이 지극한지라, 선하고 옳은 일만을 권하고 또 이를 가납하신다.그분의 자비의 문은 당신의 후원과 보호를 진지하게 구하는 사람, 누구에게나 항상 열려 있다.(꾸란, 2:186, 50:16)하나님의 당신의 창조물에 대한 사랑은 무한하여 인간의 상상을 초월한다.우리는 그분의 은총을 저울질 할 수 없다. 그분은 우리를 창조하시고, 출생시 이후는 물론 그 오래 전부터도 우리를 잘 주신다. 그분은 우리를 만드시되, 창조물 중 가장 좋은 형체를 주셨고 또 우리가 성장하는데 필요한 온갖감각과 능력을 부여하신다. 그분은 우리가 어찌할 수 없는 상황에 처했을 때우리를 도우시며 우리와 우리의 가족을 부양하신다. 그분은 인간에게 지성을http://www.quran.or.kr
  11. 11. 창조하시어 이해할 수 있게 하시며, 영혼과 양심을 창조하시어 선량하고 정의롭게 하시며, 느낌과 감정을 창조하시어 친절하고 인정스럽게 해 주신다.우리가 올바른 지식을 획득하고 빛다운 빛을 보는 것은 그분의 자비가 있음으로서이다. 그분은 자비로우시기에, 우리를 창조하시되, 그 형체를 가장 아름답게 하시며, 해와 달을, 육지와 바다를, 땅과 하늘을 식물과 동물을 우리에게 마련하여 주시는 것이다. 그분이야말로 이러한 모든 것들과 우리가 유익하게 이용할 수 있는 기타 모든 것들을 창조하신 분이다. 그분은 지금 우리가 살아가는데 도움이 되는 것들을 만드시며, 인간에게 존엄과 지능을, 명예와 존경을 부여하시니, 이는 인간이 만물의 영장이요, 지상에 있는 하나님의 부왕(副王)이기때문이다.하나님의 자비는 우리에게 희망과 평온을, 용기와 자신을 심어 준다. 하나님의 자비가 있으므로 해서 비탄과 슬픔을 치유하며, 고난을 딛고 일어서서 성공과 행복을 얻을 수 있게 된다. 진실로 하나님의 자비는 고난에 빠진 자를구제하며, 고통을 당하는 자의 기운을 북돋우며, 병든 자를 위로하며, 절망에 빠진 자를 일으켜 세우며, 궁핍한 자에게는 위안을 주는 것이다. 요컨대하나님의 자비는 우리 삶의 곳곳에서 항상 작용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그것을 당연시 한 나머지, 그것을 인식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러나 하나님의 자비는 실재하며, 우리는 그것을 마음으로 느낄 수 있으며 정신적으로 그것을 감지할 수 있다.자비로우신 사랑의 하나님은 우리를 잊거나 저버리지 아니하며, 그분을 향한우리의 진지한 요청을 무시하지 않으신다. 자비와 사랑이 있기에 그분은 우리에게 옳은 길을 보였으며, 사도와 성서와 계시를 보내 주셨다. 모두 우리에게 도움을 베풀고 우리를 인도하기 위한 배려인 것이다. 하나님께서 보낸마지막 사도는 무함맏이며, 현존하는 가장 믿을 만한 하나님의 성서는 꾸란이다. 무함맏이 세운 관습과 꾸란의 가르침으로부터 우리는 용서해 주시는하나님에 대해 배운다. 만일 누가 죄를 짓거나 악행을 저지르게 되면, 그것은 곧 하나님의 법을 어기는 것이며, 그분을 크게 거역하는 것이요, 자기 자신의 존엄성과 존재를 훼손시키는 일이다. 그러나 진지하게 회개하고 자기가지은 죄를 뉘우쳐 하나님에게 되돌아서고 싶어하며, 하나님에게 성실히 용서를 구하고 정직하게 그분께 나아간다면, 그분은 정녕코 그를 받아들여 용서해 주실 것이다. 하나님이나 그분의 유일성을 부인하는 사람들이라 하더라도,이들이 자신의 잘못된 태도를 깨닫고, 하나님께 되돌아오기로 작정한다면 틀림없이 용서받을 것이다. 이에 대한 꾸란의 말씀은 다음과 같다:http://www.quran.or.kr
  12. 12. 하나님께서는 당신에게 동반자를 세우는 것을 용납하시지 않으나, 이외에는당신이 용서해 주기를 원하는 사람에게 용서를 베푸시나니, 하나님께 동반자를 세우는 것은 실로 가장 가증한 죄이니라.(꾸란, 4:48,116)이같이 말하라 : 스스로 그 영혼을 욕되게 하는 나의 종들이여! 하나님의 자비를 단념하지 말지니, 그분은 지극히 관대하고 자비로우사, 모든 죄를 용서해 주심이라. 너희의 주께로 (회개하여)돌아서, 그분께 복종할지니라. 형벌이너희에게 내리기 전에, 형벌이 내리고 나면 도울 자 없으리라. 그런 즉 너희의 주께서 너희에게 계시한 최선의 길을 따를 지어다. 형벌이 너희에게 내리기 전에 너희가 알지 못하는 사이에 갑자기(꾸란, 39:53-54)이렇게 커다란 은총과 자비를 베푸시는 하나님이시지만, 그 보답으로 우리에게 있는 그 무엇을 필요로 하지 않으신다. 그분은 모자라는 게 없으며, 독립자존하는 분이시기 때문이다. 그분은 우리에게 보답하라고 요구하지 않으신다. 우리가 그분에게 보답할 수 없거니와 그분의 헤아릴 수 없는 은총과 자비에 값을 매길 수도 없기 때문이다. 그분이 우리에게 요구하는 것이란 다만선량하고, 은혜를 잊지 말고 감사할 줄 알며, 그분의 권고를 따르고, 그분의법을 시행하며, 그분의 미덕과 속성들을 올바로 나타내고, 지상에서 그분을정직하게 대리하고 진실하게 대표하라는 것이다. 우리에게 존엄과 명예를 주시는 분이시기에, 그분은 우리를 노예로 삼고자 아니하신다. 두려움과 미신에서 우리를 해방시키는 분이시기에 우리를 복종시키고자 아니 하신다. 우리를 창조하시고, 우리의 지위를 만물 위로 높이는 분이시기에, 우리에게 굴욕을 주고자 아니 하신다. 그러므로 그분이 어떤 규칙과 규정을 우리에게 보내주시든 그것은 결국 우리를 이롭게 하려는 배려다. 우리를 도와, 서로 화목하고 친절하게, 형제애를 나누며, 서로 협력하는 가운데 삶을 누리게 하는데그 의의가 있는 것이다. 하나님과 사귀어 큰 기쁨을 누리며, 영원한 행복에이르는 가장 확실한 길을 찾게 해 주자는 의도인 것이다.하나님을 아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으며, 그분에 대해 말할 것도 많다. 심오한 불가사의와 감동적인 경이로 가득 찬 이 세계는 마치 펼쳐놓은 책과같아서, 우리는 그 속에서 하나님의 존재를 읽어 볼 수 있다. 뿐만 아니라,하나님께서는 친히 당신이 인간에게 보내 주신 많은 사도들과 계시들을 통하여 우리를 도우러 오신다. 이러한 사도들과 계시들은 우리가 하나님에 대해 알고 있어야 할 모든 것을 말해 준다. 그러므로 자연을 깊이 살펴보고 사도들의 말씀을 귀담아 듣고, 하나님의 계시를 읽어봄으로써, 우리는 하나님에 대한 지극히 확실한 지식을 얻을 수 있으며, 그분께 나아가는 정로(正路)http://www.quran.or.kr
  13. 13. 를 찾을 수 있게 된다. 몇 가지 대표적인 꾸란 구절들을 다음에 옮겨, 본 논의를 결론짓기로 한다:알라께서는 자신 외에는 신이 없음을 증언하시나니 천사와 지식 있는 자들역시 그러하도다-그분은 정의의 수호신이도다. 그분 외에는 신이 없나니 그분은 강하고 지혜로운 분이시로다.(꾸란, 3:18) 알라는 만물을 창조하시고 만물을 수호하시나니, 하늘과 땅의 열쇠들이 그분의 것이로다.(꾸란, 39:63-64) 알라는 창조를 시작하시고 또 창조를 거듭하시나니, 그분께로 그대가 돌아가리로다.(꾸란, 30:11) 하늘과 땅에 있는 무엇이나 다 그분의 것이니 만물이 그분께 복종하는도다. 창조를 시작하시고 또 창조를 거듭하는 분이 바로 그분이시니, 그분께는 지극히 쉬운 일임이라, 하늘과 땅의 가장 높은 지위가 그분의 것이니, 그분은 강하고 지혜로우시도다.(꾸란, 30:26-27)이슬람의 의미(意味)이슬람의 어원은 아랍어 어근 싸리마 인데, 이 말은 특히 평화, 청결,순종, 복종을 뜻한다. 종교적 의미에서의 이슬람은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고그분의 법에 복종을 뜻한다. 이 말의 원래 의미와 종교적 의미 사이의 관계는 깊고 명백하다. 오직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고, 그분의 법에 복종하므로써만 진정한 평화를 실현하고 청결을 지속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일부 국외자들은 우리의 종교를 마호멧주의자(마호멧교도) 라고 부른다.무슬림들은 이런 말의 사용을 거부하며 이에 항의한다. 우리의 신앙이 마호멧주의로 유별(類別)되고, 우리가 마호멧주의자로 불리울 경우, 심히 그릇된의미가 내포될 것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잘못된 명칭은 이 종교가 일개 인간,곧 무함맏의 이름을 따서 명명(命名)되고, 이슬람 역시 유태주의(유태교), 힌두주의(힌두교), 마르크스주의 등과 다를 바 없는 또 하나의 주의 에 불과하다는 의미를 내포한다. 이 잘못된 명칭이 내포하는 또 하나의 오류는 국외자들이 자기네가 마호멧주의자라고 부르는 무슬림들이 실례로 마치 기독교인들이 예수를 믿는 것과 마찬가지로 무함맏을 숭배하거나 믿는다고 생각할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이러한 오류를 하나 더 보면, 마호멧주의자라는 말이 국외자들을 오도하여 그로 하여금 이 종교가 무함맏에 의해 창시되었고,그 때문에 이 창시자의 이름을 따서 이름이 붙여졌다고 생각하게 할 수도있다는 것이다. 이와 같이 틀린 명칭에 내포된 의미는 모두 심히 잘못된 것이다. 고작해야 오해를 일으킬 뿐인 것이다. 이슬람은 또 하나의 주의(ism)에 불과한 것이 아니다. 무슬림들은 무함맏을 숭배하지도, 기독교인, 유태인,힌두인, 마르크스주의자 등이 각자 자기네 지도자를 생각하듯 그를 생각하지도 아니다. 무슬림들은 하나님만을 숭배한다. 무함맏은 하나님의 말씀을 가http://www.quran.or.kr
  14. 14. 르치고 모범적으로 생활할 임무를 하나님께 부여받은 일개 인간에 지나지않는다. 그는 인간에 대한 경건성과 완전성의 가장 훌륭한 본보기로서 역사속에 서 있다. 그는 인간으로서 가능한 사람됨 그리고 미점과 미덕의 면에서인간이 성취할 수 있는 경지의 산 증거다. 또한 무슬림들은 이슬람이 종교적발전의 마지막 단계에서 무함맏에 의해 회복되기는 하였지만, 그가 창시했다고는 믿지 않는다. 이슬람의 원 창시자는 다름 아닌 바로 하나님이시다. 이슬람의 창시 년대는 아담시대까지 소급한다. 이슬람은 어떤 형태로든 태초부터 존재해 왔으며, 마지막 때까지 존속할 것이다.그러므로 이 종교의 올바른 명칭은 이슬람이며, 이를 신봉하는 자들이 무슬림인 것이다. 일반의 오해와는 달리 이슬람, 혹은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것은 그분의 법에 복종하는 것과 더불어, 결코 개인의 자유의 상실이나 운명론에의 굴복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그렇게 생각하거나 믿는 사람은 누구나이슬람의 올바른 의미와 이슬람에서의 하나님의 개념을 이해하지 못했음이확실하다. 이슬람에서의 하나님의 개념은 그분을 가장 자비롭고 자애로우시며, 가장 사랑이 많고 인간의 안녕에 가장 관심이 많으신 분, 지혜로 충만하고 당신의 피조물을 보살펴 주는 분으로 평한다. 따라서 그분의 뜻은 자비롭고 선한 뜻이며, 그분이 규정하는 법은 무엇이나 인류의 최선의 이익을 위한것임이 틀림없다.문화인들은 자기네 나라 법을 준수할 때, 건전한 시민으로, 그들이 속한 각사회의 정직한 성원으로 간주된다. 책임을 다 할 수 있는 사람이라면 이 사람들이 법에 복종함으로써 자유를 잃게 된다고 말하지 않을 것이다. 합리적인 사람이라면 이와 같이 법을 준수하는 사람들이 운명론자들이요, 무력한자들이라고 단 한시도 생각지 않을 것이다. 이와 마찬가지로 선한 뜻인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고 최선의 법인 하나님의 법에 복종하는 사람은 건전하고정직한 사람인 것이다. 이런 사람은 자신의 권리를 보호받는 한편, 타인의권리를 진심으로 존중하며, 책임을 다하는 창조적인 고차원의 자유를 누리게될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선의에 순종한다고 해서 개인의 자유가 줄어들거나, 박탈되지는 않는다. 오히려 고차원의 자유가 풍부하게 주어진다. 이러한 순종은 정신을 미신으로부터 해방시켜 그것을 진리로 가득 채운다. 영혼을 죄와 악에서 해방시켜 선과 청결로 그것을 자극한다. 자아를 허용과 탐욕에서, 질투와 긴장에서, 두려움과 불안에서 해방시킨다. 사이비신들과 저급한 욕망에서 해방시켜, 선과 미덕의 아름다운 지평을 인간 앞에 펼쳐 놓는다.하나님의 선의에 순종하고 그분의 유익한 법에 복종하는 것은 평화와 조화를 보존하는 최선의 수단이다. 이렇게 함으로써 인간은 한편으로 같은 인간http://www.quran.or.kr
  15. 15. 들 사이에서 다른 한편으로 인간 사회와 하나님 사이에 평화를 실현할 수있게 된다. 또한 자연의 제 구성요소들 간에 조화를 창출해 낸다. 이슬람에의하면, 세상만물, 혹은 인간을 제외한 모든 현상은 하나님께서 정한 법칙에지배된다. 그러므로 전 물질계가 이슬람의 상태에 있다는 것, 혹은 그것이무슬림임을 뜻한다. 물질계는 스스로 선택할 여지를 갖지 않는다. 자의적으로 자기의 길을 가는 것이 아니라, 이슬람 즉 복종의 법인 창조주의 법에 복종하는 것이다. 유독 인간에게만 지성과 선택 능력이 부여되었다. 그리고 인간에게는 지능과 선택의 자질이 있기에, 하나님의 선의에 복종하고, 그분의법에 순종하라고 권유받는 것이다. 하나님의 법에 복종하는 길을 택해야만,인간은 자기 자신과 하나님에게 필연적으로 복종하는 기타 자연의 모든 구성요소 사이에 조화를 구현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불순종의 길을 걷는다면,정로(正路)에서 이탈하여 일관성을 잃게 될 것이다. 뿐만 아니라 입법자의노여움과 처벌을 받게 된다.이슬람이 하나님의 선의에 순종하고, 그분의 유익한 법에 복종하는 것을 뜻하고, 이것이 하나님이 택하신 모든 사도들의 메시지의 정수를 이루는 것이므로, 무슬림이라면 무함맏 이전의 모든 예언자들을 차별 없이 받아들인다.그는 하나님의 모든 예언자들과 이들의 추종자들 모두가 무슬림이었으며, 그들이 믿는 종교는 유일하고 참된, 하나님의 세계 종교인 이슬람이었다는 것을 믿는다.(꾸란, 2:128-140, 3:78-85, 17:42-44, 31:22, 42:13) 1972년 12월 4일자 Observer Dispatch(O.D)지에 실린 나의 성명을 여기에 전재하는것이 이제까지의 논의를 요약하는데 도움이 될 것이다. 이 성명은 이제까지논의된 문제와 관련하여, 얼마나 많은 왜곡과 혼란이 야기되고 있는 지를 지적하고 있다. 부분적으로 중복되고, 되풀이되는 점도 없지 않지만 쟁점이 극히 미묘하고 이슬람의 관점을 재론할 필요가 있어서인 만큼, 양해해 주기 바란다.특종 뉴스 하나(O.D.11월 25일자)가 우리를 놀라게 하고 있다. 미처 모르고있던 대중에게 동정을, 많은 학교 교사와 종교계 인사에게 연민의 정을 불러일으키고, 선의와 양식을 가진 사람 모두에게 자신의 도의적 책임을 외면하지 말라고 촉구하고 있는 것이다.마르커스 일리아슨(Marcus Eliason)이 요르단의 이스라엘 점령지역에서 모슬렘들 이 하필이면 아브라함을 이브라힘으로 숭배하고 있다 고 보고해 왔다.http://www.quran.or.kr
  16. 16. 요즘 세상에, 우리가 사는 이 조그만 세계에서 무슬림들이 이브라힘을 숭배하고 있다는, 생생한 보도에 접하다니, 도무지 믿어지지 않는다. 그러나 더욱 믿어지지 않는 것은 이 뉴스가 짐작하건대 정통한 소식통에서 흘러나와알 권리가 있는 대중에게 보고되었다고 하는 사실이다.수세기에 걸쳐 많은 서양인들은 무슬림들이 무함맏을 숭배한다고 생각하고이런 생각을 널리 퍼뜨렸다. 무함맏의 종교가 마호멧교로 통하고 그 추종자들이 서양에서 마호멧교도들로 알려지게 되었다. 그 후 경위야 어떻든 무슬림들이 일종의 신 인 알라를 숭배한다는 것이 서양인들에게 분명해지게되었다. 그런데 이제 와서 새삼스럽게 이들이 아브라함을 이브라힘으로 숭배하고 있음이 밝혀진 것이다.무슬림들은 무함맏이나 그 외 어떤 인간도 숭배한 사실이 없다. 이들이 항상믿어 오고 있는 바는, 무함맏은 그 보다 앞서왔던 수많은 예언자들과 마찬가지로 하나의 인간이며, 한 인간으로써 예언자 지위라고 하는 최고의 지위를차지할 수 있었다는 것이 인류에게는 최대의 찬사가 된다고 하는 사실이다.무슬림들은 무함맏이 마지막 예언자이긴 하지만 유일한 예언자는 아니라고믿는다. 그는 하나님이 인류에게 보낸 영원한 메시지를 보강하여 영원히 전하였다. 하나님께서는 이 메시지를 시대와 민족에 따라서 많은 예언자들에게계시하였으니, 이들 예언자 가운데 아브라함, 이스마엘, 이삭, 다윗, 모세,예수 그리고 무함맏(이분들께, 평화가 깃들기를)이 포함되는 것이다. 더욱중요한 것은 무슬림들이 이들을 믿되, 그 어느 누구도 차별하지 않는다는 점이다.무슬림들은 자신들의 우주적 소망과 세계주의적 정향(定向) 때문에 자기들을마호멧교도라 부르고 자기들의 신앙을 마호멧교라 부르는 것을 불행한 오칭(誤稱)이라고 보아 이를 유감스러워 한다. 거기에 내포된 의미가 불쾌함에서다. 까닭 없이 그런 게 아니다. 무슬림들은 자기들이 배타적인 독점권을 가진 이름을 따서 명명되는 게 아니다. 그것은 초월적이고 영원한 종교이기 때문이다.이 종교의 올바른 명칭은 이슬람이며, 그 신봉자는 무슬림이라고 불러야 타당하다. 종교적인 맥락에서 본 이슬람이라는 말의 의미는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고, 하나님의 법에 복종함을 뜻한다. 꾸란은 하나님의 뜻을 선하고 자비로운 것으로, 그분의 법을 가장 이롭고 공정한 것을 규정한다. 따라서 이렇http://www.quran.or.kr
  17. 17. 게 순종하고 복종하는 사람은 누구든지 이슬람의 윤리적 상태에 있는 한 사람의 무슬림인 것이다. 꾸란이 아브라함을 비롯한 모든 믿을 만한 예언자들을 무슬림이라 칭하고, 이들의 종교를 오직 하나의 동일한 명칭 즉 이슬람으로 부르는 것은 이러한 의미로서이다. 따라서 무슬림이라고 해서 전적으로무함맏의 추종자인 것만은 아니다. 그는 아브라함, 모세, 예수 그리고 나머지 사도들도 마찬가지로 추종하기 때문이다.끝으로, 이슬람에서 알라라는 말은 간단하나 지극히 단호하게, 온 세계의 창조자, 주중의 주, 왕 중의 왕이신 유일무이하고 영원한 하나님을 가리킨다.이슬람에서 용서받을 수 없는 유일한 죄는 하나님 외에 다른 신을 믿는 것이다. 무슬림들이 일상예배에서 가장 많이 쓰는 말을 다음에 들어둔다: 참으로 자비로우시고 참으로 자애로우신 하나님의 이름으로이슬람의 기본신조(基本信條)진실하고 충실한 무슬림들은 다음에 제시하는 주요 신조들을 믿는다.1. 그는 한 분이신 하나님을 믿는다.그분은 지고하고 영원한 분이며, 무한하고 강하신 분이며, 자비롭고 자애로운 분이요, 창조주이며, 부양자이시다. 이런 신념이 힘을 발휘하는데는, 하나님을 철저하게 신뢰하고, 그분만을 바랄 것이 요청된다. 그분의 뜻에 복종하고 그분의 도움에 의지해야 한다. 이러한 신념에 의해서 인간의 존엄성이지켜지고 공포와 절망, 죄의식과 혼란에서 인간이 해방된다. 독자에게 앞에서 설명한 이슬람의 의미를 살펴 볼 것을 권한다.2. 그는 하나님께서 보내신 사도를 모두 믿되, 이들 사이에 차별을 두지 않는다.우리가 아는 민족마다 하나님께서 보낸 경고자, 혹은 사도가 있었다. 이 사도들은 선을 가르친 위대한 교사였으며, 정의를 수호한 진정한 투사였다. 하나님께서는 이들을 택하여 인류를 가르치고 당신의 메시지를 전하게 하셨다.이들은 역사의 여러 시대를 통하여 보내졌으며, 민족마다 하나 이상의 사도가 있었다. 시대에 따라서는 한 민족에게 두 명 이상의 사도들을 동시에 보내시기도 하였다. 성꾸란은 이들 중 25명의 이름을 들고 받아들인다. 이들은무함맏을 제외하고는 민족적, 지역적 사도로서 알려졌다. 그러나 그들의 메시지, 그들의 종교는 근본적으로 같았으며, 이슬람으로 일컬어졌던 것이니,이는 그것이 하나의 동일한 근원, 즉 하나님에게서 비롯하여, 하나님 정로http://www.quran.or.kr
  18. 18. (正路)로 인류를 인도한다는 한 가지의 동일한 목적에 봉사하였기 때문이다.모든 사도들은 예외 없이, 결국에는 죽어야 하는 인간이었던 바, 바로 이들에게 하나님께서는 계시를 내리고, 이들을 임명하여 어떤 과업을 수행하게하셨다. 이들 중 무함맏은 최후의 사도로서 예언자 지위의 초석이라는 최고의 영예를 누린다. 우리 멋대로 하는 생각이 아니요, 편의상의 신념도 아니다. 다른 모든 이슬람의 신념이 그렇듯이 그것은 근거 있는 논리적 진리인것이다. 참고로 여기에 위대한 사도 몇 분 곧 노아와 아브라함, 이스마엘과모세, 예수와 무함맏-이분들 모두에게 하나님의 평화와 축복이 있기를-제위의 이름을 언급해 둔다. 꾸란은 무슬림들에게 이렇게 하라고 명령한다 :우리는 하나님을 믿으며, 우리와 아브라함과 이스마엘, 이삭, 야곱과 그 12지파에게 내려진 계시를 믿나이다. 그리고 모세와 예수에게 내려진 계시와,주께서 당신의 모든 예언자들에게 내리신 계시를 믿나이다. 우리는 그들 사이에 서로 차별을 두지 아니하고, 하나님께 경배하나이다.(꾸란, 2:136, 비교3:84, 4:163-165, 6:84-87)3. 진실한 무슬림은 제 2조의 결과로서, 하나님께서 주신 모든 경전과 계시를 믿는다.이들은 인도의 불빛으로서 사도들은 이를 통하여 제각기 자기 민족에게 하나님의 정로(正路)를 보였다. 꾸란은 특히 아브라함, 모세, 다윗과 예수의 경전들을 언급하고 있다. 그러나 꾸란이 계시되기 오래 전에 이런 경전과 계시의 일부가 소실되거나, 왜곡되었으며 또 일부는 망각되고 등한시되거나, 혹은 감추어져 버렸다. 현존하는 하나님의 경전으로서, 완전히 믿을 수 있는것은 오직 꾸란뿐이다. 무슬림들은 꾸란 이전의 경전과 계시를 믿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그러나 그 완전한 원본이 어디 있는가? 사해(死海)밑에 아직가라앉아 있을 수도 있고, 아니면 앞으로 두루마리들이 더 발견될 지도 모른다. 또는 기독교인이나 유대인 고고학자들이 성지에서 발굴을 계속하여 찾아낸 것들을 전부, 일반에게 공개하게 되면 이에 대한 정보를 더 입수하게 될수도 있을 것이다. 무슬림들에게는 이런 문제가 없다. 완전하고 믿을 수 있는 꾸란이 그의 수중에 있는 것이다. 소실된 부분이 없으며, 더 첨가될리도없다. 그 신빙성은 의심의 여지가 없으며, 신중한 학자나 사상가 가운데 그누구도 그것이 진본(眞本)이라는데 감히 의문을 제기하지 않았다. 꾸란의 이런 특성은 하나님이 개입하신 결과인 바, 하나님께서는 꾸란을 계시하시어,친히 책임을 지시고, 그 첨삭과 왜곡을 철저하게 막으셨던 것이다. 따라서꾸란은 여타의 모든 경전의 판단 기준으로서 무슬림에게 주어진다. 그러므로꾸란과 일치하는 것은 다 하나님의 진리로 인정되지만, 꾸란과 어긋나는 것http://www.quran.or.kr
  19. 19. 은 다 배제되거나 보류된다. 하나님의 말씀은 다음과 같다 :진실로 우리가 꾸란을 보내었노니, 또 정녕코 이를 보존하리라. (꾸란, 15:9비교 2:75-79, 5:13-14,41,45, 6:91, 41:43)4. 진실한 무슬림은 하나님의 천사들을 믿는다.이들은 순수한, 빛나는 영적 존재들이며, 본질적으로 먹고 마시거나 자야 할필요가 없다. 이들에게는 아무런 육체적 욕망이나 물질적 욕구가 없다. 이들은 밤낮으로 하나님을 섬긴다. 이런 천사들은 많이 있으며 천사마다 어떤 의무가 부과되어 있다. 육안으로 천사를 볼 수는 없지만, 그렇다고 그들의 실존이 필연적으로 부인되는 것은 아니다. 세상에는 눈으로 볼 수 없고 감각되지 않는 것이 많지만, 우리는 이러한 것의 존재를 믿고 있다. 우리가 가보지못한 장소들이 있는가 하면, 기체나 에테르처럼 육안으로 보거나 냄새를 맡거나, 만져 보거나, 맛을 보거나, 들을 수 없는 것들도 있다. 그러나 우리는그 존재를 인정하고 있는 것이다. 천사를 믿는 것은 지식이나 진리를 오로지감각적 지식이나 감각적 인식에 국한되는 것은 아니라는 이슬람의 원칙에서연원한다. (꾸란, 16:49-50, 21:9-20, 제 2조 참고)5. 진실한 무슬림은 최후 심판일을 믿는다.이 세상에 언젠가는 종말이 오며, 사자가 부활하여 공정한 최후 심판을 받게될 것이다. 우리가 이 세상에서 쌓은 행적, 우리가 가지는 의향, 우리가 하는 거동, 우리가 마음에 품는 생각, 우리가 입으로 하는 말 하나 하나가 모두 헤아려져 정확히 기록, 보존된다. 심판일에 이 모든 것이 심리(審理)될것이다. 기록이 좋은 사람은 푸짐한 보상을 받고, 하나님의 천국으로 따뜻한영접을 받을 것이다. 기록이 나쁜 사람은 형벌을 받아 지옥으로 던져질 것이다. 천국과 지옥의 진짜 성격과 그 정확한 모습은 이것을 문자 그대로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 무함맏이 말한 대로라면, 천당에는 눈으로 본 적이 없고귀로 들어 본적이 없으며, 마음속에 생각해 보지 못한 것들이 있다. 그러나무슬림들은 선행에는 보상이, 악행에는 형벌이 어김없이 따르리라는 것을 믿는다. 이 날은 정의의 날이요, 마지막 총결산의 날이다.인간이 만든 법의 처벌을 면할 수도 있듯이, 약삭 바르기만 하면 죄를 짓고도 벌을 안 받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오산이다. 심판일에는 그것이 불가능할 것이기 때문이다. 아무런 대비 태세도 갖추지 못한 채 입장을 대변해 줄변호사도 없이 현장에서 체포되는 신세를 면치 못할 것이다. 이들의 모든 행위를 하나님께서는 보실 수 있으며, 또한 그분의 대리자들이 일일이 헤아리http://www.quran.or.kr
  20. 20. 고 있는 것이다. 또한 경건한 사람이 있어, 선행을 베풀어 하나님을 기쁘게하고도, 잠시 어울렸다가는 이 세상에서 아무런 사례나 찬사를 받지 못한다하더라도, 그날에는 결국 응분의 보상을 받을 것이며 널리 사례를 받게 될것이다. 절대적 정의가 모두에게 구현될 것이기 때문이다.심판일을 믿는 것이 지금 세계가 당면한 복잡 다단한 많은 문제들을 풀어주는 종국적인 해답이다. 죄를 저지르고, 하나님은 안중에도 없고 부도덕한행위에 있으면서도 겉으로 보기에는 사업에 성공하고 생활이 부유해 보이는 사람들이 있다. 그런가 하면 덕망 있고 하나님을 믿으면서도 진지한 노력에 응분의 대가가 따르기는커녕, 피해만 더 보는 사람들이 이 세상에는 있다. 이는 납득할 수 없는 일일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정의와도 대립하는 상황인 것이다. 죄진 사람이 세상법망을 피해 처벌을 면할 수 있다고 한다면,게다가 더 부유해진다고 한다면 덕망 있는 사람에게 남아 있는 것은 무엇이란 말인가? 어떻게 선의 대의를 증진시킬 것인가? 선에는 보상을 하고, 악은 저지시키는 무슨 방법이 있어야만 한다. 비록 지금 세상에서는 이렇게 되고 있지만-주지하는 바와 같이 된다 하더라도 제때에 즉시 그렇게 되지 않는다-어느 날엔가는, 반드시 그렇게 되고 말 것이니, 이날이 바로 심판날이다. 이 세상에서 자행되는 불의를 용납하고 해악을 묵인하려고 심판일이 있는게 아니다. 착취당하는 자를 회유하거나 착취하는 자를 안심시키려 함이아니요, 오히려 정로에서 벗어나는 자들에게 경종을 울리고 이들에게 하나님의 정의가 조만간 완전히 구현되리라는 것을 다짐해 두려는 것이다.(예, 전기의 논급 창조)6. 진실한 무슬림은 초시간적인 하나님의 지식과 계획을 세우고, 그 계획을실행할 수 있는 그분의 능력을 믿는다. 하나님은 이 세상에 무관심하시지 않으며 수수방관 하시지도 않는다. 그분의 지식과 힘은 수시로 작용하여 그분의 관대한 영역에 질서를 유지하며 그분의 피조물을 완전히 지배하고 있는것이다. 그분은 지혜롭고 사랑하는 분이시며, 그분이 하시는 일은 무엇이나반드시 선한 동기와 의미심장한 목적을 수반한다. 일단 이런 생각이 마음에새겨지게 되면 우리는 하나님께서 하시는 모든 일을 비록 우리가 그것을 충분히 이해하지 못하거나 심지어 그것이 틀리다는 생각이 들더라도 굳은 신앙심으로서 받아 들여야 한다. 우리는 그분을 굳게 믿고 그분이 하시는 일은무엇이나 받아들여야 한다. 우리의 지식이 한정되어 있고, 우리의 생각이 개인적인 차원에 바탕을 두고 있는 반면에 그분의 지식은 무한하고 그분의 계획은 우주적인 차원에서 세워지는 것이기 때문이다.이렇게 한다고 해서 인간이 운명론자가 되거나 무력해지는 것은 결코 아니http://www.quran.or.kr
  21. 21. 다. 하나님의 관심사와 인간의 책임 사이에 경계선을 그어줄 뿐이다. 우리는날 때부터 유한하고 한정되어 있기에 우리의 능력과 자유도 그 정도에 있어유한하고 한정적이다. 우리는 만능이 아니기에 그분은 인자하시게도 우리가하는 일에 대해서만 책임을 물으신다. 우리가 할 수 없는 일이거나 우리에게유한한 능력을 주시어, 우리의 유한성 및 책임한계와 균형을 이루게 하셨다.한편 하나님의 초시간적인 지식과 계획을 실행할 수 있는 능력으로 인하여,우리가 자신의 한정된 능력 범위 안에서, 스스로 생각하고 계획을 세울 수없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생각하고 계획을 세우며,올바른 선택을 하라고 권유하신다. 그러나 우리가 바라거나 계획한대로 되지않더라도 신앙심을 잃어버린다든지, 정신적 긴장이나 건강을 해치는 근심,걱정에 사로잡혀서는 안 된다. 한번해서 안되면 다시 해 보아야 하며 그래도결과가 만족스럽지 못할 경우엔, 최선을 다 했으니 그 결과에 대해서 책임을질 수 없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우리의 능력과 책임의 한계밖에 있는것으로 오직 하나님만이 관계되는 일이기 때문이다. 무슬림은 이런 신조를가리켜 까다와 와 까다르 를 믿는 것이라고 하는데, 이것을 바꿔 말하면 하나님의 초시간적인 지식은 사건을 예견하며, 사건은 하나님의 정확한지식에 따라 일어난다는 것을 의미한다. (예, 꾸란, 18:29, 41:26, 53:33-62,54:49, 65:3, 76:30-31)7. 진실한 무슬림은 하나님께서는 만물을 무의미하게 창조하시지 않았으며인생에는 인간의 육체적 필요와 물리적 활동을 초월하는 웅대한 목적이 있다는 것을 믿는다.생의 목적은 하나님을 숭배하는 것이다. 완전한 은둔과 철저한 명상 속에 전생애를 보내라는 말은 결코 아니다. 하나님을 숭배한다는 것은 곧 그분을 안다는 것이요, 그분을 사랑한다는 것이며, 그분의 계율에 복종하고 삶의 곳곳에서 그분의 법을 시행하며, 옳은 일을 하고, 악을 피함으로써 그분의 대의를 세운다는 것을 것이며, 그분과, 우리 자신과, 같은 인간들을 공정하게 대한다는 것이다. 하나님을 숭배한다는 것은 삶에서 도피하지 않고 삶을 사는것이다. 요컨대 하나님을 숭배한다는 것은 하나님의 지고한 속성을 우리 몸에 배게 하는 것이다. 이것은 결코 소박한 언명이 아니며, 문제를 지나치게단순화시킨 것도 아니다. 지극히 포괄적이고 결정적인 언명인 것이다. 그러므로 생에 목적이 있고, 인간이 그 목적에 이바지하도록 창조된 것이라면,그 책임을 회피할 수 없다. 하나님께서 책임을 부과하실 때는, 이 책임을 수행해 나가는데 필요한 도움도 함께 베풀어주신다. 하나님은 인간에게 스스로행동방침을 결정할 수 있는 지능과 능력을 부여하신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인간에게 전력을 다하여 자신의 존재 목적을 철저히 추구하라고 강권하시는 것이다. 그렇게 하지 못하거나 생을 헛되이 보내거나 혹은 자기의 소임http://www.quran.or.kr
  22. 22. 을 등한시한다면, 하나님께서는 그의 악행에 대해 책임을 물을 것이다. (참조, 꾸란, 21:17-18, 51:56-58, 75:37)8. 진실한 무슬림은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만유의 위계 질서 속에서 인간은특별히 높은 지위를 누린다고 믿는다.인간이 이처럼 뛰어난 지위를 차지하는 것은 오직 인간에게만 행동 능력을비롯하여 합리적 기능과 영적 열망이 부여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위가뛰어날수록 그만큼 책임도 무거워지는 것이다. 인간은 지상에서 하나님의 부왕(副王)의 지위를 차지한다. 하나님께서 당신의 대리자로 임명하여 활동하게 한 사람은 반드시 어떤 권력과 권위를 가지게 마련이며, 적어도 잠정적으로는 명예와 고결성이 부여된다. 바로 이것이 이슬람에서의 인간의 지위인것이다. 날 때부터 죽을 때까지 저주받은 종족이 아니다. 훌륭하고 고귀한업적을 성취할 수 있는 가능성이 잠재된 존엄한 존재이다. 하나님께서는 인류 가운데서 사도를 택하신 사실로 미루어 알 수 있듯이, 인간은 신뢰할 수있고 유능하며 선의 엄청난 보물을 자기 것으로 할 수 있다. (꾸란, 2:30-34,6:165, 7:11, 17:70-72, 90-95)9. 진실한 무슬림은 사람은 누구나 다 무슬림 으로 태어난다고 믿는다.이것은 출생의 과정이 바로 하나님의 뜻에 따라 그분의 계획을 실현하고 그분의 명에 복종하여 일어나는 것임을 뜻한다. 이것은 또한 사람에게는 누구나 영적인 잠재력과 지적인 성향이 있어, 이슬람에 올바로 접하고 그 천성이향상되어 나가도록 놓아두기만 한다면, 이러한 잠재력과 성향을 통하여 그가훌륭한 무슬림이 될 수 있음을 뜻한다. 이슬람을 올바르게 전해 주기만 하면,쉽사리 그것을 받아들일 수 있는 사람들도 많다. 왜냐하면, 이슬람은 자손들의 천부의 열망을 비롯하여 윤리적 영적 욕구를 만족시키고자 하는 사람들과 개인적 사회적 국가적 세계적 차원에 걸쳐 건설적이고 건전한 삶을살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신성한 신조가 되기 때문이다. 또한 이슬람은 인간성을 창조하셨기에 어떻게 해야 인간성이 가장 유익한가를 아시는 하나님의세계 종교이기 때문이다. (꾸란, 3:30, 64:1-3, 82:6-8)10. 진실한 무슬림은, 사람은 누구나 태어날 때에는 죄가 없으며 덕을 유전받았다고 주장할 권리도 전혀 없다는 사실을 믿는다.사람은 마치 아무 것도 써 있지 않은 책과 같은 존재다. 정상적으로 성장하고, 정신이 온전할 경우, 성인의 연령에 달하면 자신의 행위와 의사에 책임을 질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인간은 죄를 짓지 않는 한 죄에 구속되지 아니하며, 자신의 계획에 따라 스스로 책임을 지고 행동을 할 수 있는 자유를 누http://www.quran.or.kr
  23. 23. 린다. 이 두 가지의 자유 곧 죄에 구속되지 아니하는 자유와 효율적으로 행동할 수 있는 자유는 유전 받은 죄라는 무거운 짐에서 무슬림의 양심은 해방시켜 준다. 원죄의 교리가 야기하는 불필요한 긴장을 인간의 영혼과 정신에 제거시켜 주는 것이다.이슬람에 있어서의 이러한 자유의 개념은 하나님의 정의의 원칙과 개개인이하나님께 직접 책임을 진다는 원칙에 그 바탕을 둔다. 각 개인은 자기 자신의 짐을 져야 하며, 자신의 행위에 책임을 져야 한다. 그 누구도 타인의 죄는 대속할 수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무슬림이라면 누구나 아담이 원죄라는것을 범했다고 한다면, 거기에 속죄하는 것은 바로 그 자신의 책임이라고 믿는다. 하나님께서 아담을 용서하실 수 없었고, 다른 누구에 의해 그 죄를 대속 시켜야 했다든지, 아담이 용서를 빌지 않았거나, 용서를 빌었는데 받아들여지지 않았다고 한다면, 이것은 그 가능성이 극히 희박할 뿐 아니라, 하나님의 용서해 주시는 속성과 용서의 권능은 물론이려니와, 그분의 자비와정의에 어긋나는 처사일 것이다. 이와 같은 가정은 상식을 철면피하게 무시하는 것이며, 바로 하나님의 개념을 무모하게 범하는 것이 될 것이다.(제 9조 참조, 꾸란, 41:46, 45:15, 53:31-42, 아래의 죄의 개념 참조)이러한 합리적 생각과 꾸란의 권위를 바탕으로 하여 무슬림은 아담이, 여느지각 있는 범죄자가 그러하듯이, 자기가 지은 죄를 깨닫고 하나님께 용서를빌었다고 믿는다. 또 마찬가지 근거에서 자비로우사 용서해 주시는 하나님께서 아담에게 용서를 베푸셨다고 무슬림은 믿는다.(꾸란, 2:35-37, 20:117-122) 그러므로 무슬림은 아담을 비롯한 전 인류에게 유죄선고가 내려져 예수가 그 죄를 대속 하러 올 때가지 용서받지 못하였다는 교리를 추호도 용납할 수 없다. 결국 무슬림은 예수가 십자가에서 죽음으로써, 전 인류의 죄를 단번에 제거하였다는 극적인 이야기를 환영할 수 없는 것이다.여기서 독자가 그릇된 결론을 내리지 않도록 주의해 둘 게 있다. 무슬림은예수가 그 적들에 의해 십자가에서 처형되었다는 것을 믿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러한 십자가형의 교리는 그 바탕에 있어 그것이 인간의 논리와 존엄에어긋나는 만큼이나 무슬림의 예수에 대한 존경심이 흐려지는 것은 결코 아니다. 또한 이슬람에서 예수가 차지하는 높은 지위가 깍아내려진다든지, 하나님의 뛰어난 예언자로서 예수를 받드는 무슬림의 신념이 흔들리게 되는것도 결코 아니다. 오히려 이러한 교리를 배척함으로써 무슬림은 보다 더한경애와 존경으로써 예수를 받아들이며 예수께서 원래 가져온 메시지를 이슬람의 불가결한 부분으로 간주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한 사람의 무슬림이 되려면 하나님의 예언자 모두를 차별 없이 받아 드리고 존중해야 한다는 것을다시 한 번 말해 둔다. 이슬람에서 예수가 차지하는 일반적 지위는 뒷장에http://www.quran.or.kr
  24. 24. 가서 더 논의될 것이다.11. 진실한 무슬림은 인간은 하나님의 인도를 통해서 자신의 구원을 이루어야 한다고 믿는다.이것은, 구원을 얻으려면 신앙과 행동, 신념과 실천이 겸비되어야 함을 뜻한다. 행동을 수반하지 않는 신앙은, 신앙이 없는 행동만큼이나 불충분하다.다시 말해서 하나님에 대한 신앙이 생활 속에 살아 움직이고 그 신념이 현실화되어야 비로소 구원을 받을 수 있다는 이야기다. 본조는 이슬람이 여타신조들과 완벽하게 조화를 이룬다. 하나님께서는 말뿐인 봉사를 받아들이지않으시며, 진실한 신자라면 신앙의 실천적 요건에 관한 한 무관심할 수 없다는 것을 본조는 지적한다. 또한 그 누구도 타인을 대신하거나 그와 하나님사이에서 중재할 수 없다는 것을 지적한다.(예, 꾸란, 10:9-10, 18:30,103:1-3 참조)12. 진실한 무슬림은 하나님께서는 그 누구에게든 먼저 그에게 올바른 길을보이지 않고서는, 책임을 지우지 않는다는 것을 믿는다.이것이 하나님께서 많은 사도와 계시를 보내시고, 인도를 베풀고 경고를 발하기 전에는 징벌하시지 않으리라는 것을 분명하게 밝히신 소이(所以)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계시나 사도에 접해 본 일이 없는 사람이나 정신이 온전치못한 사람은 하나님의 가르침에 복종하지 않았다고 해서 그에게 책임을 지지 않는다. 이러한 사람은 자신의 건전한 상식에 따라 행동하지 않은데 대해서만 책임을 진다. 그러나 알면서도 고의로 하나님의 법을 어기거나 그분의정로(正路)에서 이탈한 사람은 자신이 저지른 악행으로 해서 처벌될 것이다.(꾸란, 4:165, 5:16 & 21, 17:15)이 점이 무슬림 각자에게 매우 중요하다. 세상에는 이슬람에 대해 들어보지못하고 이슬람을 알 길이 없는 사람들이 많이 있다. 이런 사람들도 이슬람을애써 찾는다면 진실해질 수 있고 훌륭한 무슬림이 될 수도 있다. 알지도 못하고, 알 길이 없는 사람들은 무슬림이 되지 않았다고 해서 책임을 지게 되는 일은 없을 것이다. 그 대신 이슬람은 이런 사람들에게 소개할 수 있는 입장에 있는 무슬림들이, 이들을 이슬람으로 초대하여, 이슬람의 참모습을 보여 주지 못한데 대한 책임을 지게 될 것이다. 이것은 전세계의 모든 무슬림들에게 말로써 이슬람을 전파할 뿐 아니라-더욱 중요한 것으로서-생활 속에이슬람을 액면 그대로 실현하라고 촉구하는 것이다.(예, 꾸란, 3:104,16:125)13. 진실한 무슬림은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인간성에는 악보다는 선이, 절망적으로 실패할 가능성보다는 선도에 성공할 가망성이 더 많다는 것을 믿는http://www.quran.or.kr
  25. 25. 다.이런 신념은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어떤 과업을 부과하시고, 사도들에게 그를인도하기 위한 계시를 보내셨다는 사실에 근거한다. 인간이 날 때부터 가망없는 존재이고, 선도의 여지가 없는 존재라고 한다면, 어떻게 절대적인 지혜를 가진 하나님께서 이런 인간에게 책임을 과하고, 이것은 하고, 저것은 하지 말라는 식의 권고를 하실 수 있다는 말인가? 그 모든 것이 허사라고 한다면 어떻게 하나님께서 그렇게 하실 수 있겠는가? 하나님께서 인간을 보살피고 관심을 쏟고 계시다는 사실이 인간은 무력하거나 가망이 없는 것이 아니라, 선을 식별하고 선해지려고 하는 경향이 더 강하다는 것을 입증한다.하나님에 대한 신앙이 굳건하고 인간을 합당하게 신뢰한다면, 정녕 우리 세대에서도 기적을 이룰 수 있다. 이를 올바로 이해하려면, 꾸란의 관련 구절을 면밀히 연구하고 그 뜻을 음미해 보아야 한다.14. 진실한 무슬림은 신앙이란, 이치를 따져 만족하지 않고 그것을 맹목적으로 추종하거나 아무 의심 없이 무조건 받아들여서는 완전하지 못한다고 믿는다.신앙이 행동을 자극하고, 신앙과 행동이 구원으로 이끄는 것이라고 한다면,어떠한 기만이나 강요도 당함이 없이, 확고한 신념 위에 신앙이 세워져야 하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가문의 전통 때문에 무슬림으로 자처하는 사람이나강요를 받거나 맹목적으로 모방해서 이슬람을 받아들인 사람을 하나님께서는 완전한 무슬림으로 보시지 않는다. 무슬림이라면 누구나 충분한 근거를가진 신념 위에 자신의 신앙을 구축해야 하는 것이다. 여전히 풀리지 않는의심이 남아 있거나 반신반의하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된다. 하나님께서는 자기의 신앙을 확신하지 못하는 사람에게 자연의 펼쳐진 책 속을 살펴보고, 추리력을 발휘하고, 꾸란의 가르침을 음미해 보라고 권유하신다. 이런 사람은더 이상 논의의 여지가 없는 명백한 진리를 찾을 때까지 그것을 추구해야한다. 능력과 성의에 부족함이 없다면 틀림없이 그러한 진리를 찾게 될 것이다. (예, 꾸란, 2:170, 43:22-24 참조)이슬람이 건전한 확신을 요구하고 맹목적 모방에 반대하는 까닭이 여기에있다. 이슬람은 진실하고 진지한 사상가로 정평이 나 있는 모두에게 이들이가지고 있는 재능을 남김 없이 발휘하라고 명한다. 그러나 그렇지 못하거나자신이 없는 사람이라 하더라도 한계에 다다를 때까지 생각을 추구해야 한다. 이런 사람들의 경우, 믿을 만한 종교 경전만을 의지하는 것이 순리일 것이다. 이러한 경전은 그 자체로서 충분할 뿐 아니라 그로서는 여기에 비판적인 의문을 제기할 수 있는 능력이 없기 때문이다. 요는 신앙이 건전한 확신을 바탕으로 하지 않고 마음속에서는 의심이 말끔히 가셔 버리지 않는 한http://www.quran.or.kr
  26. 26. 누구든지 진정한 무슬림으로 자처할 수 없다는 것이다. 건전한 확신과 선택의 자유가 그 바탕에 깔려 있는 경우에만 이슬람이 완전한 것이기에, 그 누구에게도 그것이 강요될 수 없다. 하나님께서 이처럼 강요당한 신앙을 받아들이시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또한 그분은 속에서 우러나오지 않거나, 자유롭고 건전한 확신에서 비롯되지 않는 이슬람은 진정한 이슬람으로 여기시지 않을 것이다. 이슬람은 신앙의 자유를 보장하는 고로, 무슬림 국가에서많은 비무슬림 집단이 완전한 신앙과 양심의 자유를 누리면서 살았고, 지금도 살고 있다. 무슬림들이 이런 태도를 취하는 것은 이슬람이 종교의 강요를금하기 때문이다. 이슬람은 내부에서 비쳐 나와야 하는 빛이다. 선택의 자유가 책임의 초석이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자녀에 대한 부모의 책임이 면제되는 것은 아니다. 사실은, 최선을 다해서 이들에게 강한 신앙심을 고취시켜야한다.건전한 바탕 위에 신앙을 확립하는 길은 여러 갈래가 있다. 영적인 접근법이있는 바, 이것은 주로 꾸란과 무함맏의 전승에 근거하는 것이다. 또한 합리적 접근법이 있는데, 이 방법에 의하면 결국, 지고한 존재에 대한 신앙으로유도된다. 이렇다고 영적인 접근법에 확실한 합리성이 결여되어 있다거나 합리적 접근법이 영성을 고취시켜 주지 못한다는 것은 아니다. 사실 양자는 상호 보완관계에 있으며 따라서 당연히, 활발한 상호작용을 하게 되는 것이다.합리적 지식이 충분히 갖추어져 있으면, 합리적 접근법이나 영적인 접근법혹은 두 가지 방법에 다 의지할 수 있으며, 자신이 내린 결론의 타당성에 자신을 가질 수 있다. 그러나 깊이 연구할 능력이 없거나, 자기의 추리력에 자신이 없으면 영적인 접근법에만 국한해도, 믿을 만한 종교원전에서 얻을 수있는 지식에 만족할 수 있다. 요컨대, 영적인 접근법에 의하든, 합리적 접근법에 의하든, 혹은 이 두 가지 방법에 의하든 결국 하나님을 신앙하게 되는것은 마찬가지다. 이 모든 길은 그 중요성에 차이가 없으며 이슬람에서 똑같이 취급되고 있다. 올바른 경로만 밟는다면 같은 목적, 즉 지고한 분에 대한신앙으로 이끌어지게 된다. (꾸란, 5:16-17, 12:109, 18:30, 56:80)15. 진실한 무슬림은 꾸란이 천사 가브리엘을 매개하여 무함맏에게 계시된하나님의 말씀임을 믿는다.꾸란은 하나님으로부터 때에 따라 조금씩 계시되었으니, 이는 어떤 의문에답하고, 문제를 해결하고, 논쟁을 종결지으며, 하나님의 진리와 영원한 행복으로 인간을 이끄는 최선의 길잡이가 되기 위함이었다. 꾸란의 글자 하나 하나가 하나님의 말씀이며 그 속에서 울리는 소리 하나 하나가 바로 하나님의음성의 반향인 것이다. 꾸란은 이슬람 제일의 가장 믿을 만한 원전이다. 이것이 아랍어로 계시되었던 바, 지금도 여전히 완전한 아랍어 원전으로 되어있고, 앞으로도 변함없을 것이다. 하나님께서 친히 관심을 두시어 꾸란을 보http://www.quran.or.kr
  27. 27. 존하시고, 그것이 언제 어디서나 인류에게 최선의 길잡이가 되도록 하시며,그 왜곡을 방지하고 계시기 때문이다.(비교, 꾸란, 4:82, 15:9, 17:9, 41:41-44, 42:7,52-52)꾸란이 그 문제에 조금의 변화도 없이 심지어 점하나 바뀌지 않고 완전한원전으로 보존된 역사상 유일한 경전이라는 사실이 하나님께서 그것을 보전하셨음을 증명하고 있는 바이다. 꾸란을 기록하고, 그 장절을 짜고, 그 본문을 보존한 역사는 무슬림들 뿐만 아니라 성실하고, 진지한 학자들의 마음속에 의심의 여지를 남기지 않는다. 이것은 역사적 사실로서, 어떤 신앙을 가진 학자-자신의 지식과 정직성을 존중하는-든지 여기에 이의를 제기하지 않는다. 사실 온 인류가 나선다 해도 꾸란의 장 하나도 흉내낼 수 없으리라는것이 무함맏이 이룬 불멸의 기적이다.(꾸란, 2:22-24, 11:13-14, 17:88-89)16. 진실한 무슬림은 꾸란과 무함맏의 전승은 확연히 구분된다고 믿는다.꾸란은 하나님의 말씀인 반면, 무함맏의 전승은 꾸란의 실천적 해석이다. 꾸란은 받은 그대로 전하고, 그것을 해석하고, 그것을 철저하게 실천하는 것이무함맏이 맡은 역할이었다. 그가 내린 해석과 그 실천이 소위 무함맏의 관습(전통)이라는 것을 만들어 내었다. 이것이 이슬람 제이의 원전인 바, 제일의원전이요, 판단의 기준인 꾸란과 완벽한 조화를 이루지 않으면 안 된다. 관습(전통)과 꾸란 사이에 조금이라도 모순되거나 불일치 하는 점이 있으면,무슬림은 꾸란만을 고수하고, 꾸란 이외의 것을 전부 의문시할 수 있다고 본다. 왜냐하면 무함맏의 진짜 관습이 꾸란에 어긋나거나 상반될 수는 없기 때문이다.일러두기이제까지 이슬람의 주요 신조들을 논하면서, 일부러 전통적인 방법에 따르지않았다. 이 주요 신조들을 5개조 내지 6개조에 국한시키지 않고, 가급적 많은 원칙들을 포함시키고자 하였다. 그러나 전술한 모든 신조는 꾸란의 가르침과 무함맏의 관습(전통)에 근거하여 유도해 낸 것임을 여기에 지적해 둔다. 꾸란의 구절을 더 많이 인용하고 관습을 많이 들어서 본 신조들의 근거를 제시할 수도 있었지만, 지면 관계상 이를 생략하였다. 하지만 꾸란과 무함맏의 전승을 참고로 하여 자세히 연구해 볼 수 있다.또한 운명 예정설이니 숙명론이니 자유의지니 하는 등의 서구식 술어와 전문용어는 가급적 사용하지 않았다. 혼란과 전문성을 피하고 싶어서 일부러이렇게 했다. 아랍어를 쓰지 않는 사람들이 믿는 종교용어는 대부분의 경우,이를 이슬람에 적용시키면 오해의 소지를 낳을 뿐 아니라 그릇된 인상을 주게 된다. 따라서 외래 종교용어를 가져다가 이슬람에 대입시키게 되면 본서http://www.quran.or.kr
  28. 28. 의 취지를 살리지 못했을 것이다. 또 외래 종교용어를 본서에서 사용할 경우,이슬람의 실상을 밝히자면 많은 단서와 주석의 첨가가 불가피했을 것이다.이렇게 되면 지면을 늘려야 하는데 형편상 도저히 그럴만한 여유가 없었다.그래서 되도록 평이하고 단순한 말로 설명을 가하려고 했다. 앞으로도 본서의 설명은 이에 준할 것이다.http://www.quran.or.kr
  29. 29. 제 2장 이슬람의 기본개념신앙(이만)의 개념참 하나님의 유일성을 믿고 무함맏을 그분의 마지막 사도로 믿는다고 고백하면 무슬림이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을지 모른다. 그러나 이것이 신앙의 완전한 의미는 결코 아니다. 이슬람에서의 신앙이란 행복한 상태를 말하며, 이러한 행복은 적극적 행동과 건설적 개념 그리고 역동하는 효과적 수단에 의해 획득된다.성꾸란과 무함맏의 관습(전통)이 이러한 요구 수단을 규정하고 의미 있는 신앙을 구축하는 기준을 확립한다. 따라서 진실한 신자는 :1. 하나님과 그분의 천사들과 꾸란으로 완결되는 경전들과 무함맏을 마지막으로 하는 사도들과 최후 심판일과 하나님의 절대적인 지식과 지혜를 믿는다.2. 언제나 하나님을 믿고, 그분을 확고부동하게 신뢰한다.3. 하나님께서 부여하신 부와 생명과 건강과 지식과 경험 등을 하나님을 위해 베푼다.4. 주집회(週集會)와 일상 예배를 제 때에 준행(準行)한다.5. 종교세(자선 혹은 자카)를 정당한 수혜자(개인이나 기관)에게 지불한다.종교세의 최소한도는 연 순수입 혹은 투자한 경우 증권 총가액에서 모든 비용과 채무를 공제한 나머지 2.5%이다.6. 의와 선을 명하고 불의와 악에 대하여는 모든 법적 수단을 동원하여 자기 마음대로 맞서 싸운다.7. 하나님과 그분의 사도 무함맏에게 복종하여, 꾸란이 낭송되면 신앙심이고조되고 하나님의 이름이 들리면 마음이 겸손해짐을 느낀다.8. 하나님과 그분의 사도를 극진히 사랑하고, 오직 하나님을 위하여 동료 인간을 진정으로 사랑한다.9. 원근(遠近)의 이웃을 사랑하고, 손님 특히 낯선 사람에게 진심 어린 친절을 베푼다.10. 진실을 말하고, 건전한 대화에 끼거나, 아니면 말을 삼간다.분명히 신앙의 이런 의미에 의한다면, 이슬람은 생활의 모든 측면으로 깊숙이 그리고 건설적으로 스며들어야 하는 것이다. 이슬람에 의하면 진실한 신앙은 인간의 정신적, 물질적 운명과 개인적, 사회적 행동 그리고 정치행위와재정생활에 결정적 영향을 미친다.다음에 몇 가지 실례를 들어 꾸란이 진실한 신자를 가리켜 어떻게 말하고http://www.quran.or.kr
  30. 30. 있는지 보기로 한다. 꾸란에는 이런 종류의 언급이 많다:진실한 신자는 이러하니 곧 하나님 얘기가 나오면 복종심이 우러나오고, 마음이 겸손해지며, 하나님의 계시가 낭송되면 신앙심이 고조되고 굳세어 지느니라.또 주를 신뢰하고 (명을 받은 대로)예배를 준행하며, 우리가 부여해 준 것을(하나님을 위하여)베푸나니 이들이야말로 진실한 신자이니라. 이들을 위해서하나님 앞에서의 높은 명예와 풍성한 마련이 있느니라. (꾸란8:2-4)진실한 신자는 남녀를 불문하고 서로를 보호해 주는 (결연한)친구들이니라.저들은 의를 명하고 악을 금하며 예배를 준행하고 가난한 자에게 베풀 것을베풀며 하나님과 그분의 사도에게 복종하느니라. 하나님께서 이들에게 자비를 베푸시리니 진실로 하나님은 강하고 지혜로우시도다. 하나님께서는 남녀신자 모두에게 아래로 강이 흐르는 동산의 거처와 영원한 행복의 동산 속의아름다운 저택을 약속하시느라.그러나 가장 큰 행복은 하나님의 선한 기뻐하심이니, 그것이야말로 지고한행복이니라(꾸란, 9:71-72)진실한 신자는 하나님과 그분의 사도(무함맏)를 믿되, 돌아서서 의심하지 않고 자기의 재산과 생명을 바쳐 하나님을 위하여 싸우나니 이러한 사람이라야 진실하다 할 수 있느니라(꾸란, 49:15)이러한 꾸란의 언급 말고도 여기에 관련된 무함맏의 전승도 적지 않다. 무함맏의 말씀을 예로 들어본다.너희 중 누구든지 자기가 좋아하는 일이 동료신자에게 생기는 것을 좋아하지 않으면 진실한 신자가 될 수 없느니라세 가지 성품이 건전한 신앙의 징표를 이루는데, 이러한 성품을 가진 사람만이 신앙의 진수를 맛볼 수 있다. 이 세 가지는 (1)하나님과 그분의 사도를무엇보다 사랑하는 것이며 (2)같은 인간을 오직 하나님을 위하여 사랑하며(3)마치 불 속에 던져지기라도 하듯 발분(發憤)하여 불신으로 돌아서는 것에저항하는 것이다.하나님과 최후 심판일을 믿는 사람은 이웃에게 해를 입히는 것이 금지되며,손님 특히 낯선 사람에게 친절해야 하며, 진실을 말하든지 아니면 말을 삼가야 한다.위의 인용 예와 유사한 꾸란의 구절과 관습은 많이 있다. 그러나 위의 인용은 아랍어 원전에 나오는 꾸란과 무함맏의 말씀 그대로는 아니며, 또 그럴수도 없는 것이다. 그 이유는 간단하다. 아무리 학식과 재능을 갖춘 사람이http://www.quran.or.kr
  31. 31. 해석을 내린다 하더라도, 다른 언어로 꾸란의 영적인 힘과 마음을 끄는 활력은 결코 재현할 수 없기 때문이다. 꾸란은-하나님께서 그렇게 만드셨다-흉내낼 수 없으며 인간의 상상력과 재현능력을 초월한다.이 점에 있어서는 어느 정도까지 무함맏의 관습도 꾸란과 마찬가지다. 꾸란다음으로 무함맏의 말씀은 가장 결정적이고 웅변적이기 때문이다.1)정의(正義:비르)의 개념이슬람은 항상 피상적 개념과 겉치레만의 의식을 경계하며, 무미건조한 정식절차와 효력 없는 신념을 경계한다. 꾸란의 대표적인 한 구절에서 하나님은정의의 진정한 의미를 설명하신다.(예배 중에)고개를 동쪽이나 서쪽으로 돌리는 것은 의가 아니니라. 의는 곧이것이니 하나님과 마지막 날과 천사들과 경전과 사도들을 믿는 것이요, 너의 재물-비록 아끼는 것이라 하더라도-을 친척과 고아와 궁핍한 자와 나그네와 간청하는 사람과 노예의 속전(贖錢)을 위하여 베푸는 것이며 예배를 착실히 보고 때맞추어 자선을 하는 것이요, 계약을 이행하며, 고통과 역경 속에서 그리고 공포가 밀려와도 내내 동요하지 않고 인내하는 것이니라, 이러한 사람이 진실하고 하나님을 염원하는 사람이니라(꾸란, 2:177)여기 인용한 꾸란 구절에 의로운 사람이 아름답고 선명하게 묘사되어 있다.정의로운 사람은 모두 유익한 규칙에 복종하고, 진지한 동기에서 하나님과그리고 하나님을 생각하여 동료 인간을 사랑해야 한다. 다음에 4개 강령을제시한다 : (1) 우리의 신앙은 진실하고 진지해야 하며, (2) 같은 인간에게자선과 친절을 베풀어 우리의 신앙심을 보일 각오가 서 있어야 하며, (3) 자선단체와 사회기관을 후원하여 선량한 시민이 되어야 하며 (4) 어떤 상황에처해서는 태연자약해야 한다.그러므로 분명히 정의는 결코 실속 없는 말만으로는 서지 않는다. 정의는 굳센 신앙과 실천 위에 구축되어야 하는 것이다. 인간의 사고와 행동을 지배하고 생활의 내면과 외면으로, 공사의 모든 문제로 확대되어 나가야 하는 것이다.이슬람의 정의와 원칙이 서게 되면, 개인에겐 항상 평온이 깃들고, 사회는각 방면에서 안정을 누리며 국가는 결속되고 국제 사회에는 희망과 조화가넘칠 것이다.사람들의 개념에 맞게 정의를 실천한다면 산다는 것이 얼마나 평화롭고 대의명분에 투자하는 것보다 더 마음 든든한 일이 어디 있겠는가?피지배자의 깊은 관심을 덜고 착취당하는 자의 고통을 줄이며 의지할 데 없http://www.quran.or.kr
  32. 32. 는 사람의 궁핍한 처지를 돌보는 것보다 더 인도적인 일은 무엇인가?약속을 이행하고 양심을 깨끗이 보존하며, 성실성을 지키는 것보다 더 정연(整然)하고 정직한 일은 무엇인가? 당연한 일이지만, 하나님을 위하여 이 모든 일을 어김없이 행하는 것보다 더 정신적인 기쁨을 주는 일이 또 있겠는가?경건(敬虔:따끄와)의 개념신앙과 정의에 대해 말한 내용이 대개는 경건에 대해서도 그대로 적용된다.경건 역시 편의상 요구하는 것이 아니며 입으로 고백한다고 해서 끝날 문제도 아니다. 이보다 한층 더 심각한 문제인 것이다.어느 때와 마찬가지로 꾸란이 우리의 최선의 전거(典據)인 바, 꾸란은 경건한 사람을 가리켜 이렇게 말한다 :경건한 사람은 (하나님께서 가르치신 바)보이지 않는 것을 믿으며 예배에 철저하며 우리가 마련해 준 것을 베풀면서 무함맏에게 보낸 계시와 네 이전에보낸 계시를 믿고, (마음속으로)내세를 확신하느니라, 이들은 주님의 올바른인도를 따르나니 바로 이들이 번영을 누릴 자들이니라.(꾸란, 2:3-5)경건한 사람은 유복할 때나 어려울 때나 (하나님을 위하여 아낌없이)베풀며분노를 참고(모든)사람을 용서하여 주느니라. 하나님께서는 선을 행하는 사람과-부끄러운 일을 했거나 스스로 그 영혼을 욕되게 했을지라도-진정으로하나님을 염원하고, 용서를 빌며-하나님 외에 누가 죄를 용서할 수 있으리요?-결코 그 마음을 완고하게 하여 자기가 저지른 (악)을 고의로 되풀이하지않는 사람을 사랑하심이라, 이들에게 주께서는 용서로 보상하시며, 아래에강이 흐르는 동산을 상으로 주어 영원히 거하게 하느니라.힘써 (노력하는)사람들에게 정녕 훌륭한 보상이 아닌가! (꾸란, 3:134-136)여기 인용한 꾸란 구절에서 알 수 있듯이, 경건하려면 하나님과 생의 진리를파악함으로써 지성을 선용하며, 어떤 상황에서든지 하나님을 위하여 베풀어줌으로써 부를 선용하며, 예배를 준행함으로써 인간의 정신적 신체적 능력을 선용해야 한다.경건은 또한 분노와 감정에 대한 고도한 자제력과 용서하고 인내할 수 있는도덕적 능력과 그리고 죄인을 회개시켜 하나님께 돌아서게 해야겠다는 의지적 행동을 요청한다. 경건하다는 것은 곧 올바르고 훌륭한 확신을 보지(保持)하고 결단력과 인격을 갖추며 의지와 용기를 겸비한 사람이 됨을 뜻하며특히 하나님의 사람이 됨을 뜻한다. 경건과 정의와 의미 있는 신앙은 상호관련 되어 하나의 길로 통하게 된다.즉 이들 모두는 이슬람으로 인도하여 진정한 무슬림을 만들어 낸다.http://www.quran.or.kr
  33. 33. 예언자 지위의 개념자비로운 사랑의 하나님께서는 역사의 여러 시대에 걸쳐 많은 예언자들을보내셨다.민족마다 하나 이상의 예언자가 있었으며 하나님의 예언자 모두는 훌륭한인격과 드높은 명예(위엄)를 갖춘 사람들이었다. 하나님께서 이들을 택하고예비시켜 당신의 메시지를 인류에게 전하게 하셨다. 그들의 정직성과 진실성그리고 지성과 성실성에 대해서는 의문의 여지가 없다. 죄를 짓거나 하나님의 법을 범하지 않았다는 의미에서 이들에게는 과오가 없었다. 그러나 이들역시 인간이었기에 인간사를 해결하고 결정을 내리는 데 있어 본의 아니게실책을 범했을 가능성도 있다. 이들의 개인적 판단이 반드시 옳기만 했던 것은 아니다.하나님께서 이들 예언자들을 보내신 것은 하늘과 땅 그리고 인간과 하나님사이에 강한 유대가 있음을 명백히 시현(示顯)하는 것이다. 인간에게 개선의의지가 있고, 선한 기질이 다분히 있음을 뜻하는 것이다. 예언자 지위를 둔목적은 인간이 이미 알고 있거나 알 수 있는 것을 확인시키고, 그 스스로 알지 못하거나 알 수 없는 것을 가르쳐 주려는 데 있다. 또한 인간에게 도움을베풀어 하나님의 정로를 찾고, 의를 행하고 악을 피할 수 있게 하려는 것이다. 예언자 지위는 하나님의 피조물에 대한 사랑과 그 피조물을 올바른 신념과 행동으로 이끌고자 하는 그 분의 의지를 웅변적으로 말해 준다. 그것은또한 인간에게 하나님의 정의를 부가시킨다. 하나님께서는 먼저 인간에게 올바른 인도를 베풀고, 다음에 그 행위에 대한 책임을 물으시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 예언자들을 통하여 경고를 발하고 있는 데도 사람이 자기 악행의위험을 인지하지 못한다면, 그의 행위는 처벌의 대상이 된다. 이것은 하나님의 사랑과 정의 그리고 인간이 주님께 책임을 질만한 가치와 능력에 완전히부합한다.예언자직의 근원과 모든 예언자들의 후원자는 하나로서 동일하니 곧 하나님이 이에 해당한다. 하나님을 섬기고, 인간에게 하나님과 그분의 신성한 가르침을 알게 하여 진리와 선을 확립하고 도움을 베풀어, 자기 존재의 진정한목적을 실현하게 하며, 목적이 있는 삶을 영위하게 하는 것이 이들 예언자의목적이다. 무슬림이 예언자들을 차별하지 않고 이들의 가르침을 일관성 있고상호 보완적인 것으로 받아들이는 것은 이러한 바탕에서다. 그리고 또한 이러한 이유에서 무슬림은 하나님의 모든 경전을 믿고 앞서 말한 모든 예언자들을 받아들인다.http://www.quran.or.kr
  34. 34. 생명(生命)2)의 개념생명은 하나님의 지혜와 지식의 찬란한 전시이며 그분의 기술과 능력의 생생한 반영이다. 그분은 생명의 수여자요, 창조자이시다. 그 무엇도 우연히존재하게 된 것은 없으며 그 누구도 자신이나 다른 사람을 창조해 내지 못한다. 생명은 귀하고 소중한 재산이며, 제 정신을 가진 사람이라면 생명을잃어버리는 쪽을 택하고 싶어하지는 않을 것이다. 절망에 빠진 나머지, 서서히 자신을 죽여, 생명을 버리는 사람들도 마지막 순간에 가서는 다시 살아날려고 애쓰며 재생의 기회를 잡고 싶어한다. 생명은 하나님께서 인간에게부여하신 것이므로, 그것을 도로 찾을 정당한 권리를 가진 분은 오직 하나님뿐이다. 그 누구에게도 살생의 권리가 없는 것이다. 이것이 이슬람이 자살과자멸을 어떤 경우에도 금하며 귀중한 영혼이 떠날 때, 인내와 강한 신앙을권하는 소이(所以)이다. 살인자가 처형을 당할 때는, 하나님의 권리와 그 분의 법에 따라 그의 생명이 제거되는 것이다.하나님께서 인간에게 생명을 주면서 공연히 독특한 자질과 뛰어난 능력을부여한 것이 아니며, 부질없이 어떤 의무를 부과한 것도 아니다. 인간으로하여금 생의 목적을 이루고 존재의 목적을 실현하게 하려는 하나님의 뜻이숨어 있는 것이다. 하나님의 인도를 따라 창조적 삶의 기술을 터득하여 삶의진미를 맛보게 하려는 것이다. 생명은 하나님의 신탁물이며 인간은 그 수탁자로서 하나님을 염두해 두고 그 분에 대한 책임을 의식하여 그 신탁물을정직하고 요령 있게 다루어야 한다.생명은 어떤 지점에서 출발하여 어떤 목적에서 끝나는 여행에 비유해 볼 수있다. 생명은 일종의 과도계단(過渡階段)이며 내세의 영생으로 들어가는 관문이다. 인간은 이 여행을 하는 여행자이며, 오직 내세의 생명에 이로운 일에만 관심을 두어야 한다. 다시 말하면 가능한 한 최선을 다하여 충분히 준비를 갖추고 순간 순간을 영원을 향하여 나가야 하는 것이다. 이 지상에서의생명을 자기에게 주어진 기회로 삼아 될 수 있는 한 생을 가장 보람있게 보내야 하는 것이다. 떠날 때가 오면 단 한 시도 지체할 수 없기 때문이다. 수명이 다하면 때는 이미 늦어 어떻게 하더라도 그것을 늘리지 못할 것이다.그러므로 생을 가장 보람있게 보낸다 함은 하나님의 가르침에 따라 삶을 사는 것이며, 그 생이 미래의 영생에 이르는 안전한 통로가 되게 한다는 것이다. 생명은 궁극적인 목적을 위한 수단으로서 매우 중요하므로 이슬람은 규정과 원칙의 완전한 체계를 세워 인간에게 살아가는 방식을 제시해 주고 취할 것과 버릴 것 그리고 해야 할 일과 피해야 할 일 등이 무엇인지를 보여준다. 사람은 모두 하나님에게서 왔으니, 그분께로 돌아갈 것은 뻔하다. 예언자 무함맏은 현명하게도 자신의 포괄적인 언명 가운데 하나에서, 사람에게http://www.quran.or.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