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 <br />우양 세미나<br />“ 젊은 목회자가 일구어가는 농어촌의 희망 “<br />일시: 2010년 4월 27일(화) 오후 6시<br />장소: 감리교신학대학교 웨슬리 채플 1세미나실<br />주최: 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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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집 우양 세미나

  1. 1. 2010 <br />우양 세미나<br />“ 젊은 목회자가 일구어가는 농어촌의 희망 “<br />일시: 2010년 4월 27일(화) 오후 6시<br />장소: 감리교신학대학교 웨슬리 채플 1세미나실<br />주최: 사회복지법인 우양<br />장소후원: 감리교신학대학교 <br />즐거운 섬김 우양은…<br />“굶주림과 외로움 없이 누구나 배움의 기회를 가지고<br />평화롭게 사는 세상을 꿈꿉니다.”<br />2010 <br />우양 세미나<br />“ 젊은 목회자가 일구어가는 농어촌의 희망 “<br />일시: 2010년 4월 27일(화) 오후 6시<br />장소: 감리교신학대학교 웨슬리 채플 1세미나실<br />C.O.N.T.E.N.T.S<br />주 제 강 연 농어촌 교회의 현실과 정책································································· 11<br /> 이 헌 목사(감리교 본부 농촌 선교부 총무)<br />사 례 발 표 Ⅰ 섬기며 사랑으로 나누는 교회를 세워가며··································· 23<br /> 권영남 목사(홍천개야교회)<br />사 례 발 표 Ⅱ 석천교회 목회이야기·············································································· 31<br /> 안재학 목사(완주 석천교회) <br />사 례 발 표 Ⅲ 주님의 교회 청소년 활동 사례·························································· 41<br /> 오필록 목사(옥천 주님의교회)<br />사 례 발 표 Ⅳ 나의 농촌교회 개척 이야기································································ 47<br /> 이진용 목사(합천 초계중앙교회)<br />기 타 사 례 ························································································································ 55<br />Time Table<br />시 간행 사 내 용비 고17:30 ~ 17:50(30`)접 수17:50 ~ 18:10(20`)간단 식사농어촌 교회 영상 관람18:10 ~ 18:15 (5`)시작 기도태동화 목사(감리교 본부 국내선교부 부장)18:15 ~ 18:20 (5`)우양 빛과 소금 프로그램 소개정의승 이사장님(사회복지법인 우양 이사장)18:20 ~ 18:30(10`)정의승 이사장님 인사 말씀18:30 ~ 18:50(20`)주제 강연이 헌 목사님(농촌 선교부 총무)18:50 ~ 19:05(15`)지역 일반 사례권영남 목사님(개야교회 담임목사)19:05 ~ 19:20(15`)생산 자립 사례안재학 목사님(석천교회 담임목사)19:20 ~ 19:35(15`)아동 청소년 사례오필록 목사님(주님의교회 담임목사)19:35 ~ 19:50(15`)지역 일반 사례이진용 목사님(초계중앙교회 담임목사)19:50 ~ 20:10(20`)질의 응답 및 이야기 나눔20:10 ~ 20:15 (5`)폐회사<br />주제 강연<br />2010 우양 세미나 – 젊은 목회자가 일구어 가는 농어촌의 희망<br /> <br />농어촌 교회의 현실과 정책<br />경기도 김포시 북변동 생명나무교회 이 헌 목사/ lifetree806@gmail.com<br />농어촌 교회의 현실과 정책<br />이 헌 목사(생명나무교회)<br />1. 감리교 농촌선교의 역사<br />감리교의 농촌선교는 해방 후부터 찾아 볼 수 있습니다. 해방 후 과거 친일 문제로 소위 재건파와 복흥파로 갈라졌던 감리교회는 1949년 ‘기독교대한감리회’ 통합총회(감독 김유순)를 열게 되었고 아울러 일제 말기에 사라졌던 총리원의 조직을 부활시킨다. 그러나 한국전쟁을 맞이하게 되고 사회적으로도 교회적으로도 이 전쟁은 막대한 피해를 입게 된다. 복구에 필요한 재원을 미 감리교 해외구제위원회와 세계선교부로부터 100만 달러에 이르는 막대한 자금을 지원받게 되었고 이런 재건 사업을 총리원 사회국에서 맡아 진행하게 된다. <br />이때 사회국이 실시한 사업은 크네 사회사업과 농촌사업 그리고 융자사업으로 요약할 수 있다. 그중 농촌사업은 사회국 직영 농장인 삼농원을 통해서 농촌지도자 양성 사업과 농촌사업 강습회, 지역 개발과 수해복구사업 등을 펼쳤고 발전적으로 농자금(축산자금) 대출사업(신용조합)등과 또한 어려운 교역자의 생활비를 보조하고 경제적으로 어려운 농촌목회자들의 자녀들을 위해 기숙사(인우학사, 명덕학사)를 운영하게 된다. <br />당시의 사회부의 농촌사업은 처음부터 당장 눈앞의 급한 일들(전쟁으로 인한 제반 문제수습)뿐만 아니라 장기적인 관점에서 시작한 것을 볼 수 있다. 각 연회에서 농촌사업에 관한 건의안이 제출되기도 했으며 이러한 농촌사업을 지속할 농촌부 유급간사를 두어 사회국에 두고 농촌지도와 계몽에 주력해 줄 것을 요구하였다. 그리고 미국 4H구락부로 부터 몇 번에 걸쳐 산양(염소)이 들어온 것을 계기로 하여 사회국 차원에서 축산 장려를 위한 사육강습회와 융자사업을 병행하였다. <br />1957년 연회에서는 “총리원에 농촌문제 연구 위원회”를 설치하고 농촌과 교회의 구체적인 진흥책을 입안하여 이사회에 제출 통과하여 실시하게 한다는 건의안이 접수되었고 이어 사회사업위원회에서 각 교회마다 ‘기독교 농촌 진흥회’(가칭) 를 조직하게 되는데 그 첫 번째 사업이 지방 농촌사업부 충무들을 모아 ‘전국 농촌사업부 지방총무 강습회’를 개최하였다. 이 강습회는 사회국이 폐지되기 까지 일년에 2차례씩 실시하였고 농촌에서 요구되는 지도자는 그 부락에 살면서 농사하고 그 부락민을 자력갱생하도록 자기의 정신과 노력과 물질과 기술을 아끼지 아니하고 농사하는 사람이기 때문에 이런 농촌지도자를 훈련시키기 위한 강습회는 무척이나 중요하게 여기게 되고 진행되었다. <br />이러한 관심과 요구는 농촌교회 교역자 양성소(신학교) 개원이라는 결실을 맺게 된다. 대전에서 있게 될 연합연회(중부/동부연회)를 앞두고 충청과 전라 경상 강원등 8개 지방 대표들이 스톡스(Charles D. Stokes 도익서)선교사 집에 모여 ‘농촌선교사 양성 기구 추진위원회’ 모임을 갖고 교회생활과 농촌의 실생활까지도 함께 지도할 수 있는 농촌교역자 양성기관을 설립하는 문제에 논의하게 된다. 그래서 교통의 요지요 실습지가가 비교적 저렴하고 학비가 절감될 수 있는 대전에 신학교를 건립할 수 있도록 연회에 청원하였고 그 해(1954년) 5월부터 62명의 학생을 모집하여 감리교 대전신학원을 개원하였다(현 목원대학의 토대)<br />그러나 이후 산업화의 발달로 인한 이농현상등에 사회국이 제대로 대처하지 못하였고 이는 1970년대 복잡한 교회정치와 함께 1966-1984년까지를 농촌선교의 암흑기라고 할 만큼 농촌선교는 표류하게 된다.<br />80년대의 한국 사회는 정치적으로 격동기였다. 농촌은 더욱 피폐해졌고 농민들의 생존권이 위태로워지자 기독교 농민들에 의해 기독교농민총연합회(기농)가 1982년 발족하게 된다. 농촌선교와 생존권 그리고 민주화라는 취지에 따라 “정의. 생명. 공동체” 라는 주제를 갖게 된다. <br />또한 농민만이 아니라 농촌목회자들을 중심으로 한 농촌선교의 새로운 움직임들을 갖게 되는데 감리교회를 필두로 예장 통합 측, 기장 농촌목회자들에 의해서 ‘농촌선교목회자회’(농목)을 조직하게 된다. 감리교를 예를 들면, 1984년 동부연회 산곡교회에서 목회자 25명이 모여 첫 발기인 모임을 하고 1985년 3월 5일 정식으로 조직을 하게 된다. 초대 회장으로는 현재 목원대 이사장인 허원배 목사였다. 이후 감리교 농목은 개신교에서 가장 활발한 활동을 갖게 되며 다른 교단의 농촌목회자회들을 조직하는 동기가 되기도 하였다. 이후 농목은 생협조직/ 감리교농촌선교훈련원 조직/ 교단 본부와 각 연회 지방회에 ‘농촌선교위원회’ 조직/ 감리교신학대학내 농촌선교과목 신설/ 목원대학내 ‘농촌선교연구소’조직의 성과들을 가지며 부재한 감리교회 내에 농촌선교정책을 계속적으로 제안하고 실행하는 모태가 되었다<br />2. 농촌교회의 현실<br />선교국의 2001년도 교세 현황에 따르면 감리교회 전체 교회 수는 5,262교회다.(현재는 6.200개 교회) 그 중 2,000여 교회가 농어촌교회로 여길 수 있는데 비록 교회수는 늘었지만, 농촌에 개척을 하는 경우는 극히 드물기 때문에 아직도 전체 감리교회 중 약 3/1이 농어촌교회라고 할 수 있다. 이 세미나 자료에도 나왔듯이 한국감리교회의 40%정도가 미자립이고 그 미자립의 80%가 바로 농촌교회라는 사실은 매우 비관적인 통계이다. 이 조사에서 21세기 모든 농어촌교회의 전반적인 미래전망을 물었을 때 이런 대답이 나왔는데 -이농현상, 교인 계속 감소할 것이다(23.4%) -농어촌발전대책으로 교인 증가할 것이다(2.9%) 현재 수준 유지할 것이다(18.3%) -전원교회로 발전할 것이다(16.9%) -농촌교회 대안운동 정착될 것이다(11.9%) - 농촌피폐, 고령화(26.6%) 로 존폐위기를 맞을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전반적인 전망과는 달이 “우리교회의 전망”을 묻는 질문엔 예상과는 달리 긍정적인 전망을 갖는 것을 볼 수 있는데 이는 자신의 목회에 대한 소망을 목회자들이 놓치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이런 면에서 이 목회적 소망과 열정을 도울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하는 것이 아직도 유효하다는 것이다. <br />또한 목회자들이 농어촌목회를 외면하는 이유를 물은 조사에서는 농어촌교회는 대체로 자립이 되지 않으니까 206(74.1%), 정거장 목회라고 생각하니까 41(14.7%), 스스로 신학적 정립이 되지 않아서 19(6.8%), 달리 수련목회자 등으로 진급할 수 있으니까 8(2.9%), 힘들다고 주변에 반대하는 사람들이 많아서 6(2.2%), 잘 모르겠다 5(1.8%)로 나타났는데 이는 많은 경우에 있어서 농촌목회자 자신이 문제일 수 있다고 여겨지는 답변들이다. 외부적 상황도 만만치 않지만 농어촌목회자 자신이 가지고 있는 문제도 적지 않은 것으로 조사된다. <br />이러한 현실은 10년이 지난 지금에도 크게 변하지 않은 현실이라고 생각된다. 오히려 그 문제의 골이 더 깊어졌다는 생각이다. <br />3.그러면 대안은 없는가?<br />한 예로 지금은 은퇴를 하시고 원주에 둥지를 마련하셔서 노인들을 돌보는 목회를 하고 계시는 민선규 목사님이 제안한 농촌선교정책을 보는 것도 의미가 있다. 민 목사님이 재임할 당시의 장안원교회는 한국감리교회의 중형도시교회에서 할 수 있는 매우 모범적인 도시-농촌교회의 활동과 연대를 보요 주었기 때문이다. <br />4. 되씹어 보는 말 <br />농촌(어촌)의 문제는 근간에 불거진 문제만은 아니다. 도시와 농촌의 생활격차가 심해질수록 점차적으로 그 문제는 심각해져서 거의 70-80여 년의 긴 세월 동안 한결같이 거론되고 문제화되었으면서도 고질적인 난해문제로 남아 있다. 그러면서도 어떤 가시적인 해결책도 없이 미루고 있다는 것이다. 문제는 이것을 큰 문제로 인정하면서도 뚜렷한 선교정책이나 대안도 없이 그냥 교회 선교 과제라는 웅덩이 위에 거품처럼 둥둥 떠 있는 그대로 지나왔다는 것이다. 이러면서 해방을 맞았고, 전란을 치웠고, 60년대 - 70년대를 버티어 왔다. 버티어 왔다기보다는 방치해 오면서 그때 그때마다 어떤 대한 조치를 취한다고 했지만 가난했던 시절 그 지원 자금 관리와 시행 과정에서 미비불찰로 그냥 막대한 자금과 프로젝트가 유명무실하게 되어버리고 말았던 부끄러움도 있었다. <br />이제 21세기 새 천년 시대에 접어들면서, 급속하게 변화하는 국제 정세 하에서 한국의 농업은 거의 압살 당하는 지경에까지 이르러, 이제는 기사회생하기가 매우 심각한 지경에 이르렀고, 정부측에서도 점진적으로 농업포기정책 방향으로 기울어져가고 있으며, 농민들도 농업에 대한 희망은 거의 포기할 수밖에 없을 정도로 상황이 외곬으로 치닫고 있다. 그런데 문제는 그 가라앉고 있는 농촌(농업)사회가 난파선이 되어 서서히 후미가 침몰되어 가는 있으며, 이러한 농촌사회의 난파선 안에 우리의 교회와 권속들이 갇혀 있다는 사실이다. 누가, 어떻게 그 배 안에 있는 우리의 교회와 권속들을 구출해 낼 수 있겠는가? 아니면 물끄러미 침몰되어 가는 그 난파선을 그냥 눈 딱 감고 모른 척 외면하고 말 것인가? 이것이 문제다. 방법이 있는가? 힘이 자라는가? 능히 할 수 있는가?<br />요상한 국제적 협약이라는 암초는 곳곳에 깔려 있고, - 거대한 국제경제의 흐름이라는 큰 배가 물살을 일으키며 지나가는 여파로 인해서 조그만 배는 더 심하게 충격을 받아 마치 풍랑을 만난 듯 위기의 물결 속에서 가속도가 붙은 난파 침몰선이 되어가고 있다. <br />5. 생각해 보는 말 <br />그래서 구제하고 소생시킬 대안을 긴급히 간구 해야 되고 서둘러야 하겠기에 우리가 고민하고 뜻을 모으고 재빨리 손을 써보아야겠다. <br />첫째, 지난 2001년 10월 서둘러 농어촌 교회 실태조사를 가급적 광범위하고 심도 있게 실시했다. 이러한 실태조사는 감리교 선교 역사상에도 획기적인 큰 일 가운데 하나로서 이는 마치, 현실 농촌교회를 진맥(진단)해 보는 진단서와 같은 것인데 그 설문조사에 따르면 의외로 아직도 기관실의 발동이 꺼지지 않고 있는 상태로서 종사하는 선장이나 기관들의 의지와 의욕을 체크해 본 바로는 상당히 긍정적이고 의욕적이며 적극적인데 감탄을 금할 길 없다. 이것도 하나의 사업(선교)으로서 진단하고 평가한다면 연차적으로 70% 이상은 구출하여 우리교회의 뿌리인 농(어)촌 교회를 되살리고 지속적으로 사업을 유지하여 재 추진할 가치가 있음을 믿게 된다. <br />이보다 더 처참했던 한국 전쟁 전후에도 지속되었고 60-70년대 새마을 운동을 통한 농촌부흥을 주도했던 장본인과 주체도 교회였던 것을 생각하면 아무리 농촌의 현 실태가 가라앉게 되었다 하더라도 이만한 교단의 배경을 잘 활용하고 연결이 된다면 능히 회생 및 유지 할 수 있을 것이라고 확신한다.<br />둘째, 교회(교단)의 정책적 제도적 행정적 장치를 법적으로 신속히 확정해야 한다. <br />(1) 정책: 어떻게 살릴 것인가를 빨리 결정해야 하며, 물동관계 지원협력 방법 등의 결정이 지속적으로 뒤따라야 한다. <br />(2) 제도: 합리적 방법으로 묶어서 신속히 입법화해서 확립해야 한다. <br />(3) 행정: 관리 점검, 재충전, 지도교육훈련 등을 확실히 해야 한다. <br />셋째, 2항의 실현을 위해 연회마다 농도 공동선교위원회를 조직하고 감독회 산하에 정책위원회를 두어 총괄하도록 농촌 전문가들, 실무자들, 각 연회 농촌관계 책임자들로 구성 운영토록 하되 상설로 해야 한다. 이 모든 것의 사무적인 관장은 우선 선교국 산하의 전담 간사(전문성을 지닌 자)를 두어 처리토록 한다. <br />넷째, 생명식품(환경식품 - 유기농산물) 생산거래를 위한 계약(2년 간) 교회운동 - 상담분야까지 홍보되고 일반화된 무공해식품을 농촌교회와 도시교회가 계약하고 그것을 농도 공동 선교목적을 위한 생협을 통해 책임공급, 책임수요 하게 하여 농촌교회는 도시교인의 건강과 생명을 보장해주고, 도시교인은 농촌교회의 수고에 보답하는 지원(구매)하도록 하고, 이에 필요한 영농기금을 선수금으로 지원하도록 한다. <br />농도간의 필요를 해결하고 돕는 방법을 간구 해 나가면 농도간 공히 상당부분 서로 보람도 있고, 도움도 될 수 있다. <br />다섯째, 주5일제 근무시대의 도래와 농도간의 자매 교회 맺기 운동으로서 공동목회 방안이다. 늦은 감이 있으나 적극적으로 주 5일 근무제 시대를 위하여 적극적인 프로그램을 개발하여 대처할 필요가 있다. <br />도시교인들의 지치고 피곤한 심신을 자연 속에서 효과 있게 지내게 하되 농촌교회를 활용하여 건강회복운동, 영혼안식운동, 가정회복운동 동아리 속회와 기관의 구성, 친목 및 단합운동 등으로 활용하도록 농도교회가 결탁하여 공동목회를 해마다 계획 운영해 나간다면 또 새로운 시대의 교회 형태와 목회 방법도 가능하리라 믿는다. <br />여섯째, 행정적으로 농도간 자매교회로 결연된 교회는 한 지방으로 예속되도록 하여 한 구역(한 교회) 한 지방운동을 획기적으로 펴나간다. 그래서 매년 예산 수립, 재정 집행 등을 한 체제 안에서 일원화한다면 호혜관계가 더욱더 돈독하게 된다고 본다. <br />일곱째, 농촌교회의 총회에서의 입지와 발언권 강화 방안이다.<br />어떠한 형태로든지 농(어)촌 교회 분야는 특수분야로서 간주하여 현행 총대제도에서 특례화하여 농촌교회는 연급으로 말고, 예로 열 교회 단위로 한 분씩을 뽑아서라도 총회에 참여시켜 저들의 위치와 입장을 주장하고 입법과정이나 정책토론 과정에서 농촌특유의 선교방안을 구체적으로 발언하고 반영시킬 수 있어야 한다. 그래야 이래저래 out sider 의 약점과 서러움을 면하게 함으로 용기를 줄 수 있다고 믿는다. <br />6. 끝 고르는 말 <br />개신교회 100여 년 역사와 전통 속에 농촌선교문제는 항상 “뜨거운 감자” 였다. 절대로 뱉을 수 는 없다. 다만 씹어 삼켜야 할 것뿐이다. 그 선교 방법도 시대를 따라 약간의 차이는 있으나 거의 같은 방법이다. 그런데 전에는 교단 자체의 힘이 부족하여 외국(미국)에 의존하였으나 지금은 하고자 하는 의지만 있고 결행할 결심만 선다면 제도화하여 얼마든지 할 수 있는 여력과 저력(인재, 재정, 여건) 이 넉넉히 있다고 본다. <br />이상 몇 가지 대안을 제안하면서 우선, 농촌교회 100 교회 자존운동을 위해 도시교회 100교회를 선발, 똑같이 소정의 교육을 받고 결연을 일차시도를 하되 점차적으로 2010년까지 오백 교회 운동을 했으면 좋겠고, 그 여타 교회들은 면밀하게 조사 분석해서 교회 수에 연연하지 말고 과감하게 구조조정을 해서(연합구역 관리 등) 농촌선교에 일대 혁신을 했으면 하는 제안이다. <br />이렇듯 도시교회에서 농촌선교에 관심을 가진(과거 목원대 이호운 학장으로부터 배운 학생으로서) 도시교회 목사님의 정책적 대안은 매우 탁월하다. 왜냐면, 농촌선교의 문제는 그 문제가 모호하고 가려져 있는 것이 아니라 매우 분명하기 때문이다. <br />7. 현재의 농촌선교를 위한 활동들<br />1)도시교회와 농촌교회의 연대<br />-교동의 추수감사 축제(교회 자매운동)<br />-감리교 농도 생협<br />-사과 분양<br />-100원 모으기<br />2)농촌교회의 활동<br />-유기농확대(작목반 조직)<br />-지역탁아와 공부방<br />-농민식당<br />-2차 가공공장운영(사회적기업으로 발전)<br />예) 식당운영 두부공장 김치공장 등<br />-무상급식운동<br />3)교단 행정적 활동<br />-선교부내 사회농어촌환경부 안의 농촌선교위원회활동<br />-각 연회안에 ‘농촌선교위원회’ 조직<br />-각 지방안에 ‘농촌선교위원회’조직 및 활동(농한기 농민교육/견학 실시)<br />-농촌교회 수련목 확대(농촌선교사개념)<br />4)기타<br />-감리교농촌선교목회자회의 ‘정주 목회 훈련’<br />-각 신학교 내에 ‘농촌선교과목’ 신설<br />-농촌신학의 발전 및 영성훈련 <br />-지속가능한 농업 연구 및 교육<br />-대안학교<br />사례 강연<br />2010 우양 세미나 – 젊은 목회자가 일구어 가는 농어촌의 희망<br />섬기며 사랑으로 나누는 교회를 세워가며<br />강원도 홍천군 서면 개야리 개야교회 권영남 목사/ shynl97@hanmail.net<br />섬기며 사랑으로 나누는 교회를 세워가며<br />권영남 목사(개야교회)<br />1. 개야교회 소개<br />개야교회는 기독교대한감리회 동부연회 홍천서지방에 소속되어 있으며, 강원도 홍천군 서면 개야리 227번지에 소재하고 있습니다. 1975년 3월 27일에 창립되었고, 교회는 성도들이 시멘트 벽돌을 만드는 기계를 빌려다가 손수 벽돌을 만들고 교회를 건축했습니다. 지금 교회의 구성원은 노인층이 주를 이루고 있고 생업은 전부 농업에 종사하고 있습니다. 2010년 현재 10가정 장년 22명, 교회학교 10명 중등부 2명 총 34명이 신앙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br />2. 개야리의 특징<br />1) 개야리의 가구수는 전체 85가구 정도이며, 120여명의 주민이 거주하고 있는 전형적인 농촌마을의 모습을 가지고 있지만, 유원지가 조성되어 있어 강가주변들은 민박과 팬션들이 있어 상업성과 농촌의 모습이 섞여 있는 지역입니다. 하지만 여름 때만 성행하는 것이라 농촌의 성향이 더 강하다고 볼 수 있습니다.<br />2) 마을의 구성원은 다른 농촌마을과 같이 노인층으로 대부분 구성되어 있고, 민박촌에는 실 거주자 민박집과 외지인들이 운영하는 민박집이 있는데, 외지인들은 실 거주지가 이곳이 아니라서 여름에만 장사하러 오는 사람들이 대부분입니다. 그래서 마을의 구성원은 노인층이 대부분 이루고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br />3) 마을의 위치가 읍과는 차량으로 1시간 정도 떨어진 거리라 읍에 가는 버스가 하루에 두 번씩 밖에 운영되지 않으며 금융기관이나 의료기관(보건소)이 도보로 1시간 정도 떨어진 곳에 있어 자가용이 있는 젊은 층들은 그리 어려움이 없지만 마을 대부분이 노인들이기 때문에 보건소나 은행 업무를 보기 위해서 왕복 두 시간을 걸어서 힘겹게 다니고 계십니다. <br />4) 마을 사람들이 인식하는 교회의 모습은 교회가 계속해서 마을에 작은 것이라도 나누는 일들로 노력하여 좋은 인상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었으나, 최근 무료문화센터를 운영하며 젊은 층들과 교제를 통하여 지역 젊은 층에게는 교회는 부족한 사람 또는 모자란 사람들이 모여 있는 곳이라고 여기므로 도와줘야 할 곳으로 인식하고 있었으며 지금까지 교회의 행사를 진행할 때마다 협력해 준 이유도 그것 때문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또한 신앙생활의 문제 있어서 제사 등의 문제로 꺼려하고 있습니다. <br />3. 개야선교문화센터의 필요성<br />농촌의 현실을 보면 젊은 세대가 점점 사라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여러 가지 이유 중 거의 대부분은 생업문제나 교육문제로 지역을 떠나게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지역에 아이들이 점점 줄어 분교는 폐교가 될 위기에 있고, 남아있는 부모님들을 보면 교육에 대한 관심이 높으신 분이 거의 없습니다. 교회학교 아이들을 대상으로 한 문화센터(악기지도-피아노, 오카리나, 플루트, 우크렐레)를 운영하면서 개야리가 아닌 타 지역의 부모들이 문화센터에 더 관심을 보이고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 교회학교 아이들의 부모는 배울 수 있는 기회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아이들을 챙겨 보내지 않는 것이 안타까운 현실입니다. 그래서 시작한 것이 공부방, 인터넷 학습관, 마을 도서관을 운영을 해왔고 아이들을 대상으로 악기를 가르치면서 교회에 행사 때 합주 발표회를 하고 학교 행사에도 아이들이 배운 악기로 발표회를 할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발전시킨 것이 개야선교문화센터입니다. 우양재단의 도움을 받아 모든 프로그램을 무료로 운영할 수 있었습니다. 부모들의 관심 부재로 처음엔 피아노를 제외한 다른 악기들은 참여도가 높지 않아 고민했지만 아이들 스스로 악기에 관심을 가지며 매일 방과 후에 교회에 들려 자신들이 좋아하는 악기들을 배우는 일을 무척 즐거워하고 있습니다. 또한 부녀회를 중심으로 한 문화센터로 천연비누 만들기 프로그램은 첫 시간부터 참여도와 만족도가 높은 프로그램이 되었습니다. 자신들의 필요를 채워주기도 하고 비누가 굳는 시간 동안은 교회에서 준비한 간식을 서로 나누며 마음속에 있는 이야기들을 꺼내놓고 편안하게 이야기 하며 또 그 시간을 통하여 귀하게 신앙에 대한 이야기도 나눌 수 있는 좋은 프로그램이 되었습니다. 이러한 프로그램을 통하여 자기 계발을 하는 장으로 지역의 문화를 건설적인 것으로 바꾸어 가는 일을 교회가 감당해야 할 부분이라고 여겨집니다.<br />4. . 개야교회 비젼<br />1) 지역주민을 위한 무료 개야선교문화센터<br />성도님들 중에서도 글을 모르는 분들이 1/3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미루어 보아 마을 전체에 글을 모르는 분들이 꽤 많을 것이라 생각됩니다. 전도를 하다 보면 ‘글도 모르고 배운게 없어서....’라고 말씀하시는 어르신들이 많이 계십니다. 그런 분들을 위해 한글과 간단한 셈을 하실 수 있도록 지도해 드리고, 컴퓨터를 배우고 싶어 하는 분들에게는 컴퓨터도 배울 수 있는 교회 공부방을 개설하는 것으로 시작하였습니다. 그렇게 시작된 작은 모임이 지금은 개야선교문화센터를 개설하게 되고, 노년층과 아이들만이 아닌 젊은 층과도 소통하는 장을 마련하게 되었습니다. <br />교회가 지역 문화의 중심이 되고, 건전한 문화활동을 통해 지역의 발전과 복음전도에 목적을 두는 것을 통하여 지속적으로 마을 주민들과 특히 부녀회원 및 교회학교 부모들을 만나는 자리를 만드는 것에 있습니다. 정기적이고 지속적 만남을 통해 대화의 장과 복음을 전하는 전도의 장을 만들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농촌의 문화 하면 농한기 때마다 농촌지역은 특별한 문화혜택을 누리지 못하는 지역이기에 농촌의 문화의 중심이‘음주’에 있고, 음주의 문화가 지역을 더 퇴색되게 만들고 있습니다. 최근에 교회학교 아이의 아버지 하나는 알코올중독으로 여러 사건 사고에 휘말려 큰 부상을 입고 치료를 받았습니다. 그런 아버지의 모습에 교회학교 아이는 슬퍼하고 아빠가 교회에 다녀서 술을 끊었으면 좋겠다고 이야기 하는 것을 보고 개야교회에서 목회를 시작하면서 교회가 문화의 중심이 되고, 이끌었으면 하는 기도제목이 있었는데 그 생각을 구체적으로 만들게 한 계기가 되었습니다. 농촌지역 문화의 중심이 음주에서 주님의 사랑과 자기 계발의 장을 열어가는 모체로 교회의 역할이 지역에 필요하다고 사료되면서 이 사업을 통해 전도의 한 방법으로 사용되기에 이 프로그램이 필요하다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br />2) 선교를 감당할 수 있는 교회<br />교회를 건축할 당시만 해도 젊은 성도님들이 많아서 교인들의 힘으로 개야 교회를 건축했지만, 지금은 젊은 분들은 거의 마을을 떠나고, 또 그 당시 열정적으로 봉사하셨던 분들이 이제는 연로 하셔서 육체적인 봉사는 감당하기 어려운 실정입니다. 그래도 감사하게 주님의 채워주시는 은혜를 경험하는 것이 교회의 지붕이 많이 낡아서 비가 조금만 와도 성전에 비가 새 걱정했었는데, 타 교회 봉사팀을 통해 큰 장마가 지기 전에 지붕을 수리하고, 교회 외벽을 깨끗하게 다시 도색하여 교회가 아름다워졌습니다. 아직은 우리 교회가 미약하여 이렇게 도움의 손길만 받고 있지만 받는 것으로 만족하는 것이 아니라 작은 것이라도 나눌 수 있는 교회가 되기를 원합니다. 그래서 함께 기도하던 중 2개속을 4개속으로 증속하고, 속회예배 때 드려지는 예물은 각각 한 속이 한 곳을 섬기게 되었습니다. 저희 보다 조금 더 어려운 농촌교회 목회자 한 분과 해외선교사님, 컴패션(발렌띠나, 콜롬비아), 학교 장학금등은 속회로 모이는 헌금을 통하여 작은 것이지만 선교하고 있습니다. 물론 작은 물질이지만 섬김과 나눔의 훈련을 통하여 더 많은 은혜를 경험하게 됩니다. 지금은 4개속 밖에 되지 않지만 더 많은 속으로 부흥되어서 많은 곳을 선교할 수 있는 교회가 되는 것이 교회의 비전입니다. <br />3) 지역주민을 위한 목욕탕과 체육공원<br />올해 개야교회의 표어가 “섬기며 사랑으로 나누는 교회”인데, 지역의 복음화와 지역을 섬기는 일들을 감당하기 위하여 소망하는 것은 문화센터가 활발하게 운영되며, 체육공원과 목욕탕을 세우기를 기도하고 있습니다. 지역적 특성상 목욕을 가기 위해서는 하루에 2번 다니는 버스를 타고 산을 넘어가 목욕을 하기 때문에 거의 대부분의 노인들은 목욕탕을 가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교회에서 명절 때가 되면 목욕나들이를 가는데 그때나 겨우 목욕탕을 갈 수 있습니다. 그래서 교회에서 지역의 필요를 채우고, 여러 모양의 교제의 자리를 만들기를 소망하는데 그 중 하나의 도구로 목욕탕을 만들고 싶은 것이 가장 큰 계획입니다. <br />사 례 강 연<br />2010 우양 세미나 – 젊은 목회자가 일구어 가는 농어촌의 희망<br />석천교회 목회이야기<br />전북 완주군 화산면 석천교회 안재학 목사 / jagafocus@hanmail.net<br />Daum cafe: 꿈꾸는 석천마을<br />석천교회 목회이야기<br />안재학 목사(석천교회)<br />1. 농촌목회의 준비<br />일반적으로 신학교육과정에서 목회 일반에 대해서 교육하고 본인이 체득하는 목회의 방법이나 목회적 성향은 대부분 도시적 일반목회의 방법을 따르고 그렇게 목회의 길을 준비하는 것이 일반이다. 설교와 심방, 예전적인 틀거리와 컨텐츠, 예배 대중들을 위한 섬세한 배려, 그리고 찬양과 영적인 상담 등이 목회의 일반적인 전형이라고 보여진다. 그러나 농촌목회는 그러한 패러다임에서 조금은 동떨어진 목회방향을 지시한다. 일단은 구성원들이 다르며 그들의 생활방식이 다르고 언어습관도 다르며 신앙하는 방식도 도시와는 다르다. 물론 농촌의 많은 교회들도 이제는 도시적 목회 패러다임에서 그렇게 많이 벗어나 보이지는 않는 경우가 종종 있다. 천편일률적인 목회의 방향과 모습이 좋아 보이지는 않는다. 짧은 목회의 경력 가운데 보건데 감리교의 많은 농촌교회들을 보면 나름대로 특색 있고 자기만의 색깔을 가지고 목회는 하는 모습들을 지켜보게 된다. 그것이 어쩌면 신학적 전통이 목회에 잘 접목되고 녹아있는 모습이 아닐까 생각한다. 그래서 신학이 목회에 큰 영향을 끼친다고 할 수 있다. <br />본인은 농촌목회를 준비하기 전에 먼저 생태주의와 공동체 운동에 대해서 눈을 떴다. 그래서 귀농에 대해서도 진지하게 고민했었고, 그 가운데서도 목회의 끈을 놓지 못한 것이 오늘에 농촌목회를 준비하고 현재적 삶을 살고 있는 지도 모르겠다. 농촌목회를 준비함에 있어서 첫 번째 농촌의 삶을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 농촌의 삶을 이해하지 못하고 농민들의 삶의 언어들을 이해하지 못하고서야 설교는 겉돌 수밖에 없을 것이다. 지금에서야 고백하지만 2006년 석천교회에 첫 부임하여 설교를 하면 나의 설교언어와 교인들이 쓰는 언어는 너무 많이 달라서 어느 교인은 설교가 너무 어렵다고도 토로하기도 하였다. 그런데 그들과 함께 일하며 그들의 언어를 배워 나갔다. 대학원 졸업 후에 처음 부임한 곳이 기독교농촌개발원이라고 하는 기관의 직원이었다. 유기농 콩농사를 지으며 농촌목회자 교육, 신학생 교육 등의 일정들을 준비하고 농촌교회에 대한 기초 조사사업 등을 진행하였다. 농촌은 이미 노령화된 지 오래임을 재차 확인하게 되었고, 농촌교회도 이농으로 고령화되어 활력을 잃어가고 있었다. 농촌목회를 위해선 세심한 준비와 각오 그리고 결연한 의지가 있지 않고서는 길을 잃기 쉽다. 그렇지 않고서야 농촌목회가 거쳐가는 하나의 목회적인 거점, 혹은 도시목회에서 성공하지 못한 목회자들이나 가는 곳으로 낙인 찍혀 농촌목회자들은 모두 실패한 목회자들이다 라는 인식을 우리가 그대로 수용할 수 밖에 없지 않겠는가? <br />무엇을 준비할 것인가? 일반목회는 누구나 준비하고 누구나 할 수 있다. 그러나 성공하기는 하늘의 별 따기이다. 농촌목회는 누구나 할 수 없는 일이기에 도전해 볼 만하다. 가장 먼저 준비해야 할 것은 앞서 말한 대로 농촌에 대한 이해이다. 그리고 농촌의 삶에 대한 애정이며 생명에 대한 경외이며, 그 가운데 나타나시는 하나님의 음성에 귀 기울일 줄 아는 영성이다. 그래서 도시교회에서 울려 퍼지는 생명과 자연에 대한 설교적 메시지는 농촌교회에서 들려지는 것과 사뭇 다를지도 모른다. 전하는 이도 듣는 이들도 생명에 대한 진정한 의미들을 제대로 이해하고 아멘 하는지 조금은 의문이다. <br />2. 지역운동으로서의 농촌목회<br />석천교회는 전북 완주군 화산면에서도 면내에서 조금은 떨어진 산골짜기에 위치해 있다. <br />충남 논산과 경계면에 교회가 위치해 있어서 전북의 북쪽 끝이다. 예전 교인수가 많을 때는 50여명 정도 모였을 때도 있었다고 한다. 자녀들이 모두 장성하여 도시로 나가고 부모세대들만 고향을 지키고 있다. 화산면에는 8개 교회가 있다. 200-300명 정도의 성도들이 모이는 2개 교회를 제외하고 나머지들은 모두 부락단위의 교회들이다. 면 단위에서 200-300명의 성도들이 출석하는 교회는 소위 대형교회이다. 이상하게도 사람들은 이미 많은 수의 교회로 천천히 집중되는 현상을 보여왔다. 물론 지금까지 부락단위의 교회들의 목회자들이 스스로를 한계 지으며 조금은 패배의식, 혹은 거쳐가는 중간 목회지, 또는 자신의 능력의 부재를 한탄하며 별다른 시도를 해보지 않았을 수도 있다. 그러나 농촌에서 대형교회는 농촌지역의 룰에서 조금은 자유로운 반면, 부락단위의 교회들은 자기 부락을 넘어선 전도방식을 택할 수 없다. 암묵적인 룰(rule)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석천교회하면 석천 마을에 있는 석천 부락 사람들이 다니는 교회, 부현교회라고 하면 부현마을에 사는 사람들이 다니는 교회라고 확정적으로 뇌리에 뿌리깊게 박혀있다. 그러나 면내 대형교회는 이러한 룰(rule)에서 완전히 자유롭다. 이러한 이유로 교인의 자연 감소와 더불어 부락단위의 교회들은 현재 많은 어려움에 처해 있는 것이 사실이다. 교인의 감소와 노령화로 재정적인 어려움, 목회자의 사례에 대한 부담과 그로 인한 청빙의 어려움 등이 더해져서 활기를 잃은 지 오래되어 보인다. 그렇다고 한탄만 할 수 있겠는가? 본인은 부임 첫해(2006년)부터 ‘선교하는 농촌교회’라는 표어를 내걸고 부단히 노력했다. 매년 표어는 바뀌지만 ‘선교하는 농촌교회’는 석천교회의 정책이 되어버렸다. 교회에서 운영하는 모든 수익사업의 수익은 지역선교를 위해 우선적으로 사용된다. <br />교회에서 운영하는 지역아동센터와 다문화가정지원센터에 많은 금액은 아니지만 매년 일정금액(300만원-400만원)을 흔쾌히 헌금한다. 그러나 이 금액은 석천교회의 재정적 규모로 보았을 때 결코 적은 금액이 아니다. 1년 예산이 2,000만원 미만의 농촌교회에서 감당할 수 있는 최대한의 헌금이라고 생각된다. <br />소위 농촌교회라고 하면 농촌에 있지만 100명 이상의 교인을 가진 교회를 일컫는 것이 아니라 농촌 미자립교회 혹은 그에 준하는 교회들을 말하지 않을까 생각된다. 이러한 미자립교회가 교회의 선교적 사명을 다한다고 하는 것은 어불성설일까? 본인은 그렇지 않다고 단언한다. <br />교회는 교회로서 선교적 사명을 다할 때에 세상의 빛과 소금이다. 소금이 짠 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짜게 할 것인가 하는 말씀대로 교회는 농촌에서 맡겨진 선교적 사명을 다해야 한다. 선교적 대상으로 전락해버린 농촌교회, 그리고 그것을 당연하게 여기는 목회자의 마인드 이 모두를 본질적으로 바꾸지 않고서는 농촌교회가 지역선교에 나서기는 힘들어 보인다. <br />농촌교회가 다시 힘을 얻고 활기를 가지고 지역의 일과 이웃들의 삶에 관심을 가지고 다가설 때 비로소 지역에 대한 하나님의 놀라운 일들이 시작될 것이다. 이를 지역운동으로서 농촌목회라고 필자는 정의내리고 싶다. 농촌목회가 교인들에게만 한정되고 그 혜택이 교회에 출석해야만 주어지는 것으로 전도의 방편을 삼는다고 한다면 교회 안에서만 뜨거운 신앙이 되는 것이다. 마을로 내려가야 한다. 사람들 속으로 들어가야 한다. <br />3. 지역적 특성 고려<br />목회자로서 교회를 섬기고 지역을 돌보는데 있어 교인들을 심방하고 위로하며 함께 기뻐하는 삶은 당연하고 기본적인 목회이다. 더불어 교회가 위치한 지역에서 교회가 감당해야 할 역할을 찾아내는 것 또한 매우 중요하다. 교회의 지역적 선교적 역할을 찾는데 있어서 첫 번째 고려해야 할 것은 지역적인 특성이다. 지리적인 환경뿐만 아니라, 기후와 마을의 오래된 관습과 마을사람들의 관계 등도 고려의 대상이다. 석천교회는 산중에 있다. 면에서는 자동차로 10분 가량 들어와 있고, 40여 가구가 마을을 형성하고 있으나 집촌 형태가 아니라 여러 골짜기에 분산되어 있어서 마을회관에서 이장의 마이크는 소용이 없다. 또한 충남으로 넘어가는 고갯길에 길게 늘어진 형태로 농지가 넓지 않다. 그래서 농사로는 생업을 유지할 수 없어서 소를 많이 키우고 있는 실정이다. 교회가 위치한 부락의 객관적인 지리적 상황이다. 면내는 초등학교가 정부의 통폐합 정책으로 한 학교가 있으며 중학교와 대안 고등학교가 있다. 어린이 집이 몇 년전에 개원했고 학원은 전무하다. 초등학교의 학생들 중 상당수가 저소득층 자녀들이며 조손가정, 이혼가정의 자녀들이 많은 실정이며 방과 후에 가정에서 적절한 보호와 보살핌을 받지 못하고 있었다. 또한 한국의 여느 농촌과 비슷하지만 외국에서 이주해 결혼한 다문화가정이 늘어나고 있고 현재 그 정점에 있다고 보여진다. 이미 다문화 가정의 자녀들이 초등학교에 다니는 연령에 이르렀으니 다문화 가정에 대한 프로그램과 상담 다문화 가정 자녀들을 위한 대책들도 강구해야 했다. 그리고 면에서 실시하는 한글교실도 운영중에 있다. 물론 다문화 가정, 이주여성을 위한 한국어 교실도 동시에 운영한다. <br />노인한글교실과, 다문화 가정 한국어 교실은 본 교회에서 운영하는 센터에서 주도적으로 지자체들과 연계하여 사업을 진행하고 있는데, 목회자가 나서서 사업들을 이끌어 가는 것이 아니라 이젠 ‘해 주십사’하는 요청이 들어온다. <br />이러한 종합적인 지역적인 특성을 전혀 무시하고 ‘예수믿고 천당갑시다’식의 전도방식은 처음부터 한계가 있다고 보여진다. 그들의 아픔에 먼저 눈을 뜨고 그들과 함께 하는 것이 중요하다. <br />4. 지역의 맞춤형 선교<br />선교는 농촌교회의 사명이자 비젼이다. 농촌교회가 선교의 대상으로 전락해 버린 지금 선교의 열망은 있어도 재정적인 어려움으로 선교에 힘을 다하지 못하는 교회가 있다면 지역에서 할 수 있는 최소한의 것들부터 시작해보도록 권해보고 싶다. 지역에 꼭 맞는 선교의 방식과 내용은 앞선 지역조사를 통해 결정되어야 하며 심정적이거나 기분에 좌우된 선교의 내용과 방식은 배제되어야 한다. 철저하게 지역의 필요와 선교적인 비젼을 함께 제시할 수 있어야 선교하는 농촌교회로 거듭날 수 있을 것이다. 선교라고 하면 사회복지적 접근방식, 즉 어떤 서비스를 제공함으로써 갈등의 해소, 혹은 문제의 해결하는 방식이 있는가 하면 잠재적인 문제의 원인들을 찾아내어서 나쁜 결과가 나오지 않도록 미연에 방지하고 희망이 있는 이야기를 만들어 가는 방식이 있을 것이다. <br />5. 재정자립과 선교기금 관련 수익사업<br />석천교회는 재정 자립을 꾀하기 위해서 2006년부터 1,000여평의 무농약 콩농사를 지으며 작목반을 통하여 콩 수매를 하고 있다. 또한 메주를 만들어 팔기도 했으며, 고추장과 된장을 만들어 직거래를 통하여 도시의 소비자들과 만남을 가지기도 하였다. 양계도 2007년부터 시작하여 일년에 토종닭 300수 이상을 키워 초복과 맔복 사이에 거의 출하하게 된다. 이는 도시교회들과 직거래를 통해 안정적인 판매망을 구축하고 있으며, 도시교회는 안전하고 건강한 먹거리를 싼 가격에 공급 받을 수 있고, 농촌교회는 이를 통해 재정자립의 도움을 받을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지역선교의 기틀을 마련할 수 있을 것이다. 석천교회는 이와 별도로 번식우(암소) 위탁사업을 실시하고 지난해 우양으로부터 지원받은 송아지가 자라나고 있다. 소와 관련한 사업에서는 수익이 아직 발생하지 않고 있지만 송아지가 자라나고 소아지가 태어나는 것이 눈에 보이지 않는 수익일 것이다. 소와 관련된 사업을 제외하면 관련 제반 수익사업에서 발생하는 수익은 년 500만원을 넘어선다. 물론 목회자가 목회에 전념하지 못하고 육체적 노동을 감수할 수 있어야 하고 그 노동조차도 목회의 일환으로 생각할 수 있어야 가능할 것이다. <br />6. 대안적 농촌목회<br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농촌목회가 목회에 있어서 대안이 되어야 한다. 가끔 도시에서 목회하는 동료, 선후배들과 대화를 해보면 도시목회에서의 답답함을 많이 호소한다. 도시의 메카니즘속에서 뭔가 시원한 목회를 구상하고 이끌어 나간다는 것은 상당히 어려워 보인다. 일단 선교지역과 교인들의 삶의 분포가 너무 광범위하고 마을을 이루고 살지 않기 때문에 거의 점 조직처럼 되어있는 경우가 많다. 교회예배 행사를 제외한 대부분의 목회일정은 심방으로 채워지기 일쑤이다. 그러나 농촌목회는 마을이라는 공동체 가운데서 목회는 한다는 장점을 가지고 있다. 농촌교회가 지역 사회에서 좋은 영향을 끼칠 수 있고, 그 가운데서 지역사회에서 선교적 역할을 감당하며 꿈을 나누며 미래적 전망을 함께 나눌 수 있어야 한다. <br />얼마 전 석천교회에서는 마을 가꾸기 사업에 적극 관여하고 있다. 마을 가꾸기 사업에 대한 교육도 교회의 사랑방에서 3회 교육을 실시했으며 본인이 마을가꾸기 사업에 사무국장의 역할을 감당하며 본 사업을 이끌고 있다. 이러한 사업은 마을에 대한 비젼을 만들고 살기좋은 농촌의 모습을 만들어 가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br />예전에 농촌에서 교회가 거의 센터의 역할을 감당했다. 주일날은 무조건 교회로 모였고, 성탄절이 되면 아이들로 교회는 시끌벅적했다. 모두들 함께 힘을 내어서 예배당도 짓고 사택도 짓고 힘든 것이 오히려 낙이 될 정도로 열심히들 모였었다. 그러나 이젠 부락단위의 농촌교회는 거의 노인들만 남아 있고 힘써서 일할 젊은 층들이 거의 없다. 전무하다시피 하다. 목회자가 가장 젊은 경우가 허다하다. 본 석천교회도 교인들이 10여명에 불과하며 본인이 가장 젊다. 그러나 10여명 중에 40대 2명, 50대 6명, 6,70대가 5명, 80대 이상이 3명이다. 4,50대가 절반이상을 차지하니 과히 젊은 교회라고 할 만하다. 실제로 이들이 있어서 부임 첫해(2006년) 현재 교회 사랑방으로 사용하고 있는 교인들과 함께 흙집(15평)을 지었으며, 교회농사도, 양계도, 암소 사업도 가능했다. <br />진안에서 목회하고 있는 선배 목사님의 경우는 지역운동에 헌신적이며 특히 귀농자들을 위해 토지를 마련하고 그곳에 귀농자 센터를 구상하고 있다. 지역에서 귀농자들을 위한 프로그램도 준비하고 실행하는 모습들을 보며 귀농자들이 하나 둘씩 교회로 모여들기 시작했다. 지금은 귀농자들이 10명 이상 교회로 유입된 모습을 전해 듣는다. 숙제는 기존의 교인들과 어떻게 조화롭게 융화할 수 있게 만들 것인가가 과제로 남는 것인데 구데기 무서워 장 못 담글까? <br />더불어 목회의 내용뿐만 아니라 눈으로 보아도 보기 좋고 아름다운 외관을 정비하고 만들어 나가는 외부적 환경의 리모델링 또한 필요하다. 도시교회에서 수련회의 장소로 활용할 수 있도록 배려하는 리모델링도 필요하다. 도시교회와의 자매결연을 통해 농촌교회는 도시교회에게 생명의 영성을 선사하고, 도시교회는 농촌교회에 활기를 불어 넣어줄 수 있다면 좋을 것이다. 이러한 교류는 농촌교회도 살고, 도시교회도 사는 상생의 길이다. 그러나 이것은 아직 석천교회로서도 숙제로 남아 있다. <br />농촌목회는 새로운 목회의 영역이 아니다. 그러나 지금까지 앞선 선배 목회자들의 고생과 헌신에도 불구하고 그에 비해 농촌의 현실과 농촌교회는 빛을 조금씩 잃어가고 있는 실정이다. 그러나 농촌목회의 꿈과 비젼을 통해 다시한번 헌신하며 나아간다면 농촌과 농촌교회는 그 어느때 보다고 희망적이다. 그리고 교인의 감소로 극명하게 드러나는 한계도 분명하다. 그러나 이제 석천교회와 같은 부락단위의 교회는 교인의 숫자에 더 이상 연연해 하지 않는다. 교인들에게 Service(예배)를 제공하는 것이 아니라 지역의 이웃들에게 Service를 제공하는 것이다. <br />이 시대의 갈릴리 현장은 다양하다. 농촌목회는 수많은 갈릴리 삶의 현장 중에 한 곳이다. 주님과 함께 하는 목회, 시대의 아픔과 함께 하는 목회의 현장에 서 있음이 가슴 벅차다. <br />사 례 강 연<br />2010 우양 세미나 – 젊은 목회자가 일구어 가는 농어촌의 희망<br />주님의교회 청소년활동 사례<br />충북 옥천군 옥천읍 가화리 주님의교회 오필록 목사/ oh-pr@hanmail.net<br />주님의교회 청소년활동 사례<br />오필록 목사(주님의교회)<br />1. 주님의 교회 선교적 특성<br />주님의 교회가 위치한 옥천은 행정적으로는 충북에 속해 있지만 대전 광역시가 20분 거리에 있어서 사회문화적인 측면에서는 대전의 영향이 제일 크다. 읍내에 3만명 정도의 인구가 밀집되어 있어 공무원이나 학계 상업계에 종사하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대전에 주소지를 두고 있다. 도시처럼 아파트 빌라 일반 주택이 있지만 정서적으로는 농촌 문화가 중심을 이룬다. 도시에 비해 변화가 아주 적은 편이다. <br />교회 근처는 2개의 리(理)가 있으며 4개의 자연부락이 있다. 일반농가에는 고령인구가 대부분이고 젊은층은 맞벌이가 대부분이다. 학생들도 한부모나 조부모가정이 많은 편이다. 매년 어르신 초청잔치를 배풀거나 연탄나누기등 지역 섬기는 일을 꾸준히 해 동네에서는 교회에 대한 긍정적 이미지를 어느 정도 이루고 있는 편이다. <br />주님의 교회 근처에도 크고 작은 교회가 있다. 특별히 옥천군에서 가장 큰 교회가 가까운 곳에 위치하고 있다. 하지만 타 교회에서 하고 있는 플그램을 모방하지 않고 다른교회에 없으면서 특성있는 프로그램을 시행하고자 노력하고 있다. 교회내적으로 일대일 영적 양육 프로그램이나 특별히 청소년 홀리클럽등을 운영하고 있다. 대외적으로 마을 회관과 연계하여 청소년 공부방 운영에 참여하고 있고, 청소년을 위해 국제 청소년 포상제 운영 및 청소년 축구 교실을 운영하고 있다. <br />2. 주님의 교회 사역<br />1) 음악교실<br />(1) 설치과목: 기타와 드럼<br />(2) 필요성: 청소년포상제 그로그램에 참여하는 학생들이 자기개발 영역에서 기타를<br />배우고 드럼을 배우고자 하는 학생이 있다. <br />(3) 지도교사: 옥천에 청년들로 구성된 찬양팀이 있는데, 그들로 하여금 지역교회들을<br />위해 섬길 수 있도록 했으며 그들이 봉사자로서 기타와 드럼을 가르치고 있다. <br />(4) 지역교회와 연계: 3개 교회가 함께 포상제를 운영하고 있으며 음악교실에도 함께<br />참여하고 있다. 그리고 포상제를 연계해서 시행하고 있는 교회가 주변에 4교회가 더<br />있다. <br />(5) 운영시간: 매주 주일오후 3시부터 1시간씩<br />(6) 기대효과: <br />①각 교회들마다 찬양 봉사자로 세울 수 있다. <br />②포상제 활동영역으로서 인정받을 수 있다.<br />③기타와 드럼을 가르치는 사람들도 봉사자로서 지역 자원봉사자 봉사시간으로 등록할<br />수 있다.<br />2) 청소년축구교실<br />(1) 프로그램명: 청소년축구교실<br />(2) 팀 이 름: 글로리아<br />(3) 학생구성원: <br />① 교회 남학생들로 축구를 좋아하는 학생들.<br />② 교회출석은 안하지만 축구를 좋아하는 학생<br />③ 상담센터/청소년지원센터와 연결된 학생.<br />(4) 축구교실운영:<br />① 운동시간 : 매주 토요일 오후 4시부터 2시간.<br />② 활동내용 : 몸풀기 기술지도 게임지도<br />(5) 지역사회와 연결<br />①옥천생활체육협의회 - 생활체육협의회로부터 축구공. 코치. 음료 등을 지원받는다.<br />②주변교회들과 연결 - 현재 3교회가 연계하여 함께 참여하고 진행하고 있다.<br />③코치선정 - 생활체육협의회 또는 자원봉사자들과 연계하여 코치를 지도를 받고 있다.<br />④청소년성취포상제와 연결 - 포상제 프로그램에 연결되어 있는 남학생들은 신체단련<br />영역으로 축구교실에 참여하고 있다. <br />3) 봉사활동(옥천홀리클럽봉사단) <br />(1) 단 체 명: 옥천홀리클럽봉사단.<br />(2) 활동목표: 옥천시내에 있는 냇가를 살리기<br />(3) 활동절차: 참여하는 학생들이 자발적 창조적으로 참여하기 위하여 충분한 회의와<br />현장 리서치를 먼저 하도록 했습니다. 그것은 학생들이 단순히 수동적으로 참여하지<br />않고 능동적으로 참여하기 위함이었으며, 모든 과정과 결정사항을 스스로 의논하여<br />결정토록 했습니다. 리서치 결과 시냇가 생각보다 많은 악취와 쓰레기들로 몸살을<br />앓고 있었습니다. 자발적을 참여하면서 냄내나고 힘들어 꺼려했지만 활동을<br />거듭하면서 많은 의미가 살아났고 보람도 느껴져 가고 있습니다. <br />(4) 지역사회와 연결 및 전망: <br />① 봉사단 단체 등록 : 옥천 자원봉사센터에 단체를 등록하고 매월 활동보고를 하고<br />있으며, 봉사활동 확인을 거쳐 학교에서 필요로 하는 봉사확인서를 제출할 수<br />있습니다. <br />②읍사무소로부터 지원: 청소할 때 생각보다 많은 쓰레기 양이 나오게 됩니다. 100m<br />정도 청소하는데 50L용으로 5-6개정도 나옵니다. 이장님을 통하여 읍에 보고하고<br />쓰레기 봉투를 지원받게 되었습니다. <br />③냇가 살리기 위한 개몽운동 : 쓰레기를 치우고 일주일 후에 가보면 또 다시<br />쓰레기들이 버려져 있습니다. 지금까지 경험으론 시내 냇가 전체를 청소하는데 한<br />달은 걸리는데, 군민들의 시민의식이 없이는 계속해서 더러운 일이 반복될 것입니다.<br />그래서 지역신문과 함께 쓰레기 안 버리기 운동과 함께 개몽운동으로 전개할<br />예정입니다. <br />4) 국제 청소년 성취 포상제<br />(1) 국제청소년성취 포상제 프로그램 이란?<br />국제청소년성취 포상제는 2008년 시범운영을 통해 2009년 시행하게 된 국제적인<br />청소년 자기개발 프로그램이며 한국에서는 보건복지부 산하 청소년진흥센터에서<br />운영하고 있다. 4가지 영역 즉, 신체단련, 자기개발, 봉사활동, 탐험/모험의 영역에서<br />3개월동안 목표를 세우고 그 목표를 달성하면 동장을 포상하는 제도이다. 은장은<br />6개월, 금장은 12개월 동안의 과정을 필요로 한다. <br />청소년들을 위한 인제양성 프로그램이며 이 활동에 참여함으로서 독창성 자발성<br />성취지향성은 물론 자기변화를 스스로 창조해 나가는 효과를 가져다 준다. <br />3. 맺으며<br />농어촌 교회 사역은 분명 어렵습니다. 하지만 힘이 들지는 않습니다. 날마다 주님께서 부어주시는 힘이 있기 때문이지요. 항상 새로운 사역을 보게 하시고 그 사역에 동참하는 동역자를 주십니다. 누구나 한번쯤 농어촌을 동경하지요. 그곳에서 삶을 이어가는 가고 나누어 가는 것이 더 즐겁다는 것을 알았으면 합니다. <br />사 례 강 연<br />2010 우양 세미나 – 젊은 목회자가 일구어 가는 농어촌의 희망<br />나의 농촌교회 개척 이야기<br />경상남도 합천군 초계면 초계중앙교회 이진용 목사/ dotory95@hanmail.net<br />나의 농촌교회 개척 이야기<br />이진용 목사(초계중앙교회)<br />1. 초계중앙교회 개척 배경<br /> 2006년 5월 1일, 경상남도 합천군 초계면 초계리 교촌마을에 순수 자비량으로 교회를 개척하고 이제 2주년을 앞두고 있다. 향교마을 터 이기에 교회가 세워지기 쉽지 않고, 시골마을 중에서도 개발이 전혀되지 않아 폐가가 많았다. <br />교회에 십자가가 세워지던 날에는 마을의 무당이 눈이 뒤집힌 채 찾아와 사택부터 교회까지 다 부수겠노라 엄포를 놓고 지금까지도 예배당에 얼음물을 끼얹고, 개똥이나 유리조각, 소금 등을 뿌리는 등 영적 방해를 하고 있다.<br />아무도 찾아오지 않는 10평짜리 예배당(옛 철공소 자리)에서 홀로 새벽과 수요, 주일예배를 드린지도 약 2년이 지났다. 교회 개척과 함께 발견하게 된 아내의 부인병은 급하게 수술을 요하였고, 또한 수술 중에 얻게 된 합병으로 아들에게까지 전염되는 어려움이 계속되었다.교회 월세와 함께 개척선교전략으로 면 소재지 중앙에 세운 어린이도서관 월세로 한 달에 75만원씩을 감당하면서 아내와 아들의 수술과 약값을 감당하기는 너무나도 버거웠다.재정적인 어려움 보다 더 큰 짐은 홀로 이어가는 새벽재단과 예배였다. <br />눈물로 드린 개척 이후 첫 예배가 3개월을 넘기지 못하고 미래에 대한 외로움과 두려움, 공허함으로 하나님을 대하는 시간도 많았다.<br />2. 초계중앙교회의 사역<br />새벽에는 나보다 먼저 일어나 예배당 앞을 서성거리는 무당 때문에 사택 문을 빼꼼 열고 확인하고는 방에서 나가지 않은 적도 있었다. 새벽 기도를 드릴때면 팔짱을 낀채 1미터도 떨어지지 않은 거리에서 빤히 바라보고 있는 무당의 기운에 기도는커녕 이제는 갔는가 싶어 곁눈으로 확인하느라 시간만 보내기 일쑤였다. 예배당 한쪽면이 전체 통유리 이기에 밖에서 안이 환히 들여다 보인다.<br />그래서 인지 어린이도서관(도토리와 친구들)에 나가 있는 시간이 더 많아졌고 마음도 편했다. 아들 다원이의 도서와 내 개인 도서들을 합쳐 1천권으로 시작한 도서관은 현재 7천권으로 채워지고, 처음에는 기웃거리기만 하던 마을 주민들도 다양한 문화교실 등을 통해 가까워 지면서 이제는 어린이, 청소년, 어른 들을 포함해서 약 300여명의 회원과 하루 40~50여명이 꾸준히 찾는 마을의 문화중심지 역할을 감당하고 있다.<br />도서관을 선교의 통로로 하여, 장학사업(8개 학교 22명), 문화사업(여름 물축제, 전문극단의 연극공연, 독서캠프, 문화교실), 봉사사업(연탄나눔, 의료선교, 빈집수리, 먹거리나눔), 무료 자전거 및 컴퓨터 나눔 사역 등을 진행하고 있다.<br />처음에는 대수롭지 않게 바라보던 군, 면 관계자들도 지속적이고 체계적인 사업의 진행을 직접 체험하고 변화되기 시작했다. 그 변화의 시작으로 모든 행사에 군과 면이 적극적으로 인적, 물적지원을 감당하게 된 것이다.특히나 1년째 봉사하고 있는 합천군내 시각장애인들을 위한 소리신문 아나운서 활동은 목회와 선교의 틀을 확장시키는 기회가 되었다. 약 60분 정도, 합천군내 주요소식과 장애관련 기사, 시각장애 회원들의 개인소식 및 사연에 따른 신청곡 소개 등이 실린 ‘소리신문’은 테이프로 제작되어 군내는 물론 이웃한 진주시, 거창군, 통영시 등에도 전달된다. <br />감사한 것은 녹음 첫 인사를 “안녕하십니까 ? 소리신문 진행을 맡은 이진용 목사 입니다.”로 하고, 마지막 인사는 “그럼 한 달 동안도 평안하시길 바랍니다.”로 하게 되는데 이를 듣고 많은 이들이 기독교에 대한 인식과 접근이 많이 달라졌다는 것이다.<br />직접 교회로 전화를 해서 “목사님 감사합니다. 보이지 않는 저에게 눈이 되어주시는 소리에 감사 드립니다.”하며 인사를 건네 주시는 분도 계시고, 녹음하는 날을 알아내서 일부러 직접 지은 농산물을 전달해 주시는 분들도 계신다.<br />이렇게 사역이 확장되고 성실히 진행되면서 많은 분들이 초계중앙교회를 기억해 주고 관심을 보여주셨다.<br />그러던 중 감리교홍보출판국에서 진행하는 희망의 어린이도서관 제2호로 선정되어 큰 잔치도 열고, 2년째 꾸준히 이어 온 청소년 공부방도 도와 군의 인정을 받아 년 1천만원의 지원도 올해부터 받게 되었다.<br />정신없이 사역과 아내, 아들의 병치례를 돌보던 중 2007년 9월 셋째 주 마산국립병원에서 전화가 왔다. 놀랍게도 아내의 병이 완치가 되었다는 것이다. 이제는 힘들게 먹던 약도 먹지 않아도 된다. 극동방송 중보의 기도 시간에 몇 차례에 걸쳐 소개되며 받았던 기도와 많은 분 들의 격려와 중보해주심의 결과였다.<br />그리고 다음날 주일, 아들 다원이의 병 상태도 호전되어 약을 끊어도 된다는 경상대학교 병원의 전화도 있었다. 할렐루야 !<br />약 1년 6개월에 걸친 지루한 싸움이 끝났다는 기쁨에 우리 가족은 하나님께 감사의 기도를 드렸다. 그러던 중 놀라운 하나님의 역사가 시작되었다.<br />주일 저녁, 마을의 무당 중 한명이었던 70세 된 할머니가 우리를 찾아 오신 것이다. 자기 속에 있는 35년된 ‘제 2선녀’를 기도로 내쫓아 달라며 술을 잔뜩 드신채 울면서 오신것이다. 갑작스런 방문에 당황도 되었지만 너무나도 기뻐 아내와 아들과 함께 할머니의 손을잡고 기도해드렸다. 그런데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선포하는 순간, 마지막 아멘의 순간에 돌변하시더니 손으로 입을 막으며 아멘을 못하게 하는 것 이었다.<br />이날의 기적은 거기까지 였다. 그 이후로 줄곧 기회가 되는데로 돌보며 기도해주고 있다.<br />무당을 통해서 물꼬를 트신 하나님께서는 한 주일 뒤 두 가정 8명을 한꺼번에 교회로 보내주셨다. 부산에서 읍내로 귀농한 가정과 불교 깨달음의 장의 인연으로 만난 부부와 아이들 가정이었다. 그리고 한 달 뒤 복음을 사모하던 신앙의 가정 5명이 등록하였고, 소리신문을 통해 인사를 나눈 시각장애 가정 두 분과 읍에서 요가센터를 운영하는 젊은 부부와 두 살배기가 등록하는 역사가 이어졌다. 이렇게 해서 6가정 20명이 신앙공동체의 구성원이 되었다. 마치 물이 흘러 넘침 같이 이어지는 은혜가 감사하고 놀라웠다. 전도예정 가정도 7가정 있는데 얼마 되지 않아 함께 예배 드리게 되리라 믿는다.<br />3. 초계 중앙 교회 이전… 그리고 새로운 희망<br />2008년도가 시작되고 교회에는 한 가지 난관이 생겼다. 그 동안 2년의 임대계약이 완료되어 교회와 사택을 비워주어야 하는 것이다. 월세 75만원을 계속해서 감당해 나가는 것도 힘든 상태였기에 이번 기회로 교회 건축에 대한 비전을 품어야 했다. 하나님은 자연스럽게, 등 떠밀며 보내신다는 선배 목사님들의 말씀이 맞는 것 같다.<br />성도들과 함께 기도하며 회의를 통해 땅을 보기로 했다. 그래서 지금까지 개척 이후 돌아 본 지역의 선교거점 중 몇 군데를 둘러보았다. 상황적으로는 면소재지에서 멀리 떨어진 산 밑 시골 마을 앞 땅을 구입하여 비닐하우스를 치고 교회를 다시 시작해야 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상황대로 역사하지 않으셨다. 면소재지 중에서도 가장 초입, 중학교와 고등학교 정문 앞, 주택가에서는 떨어져 있으면서도 그 자리를 지나지 않고는 면소재지에 들어갈 수 없는 주요요지의 땅과 건물을 보여주셨다. 물론 금액은 우리로서는 도저히 상상할 수 없는 정도였다. 300평 대지에 건물 57평, 2억 6천만원에 계약하기로 하였다.<br />계약 당시 가진 돈은 11만 5천원이 다 였는데, 이 계약을 현장에서 만장일치로 찬성해 준 우리 성도님들의 믿음이 나보다 더 큰 것 같다. 계약일을 1주일 남기고 다함께 기도에 들어갔다. 그리고 찾아온 응답은 청소년 공부방 2007년도 지원금을 소급 지원으로 받은 것이다. 그렇게 해서 모아 본 2천만원으로 계약금을 걸고, 4월 26일까지 2억 4천만원의 잔금을 치르기로 하였다. 이 중 1억 3천만원은 구입 대지와 건물을 담보로 대출을 받았고, 1억 1천만원의 중도금만을 준비하면 되는 상황까지 이르렀다.<br />현재 교회 차원에서 성도들과 함께 최선을 다해 준비한 금액은 2천만원 정도이며, 약 2천만원의 작정 헌금도 후원되었다. 형편을 보고 상황을 볼때에는 도저히 품을 수도 없었던 교회 건축이었지만, 하나님께서 품게 하셨고 걸어가게 하시니 감사 드린다.<br />4. 맺으며<br />우리에게 주신 비전을 초계 지역과 합천, 이 땅과 민족, 열방에 이르기까지 그려가시고자 교회의 터와 건물을 세워가게 하심을 믿는다. 앞으로도 지금까지처럼 성도들과 함께 건강한 목회, 생명력 있는 목회, 따뜻한 목회를 하겠노라 다짐해 본다.<br />출애굽기 14장 14절의 말씀 붙잡고 선교지 합천에서 주어진 사명 감당하는 교회가 되도록 기도한다.<br />기 타 사 례<br />2010 우양 세미나 – 젊은 목회자가 일구어 가는 농어촌의 희망<br />경기도 화성시 매송면 원평2리 원평교회 김태현 목사/ eun-9950@hanmail.net<br />노인복지를 꿈꾸며<br />김태현 목사(원평교회)<br />1. 원평교회 소개 - 섬김과 사랑<br />원평교회는 화성시 매송면 원평2리 507번지에 위치해 있습니다. 원평2리 마을은 60여 가구 정도 되는데 목축업과 농업을 주로하고 있으며 노인분들이 대부분입니다. <br />원평교회는 1976년 10월에 세워져서 올해로 34년째 되었지만, 그동안 지역사회를 위한 사역은 없었으며, 거기다 교회에 대한 적대감도 많았습니다.<br />제가 원평교회에 2004년도에 부임해서 전도를 하기위해 떡과 수건 등을 선물하러 가가호호 방문하였을 때도 마을 어르신들께서는 교회에서 주는 것은 받지도 않고 인사를 해도 모른 척 하며 고개를 돌리며 가버리셨습니다.<br />어떻게 하면 어르신들께 복음을 전할까 고민하다가 ‘노인건강학교’를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br />건강학교를 진행함과 동시에 밭에서 일하시는 어르신들을 돕기도 하고, 보건소가 멀어서 다니시기 불편한 어르신들을 모시고 보건소에 다녀오기도 하는 등 교회에 대한 적대감을 없애기 위해 많은 노력들을 하였습니다. ‘노인건강학교'는 2006년 6월부터 (일주일에 3번, 월, 수, 금요일) 시작하여 지금까지 하고 있습니다. 처음에는 교회에서 하는 것이라고 참여하지 않던 어르신들께서 6개월이 지난 후부터는 허리 디스크 수술을 받으셔서 유모차로 겨우 걸어 오시던 할머니 한 분이 ‘건강체조’ 와 ‘벌침’을 맞으면서 허리 디스크가 치료 되어 지팡이 없이 걷기도하고 계단도 잘 오르시는 모습을 보시고는 ‘건강학교’에 같이 동참하시게 되었습니다. 이제는 교회에 대한 마을의 분위기도 바뀌어 교회 행사에 참석도 하시며 복음에 대해 듣고, 죽음 이후의 천국에 대한 소망도 갖게 되었습니다.<br />2. 농어촌 교회의 노인복지 비전<br />이 지역은 수원시가 인접해 있어서 젊은층들은 도시에 나가 있으며 마을에는 대부분 노인분들입니다. 그래서 노인학교를 하게 되었으며, 노령 인구가 증가하는 이 시대에 노인복지는 교회가 섬겨야 할 사명인 것 같습니다. 갈수록 원평 지역도 도시화 되겠지만, 젊은이들이 귀농하는 사례가 늘고 있음을 볼 때 농촌 사역에 깊은 연구가 필요한 것 같습니다. 10~20년 후를 내다보며 농촌 사역을 준비하고 미래 농촌 사역을 발전시켜 나간다면 농촌교회도 비젼이 있다고 봅니다.<br />건강학교를 3년 동안 지속적으로 해오면서 이런 노인복지 사역이 분명히 가능성이 있음을 보았습니다. <br />복지 프로그램을 운영하면서 중요한 것은 꾸준히 지속적으로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또한 프로그램 속에 복음에 대한 메시지도 함께 담겨 있어야 합니다.<br />3. 노인건강 학교<br />노인건강학교는 화성시 보건소와 서울 스포츠 의학과에서 개발한 노인건강체조 프로램입니다. 매주 월, 수, 금요일에 실시하고 있으며, 소요 시간은 1시간 정도입니다. 30분정도는 온몸의 근육과 관절을 움직이는 프로그램이고, 후반 30분 정도는 에어로빅입니다. 에어로빅은 세, 네가지 정도의 단순한 동작을 음악에 맞춰 반복하는 운동입니다. <br />음악은 전체 다섯 곡으로 느린곡부터 점점 빠른 곡으로 진행됩니다. 처음에는 힘들어하던 어르신들께서 지금은 에어로빅을 해야 운동한 것 같다고 말씀하십니다. 체조 후에는 다과를 나누며 어르신들의 이야기를 듣기도 하며, 복음에 대한 메시지를 전하기도 합니다. 다과를 나누기 전에 기도를 드리자 타종교 어르신들께서 반발하시기도 하셨지만 지금은 어르신들께서 돌아가면서 기도하시며, 기도문을 손수 적어 오셔서 기도하시는 분도 계십니다. <br />건강학교의 효과는 단시간 내에 볼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꾸준히 지속적으로 해야만 그 효과가 나타납니다. 위에서 언급했듯이 허리 디스크 수술로 유모차에 의지해 겨우 걸어오시던 김인희 할머니께서는 6개월간 꾸준히 건강체조를 해서 지금은 등산도 하시며 여행도 다니시는 분이 계십니다. 또 허순자 할머니께서는 얼굴이 동상으로 아팠는데 벌침을 맞으면서 동상이 나았다고 좋아하셨습니다.<br />또한 노인복지의 일환으로 보건소에서 건강검진과 치과 진료와 예방 교육도 함께 하고 있으며, 독감주사, 혈압약 등을 타기 위해서 어르신들을 모시고 보건소에 다녀오기도 합니다. <br />4. 노인 은빛 알음터 자조모임<br />노인 은빛 알음터 자조모임은 화성시 보건소 이경옥 소장이 연구한 노인 인성 프로그램입니다. 2009년 11월과 12월 실시 하였는데 10주 프로그램을 가져 어르신들에게 좋은 반응이 있었습니다. 은빛 알음터 자조모임을 간단하게 소개하겠습니다.<br />1) 친해지기(별칭짓기) : 어르신들의 이름이 아닌 별칭을 사용하는 것을 처음에는 어색해 했지만 금방 별칭을 부르면서 친숙해졌습니다. (어렸을적 생각이 난다며...)<br />2) 위대한 나 : 자신의 손에 대한 회상입니다. 과거의 삶을 돌아보며 고생하고 힘들었던 시절을 말씀하시며 눈물을 흘리시는 분도 계셨습니다. 비록 둔탁해지고 거칠어졌지만 가족들을 위해 만들어진 훈장의 흔적임을 알게 하고 자신의 손에 대해 위로하고 아끼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또한 손도장을 찍어서 예쁜 액자를 만들어 드렸더니 어르신들께서 행복해 하셨습니다.<br />3) 아름다운 나 표현하기(의사소통) : 어르신들의 대화법이 너무 부정적이어서 긍정적인 마인드를 가지도록 사고의 틀을 바꾸는 시간과 가족과의 긍정적인 대화법을 배우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br />4) 행복한 나의 삶 회상하기 : 과거의 행복했던 삶을 돌이켜 보며 미래도 즐거운 삶이 되도록 종이에 가장 기뻤던 일, 소중한 사람, 가장 아끼는 물건을 무엇인지 적어보는 시간입니다. <br />5) 화 다루기 : 화가 쌓이면 병이 됩니다. 화를 내지 않고 말하는 법을 배우며, 화가 났을 때는 한 틈 쉬어 생각하고 말하는 법을 배우는 시간입니다. <br />6) 나의 미래 비젼을 만들자(나의 꿈) : 꿈이 무엇입니까? 라고 물었을 때 이 나이에 꿈이라면 건강하게 오래 사는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9988234 즉 ‘99세까지 팔팔하게 살다가 2~3일만 아프다가 돌아가자’라는 구호를 외치며 자신감을 가지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br />7) 건강관리 : 평소 어떻게 건강관리를 하고 계신지 체크 하고 간단한 건강상식을 알려드렸으며, 당뇨체크, 혈압체크를 해드리고 혈압약을 복용하시는 분들은 보건소에 모시고 가서 약을 수령하실 수 있도록 도와드렸습니다. <br />8) 아름다운 동행(함께 웃어요) : 노년기 아름다운 생활을 하고 있는 부부 이야기를 다룬 비디오를 시청하면서 노년기 행복한 생활을 소개하였습니다. 노년을 부부가 서로 나누며 의지하며 살아갈 수 있도록 하는 시간이며, 혼자이신 분들은 이웃과 더불어 나누는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하는 시간입니다. <br />5. 마치며<br />노인건강학교를 진행하면서 노인들의 정신 건강이 회복되는 것을 보면서 보람을 느꼈습니다. 간식을 나눌 때는 집에서 정성스럽게 준비하신 감자, 고구마, 옥수수 등을 함께 나누며 즐거워 하셨습니다. <br />처음 알음터를 시작할 때는 부정적인 말씀과 험담을 많이 하셨는데 알음터를 마칠때 쯤에는 서로 칭찬하고 격려하며 남을 배려하는 모습을 보면서 교육이라는 것이 참으로 중요하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br />자신이 변화될 때 이웃과의 아름다운 동행이 시작되며, 복음이 전파될 때 예수님 과의 아름다운 동행이 시작됨을 여기서 보게 되었습니다. <br />이 분들의 노년이 거룩한 삶이 되도록 함께 기도해주시길 부탁드립니다. <br />기 타 사 례<br />2010 우양 세미나 – 젊은 목회자가 일구어 가는 농어촌의 희망<br />농어촌엔 희망이 있습니다!!<br />전북 남원시 운봉읍 준향리 준향교회 이기현 목사/ marine676@hanmail.net<br />농어촌엔 희망이 있습니다!!<br />이기현 목사(준향교회)<br />농어촌에 소망이 있을까? 당연히 "예" 입니다. 왜냐하면 아직도 주님의 사랑이 필요한 사람이 있기 때문이고, 동일하게 세우신 증인들을 통해 주님이 역사하시는 땅이기 때문입니다.<br />저도 아무 연고 없는 준향리로 내려온지 이제 만오년이 되어가네요.<br />이곳으로 내려오는데 한 목사님에 저에게 그러시더군요! "가서 책 천권만 읽고와!" 목사님이 저를 생각해서 하신 이야기이겠지만, 많은 의미가 있을 것입니다. 농촌교회 할일 없을테니, 적적하고 막막할테니, 책이나 많이 읽고 잘 준비해서 도시교회 큰 교회로 진출할 수 있도록 쉽게말해 준비를 잘해놓으라는 이야기였겠지요! 목사님의 저를 생각하는 그 마음은 감사히 받지만 목사님의 그 말은 수긍할 수 없습니다.<br />목회자가 목회를 하는데 농촌, 도시가 따로 있겠습니까? 농촌에선 대충하고, 도시에선 빡세게 합니까?<br />농촌에서 목회를 한다고 무슨 대단히 큰 희생을 하거나 특별한 일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제 작은 소견으로 도시나 농촌이나 목회는 그냥 함께 사는 것입니다. 그냥 곁에 있어 주는 것 아니겠습니까? <br />뭐 대단히 특출 난 존재가 도시의 영광을 다 버리고 낮고 낮은 농촌으로 내려와서 살아주는 게 아니라, 별볼일 없는 놈 거두어 주신 은혜를 감사하며 섬길 수 있는 은혜가 있다면, 감사하는 마음으로 섬기며 사는 것 아니겠습니까?<br />저희 마을에 서향자 할머니란 분이 있습니다. 안면기형(언청이) 이셔서 평생을 남 앞에 나서지 못하고 가까운 읍내 시장도 남 눈치 봐가며 겨우 다니시던 분입니다. 금요일 오전이면 할머님들끼리 예배를 드립니다. 속담처럼 '낫 놓고 기역자도 모르는' 분들을 금요일 오전마다 모셔놓고 사 년을 예배 드렸습니다. <br />새 찬송 606장을 자주 부르는데, 어느 날 할머니가 말씀하셨습니다. 아까 그 찬송을 부르는데 눈물이 나데요.<br />"며칠 후, 며칠 후 요단강 건너가 만나리!" 할머니의 그 말씀을 드리면서 정작 제가 눈물이 났습니다. 아! 그냥 앉아계신게 아니었구나! 이분들이 예배하고 있었구나!<br />농어촌에 더 이상 소망이 없다는 말에 결코 동의할 수 없습니다. 오히려 세상이 보지 못하는 소망이 넘쳐 남을 거라 저는 믿습니다. 세상이 보지 못하는 소망을 보고, 그 소망에 전부를 거는 사람들이 어디엔가는 반드시 있습니다. <br />사막이 아름다운 건 어디엔가 오아시스가 있기 때문이라던가요! <br />농어촌이든 도시이든 부르신 그 자리에 소망이 있음을 믿고 그 믿음의 길을 가는 사람들이 있음을 지금처럼 잊지 말아주시고 계속 응원해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br />소망은 오직 주님께 있습니다.<br />그 소망은 지금 당장은 아니더라도 언젠가 순결한 꽃들, 푸른 의의 나무로 피어나게 될 것입니다. 동역자된 우리는 반드시 함께 기뻐하며 보게 될 것입니다. <br />2010년 4월 27일 화요일 감리교 신학대학교 웨슬리채플 1세미나실 “젊은 목회자가 일구어가는 농어촌의 희망<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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