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Save
11 여름 nr._2_독일의_분단과_통일
Upcoming SlideShare
Loading in...5
×
 

11 여름 nr._2_독일의_분단과_통일

on

  • 801 views

 

Statistics

Views

Total Views
801
Views on SlideShare
801
Embed Views
0

Actions

Likes
0
Downloads
0
Comments
0

0 Embeds 0

No embeds

Accessibility

Upload Details

Uploaded via as Microsoft PowerPoint

Usage Rights

© All Rights Reserved

Report content

Flagged as inappropriate Flag as inappropriate
Flag as inappropriate

Select your reason for flagging this presentation as inappropriate.

Cancel
  • Full Name Full Name Comment goes here.
    Are you sure you want to
    Your message goes here
    Processing…
Post Comment
Edit your comment
  • 1945 년 종전 이후 연합군의 독일 분할 점령 – 4 개 지역 ( 미 / 영 / 프 / 러 & 합동점령지역 ( 루르지역 / 베를린 ) )
  • 패전국 독일은 서부지역은 영 , 미 , 프가 동부지역은 소련이 점령했는데 소련은 이들 3 개국과 생각이 달랐다 . 소련 점령지구에서는 탈나치스화 , 군수산업 해체 , 사회주의 입국 , 소련에 대한 전쟁배상금 지불문제 등에 중점 , 서방점령국들은 독일의 경제부흥 , 민주화에 중점 , 전쟁배상금면제 , 마셜플랜을 통한 경제적 지원 . 이로써 동서 양진영의 냉전상태가 심화됨 . 화폐개혁이 실시되자 갑자기 소련은 전 베를린을 소련점령지구로 만드려고 잠깐 베를린을 봉쇄했으나 1949 년 다시 풀고 동부도이체마르크를 만듬 . 경제의 분할이 곧 분단을 현실화해감 .
  • 동서독 다른 정치체제 형성 , 서독측은 분단을 원하지 않았으므로 임시정부 수립 , 국민직접선거로 구성되는 연방의회에서 수상선출 . 대통령권한은 공화국 때보다 줄어듬 .
  • 독일의 나토가입과 독일조약의 의미 : 서방강대국들이 독일을 서방공동체에 묶어 어떤 정치적 상황변화가 있더라도 결속을 지키는 것을 중요시하게 됨 . 사회보장제도의 확대
  • 빌헬름 피크와 발터 울브리히트를 중심으로 한 공산당과 그레테볼이 이끄는 사민당 일부가 합쳐 SED 당 결성 . 울브리히트 시대의 동독 :
  • 라인강과 풍부한 자원을 바탕으로 산업시설이 몰려 있는 노르트라인 - 베스트팔렌 주의 루르지역은 라인강의 기적을 상징하는 대표적 곳
  • 총액수 131 억 $= 오늘날 가치로 750 억 유러 /1,155 억 $ 목적 : 유럽의 전쟁피해복구 / 소련공산주의의 방지 / 미국수출품의 판매시장 구축
  • 1965 년 연방 총선거 플래카드
  • 영국 수상 Winston Churchil 의 표현 소련 지배하의 동구 블럭국가 (Ostblock) 지칭
  • 1948.06~1949.05: Berliner Blockade 베를린– 소련은 연합군의 서 베를린에서의 퇴각을 목표로 함 . 서독에서의 화폐개혁에 대한 소련의 첫 대응 . 모든 서 베를린의 전기공급 중단 / 교통수단 마비 . 미군의 공중투하로 220 만 서베를린 시민들 생활 연명 봉쇄 ( 사진은 1948 년 6 월 24 일 베를린 봉쇄당시 아이들이 미군기를 보고 환호하는 장면 ) .
  • 1960 년 한해 동안에만 20 만명 , 1961 년까지 2 년간 동 베를린 인구수에 달하는 165 만 명의 동독인이 서독으로 탈출 . 또한 소련 영향권의 폴란드와 체코슬로바키아인들은 비교적 느슨한 동서 베를린간 통행을 서방으로의 탈출로 이용 . 베를린 장벽 설치 당시 1961 년 동 베를린에서 약 5 만 명이 직업활동을 서 베를린에서 하고 있었음 . 소련의 흐르시초프 당서기장은 서방 연합군에게 서 베를린에서 철수하라는 최후통첩 . 느닷없이 동독정부가 베를린 전역에 장벽구축 . 그때까지 통행이 자유로웠던 동서 베를린 간의 왕래가 불가능 . 장벽의 서쪽 1960 년대부터 경제의 분배문제가 대두 , 보수 집권당의 과거청산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 , 베트남전쟁에 대한 비판이 유럽 전역에 퍼지고 1968 년을 정점으로 독일에서도 정치비판 , 문인들의 참여문학 경향 색채 . ( 하인리히 뵐 , 귄터 그라스 , 파울 첼란 ) 장벽의 동쪽 60 년대에 들어서면서 < 사회주의 리얼리즘 > 에 바탕을 두나 미학성이 강한 창작물 등장 , 문학성이 높아 서독의 주목을 받음 .
  • 1961
  • 1968 년 프라하의 봄 –
  • 독일 :
  • 1948 년 생 – 김나지움 ( 인문고 ) 중퇴 – 비 정규직으로 근무하면서 재야 정치활동 (Opel 자동차사에서 노조 설립참가등 )/ 반정부 시위 주도 . 1983 년 녹색당 총선에서 5,8% 로 연방의회 진출시 의원으로 활동 . 1985 Hessen 주 환경부장관 ( 기민당 / 녹색당 연정정부 하에서 )
  • 1971 Friedensnobelpreis  heftiger Widerstand der Konservativen vom CDU/CSU => Beitrag zur Entspannung in Europa / Grundlage für die spätere Einheit gelegt.
  • 45 년간 서로 다른 체제와 문화 속에서 살던 동서독이 마침내 1989 년에 통일을 하게 된 것은 브란트의 동방정책을 시작으로 꾸준히 진행되어 온 결과이지 갑자기 일어날 수는 없는 것이었다 . 브란트는 동독을 하나의 국가로 인정했으며 , 할슈타인 원칙을 포기했다 .
  • Gorbatschow 의 Perestroika / Glasnost Bush 가 20 년 뒤 “ NMD” 로 계승 (National Missile Defense))
  • Montagsdemonstration
  • 고르바쵸프의 개혁 / 개방정책으로의 급전환 배경 중 하나인 미 대통령 레이건 R. Reagan 의 SDI 정책추진
  • 독일의
  • Ossi-Wessi-Konflikt: 특히 구 동독지역에서 서독에 대한 불만이 강함 Besser-wessi: 항상 잘난체 하는 자 Besser-Wisser 라는 독일어에서 따온 구서독인에 대한 동독인들의 욕 .
  • 마지막 동독총리 로타 드 메지에르 와의 인터뷰에서 정리

11 여름 nr._2_독일의_분단과_통일 11 여름 nr._2_독일의_분단과_통일 Presentation Transcript

  • 2011- 여름계절학기 독일의 문화와 예술 Nr. 2 독일의 분단과 통일
  • 독일의 분단과 통일
    • 독일역사 개관 1815-1945
    • 연합국 점령하의 독일 (1945-1949)
    • 독일연방공화국 ( 서독 ) 의 탄생
    • 아데나우어 시대의 독일
    • 독일민주공화국 ( 동독 ) 의 수립
    • 베를린 장벽
    • 68 학생운동
    • 빌리 브란트의 동방정책
    • 동서 독일의 관계
    • 독일의 재통일
    • 독일통일의 빛과 그림자
    • 1815-1870 독일동맹 ( 오스트리아 + 독일 340 여개 군소 공국의 연합 )
    • 독일통일전쟁 ( 세차례 전쟁에서 모두 승리 )
    • 1864 프로이센 / 오스트리아 덴마크 ( 슐레스비히 / 홀스타인지역 )
    • 1866 프로이센 오스트리아 / 남부독일 (=> 독일동맹 해체 )
    • 1870 프로이센 / 독일 프랑스
    • 독일 통일 제국
    • 1871 독불전쟁 승리후 프로이센 주도하에 통일
    • ( 프랑스 황제 생포 / 파리 베르사이유궁에서 독일 제국 선포 )
    • 제 1 차 세계대전 /1918 독일 패배
    • ( 독일 왕정 붕괴 => 바이마르 공화국 탄생 (1919, 독일 최초 민주공화정 )
    • => 1933 히틀러의 나치 집권 ( 제 3 제국 1933~1945))
    • 1939 제 2 차 세계대전 /1945 독일 패배
  • 통일제국의 비스마르크 수상 (Otto von Bismarck, 1815~1898)
    • 프로이센의 수상으로 독일통일
    • 에 결정적 역할
    • 통일 후 독일 통일제국 수성과
    • 전쟁 재발 억제를 외교정책의
    • 최우선으로 삼고 프랑스 - 러시아
    • 동맹 저지 및 강대국과의 동맹관
    • 계 유지에 총력
    • 빌헬름 2 세의 제국주의적 팽창
    • 정책에 반대하여 1890 년
    • 독일제국 수상에서 퇴임됨
    • 폭발적인 경제성장 ( 1900 년 이미
    • 세계 2 위 경제대국 ) 으로 인한 빌헬름
    • 2 세와 당시 독일 시민사회 주류
    • 의 제국주의적 경향은 훗날
    • 제 1 차 세계대전으로 이어짐
  • 1945 년 2 차 세계대전 패전 이후 - 4 개국 연합군의 독일 지배 ( 합동 점령지역 : 루르지역 & 베를린 )
  • 연합국 점령하의 독일 (1945-49)
    • 제 2 차 대전에서 패한 독일은 오더 강과 나이세 강을 경계로 동쪽은 폴란드에 소속되어 국토가 줄어들었다 .
    • 얄타회담 (1945 년 2 월 ) 에서는 독일의 주권을 박탈하고 점령군에 프랑스 ( 영국 , 미국 , 소련 이외 ) 를 더 추가했고
    • 포츠담 회담 (1945 년 7, 8 월 ) 에서는 폴란드 , 헝가리 , 체코에서 독일인을 추방하기로 결정 .
    • 점령국들의 4D 정책 : 비군사화 (Demilitarisierung), 군수산업해체 (Demontage), 탈나치화 (Denazifizierung), 민주화 (Demokratisierung)
    • 수도 베를린 : 4 개국 분할 점령 , 연합국관리 위원회
    • 1948 년 6 월 20 일 화폐개혁 : 도이체 마르크 (DM), 동부 도이체 마르크
  • 독일연방공화국 ( 서독 , BRD) 의 탄생
    • 1949 년 8 월 선거 :
    • : 제 1 당 기민당 / 기사당 연합 , 제 2 당 자민당
    • 수상 : 기민당의 아데나우어가 독일연방공화국 ( 서독명칭 ) 의 초대수상 으로 취임
    • 독일연방공화국 (Bundesrepublik Deutschland;BRD)
    • 정부탄생 : 임시 수도는 본 Bonn
  • 아데나우어 시대의 서독
    • 콘라트 아데나우어 (Konrad Adenauer,1876-1967)
    • : 독일연방공화국의 초석을 놓았고 특히 ‘라인강의 기적’으로 불리는 경제부흥의 견인차 역할을 했다 .
    • 친 서방정책
    • : 1955 년 5 월 5 일 북대서양방위조약기구 ( 나토 NATO) 에 가입 [ 독일은 서방 공동체에 묶여 어떤 정치적 상황이나 변동에도 서방에 결속을 지켜야 한다는 의미 ]
    • : 할슈타인 원칙 ( 소련을 제외하고 동독과 국교를 맺은 국가와는 국교를 맺지 않음 )
    • 경제장관 에어하르트 (Ludwig Erhard): 사회적 시장경제 추구
    • 라인강의 기적 (Das Wunder am Rhein): 미국의 대규모 원조 , 통화의 안정 , 동부 난민 유입 (1500 만 ) 으로 풍부한 노동력
  • 독일민주공화국 ( 동독 , DDR) 의 수립
    • 독일사회주의통합당 (SED) 결성 : 공산당과 사민당 통합
    • 1949 년 인민의회 선거 : 단일후보에 대한 찬반 투표로 SED 가 1 당이 됨 .
    • 1949 년 10 월 7 일 독일민주공화국 ( Deutsche Demokratische Republik) 탄생
    • 실질적 권한 : 발터 울브리히트 (Walter Ulbricht)
    • 울브리히트 시대의 동독 : < 상호 경제원조 회의 COMECON> 에 가입 , 소련식 중앙 통제경제 체제 , 집단농장화된 농업생산공동체
    • 1953 년의 노동자 농민의 폭동으로 울브리히트 정권 위기 , 1954 년 소련은 동독의 독립을 인정 , 1955 년 동구권 공산권 국가들의
    • 군사동맹인 ‘바르샤바 동맹’ (↔ 서방의 ‘나토’ ) 일원이 됨
  • 영화 ‘ 베른의 기적 ’
    • 2003 년 가을에 개봉된 죈케 보르트만 감독의 작품
    • 스위스 베른에서 개최된 1954 년 월드컵 축구경기에서의 독일 팀의 우승과 전후 독일의 생생한 모습을 그려냄 .
    • 주무대는 독일 라인강의 기적을 대표하는 중서부 노르트라인 - 베스트팔렌 주의 공업지대인 루르지역 (Ruhr) 지역 의 에센 (Essen) 市
  • 루르 (Ruhr) 지역 : 노르트라인 - 베스트팔렌 주에 속함 / 유럽최대공업지역 /500 만인구 / 라인 강가의 풍부한 자원과 산업시설 밀집 지역 / 라인 강의 기적을 상징
    • 슈뢰더 수상은 멕시코 공식방문 때 감독 보르트만을 동행 , 멕시코에서 이 영화가 상영되었을 때 눈물을 흘렸다는 소문 , 복고적이고 전설적인 메시지가 현 독일인들에게 긍정적인 영향 .
    • 독일 팀의 우승은 전후 독일의 암담했던 패전의 상처에 대한 종지부를 찍고 ‘라인강의 기적’이라 불리는 경제부흥을 개막한 상징적 의미를 갖는다 . 이 전설적인 이야기는 그 동안 주식시장에서 약세를 면치 못했던 세나토 영화사에 큰 기쁨을 안겨주었다 .
  • “ 베른의 기적” - 나찌 과거 청산의 새로운 시각
    • 나찌 / 전쟁세대와 이들을 부모로 둔 전후 세대와의 갈등을 이들의 뒤에 태어난 제 3 세대의 시각으로 묘사 .
    • 80 년대까지가 두 세대간의 갈등의 시대였다면 , 90 년대 독일사회의 주도계층으로 떠오른 제 3 세대는 죄와 벌이라는 대립적 시각을 탈피 , 가해자와 피해자 모두의 고통에 귀 기울임
    • 나찌시대를 독일에 국한된 특정지역현상으로 보고 , 가해자 독일의 죄의 청산을 묻는 냉전시대 (1950~1989) 의 단편적 시각에서 탈피
    • 나찌과거 청산의 궁극적 목적은 처벌과 책임이 아닌 용서를 통한 화해에 있다는 시각을 대변
  • 전후 서독의 “경제부흥” – Wirtschaftswunder (1949~1966)
    • 일반적으로 알려진 바와 달리 미국의 경제원조는 부분적 효과에 국한됨 .
    • [ ‘ 마셜플랜’ (Marshallplan) 의 목적
    • : 유럽의 전쟁피해복구 / 소련공산주의저지 / 미국 수출품 판매시장 구축 ]
    • 유럽국가들이 Marshallplan 에서 받은 원조금 액수
    • : ( 총 액수 131 억 $ 중 [ 오늘날 가치로 750 억€ / 1,155 억 $] )
    영국 36 억 $ 프랑스 31 억 $ 서독 14 억 $ 네덜란드 10 억 $
    • 1948 년까지는 전쟁의 폐해 복구사업에 전력
    • 1949 년의 화폐개혁과 더불어 급속한 성장 . VW 의 Käfer 자동차등 수출성공 ,
    • 한국전쟁으로 인한 호경기 역시 급속한 경제성장에 많은 기여 .
    • 서독 2 대 연방수상 에어하르트 (1958~1963)
    • : “ 사회적 시장경제”체제 (Soziale Marktwirtschaft) 도입
    • : 자유시장경제 + 세금을 통한 부의 균형적 분배 / 개인의 사회적 책임강조 (Erhard, “Wohlstand für alle ” / “ 부는 모두를 위한 것” )
  • 냉전시대의 첨예화 : 베를린 장벽 Berliner Mauer
  • Eiserner Vorhang/Iron Curtain 철의 장막 1945~1990
    • 1948.06~1949.05: 소련의 베를린 봉쇄
    • - 소련은 서 베를린에서 연합군의 퇴각을 목표로 함 .
    • - 서독의 화폐개혁에 대한 소련의 첫 대응
    • - 모든 서 베를린의 교통수단마비 / 전기공급 중단 .
    • 미군의 공중 투하로 220 만 서베를린 인구가
    • 생필품 공급받음
    • 사진은 1948 년 6 월 24 일 아이들이 미군기를
    • 보고 환호하는 모습 .
    • 수많은 동독인이 서독으로 넘어가자 냉전이 심화됨 (1949~1961: 350 만 ) – 서독으로의 이주자들 대부분이 동독의 고학력층 / 중상위층 . 동독이 위기의식을 느끼게 됨 .
    • [ 1960 년 한해에만 20 만 명 , 1960~61 년의 2 년간 동 베를린 인구수에 달하는 165 만 명의 동독인이 서독으로 탈출 .
    • 또한 소련 영향권의 폴란드와 체코슬로바키아인들은 비교적 느슨한 동서 베를린간 통행을 서방으로의 탈출로 이용 .
    • 베를린 장벽 설치 당시 1961 년 동 베를린에서 약 5 만 명이 직업활동을 서 베를린에서 하고 있었음 ]
    • 1961 년 8 월 13 일 : 동독정부의 베를린장벽구축
    • 소련의 후르시초프 당서기장은 서방 연합군에게 서 베를린에서 철수하라는 최후통첩 => 느닷없이 동독정부가 베를린 전역에 장벽구축 . 그때까지 통행이 자유로웠던 동서 베를린 간의 왕래가 불가능
    • 베를린장벽은 동독주민의 탈출을 줄였고 그로 인해 사회가 안정되어 동독의 경제도 크게 성장한다 .
    • => “ 냉전시대” (Der kalte Krieg / The Cold War) 의 첨예화
  • 1961 년의 장벽설치 : 1961 년 8 월 12 일 밤에 기습적으로 설치 . : 5 천명의 동독 국경수비대 / 5 천명의 동독 경찰대 / 4 천 5 백 명의 상비군 동원
  • 베를린 장벽
  • 챨리 초소 Checkpoint Charlie 1961 년 8 월 12/13 일 베를린 장벽 설치 후 동서간 긴장 고조 . 10 월 27 일 챨리 초소에서 동서 베를린 간 보행자 통행 규정을 두고 양 국의 경비담당자간 충돌 발생 . 각 10 대의 전차를 동원하는 등 무력충돌임박 .
    • 장벽의 서쪽 :
    • - 50 년대 경제 개혁이후 1968 년을 정점으로 사회전체에 비판적인 분위기 , 68 학생운동 , 지식인들의 정치참여 , 1969 년 사민당
    • 집권 후 개혁바람
    • – 보수우파에서 진보적 좌파 쪽으로 전환 . 냉전시대의 외교정책도 긴장완화 및 동독과의 대화확대로 바뀜 .
    • 장벽의 동쪽 :
    • - 막대한 전쟁배상금을 소련에 지급해야 했던 동독은 열악한 조건이었다 . 장벽 후 ‘신경제 체제’ 도입 , 경제에 박차를 가함 .
    • - 당 노선을 따르지 않는 동독 문인들의 비판적 목소리가 커지자 박해 , 1976 년 시인 볼프 비어만 시민권박탈사건으로 많은 문인과 지식인들이 서독으로 넘어왔다 .
  • 68 학생운동 -68er Studentenbewegung
    • 60 년대 서방의 구시대적 질서에 대항한 자유운동이 시대적 배경
    • 미국
    • – 1963, 워싱턴에서 25 만명 인종차별 반대시위 (Martin Luther King 목사 , “I have a dream”) – 버클리 대학에서 학생들 1,000 여명이 정치활동금지에 대항하여 학교행정당국 점거
    • – 반 베트남전쟁운동의 확산 (1967, 뉴욕에서 40 만명 시위 )
    • 히피운동 (Hippie) – 인간적 / 평화적 삶
    • (“Flower-Power”/Beatles, “All you need ist love”)
    • 프랑스
    • – 1968 년 5 월 소르본느 대학 점거 , 노동자와 화이트칼라 합세로 전국 총파업 돌입 – 한때 드골대통령의 비상계엄선포 임박
  • 1963 년 8 월 28 일 워싱턴에서 열린 “ 직업과 평화를 위한 워싱턴 행진” (March on Washington for Jobs and Freedom) : 25 만 시위군중 앞에서 마틴 루터 킹이 “ I have a Dream” 이라는 제목으로 연설 “ 언젠가는 옛 노예의 자손과 노예 주인의 자손이 한 식탁에서 마주하게 될 것이라는 꿈이 내게 있습니다” “ 언젠가는 나의 4 명의 자식들이 피부색이 아닌 그들의 개성에 따라 평가되는 나라에서 살게 되리라는 꿈이 내게 있습니다”
  • 1968 년 체코 , “ 프라하의 봄” (Prager Fr ühling) 소련에 의해 강요된 억압적 공산주의를 거부하고 민주적 색채를 띤 공산주의 개혁을 시도 8 월 21 일 동유럽 공산주의 블록의 와해를 우려한 소련이 탱크부대를 투입시켜 무차별 진압함 .
    • 독일
    • 기성세대의 전쟁과 냉전시대의 사고에 입각한 옛 질서 / 나치식 전체주의적 사고
    •  전후 세대 : 경제적 풍요와 히피 / 팝 문화로
    • 대표되는 자유주의에의 소망이 충돌
    • 반 베트남전쟁 시위 / 자본주의 비판
    • / 나치과거의 본격적인 청산 / 언론자유
    • / 여성해방
    • : 1967 년 시위 중이던 대학생 베노 오네조르크가 진압경찰의 총에
    • 숨지면서 시위양상 격화
    • 학생시위대의 화살은 정부 외에도 여당과 공조하여 대중일간지 “ Bild”
    • 지를 이용 , 여론을 조작하는데 큰 영향을 미친 악셀 슈프링어 출판사를
    • 겨냥
  • 당시 독일 대학생들 모습 폴크스바겐社 (VW, Volkswagen) 의 미니버스는 당시 문화적 아이콘 : 자유로운 여행 => 시민사회 규범적 제약 없는 자유로운 삶의 상징
  • 68 학생 운동세대의 대표자 : 독일 수상 슈뢰더 ( Gerhard Schröder, 1944~/1998~2006 독일수상연임 ) - 부친의 전사 후 홀어머니 밑에서 극심한 가난을 겪음 - 정규교육 없이 검정고시합격 후 괴팅엔 대학에서 법학공부 . 1978~1990 변호사로 활동 - 68 운동세대로서 . 좌파 테러리스트 / 환경단체 변호 등 재야 변호사로 활약 - 니더작센 주지사 (1990~1998) 를 거쳐 사민당 (SPD) 당수로 독일총리로 선출 – 세 번의 이혼 후 1997 년 34 살의 여기자와 네 번째 결혼
  • 피셔 (Joschka Fischer, 1948~) - 고등학교 중퇴 / - 한 때 무정부주의자로 자본주의 질서에 대항하는 무주택자모임 참여 , 빈 건물점거 기숙 / 재야정치활동 (Opel 社 노조설립참여 ) - 녹색당 ( Die Grünen) 창당주역 /1983 총선 , 녹색당 5,8% 득표 - 연방의원직 - 1985 헤센 주 환경부 장관 ( 기민 / 녹색당 연정 ) - 녹색당 당수로 슈뢰더의 사민당 (SPD) 과의 연정에서 외무부장관 . - 4 번의 이혼 , 2005 년 32 세의 이란출신 여성과 5 번째 결혼
  • 68 학생운동의 영향
    • “ 체제내로의 행진” (Marsch durch die Institutionen”) : 대부분의 학생들은 좌파정당인 사민당 (SPD) 에 합류 70 년대의 패러다임교체에 영향을 미침
    • – 냉전시대의 대립에 반대하는 “긴장완화정책”에 영향 – 사민당 정권의 동독 접근 및 교류정책 / 일부 학생운동 엘리트들은 자본주의 전복을 기도하는 테러조직 활동
    • 민주주의 정치문화 정착
    • (Brandt, “ 더 많은 민주주의를 감행해봅시다 mehr Demokratie wagen”)
    • 전통적 가치관 / 이념의 비판적 성찰 ( 反 권위주의 Anti-Autorit ät)
    • - 전통적 권위에 근거한 복종의 거부 . 기존 가치관들의 비판적 성찰
    • – 전통적 의미의 “가족”제도 재고 - 집단보다는 개인의 존엄성 존중 (“ 자아실현” )
    • - 남성위주의 性 관념 타파 => 페미니즘의 시작 / 이율배반적 남성위주의 성모랄 해체
    • 평화추구 가치관 확산
    • – 강대국과 약소국간의 불균형
    • - 평화주의에 기초를 둔 반 전쟁주의
    • 환경보호의식의 탄생
    • - 경제발전은 환경보호와 병행되어야 한다는 공감대 형성
    •  후에 녹색당 (GRÜNE) 탄생의 기반을 닦음  오늘날 환경정책의 시초 .
  • 브란트 (Willy Brandt) 수상의 동방정책 (Ostpolitik)
    • 1969 년 처음으로 사민당 (SPD) 집권 – 종전 이후 처음으로 정권이 우파에서 좌파로 이동 . 보수 / 안보에서 진보 / 자유로의 패러다임 교체 상징
    • 브란트의 소련 및 사회주의 국가들과의 동방정책
    • 1972 년 동서독 기본조약 체결 : 동서독 간의 교류 , 장벽의 벽을 낮추기 시작
  • 1970 년 12 월 7 일 폴란드를 방문한 브란트는 1943 년 바르샤뱌의 게토봉기에서 나치에 의해 희생당한 유대인 추모비 앞에 무릎을 꿇고 나치의 만행에 대해 용서를 빌었다 . 이 돌발적인 행위가 전 세계인에게 독일의 사죄와 화해로 받아들여져 브란트의 동방정책 이 결실을 이루는 계기가 되었다 . -1970, 에어푸르트 : 첫 번째 양 독일 간 정상회담 / 폴란드 , 소련 , 체코슬로바키아와 협정체결 - 1971, 브란트 노벨 평화상 수상 ( 보수진영의 반대 ) => 브란트의 동방정책과 긴장완화 정책은 훗날 독일 재통일의 초석을 마련했다는 큰 의미가 있다 .
  • 통일이전의 동 / 서독관계 : 브란트의 동독정책 : 브란트는 동독을 하나의 국가로 인정 ( 아데나워의 할슈타인 원칙 포기 )
    • - 1973 년 6 월 21 일 동서독간 기본법 의 효력발생
    • : 상호 무력사용 및 영토침범 금지
    • : 상설대표부 교환으로 실제적이고 인도주의적인 문제 규정 ,
    • : 내 독 교역의 발전 ,
    • : 의료제도와 교통제도의 협력 : UN 동시 가입 등 .
    • - 상호방문
    • : 1978 년 동독방문객 3 백만 명 . 1986 년 동서 상호 방문 380 만 건 .
    • - 언론 및 방송교류
    • : 1973 년부터 동 베를린 ( 구 동독 수도 ) 과 본 ( 구 서독 수도 ) 에 각각의 특파원 상주 .
    • : 라디오와 텔레비전의 경우 동독에서도 서독의 방송의 수신과 청취가능
  • 브란트 이후 통일 전까지 동서독간 관계개선을 위한 서독의 노력
    • 1976 년 우편협정 : 분단된 이래 서신왕래는 지속 . ( 서독은 국내요금으로 , 동독은 국제요금을 냄 )
    • 1986 년 문화협정 : 전쟁으로 인해 자리를 옮기게 된 문서보관소의 문서 , 공공박물관의 미술품 , 공공도서관의 학술도서를 서로 반환하는 작업 등 .
    • 지속적인 서독의 원조 :
    • - 베를린으로 통하는 도로를 개방상태로 유지하기 위해 서독정부는 매년 15 억유러 동독에 지불 ( 2 조원 이상 )
    • - 동독의 정치범 석방을 위해 총 250 억 유러 지불 (30 조원 이상 )
    • - 70 년대부터 경제파탄에 빠진 동독정부에게 이러한 서독의 도움은 거의 유일한 체제유지의 해결책과도 다름없었다는 것이 후에 밝혀짐 ( 마지막 동독공산당 서기장 에공 크렌즈 Egon Krenz 의 비밀문서 )
  • 독일의 재통일
    • 1985 년 소련공산당 서기장 고르바초프 가 집권하면서
    • 개방 (Glasnost 글라스노스트 ) 과 개혁 (Perestroika 페레스트로이카 ) 을 도모하는 정책을 추진하고 세계적으로 화해 ( 데탕트 ) 분위기가 조성되는 가운데 동유럽의 공산정권들은 위기에 직면하였다 .
    • 1989 년 8 월 19 일 헝가리 정부가 오스트리아와의 국경을 개방하자 수많은 동독인들이 헝가리와 오스트리아를 거쳐 서독으로 넘어왔다 .
    • 동독 내부에서도 동독 정부에 저항하는 움직임이 곳곳에서 일어났다 . 라이프치히 (Leipzig) 에서 벌어진 대규모 평화시위가 저항운동의 중대한 전환점이 되어 시위는 전국적으로 확산되었다 .
    • < 정치적 사건 >
    • 89 년 7 월 : 동독주민들이 부다페스트 , 프라하 , 바르샤바 등의 서독대사관으로 탈출 .
    • 89 년 10 월 5 일 -7 일 : 동독정부 40 주년 기념식에서 고르바초프가 동독공산당 지도부에게 정치개혁 촉구 .
    • 89 년 10 월 7 일 : 동독정부 40 주년 기념축제 시위 , 슈타지 (Stasi= 동독 국정원 ) 가 시위대 진압 .
    • 89 년 10 월 18 일 : 호네커가 공산당 당수에서 물러남 .
    • 1989 년 11 월 9 일 저녁 , 동베를린에서 서 베를린으로 넘어오는 통과초소들의 문이 열렸다 . 동독정부는 마침내 동독의 주민들이 장벽을 넘어 서독으로 가는 것을 묵인하였다 . 동독정부는 사실상 통치권을 포기한 것이다 . 시위대의 구호는
    • “ 우리는 인민이다” (Wir sind das Volk) 에서
    • “ 우리는 한 민족이다” (Wir sind ein Volk) 로 바뀌었다 .
    • 1990 년 3 월 18 일 : 동독 최초의 자유선거
    • 1990 년 7 월 1 일 : 동서독 경제통합
    • 9 월 12 일 : 동서독과 연합국 회의에서 독일통일 승인
    • 1990 년 10 월 3 일 : 정식 선포 ( 독일 통일기념일 )
    • 미대통령 레이건 (R. Reagan) 의 SDI(Strategic defense Initiative) [“Star Wars”-Project]
    • 천문학적 군사예산을 전제로 하는 미국의 첨단 미사일 방어체제 계획은
    • 고르바쵸프의 개혁 / 개방정책으로의 전환과 동구권 공산 블럭 와해의 직접적 원인에 속함
  • 콜 수상과 슈뢰더 수상 Helmut Kohl & Gerhard Schr ö der 독일의재통일 위업을 이룩한 헬무트 콜 Helmut Kohl 수상 ( 기민당 CDU, 1980~1997 집권 ) 68 학생운동 세대의 대표자 게르하르트 슈뢰더 Gerhard Sch röder 수상 ( 사민당 SPD, 1998~2005 집권 )
    • 독일통일의 빛과 그림자
    • 서독인들의 불만 – 통일비용 부담
    • 2. 동독인들의 불만
    • 1) 서독주도의 무리한 구조조정이 낳은 부작용
    • 2) Stasi 스캔들
    • 3. 동독인들의 불만 표출
    • 1) 오스탈기 - 붐
    • 2) 구 동독 공산당 후신인 “ PDS” 당의 득세
    • 4. 동서독 갈등 – 마음의 장벽
    • – Ossi 對 Wessi
    • – “ 게으른 Ossi” 對 “잘난 Wessi”
    • 1. 서독인들의 불만 - 통일비용 부담
    • 동서독 지역의 경제적 격차와 막대한 통일비용 : 체제의 통일이 통일의 완료는 아니었다 . 구 동독의 산업시설은 전쟁 이전의 낙후된 상태
    • 1991~1998 년의 통일비용이 1 조 300 억€ ( 약 1 조 7 천억원 ),
    • 구 서독경제의 부담가중으로 인한 동독인들에 대한 불만고조
    • (2009 년까지 총 1 조 6 천억 € 동독 투입 / 2,480 조 9,920 억원
    • * 비교 : 2007 한국 정부예산 - 238 조원 )
    통일 직후 1991 년부터 통일의 재정적 부담을 감당하기 위해 모든 국민에게 “ 공동 부담금” ( Solidaritätszuschlag) 이라는 명목의 부가세가 부과되었다 . 액수는 소득 / 법인세의 5~7,5%.
    • 2. 동독인들의 불만
    • 1) 무리한 서독주도의 구조 조정이 낳은 부작용
    • 임금과 생산성의 불균형
    • : 동독의 임금은 서독수준에 근접했으나 생산성은 낙후된 기술과 인프라로 인해 서독의 54% 에 불과 ▶ 자본주의 독일시장에서의 동독기업의 경쟁력약화 초래 ▶ 연이은 동독기업의 파산 및 서독 주도하의 동독 국영기업 매각 및 영업정지가 대규모로 실행됨
    • ▶ 실업자 양산 ( 동독근로자 1/3 실업자 연금생활자로 전락 / 구동독 실업자 全無 )
    • ▶ 노동 적령 층의 서독이주 ▶ 동독의 황폐화 및 구 동독에의 향수
    • 소득과 물가의 불균형
    • : 동독시절에 비해 소득은 증대했고 , 사회보장 혜택도 늘었으나 , 모든 물가가 현격히 높은 자본주의 서독수준에 맞춰짐에 따라 실질적 체감소득은 현격히 감소 ( ◀ 동독 요지의 부동산들 서독 기업들에 의해 일제히 선점됨 / 구 동독 토지 소유주인 서독인들의 잇달은 토지 반환 소송 )
    • 2)Stasi 스캔들 (Ministerium f ür Sta ats si cherheit)
    • : 동독출신 엘리트들의 과거에서 국가안전부의 비밀첩자전력이 밝혀지면서 대다수가 통일독일의 사회적 활동을 포기하기에 이름 .
    • : 슈타지 소장 파일 전격 공개 – 공직 취업을 희망하는 동독인들의 국정원 전력을 검증하려는 서독 정부의 방침
    • : 동독에 대한 이해 전무한 서독 공무원들이 심사 및 결정 – 동독인들의
    • 반발 및 상실감 증가
    • 3. 동독인들의 불만 표출
    • : “ 오스탈기” - 붐 & PDS 당의 득세
    • 구 동독주민의 옛 동독체제에 대한 향수
    • : 2000 년대 오스탈기 Ostalgie  Nostalgie]
    • – 동독인들은 구 동독에서의 삶이 더 인간적이었다고 느낌 . 서독의
    • 자본에 의한 독재가 동독 공산당의 독재보다 나은 점이 무엇인지 반문
    • – 2000 년대 오스탈기 붐 : 구 동독의 일상을 재현한 술집 , 음식점 및
    • 행사들이 선풍적 인기를 얻음 / 동독 일상을 재현한 영화 , 드라마 및
    • TV 의 “동독 - 쇼”들이 높은 시청률 올림
    • – 몇십년의 인생을 지워버리고 새시스템에 적응하라는 서독 주도의
    • 통일독일사회가 내린 명령을 일방적으로 따라야 하는 동독인들의
    • 총체적 고통과 반발의 표현 .
    • 2) 구 동독 공산당 중심의 PDS/ 민주사회당
    • ( Partei des Demokratischen Sozialismus) 탄생
    • : 구 동독인들은 독일 재통일 당시 이를 환호했지만 , 모든 사회질서가
    • 서독 식 민주 / 자본주의제도로 흡수 통합되면서 , 급속한 변화에 적응하는 데 많은 어려움을 겪음 . 특히 실업률이 급증하면서 자신을 통일의 희생자로 인식
    • : 이 같은 구 동독인들의 피해의식은 구 동독지역에서 30% 에 가까운 지지를 얻은 구 동독 공산당 SED 의 후신인 민주사회당 (PDS) 의 탄생을 낳게함
    • : PDS 는 1994 년 독일 연방의회에 30 명의 의원을 진출시켰고 , 이후 정기적으로 구 동독지역의 주 정부에 집권당으로 참여 ( 멕클렌부르크 - 포어폼머른 주 정부 1998~2006 / 베를린 주 정부 2001~)
    • : 2000 년대엔 서독내 좌파 진영 중 포퓰리즘적 성향이 짙은 일부세력과 결합하였고 , 이후 “좌파당” (Die Linke) 으로 재 탄생하여 2009 년 연방총선에서 11,9% 의 득표율 차지 .
    • 4. 동서독 갈등 Ossi-Wessi-Konflikt
    • : 의식의 혼란 , 마음 속의 장벽
    • - ‘ 베시 (Wessi)’ vs ‘ 오시 (Ossi)’
    • : 구 동 / 서독 인들이 서로를 부르는 명칭 으로 서로에 대한 불신을 상징
    • : 동독인은 인간관계 및 상호 유대 등 전통적 가치관 ,
    • 서독 인은 현대산업사회에서 중시되는 개인의 자유 / 능력 / 효율 중시
    • : 동독인들은 자신을 “통일의 피해자”라고 생각하고 서독인들을
    • 거만하고 잘난 체 하지만 실상 돈만 아는 속물로 경멸 .
    • - “ 잘난 서독인” ( 베서베시 “ Besser-Wessi”) :
    • : 동독인들이 무엇이든 자신들이 더 낫다고 생각하는 서독인들을 비꼬는
    • 별명 (◀ 독일어 “항상 잘난 체 하는 자” (“Besser-Wisser” <= 동사 wissen (know) )
    • - “ 게으른 동독인” ( 파울러 오시 “ fauler Ossi”)
    • : 서독인들이 자본주의적 노동윤리에 적응 못하는 동독인들을 비꼬는 별명
  • 구동독의 5 개 연방주들
    • 멕클렌부르크 - 포어폼머른 (Mecklenburg-Vorpommern)
    • 브란덴부르크 (Brandenburg)
    • 작센 - 안할트 (Sachsen-Anhalt)
    • 작센 (Sachsen)
    • 튀링엔 (Th üringen)
  •  
  • 영화 < 타인의 삶 > Das Leben des Anderen
    • 1980 년대 동독 국정원 엘리트와 그의 도청대상인 동독 국민작가 드라이만 Dreymann 을 중심으로 인간의 자유와 인간성회복을 테마로 함
    • 인물분석 : 예술가 연인
    • - Dreymann & Christa-Maria
    • - 반체제언론인 Hauser
    • - 국정원 요원 Wiesler 중령
    • - 낯선 개념들 : 슈타지 (Stasi= 동독 국가보위부의 약자 )
    • 2007 오스카 수상 ( 최우수 외국영화 )
  • 독일 통일의 주역은 콜 총리보다 동독의 주민의 자발적 변혁의지
    • 베를린장벽이 무너진 것은 동독 주민들의 내부적 움직임
    • 동독의 억압상황을 보도한 서독 언론도 큰 역할
    • 동독은 서독에 흡수된 것이 아니라 주체적으로 합친 것
    • – 동독 시민운동에 공산당 정부가 굴복 / 소련 정책의 급 선환
    • 서독의 지속적 동독지원과 끈기 있는 대화태도가 동독개방의 길을 이끌었음
    • 독일 재통일에 비해 한반도에서 북한과의 통일은 더 어렵고 많은 인내를 요구
    • – 동독에 비해 북한은 훨씬 더 폐쇄적 , 전체주의적 / 봉건적 정치체제
    • – 독일은 한국의 6.25 전쟁과 같은 동족상잔의 비극을 겪지 않음 .
    • – 서독 정부가 주도했던 동독지원과 교류과정은 한국에서 아직 시작
    • 단계에 불과 / 동서독간에 쌓아진 공식적 신뢰관계 수립과정은
    • 시작도 못하는 상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