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creative leadership
Upcoming SlideShare
Loading in...5
×
 

5 creative leadership

on

  • 1,304 views

 

Statistics

Views

Total Views
1,304
Views on SlideShare
1,295
Embed Views
9

Actions

Likes
0
Downloads
17
Comments
0

1 Embed 9

http://www.atelierth.net 9

Accessibility

Categories

Upload Details

Uploaded via as Adobe PDF

Usage Rights

© All Rights Reserved

Report content

Flagged as inappropriate Flag as inappropriate
Flag as inappropriate

Select your reason for flagging this presentation as inappropriate.

Cancel
  • Full Name Full Name Comment goes here.
    Are you sure you want to
    Your message goes here
    Processing…
Post Comment
Edit your comment

5 creative leadership 5 creative leadership Presentation Transcript

  • 기술인문융합 창의형 인재 CreativeLeadership[ 5 Ⅴ
  • 지난 50년간 우리 경제는 산업화를 통하여 전 세계적으로 유례를 찾아보기 어려울 정도의 비약적 인 발전을 이루었습니다. 특히 선진국의 성공사례를 철저히 벤치마킹하여 우리의 실정에 맞도록 적용한 Fast Follower 전략을 통하여 큰 성과를 거둔 것 또한 사실입니다. 하지만 이제 분야에 따 라서는 더 이상 벤치마킹을 하기 어렵거나 기존의 방법으로는 부가가치를 창출하기 어렵기 때문 에 First Mover로의 전환이 절실히 필요한 시기가 도래했다는데 공감대가 형성되고 있습니다. 기술인문융합창작소(Atleier Techno-Humanities)에서는 우리산업이 First Mover로 도약하기 위 한 사고의 전환과 아울러 이를 뒷받침할 “문제해결형 R&D”로의 전환에 필요한 창조적 리더십과 다양한 접근방식을 제시하고자 노력해 왔습니다. 이제 그간의 연구 결과를 정리하여 R&D분야의 실무자나 관리자 들에게 필요한 매뉴얼을 내어놓 게 되었습니다. 이 시대의 R&D에 참여m하는 연구자나 관리자들이 미래를 향한 꿈과 비전을 펼 칠 수 있는 환경의 조성과 창조적인 생태계를 구축하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창조 경제를 만들어가 는 지름길이 아닌가 싶습니다. 우리의 삶과 사물을 꿰뚫는 통찰력(Insight)과 미래를 내다보는 예 지력(Foresight)이 창조경제를 이끌어가는 리더가 가져야할 가장 중요한 역량으로 대두되는 이 시점에서 기술인문융합창작소의 다양한 접근방법들이 활용되기를 기대합니다. 다시 한 번 본 매 뉴얼이 창조경제를 염원하는 모든 분들에게 큰 도움이 되기를 기대해 마지않습니다. 2013년 7월 이 남 식 기술인문융합창작소 소장 Expect the Unexpected 기술인문융합 가치창출을 위한 Future Discovery Research 2020 인사말 Greeting
  • 기술인문융합 창의형 인재 Creative Leadership 역사속에서 기술인문융합을 시도하였던 • 실용적인 창조를 추구한 창조적 리더 “세종대왕” • 르네상스 과학 예술가 “레오나르도 다빈치” • 융합과 독창의 아이콘 “스티브 잡스” 대한민국의 기술인문융합을 선도하는 • 모바일 시대, 커뮤니케이션으로 가치를 창출하는 “카카오톡 김범수” • 새로운 가상국가, 대한민국 영토를 넓히는 “SM 이수만” • 여러 사람의 Wonder한 생각을 모아 꿈과 희망에 도전하는 “네오플 강신철” • 과학은 소통과 설득의 연속이다 “서울대 임지순 물리학자” • ‘된다’보다 ‘될까’의 연구에 투자하는 “하버드대 박홍근 분자전자과학 권위자” • 미래 인터넷 기술의 새 지평을 열고 있는 “ KAIST 문수복 전산학 교수” • 3D 가상입력장치의 선두주자 “셀루온 차래명 대표” • 소통으로 ‘창의’ 바람을 몰고오는 “포스코 정준양 회장” • 한국 영화의 신 르네상스를 열고 있는 “CJ E&M 이미경 부회장” • 1%를 채우기 위한 ‘도전’의 연속 “한경희생활과학 한경희 대표” • 국내 문화 마케팅의 역사를 새로 쓴 “현대카드 정태영 대표” C O N T E N T S
  • 기술인문융합 가치창출을 위한 Future Discovery Research 2020 역사속에서 기술인문융합을 시도하였던 실용적인 창조를 추구한 창조적 리더 세종대왕 르네상스 과학 예술가 레오나르도 다빈치 융합과 독창의 아이콘 스티브 잡스
  • tech + 형 융합인재의 사례를 통해 이시대에 필요한 미래 융합 리더십을 재해석하고자 한다. 융합의 시대에 상호간의 지식과 역량을 융합하여 새로운 성장동력을 창 조하는 것이 tech + 형 융합인재의 핵심이며, 이러한 tech + 형 인재는 창의성 중심의 융합 자질, 태도를 가지고 다양한 분야의 지식을 통섭하는 특징을 보이면서 기본적으로 도전, 소통, 창조의 기업가 정신을 보유하고 있다. tech + 형 융합인재를 선정하여 창조적 리더의 DNA가 어떠한 것인지를 심 층적으로 분석하기 위해 다음과 같은 인물 선정 가이드라인을 활용코자 한다. 첫째, 우리나라 역사상 가장 위대한 리더(세종대왕)와 우리시대를 대변하 는 업적과 성과를 창출하고 미래지향적인 창의성 중심의 인문·과학기술 융합문화를 주도한 이상적인 역사인물(레오나르도 다빈치, 스티브 잡스) 둘째, 우리나라 현존인물 중에서 노벨상 후보 그룹(임지순, 박홍근), 글로 벌IT CEO상 수상자(차래명), 젊은 공학인상 수상자(문수복), 벤처 1位 기 업 CEO(강신철), 기타 인물(김범수, 이미경, 이수만, 정준양, 한경희)등 10인을 대상으로 하였다. 세종대왕 조선 제 4대 왕 / 창조경영 리더십 발휘 • 과학 기술의 발전 : 발명 과정과 활용, 기술자 양성 및 보호법 • 훈민정음 창제 : 창제 동기와 원리, 장애물 극복 방식, 창제 후 활용방법 • 악보 창제 : 아악 정비, 향악 작곡, 정간보 창안 레오나르도 다빈치 이탈리아 대표 예술가 / 과학의 예술가 • 최초의 과학자, 르네상스 시대의 가장 위대한 화가, 인류 역사상 가장 천재적인 인물 • 다방면에서 재능 발휘 :미술, 음악, 건축, 군사공학, 도 시계획, 비행 기계의 고안, 해부, 요리, 식물학, 의상 및 무대 디자인 등 예술가로서의 업적은 물론이거니 와 과학이라는 용어조차 없던 시대에 여러 자연 과학 분야에 걸친 다양한 관찰과 실험 스티브 잡스 애플 CEO / 최초의 DENT Leader • 새로운 시장 창조, 양보다는 질, 고객 기술을 끌어들 인 창의기법, S/W와 Application 중시, 혁신의 동력은 내부가 아닌 외부라는 시각, 스마트 리더, 직원에게 기회를 주는 최고경청자(CLO)로서 애플의 DNA 기술 은 인문학과 결합된 기술의 결과물로 세상을 선도한 현시대의 창조리더 * DENT Leadership : 우주에 흔적을 남기는 일을 할 수 있도록 조직을 이끄는 창조 리더십 조사 인물 융합인물(3명) 10 기술인문융합 창의형 인재 / Creative Leadership 실용적인 창조를 추구한 창조적 리더/ 세/ 종/ 대/ 왕/ 11
  • 조사대상 후보인물 현존인물(3명) 김/범/수/ 카카오 의장 플랫폼 비즈니스의 성공신화 • 소셜 모바일 메신저 문화를 확산시키며 새로운 신화창조를 일구는 승부사 이/수/만/ SM엔터테인먼트 CEO 문화기술 이론의 선구자 • 국가별 문화에 대응하기 위한 현지화와 K-POP 문화 선도 강/신/철/ 네오플 CEO 게임의 한류열풍 주역 • 끝없는 혁신과 글로벌화를 통해 초고속 성장을 이끈 게임계 의 '한류열풍' 주역 조사대상 후보인물 기타(8명) ●글로벌IT CEO 차래명 ●일반 CEO 한경희, 이미경, 정준양, 정태영 ●젊은 공학인상 문수복 ●노벨상 후보 임지순, 박홍근 주) 현존인물은 알앤디비즈 선정 : tech + 형 융합인재의 공통적인 사례 요소를 발굴 하자는 취지로서 국내를 대표하는 리더 선정 개념이 아님을 밝힘 12 기술인문융합 창의형 인재 / Creative Leadership 실용적인 창조를 추구한 창조적 리더/ 세/ 종/ 대/ 왕/ 13
  • 실용적인 창조를 추구한 창조적 리더 세종대왕 1397(태조 6)~1450(세종 32). 조선 제 4대 왕으로 재위기간은 1418~1450년이며 본관은 전주(全州), 이름은 도(祹), 자는 원 정(元正). 태종의 셋째아들이며, 어머니는 원경왕후 민씨이 며, 비는 심온(沈溫)의 딸 소헌왕후(昭憲王后)이다. 1408년(태 종 8) 충녕군(忠寧君)에 봉해지고, 1412년 충녕대군에 진봉(進 封)되었으며, 1418년 6월 왕세자에 책봉되었다가 같은 해 8월 태종의 양위를 받아 즉위하였다. 원래 태종의 뒤를 이을 왕세자는 양녕대군(讓寧大君이었다. 그러나 양녕대군이 개와 매에 관련된 사건을 비롯해, 세자로 서의 품위를 손상시킨 일련의 행동과 사건들이 일어나자, 조 선 왕조의 정치적 안정과 융성을 바라던 태종은 왕위를 이을 후계자로서 양녕대군이 적합지 못하다고 판단하였다. 이에 태종의 진의를 파악한 신료들이 왕세자 폐위를 요구하는 소( 疏)를 올려, 끝내 양녕대군을 왕세자에서 폐하고 충녕대군을 왕세자로 삼았다. 1418년 6월 태종은 “충녕대군이 천성이 총민하고, 또 학문에 독실하며 정치하는 방법 등도 잘 안다”면서, 택현(擇賢 : 어진 사람을 고르는 것)의 명분으로 세워 충녕대군을 세자로 책봉 하였다. 이처럼 세자책봉은 태종의 뜻에 따라 극적으로 이루 어졌다. 1418년 8월 10일 태종의 선위를 이어받아 세자 충녕 대군이 왕위에 오르니, 그가 바로 세종이다. 다양한 인재들을 용광로처럼 잘 녹여 내어 새로운 융합을 창조해 낸 전형적인 컨버전스(Convergence) 리더이자, 뜻하 는 바를 마음에 사무치게 전달한(사마하다) 소통의 리더십 발휘 시대배경 조선 4대 세종대왕 임금은 누구인가? 역사적 인물에 대한 융합적 관점에서의 리더십 재해석 14 기술인문융합 창의형 인재 / Creative Leadership 실용적인 창조를 추구한 창조적 리더/ 세/ 종/ 대/ 왕/ 15
  • 세종대는 유교정치의 기틀을 바탕으로 우리 역사에서 문화가 가장 융성한 시대였다. 무엇보 다 정치적 안정을 바탕으로 경제·사회·문화 등 전반에 걸쳐 조선 왕조의 기반을 마련한 시 기였다. 이는 단순히 수성(守成)의 의미를 넘어, 역성혁명 (易姓革命)을 통한 조선 왕조의 정 체성을 확립하는 것이었다. 그런 점에서 세종은 수성의 군주를 뛰어 넘어 창업을 완성한 군 주였다. 세종은 집현전을 통해 훌륭한 인재들을 양성하였고, 유교정치의 기반으로서 의례·제도를 정 비하였다. 다양하고 방대한 편찬 사업과 함께 훈민정음의 창제, 농업과 과학기술의 발전, 의 약기술과 음악 및 법제의 정리, 공법(貢法)의 제정, 국토의 확장 등 수많은 사업을 통해 기틀 을 확고히 하였다. 태종이 이룩한 왕권의 정치적 강화를 바탕으로, 세종은 경제, 사회, 문화 등 사회 전반에 걸쳐 새로운 시대를 열어 나갔다. 개국공신 세력이 정계를 장악하던 태종대 와 달리, 세종은 과거를 통해 선발한 유교적 소양의 관료 및 학자들을 중용하면서, 유교이념 에 근거한 왕도정치를 펼쳤다. 세종은 집권 초기 새로운 정치와 문화 창달을 위해 국가 경영의 씽크탱크(think tank)로서, 집 현전을 설치하였다. 인재를 중용하고, 소통을 존중하던 세종의 배려로 무한대의 학문과 자유 를 보장받았던 집현전의 신진 학자들은 새문화 창조의 주축이 되었다. 집현전의 최항(崔恒)· 박팽년(朴彭年)·신숙주(申叔舟)·성삼문(成三問)·이선로(李善老)·이개(李塏) 등과 같은 학자들이 우리 민족의 문자인 훈민정음을 창제할 수 있었던 것은 그러한 바탕에서 비롯된 것 이었다. 뿐 아니라 과학과 기술에서 놀라운 발전을 이루며, 태평성대의 기반을 구축할 수 있 었다. 세종대가 우리 역사에서 가장 빛날 수 있었던 것은 무엇보다 인재를 아끼고, 소통을 통 한 세종의 융합과 창의의 리더십이 있었기에 가능한 것이었다. 세종은 넓고 깊은 학문적 성취와 역사 문화에 대해서도 깊은 통찰력을 지닌 리더였다. 때문에 당시 선진국인 중국의 문화를 받아들이면서도 경도(傾倒)되지 않고, 조선의 주체성과 독창성 을 지닌 문화를 이룩할 수 있었다. 세종대에 중국문화의 모방이 아닌 조선 특유의 민족문화가 꽃피울 수 있었던 것은 그와 같은 창의적 리더십에서 발휘될 수 있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시호는 장헌영문예무인 성명효대 왕(莊憲英文睿武仁聖明孝大王)이고, 묘호는 세종(世宗)이며, 능호는 영릉으로 경기도 여주군 능서면 왕대리에 있다. 이명 : 자 원정(元正), 이름 도(祹) 본관 : 전주(全州) 시호 : 장헌영문예무인성명효대왕 (莊憲英文睿武仁聖明孝大王) 시대 : 조선시대 활동분야 : 정치 가족관계 : 아버지 태종(太宗), 어머니 원경왕후 (元敬王后), 왕비 소헌왕후(昭憲王后) 1397. 조선 태종과 원경왕후의 셋째아들로 한양에서 출생 1413(태종13). 대군이 됨 1418. 왕세자에 책봉 (22세 나이로 왕위에 즉위) 1450. 2. 17. 영응대군 집 별채에서 승하 재위기간 : 1418년 ~ 1450년(조성왕조 제 4대 왕) 인물소개 세종 가계도 >> 제5대 문종 수양대군(제7대 세조) 안평대군 임영대군 광평대군 금성대군 평원대군 영응대군 정소공주 정의공주 화의군 계양군 의창군 밀성군 익현군 영해군 담양군 한남군 수춘군 영풍군 정안옹주 정현옹주 소현왕후 심씨 영빈 강씨 신빈 김씨 혜빈 양씨 숙원 이씨 상침 송씨 태종 제4대 세종 부인 : 6명 자녀 : 18남 4녀 능 : 영릉 원경왕후 민씨 16 기술인문융합 창의형 인재 / Creative Leadership 실용적인 창조를 추구한 창조적 리더/ 세/ 종/ 대/ 왕/ 17
  • 1419(세종 원, 23세) 왜구의 소굴인 대마도(對馬島征伐)를 정벌 대마도 원정은 일반적으로 1419년(세종 1) 6월에 이종무(李從茂)를 삼군도체찰사( 三軍都體察使)로 임명하여 정벌한 것을 말하지만, 이보다 앞서 고려 창왕(昌王) 때 와 조선 태조(太祖) 때 정벌한 일 까지도 포함된다. 왜구는 약 70년간 우리나라 연 안 각지에 침입하였으며, 특히 고려 말의 약 40년간은 왜구의 창궐로 인해 그 피 해가 극심하였다. 1420(세종 2, 24세) 학문연구기관인 집현전(集賢殿) 설치 집현전은 학문연구기관으로서 제도적으로는 도 서 수장 및 이용, 학문 활동 등의 역할을 담당하였 다. 또한, 많은 학자들을 배출하여 조선왕조 문화 의 기틀을 마련하는데 크게 기여 하였으며, 세조 ~성종 대에 정치적으로 크게 활약한 학자들 가운 데는 대부분이 집현전 출신이었다. 비록 37년이 라는 짧은 기간 동안 존속하였지만, 역사적 의의는 자못 크다. 그러나 단종(端宗) 폐위에 반대하여 집현전 출신의 사육신(死六臣)을 비롯한 많은 인사들이 1456년(세 조 2) 다종 복위를 꾀하 자, 세조(世祖)는 집현전을 폐지하는 한편 소장된 서적 등을 예문관(藝文館)으로 이관시켰다. 세종은 신중하고 인내심과 끈기가 강하고, 좀처럼 화를 내지 않으며 너그럽고 인 자하였다. 화를 내는 경우도 사신 접대, 여진족의 침입 등 국가 대사에 관해서였 고 신하들의 불순종 등에 화를 낸 적은 별로 없다. 두뇌 회전이 빠르고 말솜씨도 뛰어났다. 세종의 화법은 신하들의 말을 일단 수긍 하되 곧이어 자신의 뜻을 주장하는 방식이었다. 신하들이 아무리 자신의 뜻에 반 대하는 말을 한다 할지라도 “경의 말이 매우 옳다.”라고 수긍한 뒤 “경의 말이 비 록 옳다고는 하나......”라고 자신의 주장을 펼쳤다. 날카로운 논변으로 상대방의 허점을 정확하게 찔러서 대응할 수 없게도 말들었다. 특히 기억력이 비상했다. 책을 읽으면 잊어버리지 않고 신하들의 이름이나 가계 를 모두 기억하였다. 또한 모호한 것을 싫어하고 구체적이고 명백한 것, 현실적 이고 실리적인 것을 좋아했다. 일을 추진하는 능력이 뛰어났으며 하고자 하는 일 은 결단을 내려 끝까지 밀고 나가는 과단성과 추진력이 있었다. 뿐만 아니라 세종은 공부벌레였다. 어린 시설부터 낮밤을 가리지 않고 학문에 열 중하였고, 지나친 독서로 몸을 상하면서도 책을 손에서 놓지 않았으며, 심지어 태종이 병석에 누운 그의 건강을 염려하여 책을 모두 빼앗아도 기어코 책을 찾 아내는 책벌레였다. 올바른 정치는 올바르게 아는 데서 비롯된다고 보았고, 올바른 앎은 곧 학문에 심 취하지 않고는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다. 이에 임금이 된 뒤에도 책 읽기를 단 하루 도 등한시하지 않았고 매일같이 경연장에 나가 학자들의 강연을 즐겨 들었고 편 전에서도 재상들과 학문적인 논쟁을 피하지 않았다. 오히려 후원에 조(粟)를 심 어 그 실리를 시험하였다. 세종의 실리주의적인 면이 잘 드러나는 부분이다. 삶을 통해 철저하게 자신의 학 문을 검증해야만 직성이 풀리는 실천적인 이론가였으며, 이론을 현실에 적용하 여 성공적으로 실현시킨 행동주의적 학자였다. 세종의 성품 세종의 주요 업적 ◀ 1860년 영국인 오르 코크가 그린 지도에는 대마도가 대한해협에 속해있다. 18 기술인문융합 창의형 인재 / Creative Leadership 실용적인 창조를 추구한 창조적 리더/ 세/ 종/ 대/ 왕/ 19
  • 1421(세종 3, 25세) 주자를 만들어 인쇄술 개량 세종은 문화 창달을 위해 다양한 서적 편찬 사업을 추진하였으며 이로 인해 과학 과 기술을 중시한 활자 인쇄술과 제자술이 발달하였고, 식자판을 조립하는 방법은 종전보다 두 배 정도의 인쇄 능률을 올리게 되어 당시 하루에 만드는 활자 주조 수 량은 독일의 구텐베르크가 만든 수량의 약 10배에 달하는 3500자 정도에 이르렀다. 세종대왕과 구텐베르크는 친구? 유럽인들은 최소한 100여 년 앞선 우리나라의 금속활자 기술을 알고 있는 것 같 지만, 한편으로는 구텐베르크를 여전히 ‘최초의 활자 개발자’로 보는 시각도 적지 않다. 10여 년 전 ‘구텐베르크에게 보내는 러브레터’라는 이름의 국제 공모전이 열렸을 때, 독일에 유학 중이던 우리나라 학생이 공모에 참가해 대상을 받은 일이 있다. 구 텐베르크가 조선에서 얻어간 지식을 이용해 인쇄기까지 만들었다는 사실을 치하 하고 격려하는 우정 어린 내용이었다. 1423(세종 5, 27세) 세종과 인조대에 법화(法貨)로 주조·유통시킨 금속화폐, 조선통보(朝鮮通寶) 조선 왕조는 초기부터 중앙집권적 지배 체제를 정비하는 과정에서 새로운 화폐제 도를 도입·실시 하고자 하여 1423년 (세종 5)에 이르러 저화의 유통이 사실상 중 단되자 조선은 동전을 주조하여 유통하기로 하였다. 하지만 동전원료의 부족, 동 전주조시설의 미비, 동전주조기술의 미숙 및 기술자의 부족 등 여러 문제로 인해 4년만인 1427년 40만 냥을 주조하는데 그쳤다. 1426(세종 8, 30세) 방화업무(防火業務) 관장을 위한 한성부 소속의 관서 금화도감(禁火都監) 조선 초기 한양 건설 후 화재가 빈발 이를 방지하기 위해 가옥 사 이에 방화 장을 쌓고, 요소에 우물을 파서 방화기구를 설치하였는 데, 이를 총괄하는 관청이 금화도감이다. 관원은 제조(提調) 7인, 사(使) 5인, 부사(副使)·판관(判官) 각각 6인을 두었으며, 1426년 (세종 8) 6월에는 성문도감(城門都監)과 합쳐 수성금화도감(修城 禁火都監)이라 하여 업무 또하 소방·금화와 더불어 도성의 수금 화도감리와 도로·교량의 수리까지 담당하게 하였다. 1429(세종 11 , 33세) 왕명에 의하여 문신인 정초(鄭招)·변효문(卞孝文) 등이 편찬한 농서 농사직설(農事直說) 우리는 중국의 옛 농서에 의존하여 농사를 지었으므로 우리나라 풍토에 맞지 않는 경우가 많아 각 지방의 경험이 많은 농군들에게 땅에 따라 경험한 바를 수집·편찬한 것이 농사 직설이다. 농사직 설은 중요한 중요 곡식류에 국한되고 기술이 간단하나, 우리나라 풍토에 맞는 농법으로 편찬된 책으로는 효시가 되며 그 후 여러 가지 농서 출판의 계기를 만들었다고 볼 수 있다. 1430(세종 12 , 34세) 전국의 관리와 일반 백성 17만 명을 대상으로 한 여론 공법(貢法) 본래 중국 하(夏)나라 때 시행된 것으로 농민 한 사람에게 토지를 50무(畝)씩 지급하고 그 중 10분의 1에 해당하는 5무의 수확량을 세금으로 거준 정액세제를 말하며 우리나라에서는 조선 전기 세 20 기술인문융합 창의형 인재 / Creative Leadership 실용적인 창조를 추구한 창조적 리더/ 세/ 종/ 대/ 왕/ 21
  • 종이 처음으로 토지의 세금을 일정하게 고정시키는 정액세법의 원리를 작용하였다. 이것은 농사의 상황을 10분(10등급)으로 나누 어 손실이 한분(한 등급)이 내려갈 때마다 세금을 감하고, 8분이면 세금을 감면하는 제도를 말한다. 하지만 지방 향리들이 이를 제대 로 측정하지 않아 부자가 세금을 덜 내고 가나한 자는 더 내는 등 의 폐단이 일어나자 세법 개혁의 필요성 증대로 인해 세종은 새로 운 세법을 만들었는데 이것이 공법(貢法)이다. 세종은 ‘공법’이라는 새로운 세법 시안을 백성들에게 찬반 의사를 묻는 국민투표를 3월 5일 ~ 8월 10일까지 무려 5개월간 실시하였 고, 그 결과 당시 인구를 고려하면 노비나 여성을 제외한 17만 명 이 국민투표에 참여하였고, 9만 657명의 찬성과 7만 4148명의 반 대가 집게 되었는데, 이 결과를 지역별로 실록에 기록할 정도로 국가의 역량이 집중된 사업이었다. 1430(세종 12, 34세) 세종실록 악보 아악보 아악보는 세종장헌대왕실록(世宗莊憲大王實錄) 136~147권에 들어 있는 율보(律譜)로 된 악보를 말하며, 조회(朝會)와 제례(祭禮)의 아악보(雅樂譜)·정대업(定大業)·보태평(保太平)·발상(發祥)등 이 실려 있으며 32정간(井間)으로 된 우리나라 최고(最古)의 악보 이다. 시가(時價)를 표시한 유량악보(有量樂譜)의 효시가 되며 세 종실록 악보는 중국에 남아있고 고악보(古樂譜)들과 비교해 보아 도 상당히 발전된 악보임을 알 수 있다. 1431(세종 13, 35세) 조선 제3대 왕 태종의 재위기간을 기록한 태종실록(太宗實錄) 태종실록은 1422년(세종 4) 5월 태종이 죽자 이듬해 12월 춘추관 지관사 변계량(卞季良)과 동지관사 윤회(尹淮)의 건의를 받아들 여 공정왕(정종)과 태종의 실록을 수찬하도록 명하였고, 동부(東 部) 연희방(燕喜坊)에 있는 덕흥사(德興寺)에 사국(실록편찬사무 소)을 개설하여 1424년 3월부터 변계량·윤회·신장(申檣)의 책임 하에 양조(兩朝) 실록 편찬에 착수하였다. 2년 뒤인 1426년 8월에 공정왕실록(정조실록)을 완성하였 고, 태종실록을 편찬하던 중 변계량이 사망하자 편찬 사무소를 의정부 건물로 옮겨 좌의정 황희(黃喜)와 우의정 맹사성(孟思誠)이 그 뒤를 이어 윤회·신장 등과 함께 편찬책임을 맡아 1년 후인 1431년 3월에 완성하였다. 정식이름은 ‘태종공정대왕실록太宗恭定大王實錄)'이며 1418년 8월까지 있었던 17 년 8개월간의 역사적 사실이 연월일순에 의해 편년체(編年體)로 서술되어 36권 16 책으로 구성되었으며 조선시대 다른 왕의 실록과 함께 일괄해 국보 제 51호로 지 정되었다. 1431(세종 13, 35세) 왕명으로 유효통 (兪孝通)·노중례(盧重禮)·박윤덕( 朴允德) 등이 간행한 의약서 향약채 취월령(鄕藥採取月令) 세종 때 전국적으로 향약의 분포를 조사하고 채취·수납 체제를 정비하 는 과정에서 편찬한 책으로 향약채취 ▼ 향약채취월령 본문 22 기술인문융합 창의형 인재 / Creative Leadership 실용적인 창조를 추구한 창조적 리더/ 세/ 종/ 대/ 왕/ 23
  • 의 편리를 도모하기 위해 만들어진 책이며, 발문에 따르면 토산약재 수백 종을 검토·연구하여 그 향명을 기입하고 맛과 약성, 춘추 채취의 조만(早晩), 음양건폭(陰陽乾暴) 선악 등을 밝혀 편찬한 것 이라 한다. 향약채취월령은 향약집성방(鄕藥集成方)에 앞서 편찬한 책으로 이후 독자적인 향약본초 학 수립의 토대가 되었지만, 향약채취월령의 원본은 전해지지 않고 일본에 전래된 필사본만 전해지 며 현재 일본 소장본을 필사한 책이 규장각에 소장되어 있다. 1432(세종 14, 36세) 조선왕조 최초의 지리서 신찬팔도지리지(新撰八道地理志) 1424년(세종 6) 대제학 변계량(卞季良)이 공적자료(公的資料)의 조사에 착수한 데서 비롯하여 편찬 하게 되었다. 조정에서 정해준 양식에 따라 각 도의 주부군현(州府郡縣)의 연혁과 변천, 도내(道內) 의 인구 및 호구 수 등에 걸쳐 상당히 자세한 12개 항목에 이르는 내용으로 1426년에는 각 도에서 자 료의 편찬을 끝내어 춘추관에 보낸 후 춘추관에서는 받은 자료를 토대로 맹사성(孟思誠)·권진(權 軫)·윤회(尹淮) 등이 검토하여 ‘신찬 팔도지리지’를 편찬하였다. 1433(세종15, 37세) 압록강 중류 지대의 여진족 정벌 파저강 야인정벌(婆猪江野人征伐) 파저강(동가강) 일대에 걸쳐 사는 야인(여진인)들은 원말명초(元末明初)의 혼란기를 이용해 조선의 강계·여연 등지를 자주 침입하여 인구·우마·재산 등을 살상 약탈하였기 때문에 세종은 정벌군 의 총사령관에 최윤덕(崔閏德)을 임명하고 평안도의 마보정군(馬步正軍) 1만 명과 황해도 군마5,000 필을 징발해 총 2만 명의 군대를 1433년 4월 10일 강계 부에서 7대로 분군(分軍)해 정벌을 단행하였 다. 이 정벌에서 생포된 여진인은 모두 480명, 찬수된 자는 모두 178명에 달하였으며 그밖에 우마 177필을 노획함으로써 조선은 태종 이래 북진 정책의 일환으로 추진하였던 압록강유역을 개척하고 여연·자성·무창·우예 등 4군을 설치하기에 이르렀다. 1433(세종15, 37세) 해와 달·오행성의 위치 측정 천문관측기 혼천의(渾天儀) 혼천의는 다른 말로 선기옥형, 혼의, 혼의기라고도 하며, 고대 중국의 우주관이던 혼천설에 기초 를 두어 BC 2세기경 중국에서 처음으로 만들었는데 우리나라에서는 삼국시대 후기에서 통일신라 시대와 고려 시대에 만들어 사용한 것으로 추론된다. 기록상으로 는 1433년(세종 15) 정초(鄭招)·정인지 (鄭麟趾)등이 고전을 조 사하고 이천(李蕆)·장영실(蔣英實) 등이 제작을 감독하여 천문 학의 기본적인 기구로서 조선시대 천문역법(天文曆法)의 표준시 계와 같은 구실을 하게 되어 1657년(효종 8)에는 최유지(崔攸之), 1669년(현종10)에는 이민철(李敏哲)과 송이영(宋以穎)이 각각 만 들었다. 이중 송이영의 것은 서양식 자명종의 원리와 특징을 잘 살펴 추(錘)를 시계장치의 동력으로 이용한 것으로 일종의 천문 시계 기능을 하고 있다. 1433(세종15, 37세) 향약에 관한 의약서(醫藥書) 향약집성방(鄕藥集成方) 세종이 우리나라 사람의 질병을 치료하는 데에는 우리나라 풍토 에 적합하고 우리나라에서 생산되는 약재가 더 효과적일 것이라 는 병과 약에 대한 의토성(宜土性)을 강조하여 의약제민(濟民)에 대한 자주적 방책을 세우고자 향약 방을 종합 수집한 ‘향약집성 방’을 편집하게 한 것이 향약집성방이다. 향약집성방에 의해 우리 의 의약적 지식이 어느 정도 학술적 체계를 가지게 되었을 뿐 아 니라 향약 아래에 고유의 향명을 뭍인 것은 우리 고전 언어 연구 에도 중요한 가치가 있으며 향약 집성방은 대한민국 보물 제 1178 호로 지정되었다. 1434(세종16, 38세) 자동시보장치를 장착한 물시계 자격루(自擊漏) 다른 말로는 가격궁루(自擊宮漏)라고도 하며 자동으로 시간 마다 종이 울리도록 한 국가 표준시계이다. 장영실(蔣英實)·이천(李 蕆)·김조(金銚) 등이 처음으로 물시계를 만들었는데 시(時)·경 (更)·점(點)에 따라서 자동적으로 종·북·징을 쳐서 시보를 알 리도록 되어 있으며 하루 종일 소리로 시간을 알려주는 시계 장 치였다. 24 기술인문융합 창의형 인재 / Creative Leadership 실용적인 창조를 추구한 창조적 리더/ 세/ 종/ 대/ 왕/ 25
  • 1434(세종16, 38세) 삼강(忠-孝-烈)에 뛰어난 사람의 행적을 모아 간행한 책 삼강행실도(三綱行實圖) 1428년 진주(晉州)에 사는 김화(金禾)가 아버지를 살해한 사건에 대하여 강상죄(綱常罪 : 사람이 지켜야 할 도리에 어긋난 죄)로 엄 벌하자는 주장이 논의되었는데, 세종의 엄벌에 앞서 세상에 효행 (孝行)의 풍습을 널리 알릴 수 있는 서적을 간행하자는 왕명에 따 라 집현전 부제학(副提學) 설순(偰循) 등이 조선과 중국의 서적에 서 군신(君臣)·부자(父子)·부부(夫婦) 등 3강(三綱)의 모범이 될 만한 충신·효자·열녀를 각각 35명씩 모두 105명을 뽑아 그 행 적을 그림과 글로 칭송하였는데 내용은 삼강행실효자도(三綱行 實孝子圖)·삼강행실충신도(三綱行實忠臣圖)·삼강행실열녀도( 三綱行實烈女圖)의 3부작으로 이루어져있다. 1434(세종16, 38세) 여진족을 막기 위해 두만강 하류에 설치한 국방상의 요충지 6개의 진, 육진(六鎭) 대륙에서 원·명 교체기 당시 고려 공민왕이 북진정책을 추진한 바 태조 이성계(李成桂)의 뜻을 이어받아 세종이 6진 개척이라 는 위업을 달성하여 비로서 우리 영토가 두만강으로 확장되었다. 1434(세종16, 38세) 갑인년에 주자소(鑄字所)에서 만든 동활자, 갑인자(甲寅字) 갑인자는 경자자(庚子字)의 자체가 가늘고 빽빽하여 보기 어려워 지자 이를 보완하기 위해 왕명으로 주조된 활자를 말하며 중추원 지사 이천(李蕆)·직제학 김돈(金墩)·직전 김빈(金鑌)·호군 장 영실(蔣英實) 등이 주조하였다. 갑인자는 자체가 해정(楷正:글씨체가 바르고 똑똑함)하여 진( 晉)나라의 위부인자체(衛夫人字體)와 비슷하여 ‘위부인자’라고도 일컬으며, 갑인자에 이르러 처음으로 한글 활자가 마들어져 사용 되었다고 한다. 세종의 갑인자는 처음 만들어진 ‘초주갑인자’라고 하며 조선시대 활자의 기본이 되었다. 1434(세종16, 38세) 한국 최초의 공중시계 앙부일구(仰釜日晷) 초기에 장영실, 이천, 김조 등이 제작에 참여하였다. 앙부일구는 반구형의 대접 모양에 네 발이 발려 있으며, 동쪽에서 뜬 해가 서 쪽으로 질 때 생기는 그림자가 시각선에 비춘 것을 보아 시간을 알 수 있고, 연중 해의 고도고 달라지기 때문에 계절선에 비추는 그림자 길이를 보고 절기를 확인할 수 있다. 앙부일구는 과학· 역사·예술적 가치를 인정받아 대한민국 보물(제 845호, 제 852 호)로 지정되었다. 1438(세종20, 42세) 낮과 밤의 시간을 재는 의기(儀器), 일성정시의(日星定時儀) 장영실 등이 원경의 의기를 세 겹의 원으로 갈라, 맨 가의 원에는 주천분도환, 가운데 원에는 일구백각환, 맨 안쪽에는 성구백각환 을 배치하여 만든 지름 68cm, 구리소재의 4개의 일시정시를 만춘 전, 서운관, 평안도와 함경도의 병영에 두었다. 주천분도환은 매도를 4분으로 나누어 주천도를 새겨 전체의 공전 을 쟀으며, 그 안의 일구와 성구의 백각환은 매각을 6분으로 하여 백각을 새겨 일구는 낮, 성구는 밤의 시간을 재도록 하였다. 이 밖 에 ‘소정시의’라는 휴대용 일성정시의도 만들었다. 1441(세종23, 45세) 역대의 사적 중 귀감이 될 사실을 엮은 책 치평요람(治平要覽) 세종은 정치에 있어 역사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우리나라와 중 26 기술인문융합 창의형 인재 / Creative Leadership 실용적인 창조를 추구한 창조적 리더/ 세/ 종/ 대/ 왕/ 27
  • 국의 역대 사적 중에서 후대의 정치인들이 쉽게 볼 수 있도 록 ‘치평요람’편찬 을 명하여 정인지 등 집현전 학자들이 중국 주(周편)나라에서부터 원나라까지 의 역사와 우리나라 기자조선으로부터 고려에 이르기까지의 역사를 간략하게 150권으로 편찬하였다. 1441(세종23, 45세) 우량 측정용 관측 장비 측우기(測雨器) 세종은 홍수에 의한 피해를 막기 위해 우량 측정에 의한 기상현상 파악을 기도 하여 비가 온 뒤 빗물이 땅속으로 스며들어 젖은 흙의 깊이, 우택을 재어보도록 하였지만 비가 오기 전의 건조한 토지 또는 습한지에 따라 같은 정도의 비가 왔 는데도 우택은 같지 않았으며, 실제로 측정하는 일에도 어려움이 있어 우택의 제도가 폐지되면서 측우기를 발명하였다. 측우기를 발명하여 관상감(觀象監) 과 각 도의 감영(監營)에 비치하고 우량을 측정하도록 하였으며, 측우기는 갈릴 레오(Galileo,G.)의 온도계 발명(1592)이나 토리첼리(Torricelli,E.)의 수은기압계 발명(1643)보다 훨씬 앞선 세계 최초의 기상관측 장비였다. 1442(세종24, 46세) 조선 초기 세종의 교지를 받아 김종서, 정인지 등이 만든 고려시대의 역사책 고려사(高麗史) 고려의 역사를 편찬하기 위한 시도는 고려 말부터 있었으나 완성하지 못하 고, 조선이 건국되자 태조 원년(1392) 조준(趙浚)·정도전(鄭道傳)·정총(鄭 摠) 등 의해 시작되었다. 1395년 편년체(編年體)로 서술된 37권의 ;고려국사‘, 1438~1442년 사이 신개(申槩)·권제(權踶) 등에 의하여 ’고려사전문(高麗史全 文)‘이 완성되어 148년 주자소에서 인출하였지만 교정과정에서 역사기술이 공 정하지 못하다는 문제점이 제기되어 반포가 중지되었다. 그 후 세종은 149년 우찬성 김종서(金宗瑞), 이조판서 정인지(鄭麟趾), 호조참판 이선제(李先齊) 등 에게 개찬을 명하여 1451년(문종 1) 세가(世家) 46권, 지(志) 39권, 연표 2권, 열 전 50권, 목록 2권 등 총 139권의 ‘고려사’가 완성되었지만 바로 인쇄되지 못하 고 1454년(단종2) 10월 정인지의 이름으로 인쇄, 반포되었다. 1443(세종25, 47세) 백성을 가르치는 바른 소리 훈민정음(訓民正音) 세종대왕이 1443년 창제한 훈민정음이란 ‘백성을 가르치는 바른 소리’로 정인지·신숙주(申叔舟)· 성삼문(成三問)·최항(崔恒)·박팽년(朴彭年)·강희안(姜希顔)·이개(李塏)·이선로(李善老) 등 집 현전의 8학자가 집필하여 1446년 9월 발간일을 명시하고 있어, 후일 한글날 제정의 바탕이 되었다. 훈민정음을 다른 이름으로 해례(解例)가 붙은‘훈민정음 해례본’또는 ‘훈민정음 원본’이라고도 하며 1962년 12월 23일 국보 제 70호로 지정되었다. 1445(세종27, 49세) 목조(穆祖)에서 태종(太宗)에 이르는 6대의 선조들의 행적을 노래한 서사시·문헌 용비어천가(龍飛御天歌) 1445년 4월에 권제(權制)·정인지(鄭麟趾)·안지(安止) 등 총 10권 5책 125장으로 만들었으며, 현존 하는 판본으로는 모두 목판본이나 초간본은 활자본으로 추정된다. 임진왜란 이전에 간행된 고판본 인 가람문고본·일사문고본과 규장각본이 있으며, 용비어천가는 한글 창제에 의해 이루어진 우리 문화사상 최초의 국문시가로서 신화를 노래한 숭고성을 이어 제왕운기(帝王韻紀)나 역대세년가(歷 代世年歌)등 영사시(詠史詩)의 전통을 이은 것이며 악장의 독자적 형식을 개척한 첫 작품으로 중요 한 가치를 지니고 있다. 28 기술인문융합 창의형 인재 / Creative Leadership 실용적인 창조를 추구한 창조적 리더/ 세/ 종/ 대/ 왕/ 29
  • 年 1397.4.10 /1세 (양력 5.7) 1408. /12세 1412. /16세 1418. /22세 1419. /23세 1420. /24세 1421. /25세 1423. /27세 1426. /30세 1429. /33세 1430. /34세 1431. /35세 1432. /36세 1433. /37세 1434. /38세 1435. /39세 1438. /42세 1441. /45세 1442. /46세 1443. /47세 1445. /49세 1446. /50세 1447. /51세 1448. /52세 1449. /53세 1450.2.17 /54세 (양력3.16) 세종의 일대기 및 업적의 정리 태종의 셋째 아들로 한양에서 출생 충녕군에 책봉, 소헌왕후와 혼인 충년대군에 진봉 왕세자로 책봉 왕위에 오름 대마도 정벌 집현전의 기구 확장, 궁중에 설치 주자를 만들어 인쇄술을 개량 조선통보 화폐제를 창설 금화도감 설치 ‘농사직설’을 지어 전국에 배포 세법을 개혁하기 위한 공법을 만듦 아악보 이룩 ‘태종실록’ 편찬 광화문 설립 ‘향약채취월령‘ 편찬 ‘신찬팔도지리지’ 편찬 서북방면의 4군 설치(최윤덕) 혼천의 제작 의약서 ‘향약집성방’편찬 물시계 ‘자격루’ 만듦 ‘삼강행실도’ 편찬 동북방면의 6진 설치(김종서) 동활자 갑인자 만듦 앙부일구 제작 경복궁 안에 주자소 설치 ‘일성정시의’ 제작 ‘치평요람’ 편찬 우량 측정 관측 장비 ‘측우기’ 설치 ‘고려사’ 편찬 공법의 제정과 실시를 위해 설치한 전제상정소 ‘훈민정음’ 창제 ‘용비어천가’ 지음 훈민정음 반포, 정음청(언문청) 설치 ‘석보상절’ 편찬 ‘월인천강지곡’ 편찬 숭례문 개축 ‘동국정운’ 편찬 궁안에 불당 건립 동북방면의 6진 완성(김종서) 승하 1447(세종29, 51세) 조선 초기 세종이 지은 악장 체의 찬불가(讚佛歌)를 엮어 만든 책 월인천강지곡(月印千江之曲) 왕명에 따라 수양대군이 소헌왕후의 명복을 빌기 위해 석보 상절(釋譜詳節) 을 지어 올리자 세종이 석가의 공덕을 찬송하여 지은 노래로 지은이가 세종 으로 되어 있기는 하나 석보상절의 편찬을 도운 김수온(金守溫)등이 참여했 을 것으로 보이며, 1447년 또는 1450년경 강행 된 것으로 추정된다. 권상에 실린 노래가 모두 194곡으로 전체 590여 곡의 노래가 있었던 것으로 추정되 며, 월인천강지곡은 용비어천가(龍飛御天歌)와 아울러 훈민정음으로 표기 된 한국 초고(最高)의 가사로 종교성과 문학성을 조화·통일시킨 장편 서사 시라 할 수 있다. 1447(세종29, 51세) 서울특별시 중구 남대문로4가에 위치한 조선 초기 한양의 성문 국보 제 1호 숭례문(崇禮門) 1396년(태조 5)에 축조된 서울 도성의 정문으로 1398년 2월에 준공된 후 1447 년(세종 29)에 개수 공사하여 1443년(세종 30)에 개축 되었으며, 1961년부터 1962년 사이 실시된 해체 수리 당시 발견된 상량문에서 1479년에도 대대적 인 주수공사가 있었음을 알 수 있다. 30 기술인문융합 창의형 인재 / Creative Leadership 실용적인 창조를 추구한 창조적 리더/ 세/ 종/ 대/ 왕/ 31
  • 자격루의 비밀 이론적 배경 낮에는 해가 움직이는 것을 보고 시간을 추측했을 것이고, 밤에는 달이나 별이 움직이는 것 을 보고 시간을 가늠했을 것이다. 구름이 잔뜩 끼어 흐린 날이나 비가 오는 날에는 해와 별 의 움직임을 이용해서 시간을 알았다. 시간을 측정하는 방식은 날씨에 매우 큰 영향을 받기 때문에 해와 별이나 달 등을 이용해서 시간을 측정하는 방식을 사용하기가 매우 어려웠다. 그래서 물이 계속 흐르면서 밤이나 낮이나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시간을 항상 알려줄 수 있는 물시계와 같은 국가 표준 시계가 필요했던 것이다. 옛날에는 시간을 측정하기 위해 주로 해시계와 물시계를 이용하였는데, 해시계는 해 그림자 로 태양의 위치를 파악하여 시간을 측정하는 것으로 낮에만 사용할 수 있었고, 물시계는 물 의 증가량 또는 감소량으로 시간을 측정하기 때문에 24시간 작동이 가능 하였다. 또한, 조선 시대 왕의 중요한 임무 가운데 하나는 백성들에게 정확한 시각을 알려 주는 것이었다. 왕은 백성들에게 일어날 시각과 일할 시간, 쉬는 시간 등을 알려주어 일상생활의 리듬을 규제하 고 통제함으로써 사회생활의 질서를 유지하고자 하였다. 따라서 시계는 권위와 질서의 상 징이었고 통치의 수단이었다. 자격루의 탄생배경 세종대왕 시대 최고의 과학자라 할 수 있는 장영실이 만든 자격루는 수압을 조절하는 3단의 수위 조절용 항아리, 낮과 밤을 번갈아 이용하는 두 개의 물받이 통 그리고 종과 북, 징과 같 은 자동 시보장치를 갖춘 물시계로서 당시 동아시아에서는 한 걸음 더 나아간 것이었다. 자 격루가 발명되기 전, 세종대왕은 장영실에게 경점지기(更點之器)라는 물시계를 만들게 하 였는데, 그 구조는 시간이 지날수록 가장 아래에 있는 항아리에 일정하게 물이 공급되도록 한 다음 그 안에 눈금을 매긴 잣대(자 의 종류)를 띄우면 항아리 안의 물이 늘어나는 대로 잣 대가 떠오르는데, 이 잣대의 눈금을 읽어 시각을 알아낸 것이다. 하지만, 밤낮으로 사람이 지키고 있다가 눈금을 읽어야 하는 수정적인 물시계 이므로 매우 불편하였다. 세종은 사람이 눈금을 일일이 읽지 않고도 때가 되면 저절로 시각을 알려주는 물시계를 만들라고 지시하였고, 세종 16년(1434) 장영실은 ‘자동 시보장치’가 달린 물시계를 만들었는데, 그것이 ‘자격루’다. 자격루를 탄생시킨 결정적 이유 자격루 이전에도 물시계는 많았다. 물시계는 유입식과 흡입식이 있는데 유입식은 물이 흘러 가는 양으로 시간을 아는 것이고, 흡입식은 물이 흘러들어오는 양으로 시간을 측정하게 된 다. 자격루는 이러한 흡입식과 유입식 기술이 모두 사용되었고 여기에다 자동적으로 시간을 알려주는 장치까지 더해진 것이다. 이렇게 정확한 시간이 필요했던 것은 궁궐에서 호위병들이 업무교대를 하거나 성문을 여닫 는 데 필요했기 때문이다. 즉 규칙적인 일상생활과 정확한 시간을 알려주는 것이 매우 중요 했기 때문이다. 국가적 필요로 인해 정확한 시계를 만들어 활용하였으며 많은 시간과 비용 을 들여 보다 정확한 시계를 만들기 위해 노력했던 것이다. 자격루의 용도 이 시계는 도성의 성문을 열고 닫는 인정人定(통행금지 시각, 밤 10시경)과 파루罷漏(통금해 제 시각, 새벽4시경), 오정午正(낮 12시)을 알려 주는 데 사용되었을 뿐만 아니라 서울 사람 들에게 아침·점심·저녁때를 알려 주어 생활의 리듬을 잡아 주는 등 조선시대 사람들의 표 준 시계가 되었다. 자격루의 시각을 알려 주는 인형이 치는 종소리와 북소리를 듣고 이를 신 호로 광화문과 종루에서 북과 종을 쳐서 시각을 알렸으며, 이에 따라 궁궐의 문과 서울의 도 성문인 숭례문`崇禮門, 흥인문興仁門, 돈의문`敦義門이열리고닫혔다. 32 기술인문융합 창의형 인재 / Creative Leadership 실용적인 창조를 추구한 창조적 리더/ 세/ 종/ 대/ 왕/ 33
  • 자격루의 작동 원리 세종실록 65권 ‘보루각기‘편을 보면 ‘물받이 통에 물이 고이면 그 위에 떠 있던 잣대가 위로 올라가 정해진 눈금에 닿으면, 그곳에 있는 지렛대 장치를 건드려 그 끝에 있는 쇠구슬을 구 멍 속에 굴려 넣어 주는데, 이 쇠구슬은 다른 쇠구슬을 굴려주어 차례로 미리 꾸며놓은 여 러 공이를 건드려 종, 징, 북을 울린다.’라고 적혀있다. 자격루는 시간을 측정하는 물시계(물 항아리 부분), 물시계로 측정한 시간을 종, 북, 징소리로 바꿔주는 시보장치(종, 북, 징을 치 는 인형 부분), 물시계와 시보장치를 연결해주는 방목(方木)이라는 신호발생장치(2개의 네 모기둥/잣대)로 구성되어 있다. 첫째, 큰 항아리의 물을 일정속도로 배수관과 작은 항아리를 거쳐 긴 원통형 항아리 안으로 흘려보낸다. 둘째, 원통형 항아리 속의 잣대가 위로 떠오르면서 항아리 벽에 놓인 작은 구슬을 건드리면 오른쪽 시보장치 상자로 굴러가 큰 구슬을 건드린다. 셋째, 큰 구슬이 상자내부에서 움직이면서 상자 위쪽의 인형이 종, 북, 징을 울린다. 2시간마다 울리는 종소리는 자시, 축시, 인시 등의 12지시를 알리고 북소리는 밤 시간 인 1경, 2경 등 의 5경을 알린다. 자격루의 핵심원리 자격루 작동 원리의 핵심은 물의 흐름을 동력원으로 사용하여 이 힘이 시간이 지나도 줄어 들지 않도록 하는 데 있다. 즉 물의 낙차를 이용해 생긴 부력으로 구슬이 움직이면서 계속적 으로 위치에너지를 운동에너지로 전환시켜 시간을 알려주었던 것이다. 그러나 사람의 손길 이 필요한 것이 바로 그것. 잣대에서 떨어진 구슬을 다시 원위치로 돌려놓는 일, 그리고 물 을 갈아주는 일은 모두 사람이 해야 했음은 자명한 일이었다. 물이 일정하게 흐르는 이유 자격루는 물 항아리의 크기에 따라 대파수호와 중파수호, 소파수호로 구분되는데, 이 세 곳 의 파수호를 거쳐서 나온 물이 수수호(긴 원통형으로 생긴 2개의 물받이통)에 일정하게 채 워지면서 수수호에 있는 잣대가 위로 떠오르는 구조로 되어 있다. 바로 부력의 원리를 이용 한 것이다. 자격루가 시계로서의 역할을 하기 위해서는 수수호에 일정한 물이 채워지게 하 는 핵심 역할은 소파수호이다. 대파수호에서 물이 직접 수수호로 들어가게 되면 통에 채워 지는 물의 높이가 일정하게 변하지 않는다. 이는 수압이 물의 높이에 따라 다르기 때문인 것 이다. 대파수호와 수수호 사이에 소파수호를 두어 소파수호에 늘 물이 가득 차게 하여 물의 높이를 일정하게 만드는데, 이렇게 해서 수수호에 물이 일정한 간격으로 채워지는 것이다. 사람의 손이 가지 않게 하기 위해 만든 자격루지만 잣대에서 떨어진 구슬을 다시 원위치로 돌려놓는 일과 물을 갈아주는 일은 모두 사람이 해야 했다. 하지만, 자격루는 우리 역사에 길이 남을 위대한 발명품이며 조선의 물시계를 기계시계로 발전하게 하는 기술적 향상에 크게 기여하였다. 자동 시보장치의 비밀 파수호에서 떨어진 물이 수수호로 흘러들어 가면서 수수호에 꽂힌 잣대가 점점 올라가게 되 는데 잣대가 어느 정도 높이에 이르게 되면 잣대 안에 있는 구리판 구멍의 여닫이 기구가 뒤 로 젖혀지게 된다. 그 구멍으로 잣대의 작은 구슬이 자동 시보장치와 연결된 구리통으로 굴 러 들어가게 되는 것이다. 이 구리통으로 굴러 들어온 작은 구슬이 밑으로 떨어지면 그 아 래에 있던 숟가락 받침 모양의 기구가 이 구슬을 받게 된다. 즉 작은 구슬이 숟가락에 떨어 34 기술인문융합 창의형 인재 / Creative Leadership 실용적인 창조를 추구한 창조적 리더/ 세/ 종/ 대/ 왕/ 35
  • 1962년 12월 20일 국보 제 70호로 지정된 훈민정음은 세계에서 유일하게 신비로운 문자 라고 알려져 있다. 지면 그 구슬이 떨어질 때의 에너지 때문에 숟가락 손잡이 부분이 뒤로 젖혀지게 되고 차례 로 큰 구슬이 굴러 떨어지는 구조로 되어 있는 것이다. 이러한 움직임을 반복하면서 큰 구 슬은 2층에 세워져 있는 3개의 인형의 팔뚝을 건드리게 되고 자동적으로 3개의 인형의 팔이 움직이면서 종, 북, 징을 치게 된다. 쉽게 말해 우리 주변에 있는 뻐꾸기시계를 생각해 보면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자격루의 가치-자격루의 과학성 1. 뛰어난 금속 주조술 자격루는 오래 쓸 수 없는 나무나 가마에서 구울 때 변형이 올 수 있는 도자기, 옹기 등으로 는 만들 수 없다. 때문에 자격루를 구성하는 물통, 쇠구슬, 시패, 부전, 등은 모두 쇠이다. 자 격루의 여러 부품들은 표면이 매끈하고 정확한 치수로 만들어야 했는데, 이것은 당시 우리 나라의 금속 주조술의 높은 수준을 보여 준다. 2. 시대를 앞선 정밀 기술 자격루는 불어나는 물의 높이를 측정하여 하루 12시간과 밤 시간인 오경(五更)을 자동으로 알려 주는 자동화 시스템이다. 물시계와 자동 시보 장치(자동으로 시각을 알려주는 장치)를 하나로 합친 기술이 오늘날과 비교해도 손색이 없을 정도로 정밀하다. 자격루의 기술적 가치 자격루의 시간을 천체를 관측하여 얻은 시간과 비교해 보면 털끝만큼도 틀리지 않았다고 한 다. 이것은 나무사람이 종, 북, 징을 쳐서 각각 시(時), 경(更), 점(鮎)을 알리고 시를 알리는 팻말을 들고 시의 경과를 알려주는 자동보시장치가 붙은 시계였다. 궁궐과 도성에서의 정사 (政事)와 일상생활은 모두 이 시계가 알려주는 시각에 따랐으며, 시각을 분(分)단위까지 잘 게 쪼개어 정확성을 기하고 천문역구에도 활용했다. 자격루의 역사적 가치 보루각자격루는 창경궁에서 조선 말기까지 쓰였으며 유물은 1938년에 현재 보관중인 덕수 궁 광명문안으로 옮겨 왔으며 1985년 8월 3일 국보 229호로 지정되어 오늘날에 이르고 있다. 이 유물은 현재 우리가 쓰고 있는 만 원권 지폐의 도안으로 올라 있으며 우리의 과학 문화재 이자 세계적으로도 몇 개 남지 않은 귀중한 유물이다. 한글창제의 비밀 훈민정음의 창제동기와 목적 말과 글이 달랐던 우리나라는 일찍부터 한자를 문자로 사용해 왔다. 입으로는 ‘어머니’, ‘엄 마’라고 하면서 글로는 ‘母’라 쓰고, ‘모’라 읽었다. 이런 불편함을 덜기 위해 이두 문자를 사 용하기도 했지만, 이것으로 우리가 사용하는 말을 문자로 자유롭게 표현할 수는 없었다. 더 욱이 농민의 사회적 지위가 높아지고 사회의식이 성장함에 따라 지배층은 그들과 직접적이 고 공식적인 문자를 통해 의사를 소통할 필요성이 커지게 되었다. 그렇다고 일반 백성들에 게 어려운 한자를 익히고 사용하라고 강요할 수는 없었다. 또한, 주위의 민족들은 저마다 사용하는 자기 나라 글자를 가지고 있지만, 우리는 한문글 자를 빌려 사용하였음에도 우리말을 적는 것은 여간 어색한 일이 아니었다. 정인지의 표현 을 빌리면 “우리말을 적는 방법이었던 ‘이두글(吏讀文)’은 잘 통하지 않고, 품위와 체계가 없 어 상고할 길이 없다.”라는 것을 보아 일반백성의 글자 생활은 극도로 빈곤상태에 있었다 는 것을 알 수 있다. 36 기술인문융합 창의형 인재 / Creative Leadership 실용적인 창조를 추구한 창조적 리더/ 세/ 종/ 대/ 왕/ 37
  • 훈민정음의 과학성 한글의 가장 큰 특징은 소리와 글자의 상관관계를 생각해 만든 글자라는 것이다. 즉, 영어 의 'City'는 ‘시티’보다는 ‘시리[Siri]'라고 발음이 되며 ’gentleman'은 통상 '제느먼[ʤénmən]‘으 로 발음된다. 이것은 t라든가 r, n은 같은 어군이라 서로 음이 왔다 갔다 할 수 있다는 것을 뜻하는데, 영어 글자들은 그 생김새에 아무 유사성이 없어 다 따로 외워야 한다는 단점이 있 다. 그러나 세종께서는 이 글자들이 모두 혓소리(설음, 舌音)에 속한다는 것을 아시고 같은 군에 모아두었다. 즉, ‘ㄴ·ㄷ·ㅌ·ㄸ(ㄹ은 반혓소리)’이 글자의 형태들을 유사하게 만든 것 이다. 세계의 언어학자들이 한글에 경탄할 수밖에 없는 것은 바로 이런 과학적 원리에 따라 한글이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ㄱ’은 ‘기역’ 혹은 ‘그’라고 발음할 때 혀뿌리가 목구멍을 막는 모습을 본떠 만든 글자이다. 이것은 다른 글자도 마찬가지다. ‘ㅇ'같은 경우는 목구멍의 모습을 본 뜬 것으로 외울 필요가 없으며, 한 시간 안에 자기 이름을 쓸 수 있다는 것을 보아 배우기 쉽다는 것 을 알 수 있다. 첫소리 글자를 만든 원리 한글이 어째서 이런 모양으로 만들어졌는가에 대하여는 많은 논란이 있어왔으나 해례가 나 타남으로써 그 원리가 밝혀졌다. 그때의 언어학자들은 닿소리(초성)를 내는 자리에 따라 다 섯 가지로 나누었으니, 혓바닥의 뒤쪽을 여린입천장에 붙여 내는 소리를 ‘어금닛소리’라 하 고, 혀끝을 잇몸에 붙여 내는 소리를 ‘혓소리’, 입술에서 나는 소리를 ‘입술소리’, 공기가 이 끝에 닿아 부스러지는 것 같은 느낌을 주는 소리는 ‘잇소리’, 목 안에서 나는 소리는 ‘목소리’ 라 하였다. 이 다섯 가지 소리 가운데서 한 소리씩을 가려, 그 소리를 적는 글자 다섯을 만 들었다. 1. 어금닛소리 - ㄱ, ㅋ, ㆁ 음소들인데, 그 가운데서 / ㄱ 음소를 적는 글자를, 그 소리 낼 때 의 혀의 모양을 본떠 만들었다. 2. 혓소리 - ㄴ, ㄷ, ㅌ 음소들인데, 이 가운데서 / ㄴ 소리를 적는 글자를, 역시 같은 원리를 따라 만들었다. 3. 입술소리 - ㅁ, ㅂ, ㅍ 인데, 그 가운데서 / ㅁ 소리를 적는 글자를, 입술 모양을 본떠 만 들었다. 4. 잇소리 - ㅅ, ㅈ, ㅊ 음소들인데, 그 가운데서 / ㅅ 소리 적는 글자를, 이의 줄을 본떠 만 들었다. 5. 목소리 - ㅇ, ㆆ , ㅎ 음소들인데, ‘ㅇ’은 소리 없는 글자이나 목구멍에서 나는 어떠한 소리 가 있는 것으로 생각하였다. 이리하여 ‘ㄱ ㄴ ㅁ ㅅ ㅇ ‘의 다섯 글자를 만들어내고, 다음으로 는 소리가 세어짐에 따라, 이 다섯 글자에 다가 획을 하나씩 더하여 아홉 글자를 만들었다. 가운뎃소리 글자를 만든 원리 닿소리는 모두 입안의 어떠한 자리에서 특별한 막음이 있으므로, 그 막음의 방법과 자리를 지적하기는 그리 어렵지 않다. 그러므로 그들은 그러한 음성기관의 움직임을 파악하고서 닿 소리(첫소리) 글자를 만들었다. 홀소리(가운뎃소리, 중성)는 입안에 아무런 막음이 없고, 혀 의 모양에 따라 여러 가지 홀소리가 나누어지는데, 이것을 그려내기는 여간 어려운 일이 아 니었다. 현대음성학에서 혀의 이러한 모양을 잡을 수 있는 것은 x-선 사진에 의해서이므로 한글을 만듦에 있어서 닿소리 글자보다 홀소리 글자를 만드는 것에 더 큰 힘이 들었다는 것 을 짐작 할 수 있다. 소리의 높낮이 지금 우리말의 표준발음은 소리의 길이만 있고, 높낮이는 없다. 그러나 그 당시에는 각 낱말 의 각 음절은 높은·낮음·높아감의 세 가지 높낮이를 일정하게 가지고 있었는데, 낮은 소 리는 평성(平聲)으로 점을 찍지 않고, 높은 소리는 거성(去聲)으로 글자의 왼쪽에 점을 하나 ▲글의 자음과 모음을 쓰는 법 38 기술인문융합 창의형 인재 / Creative Leadership 실용적인 창조를 추구한 창조적 리더/ 세/ 종/ 대/ 왕/ 39
  • 찍고, 또 낮다가 높아지는 소리는 상성(上聲)으로 점을 둘 찍도록 하였다. [예: 활(平),·갈(거), : 돌(상)] 글자와 소리의 형이상학 한글을 만든 이들은 사람의 소리나 글자까지도 단순한 물질적인 현상으로 보지 않고, 그 뒤 에 보이지 않는 원리가 있다고 보았다. 그 원리는 음양과 오행(五行)을 말한다. 그리하여 사 람의 말소리가 음양과 오행에 ‘근본을 두고 있고, 우주의 모든 현상이 또한 그 원리에 따라 운행되는 것이므로, 소리와 계절의 운행, 소리와 음악의 사이에 일치점이 있음은 당연한 일 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그리하여 소리를 오행에다 결부시킨 이유 중 하나를 설명하면, 한 방 면으로는 그 소리가 나는 자리, 곧 목구멍·어금니·혀·이·입술 자체의 성질이 각각 물· 나무·불·쇠·흙과 비슷하다는 것인데, 그 이유는 목구멍은 깊고 윤택하고, 어금니는 착 찹 하고 길고, 혀는 날카롭고 잘 움직이고, 이는 단단하고 부러지고, 입술은 모나고 합해져 있기 때문이라 하였다. 발성 기관의 모습을 본 따 만든 자음 한글의 자음에서 기본 되는 것은 ‘ㄱ·ㄴ·ㅁ·ㅅ·ㅇ’인데 국어 교육이 잘못되어서 그런 지 이것을 아는 한국인은 별로 없다. 자음은 이 다섯 글자를 기본으로 획을 하나 더하거나 글자를 포개는 것으로 다른 글자를 만들었는데, ‘ㄱ·ㅋ·ㄲ’이다. 그래서 앞 글자 다섯 개 만 알면 다음 글자는 그냥 따라온다. 이것은 다른 글자도 마찬가지이며, 그런 까닭에 배우 기가 아주 쉬운 것이다. 훈민정음의 역사적 의의 역사적 의의 인류의 역사는 언어의 기록으로부터 시작된다. 훈민정음이 만들어지기 전의 우리나라에도 언어의 기록이 없지 않았다. <삼국지>나 <삼국유사>는 말할 것도 없으며, 많은 비석문들과 개인의 문집에 이르기까지 많은 기록들이 있다. 한 자를 빌려 우리말을 적어놓은 기록들도 있지만, 이러한 기록은 우리 한아버지(할아버지)들의 살아온 모습을 전해주기에는 부족하 였다. 언어는 그것을 모국말로 하여 자라는 겨레의 생각하는 방식을 좌우하는 신비한 힘을 가졌다. 그런데 한문은 그 어휘체계나 문법체계에 있어서 중국말이지 우리말은 아니다. 그 러므로 우리 한아버지들에 대한 한문으로 된 기록은 바로 우리들의 눈에 비친 그들의 모습 이 아니라, 중국 사람의 눈에 비친 그들의 모습을 그린 것이나 다름없다. 우리말을 한자로 적은 기록들은 그 양이 아주 적을 뿐 아니라, 그것마저 기록 당시의 언어를 복원하기는 무척 어려운 형편이다. 그러므로 훈민정음 창제 이후부터 우리 할아버지들의 기 록이 우리 눈에 비치게 된다. 한글날 일본침략자들이 이 땅을 짓밟고 있었을 때 우리말과 우리글을 쓰는 것을 총칼로 누르는 ‘어 문말살정책’을 썼다. 그러므로 그때의 우리 겨레는 우리말 쓰는 것이 민족정신을 가다듬는 한 방편이었고, 우리글을 쓰는 것을 일종의 독립운동으로 여겼던 것이다. ▼훈민정음 어제 서문, 백성을 위하여 훈민정음을 창제한 세종의 뜻 40 기술인문융합 창의형 인재 / Creative Leadership 실용적인 창조를 추구한 창조적 리더/ 세/ 종/ 대/ 왕/ 41
  • 창업을 완성한 리더 세종대왕 조선 왕조의 창업을 완성한 임금은 누구인가? 세종 시대는 흔히 조선왕조 수성(守成)의 시기’라 일컫는다. 그것은 태조·태종 대의 혁명과 건국이 라는 시기를 거쳐 세종대에 이르러 정치나 사회운영이 안정화되었던 점을 두고 해석하는 관점이다. 그렇지만 창업의 개념을 혁명과 건국이라는 정치적 틀에만 한정시키지 않고 고려와의 차별성을 강 조하였던 조선 왕조의 정체성 정립이라는 폭넓은 관점에서 살피면, 정치·경제·사회·문화 등 전 반에 걸쳐 조선 왕조 성립의 창업은 비로소 세종대에 이르러 완성되었다고 볼 수 있다. 세종 스스 로가 자신을 ‘수성’의 임금으로 자처하고, 그것을 소명으로 삼았던 것은 조상에 대한 겸손과 예의에 의한 것이었다. 선대가 이루어 놓은 일을 이어 지키는 ‘수성’의 군주에 머물지 않은 조선 왕조 창업 의 진정한 완성자였다고 할 수 있다. 세종의 성공 리더십의 2가지 비밀? ① 현능한 사람에게 일을 맡기는 ‘인재경영’ ② 과거의 경험을 토대로 국사(나랏일)를 기획하는 ‘지식경영’ 『어진 사람에게 일을 맡기고 재능 있는 이를 부리며, 나랏일을 도모할 때는 반드시 옛 것을 스승 삼 았으며, 제도를 밝게 구비해 놓았습니다. 그리하여 그물을 들면 그물눈이 저절로 열렸습니다.』세종 실록 32/2/22. 이와 같이 세종실록을 보면 세종 리더십의 2가지 비밀을 알 수 있다. 첫째로, ‘어진 사람에게 일을 맡기고 재능 있는 이를 부리며’ 부분에서는 현명하고 능력 있는 자에 게 일을 맡기는 ‘인재경영’을 하였다는 것과, ‘나랏일을 도모할 때는 반드시 옛것을 스승 삼았으며, 제도를 밝게 구비해 놓았습니다.’ 부분을 통해서는 과거의 경험을 토대로 나랏일을 기획하는 ‘지식경영’을 하였음을 확인할 수 있다. 현능한 인재들이 과거의 경험을 바탕으로 스스로 일할 수 있도록 하는 제도화야 말로, ‘그물을 들 면 그물눈이 저절로 열리는’ 국가 경영의 핵심임을 말해주고 있는 부분이다. 인재경영의 대표적인 일화로 ‘박연’을 들 수 있다. 세종이 대제학과 이조판서를 지낸 조부와 부친의 영향으로 문과시험을 준비하던 박연과 대화하던 중, ‘조선의 음악을 세계 최고의 수준으로 끌어 올 리고 싶은’ 그의 비전을 발견했다. 그리고 그에게 오로지 음악을 맡아 주관하게 하였다. 또한 세종은 장영실의 비전을 발견하고, 그 비전에 힘을 실어주곤 했다. 노비신분의 장영실이 자신 의 탁월한 손재주로 “만대에 이어 전할 기물(후손에게도 널리 전달될 발명품)”을 만들고 싶어 하는 것을 알게 된 세종은, 그에게 오로지 “그 일을 하라”라고 지시하여, 역사에 길이 빛나는 성과를 내 게 하였다. 1434년(세종16)에 자격루가 완성되었을 때도, “비록 나의 가르침을 받아서 하였지만, 만 약 이 사람이 아니었다면 도저히 만들어 내지 못했을 것” 이라며 장영실에게 그 공을 돌렸다. 세종 은 이처럼 인재들의 비전을 발견해주고, 그를 실현시키도록 도와준 진정한 리더였다. 지식경영의 대표적인 사례로 까다로운 문제가 생길 때면 세종은 늘 집현전 학사를 부르곤 했다. 세 종에게 있어서 집현전은 일종의 ‘인터넷 지식검색’ 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집현전의 기능은 ‘지식검 색’에 그치지 않았다. 화폐, 소금 제도의 연구, 외교용 문장짓기와 특정 정책의 근거 제시, 그리고 국가에 필요한 서적 간행 등의 일을 하는 세종 정책의 ‘브레인 역할’까지 한 것이다. 세종은 정책결정을 신중히 하려면 ‘역사’를 알아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그는 오늘날 사람들이 고민 하고 있는 문제들과, 구상하고 있는 정책들은 대부분 역사 속에 들어 있다고 보았기 때문에, 제 때 적절한 사례를 찾기만 하면 훨씬 더 지혜롭게 판단하고 효과적으로 정책을 추진할 수 있다고 생각 하였다. 따라서 ‘세종실록(15/02/06)’에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무릇 즉시 거행할 일을 사람들이 혹 기억하지 못하여 시기를 잃는 경우가 있다. 저번에 내가 집현 전으로 하여금 날마다 행할 일을 뽑아 적게 하였으니,그대들은 옛 문헌을 자세히 참고하여 빨리 발 췌하여 아뢰라.』 42 기술인문융합 창의형 인재 / Creative Leadership 실용적인 창조를 추구한 창조적 리더/ 세/ 종/ 대/ 왕/ 43
  • 세종이 보기엔, 역사란 ‘정치적 임상실험의 축적’이었던 것이다. 따라서 과거의 잘잘못을 알지 못하 면 현재의 문제에 관하여 현명한 판단이나 지혜로운 결정은 어렵다고 생각하였고, 중요한 결정을 내 릴 때 마다, 집현전 학사들에게 “옛 제도를 상고하여 아뢰라” 라고 지시한 것도 바로 그 때문이었다. 세종 리더십의 2가지 비밀인 인재경영, 지식경영 덕분에 세종 시대에 많은 성과들이 탄생하였다. 이는 세종이 황희·허조 등의 충신들과 충분한 의논을 거쳐의사결정을 내린 다음, 김종서·박연· 장영실·최윤덕 등의 인재들에게 일을 믿고 맡겼기 때문이다. 이들은 ‘국가의 일을 자기의 책임으 로 여기며’ 헌신적으로 일하였고, 그 결과 북방영토개척, 한글창제와 같은 굵직굵직한 업적들을 이 뤄낼 수 있었다. 제도화와 관련해서는, ‘오례의’(가례, 빈례, 군례, 흉례, 길례)라는 국가의식의 틀을 정립하였으며, 세제를 개혁하여 ‘전분6등 연분9등의 공법’으로 자리 잡게 한 것도 높게 평가 받고 있 다. 후에 율곡 이이가 ‘우리나라 만년의 운(運)이 세종에게서 처음 그 기틀이 잡혔다.’ 라고 평가한 것은 그런 맥락에서이다. 세종의 창의적 리더십은? 창의적 리더십을 가진 세종대왕 세종의 창의적 리더십은 실질과 실용을 숭상한 바탕에서 발휘되었다. 독서와 지적역량 세종은 독서를 좋아하였으며 여러 제도를 연구하고 세부사항을 규정하기에도 사서를 뒤져 확립해 나갔다. 세종의 개인적인 지적능력 역량은 대단하였다. 세종은 어린 시절부터 엄청난 책을 읽어대던 호학의 군주였다. 세종의 독서는 유학의 경전에 그치 지 않고 역사, 법학, 천문, 음악, 의학의 다방면에서 전문가 이상의 지식을 쌓았다. 경서를 100번씩 이나 읽었으며, 역사서와 기타 다른 책들도 30번씩 읽었다고 한다. 세종은 작은 법규를 만들 때도 그 제도에 대한 역사를 깊게 고찰하고 각각의 장단점을 분석한 뒤 그 단점을 보완하는 방안, 다른 제도 와의 관련성, 현재의 상황을 고려했다. 세종은 뛰어난 기억력을 가졌을 뿐 아니라 사리를 명확히 분별하는 능력을 갖고 있으며 음(音)에 대 해서도 놀라운 역량을 타고났었음을 알 수 있다. 또한 세종은 자기절제와 인내가 몸에 배어 자신을 다스림에 뛰어났다. 평생학습, 평생수양을 실천하고 실용을 위한 학습보다 먼저 긴요한 것이 바로 마음을 공부하는 것 이다. ‘마음공부가 우선되어야 한다.’고 하며 당시 젊은 사대부들에게 ‘어떻게 하면 선비들의 부화한 버릇을 버리게 할까’를 묻기도 했다. 세종은 스스로 엄청난 분량의 공부를 하고, 집현전을 통해 통 합적 지식을 축적해 냈다. 이러한 그의 천재성은 한글의 창제, 아악정비, 역법개정과 과학적 발명의 과정 등에 직접적으로 영 항을 미쳤다. 애민정신 세종이 왕위에 오른 15세기는 창업을 마무리하는 시기였고 국가 경영을 맡은 세종의 경영은 현대적 용어로 해석하자면 경영을 창조의 과정으로 격상시켰다고 할 수 있다. 글을 몰라 답답한 백성들을 위해 애민정책을 펼치고, 자신의 정책을 관철시키기 위해 끊임없는 소통과 논쟁과 연구를 했던 통 치자이다. 그가 했던 ‘임금은 백성을 위하여 존재하며 백성의 하늘은 밥이다. 한명의 백성이라도 하 늘처럼 섬기고 받들어라’라는 말은 헌신적인 세종의 정치 핵심이었다. 또한 그의 의견을 관철시키려 반대자들과 토론 속에 설득과 협상, 투쟁의 와중에 합의와 결정으로 이끌어내는 리더십을 가졌다. 문예감성 세종은 공부를 좋아하며 그림, 글씨, 음악, 원예등을 두루 경험하였다. 남다른 문예감성을 지녀 그간 의 업적을 남길 수 있었던 리더십의 근간이 되었다. 또한 세종의 연회는 외교사신을 위한 자리로 이 어짐에 따라 문화외교의 격을 높이는데 영향을 끼쳤다. 또한 세종이 연회 자리에서 효와 우애를 실천하는‘본’을 보이고, 군신과 스스럼없이 어울려 마음을 얻었으며, 신하들을 격려하여 임금과 나라를 위해 일하는 보람을 누리게 함으로써 ‘열정’과 ‘창조’를 이끌어 냈다. 세종은 ‘연회’를 감성 경영의 방법으로 활용한 것이다. 소통과 인재경영 세종은 신하들과 더불어 토론을 즐기고, 이를 통해 소통의 길을 열어 나갔다. 경연(經筵)이라는 공 식적인 토론의 장을 통해서도 신하들과 많은 의견을 나눴지만, 평소에도 문제가 있을 때마다 관련 44 기술인문융합 창의형 인재 / Creative Leadership 실용적인 창조를 추구한 창조적 리더/ 세/ 종/ 대/ 왕/ 45
  • 된 신하들에게 주제를 주어 자료를 조사하고 다른 여러 사람들의 의견도 널리 묻도록 하였다. 수많 은 사안들에 대한 의견을 구하고 신하들의 말에 귀 기울이고 그들의 의견을 채택해 힘을 실어주었 다. 지적 권위를 가진 사람이 빠지기 쉬운 오만과 독선이 없었다. 세종의 소통은 전체의 지혜가 더 훌륭한 것이라는 판단을 가지고 있었고 특별히 세종의 경청능력은 경이로운 수준이며, 소통의 출발이 된다는것을 세종께서 몸소 보여주셨다. 세종은 느리더라도 끝까 지 해내는, 결코 포기하지 않는 일관된 추진력을 보여준다. 또 하나의 특징은 신하들의 반대를 극복해내는 설득과 타협, 소통을 통해 결국 자신의 일로 받아들 이고 스스로 참여하게 만드는 포용적인 실천력을 갖추었다. 세종때에 이루어진 성과들이 어느 하나 단기간에 쉬이 해치울수 없는 것들이었는데도 그 많은 것들을 이룬 배경에는 이러한 설득력과 실 천력이 뒷받침되었기 때문이다. 세종대왕은 훈민정음을 창제해 우리의 말과 글을 정립했고, 압록강과 두만강까지 북방경계를 넓혔 으며 정간보를 만들어 우리의 노래를 기록하게 했으며, 중국도 부러워할 정도로 높은 수준의 아악 을 정비해서 15세기 동아시아 최고의 문명국으로 격상시켰다. 여러 명의 국왕들의 업적을 다 합쳐도 모자랄 만큼의 큰 공적은 세종시대에 모두 이룰 수 있었던 핵 심역량이 바로 ‘인재경영’이라 할 수 있다. 세종은 인재를 얻기 위해 신분, 절차를 초월하고 착한 마 음가짐을 중시 여겼다. 세종은 집현전의 연구기능을 확대해 정인지, 성삼문, 신숙주 등 당대의 수재 들에게 연구 분담시켰다. 이렇게 해서 윤리, 농업, 지리, 측량, 수학, 약재 등 다양한 분야의 책을 편 찬하고 관료, 조세, 재정, 형법, 군수, 교통 등에 대한 제도들을 새로 정비했다. 전문가들과 어우러져 같이 연구하고 토론하며 답을 찾고 시행착오를 바로잡아 가는 것이 세종의 인 재활용 방식이었다. 창조의 방향을 설정하고 과제를 내리는 것은 항상 세종의 몫이었다. 어떤 사안을 시작하거나 그 결과를 보고 받을때면 ‘이것이 백성에게 유용한가’를 물었다. ‘지킬 수 없는 법은 반드시 폐지해야 한다’고 하며 실용적 법제정과 실행에 초점을 두었다. 또한 전문가를 적 극적으로 활용하여 창조의 본성이 흐르도록 하기 위해서 세종은 귀천을 따지지 않고 적절한 보상을 제공하였다. 그 대표적인 예는 바로 장영실이다. 예나 지금이나 사람을 이끌어 감에 있어 성취한 만 큼의 보상을 제공하는 것은 창조 리더의 가장 기본적인 소임이라 할 수 있다. 핵/심/가/치/ 1. 세종대왕은 조선 왕조 500년을 통해 가장 뛰어난 임금으로서 재위31년 동안 학문의 전당인 집현전을 열어 나라의 지식경영 을 장려하였으며 집현전에 학식이 깊은 학자들을 많이 등용해 그들의 도움으로 훈민정음을 창제, 반포하여 수많은 백성들에 게 글을 깨우치게 하였다. 2. 인재경영으로서 박연으로 하여금 음률을 새롭게 단장하는 아 악의 정리를 함으로써 오늘날의 국악의 시초를 만들었다. 3. 다른 나라에 비해 미흡했던 천문 기상에 관한 많은 발명 및 창안을 하게 함으로써 군주로서 백성들의 애민에 우선가치 를 두었다. 4. 세종대왕은 측은지심을 가지고 백성이 무엇을 원하는지 알고 있었으며 백성들을 위한 정치와 리더십을 펼쳤다. 5. 세종대왕의 타고난 인품과 더불어 남다른 다방면의 학습을 통 하여 독자성, 자주성을 추구하였다. 46 기술인문융합 창의형 인재 / Creative Leadership 실용적인 창조를 추구한 창조적 리더/ 세/ 종/ 대/ 왕/ 47실용적인 창조를 추구한 창조적 리더/ 세/ 종/ 대/ 왕/ 47
  • Q. 세종대왕은 어떤 스타일의 리더였나요? A. 세종이 지향한 리더십의 특징은 조선의 독자성, 그리고 독 창성이었습니다. 즉, 중국의 제도와 문화를 그저 따르는 조선 이 아니라 우리의 것을 창출하려는 독창성, 독자성을 세울 수 있는 그런 리더십이었으며, 중국에서 벗어나 조선의 것을 찾으 려고 했던면에서 창업형의 스타일이었다고 얘기할 수 있습니 다. 바로 한글이 이러한 특징에서 나온 결과물이죠. 또한 세종 시대에 중국의 어떤 음악을 가져와 우리의 형태로 재창조하는 모습들을 보면, 세종은 어디 것을 받아와서 일방적 으로 모방하는 스타일이 아니라, 그것을 가지고와서 우리 것 으로 만들어내는 창조적 스타일이었다고 말할 수 있겠네요. 세종대왕에게서 한국의 세계화의 실마리를 찾다 그런데 세종의 이러한 리더십이 오늘날 아주 중 요한 의미를 갖습니다. 20세기 후반 개발도상국이던 한국은 외국의 기술과 문화를 모방하거나 로 얄티를 주면서 받아들이는 수준이었습니다. 그러나 21세기 들어와, 그것도 아날로그시대에서 디 지털시대로 바뀌는 시대적 전환기에 우리의 기술과 문화를 창조해 나가고 있습니다. 삼성이 처 음엔 소니에게서 배웠지만, 소니를 능가할 수 있었던 것처럼 말이지요. 이처럼 21세기에는 우리 의 것을 창출하여 세계화를 시켜야 하는데, 그런 면에서 ‘조선 문화의 창달’을 이룩한 세종의 리 더십은 한국의 미래 발전이라는 차원에서 다시금 주목할 가치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세종에게서 ‘한국 의 세계화’라는 실마리를 찾고자 하는 것이죠. Q. 세종이 이런 리더십을 갖게 된 특별한 노력이나 계기가 있었나요? A. 세종은 중국에 대한 관심이 많았습니다. 사람들은 세종이 글을 좋아한다 해서 학문을 열심히 갈고닦은 군주로 알려져 있지만, 세종은 단순히 학문을 좋아하는 군주가 아니라 학문을 통해 새로운 것을 찾아내고자 노력한 군주였습니다. 그에 게 학문은 리더십의 발판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학문적인 틀도 다른 사람들과 달 랐습니다. 그 무렵 조선시대를 이끌던 지식인들은 경전만을 강조하였는데, 세종 은 신하들이 꺼려하고 경계하던 역사에도 깊은 관심을 가지며 다양한 분야를 접 하려 노력했던 것입니다. 세종은 신하들보다 더 뛰어나기 위해 학문에 매진했으며, 그러한 정신력과 지력 으로 신하들을 압도할 수 있었습니다. 단순히 공부뿐만이 아니라 경세와 치론도 세종에게 굉장히 중요했다는 것이죠. 그래서 세종의 학문이라는 것은 그야말로 당시대의 틀에 얽매이지 않고 새로운 영역을 확대해 나가는 개척적인 모습이었 습니다. 기존의 틀에 얽매이는 것은 한 분야에 전문가는 될 수 있어도 전체를 아 우를 수는 없다는 것을 세종은 알았던 것 같습니다. 이렇게 다양한 방면에 관심 을 가지고, 또 연구했기에 새로운 영역의 창조도 가능했을 것이며, 이것이 ‘세종 대왕 리더십’을 만든 것이 아닐까요. Q. 그렇다면 세종이 특별히 기존분야 외에 관심을 가졌던 분야가 있나요? A. 네. 바로 불교였습니다. 유교사회에서 권력의 가장 핵심에 있던 세종이 불교 에 강한 신념을 보였다는 것이 아이러니하죠. 하지만 왜 그렇게 불교에 신념을 보였는가에 대한 해석이 정작 심도있게 다루고 있지 않으며 단순히 그냥 개인적 인 구원, 그런 차원에서 접근한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아니었던 것 같습니다. 유교 왕조의 군주가 심취한 불교 우리의 역사를 크게 구분한다면, 고려시대에서 조선시대로 넘어오는 시기가 아닌가 합니다. 왜냐하면 삼국시대 이래 고려에 이 르는 동안 1천년 이상을 불교국가로 유지해 오다가 조선시대가 열리면서 유교국 가로 바뀌었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단순한 왕조 교체에 그치지 않는 것이었습니 다. 역사에서는 일반적으로 고대·중세·근대로 시대를 구분하지만, 고려에서 세종대왕에 대한 전문가 재평가 전문가 재평가 (인터뷰) 장석흥 국민대 교수 48 기술인문융합 창의형 인재 / Creative Leadership 실용적인 창조를 추구한 창조적 리더/ 세/ 종/ 대/ 왕/ 49
  • 조선으로 바뀌는 과정에서 그와 같은 대변화는 분명 시대구분의 획을 긋는 것이 었습니다. 조선은 고려를 부정하고 역성혁명을 통해 일으킨 나라였습니다. 때문 에 새로운 명분과 가치를 세우고 일으켜야만 했습니다. 조선은 지배이념은 물론 사회·문화 분야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을 일신시켰습 니다. 그 바탕에 는 유교적 이념이 주축을 이루었습니다. 당연히 배불정책도 추 구되었습니다. 유교적 이념에 의해 의례가 정립되면서 사회 관습도 달라지고, 심 지어 옷차림과 생활 풍습 등도 조선시대에 와서 크게 바뀌어졌습니다. 유교적 이 념에 의해 ‘남녀칠세부동석’이라는 말이 생겨났고, 고려 때만 해도 복색(服色)이 잡색이었으나, 조선에 와서는 무명이 일반화 되면서 ‘백의민족’이라는 말도 나오 고, 모든 의식 자체가 불교적 사고에서 유교적 사고로 전환하게 됩니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유교의 발상지인 중국을 흠모하는 중화주의까지 나타나게 되 었습니다. 그런데 이런 엄청난 시대적 전환기에서 세종이 불교에도 깊은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것은 단순히 개인적 신 앙 차원에 그치는 것이 아니었다고 생각합니다. 새로운 것을 추구하는 길에서라 도, 가능하다면 구래의 것도 아우르려는 세종 특유의 철학과 리더십 을 발견할 수 있는 대목이 아닌가 한다. 즉 소통과 융합의 리더십이 무엇인가를 그대로 보 여주고 있는 것이다. Q. 그런데 왜 한글이 창조된 후 바로 널리 사용되지 못했을까요? A. 제가 한국사를 공부하면서 했던 많은 고민들 중, 풀지 못하는 고민 하나있 습니다. “왜 우리나라 사람들은 중국 문자를 그렇게 오래도록 빌어서 썼는가.” 사실 우리가 우리 문자를 쓴 건 100년 밖에 되지 않습니다. 그 전까지 말은 중국 말이 아닌 우리 말을 사용하지만, 말의 표기는 중국 문자를 빌어 쓰고 있었던 것 이죠. 중국 말과 우리 말은 어순도 다르고 문법도 다른데, 우리 생각과 말을 중국 문자로 글을 쓰려고 하니, 잘 쓸 수가 있었겠습니까. 마치 우리 말을 영문자로 표 기하는 것과 무엇이 다르겠습니까. 그러니 우리의 생각이나 표현을 어쩔 수 없이 말보다 문자에 의존하게 되고, 문자에 의존하다보니 중화의식을 가지게 되고, 결 국 이것이 ‘조선의 정체성’까지 잃어버리게 만든 것이죠. ‘문명국가인데 왜 문자를 중국문자를 빌어다 썼는가?’ 라는 이 질문에 어떻게 대 답해야 할까요? 세종대왕은 그 해답을 알고 있었을 것입니다. 문자는 있었지만 우리는 사용을 하지 않았습니다. 만약 세종이 500년을 살았으면 반드시 쓰게 했을 텐데 말이죠. 세종이 죽은 뒤 다시 반동적인 모습으로 돌아갔고, 유교중심에 휩싸이게 되었습니다. 세종이 그런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한글 창제 를 하기 위해 신하들과의 권력 싸움에서 지지 않은 것입니다. 그렇지만 결국 그 뒤 에 임금들은 신하들의 권력싸움에 밀리고 말았고, 결국 한글 사용은 뒤처지게 되었 습니다. 그렇다면 왜 그렇게 밀렸을까요? 바로 신하들이 갖고 있던 강력한 파워, ‘ 중국을 빌어다가 임금의 권위’를 눌렀기 때문입니다. Q. 세종이 추구했던 융합에 대해 오늘날의 관점으로 재평가 해보자면? A. 오늘날 화두가 되는 융합의 관점에서 볼 때, 세종은 한국의 역사적 리더가운데 가장 다양하게 융합을 추구하였던 것 같습니다. 따라서 세종은 문명과 문화의 발명 자가 될 수 있었습니다. 세종대에 쏟아져 나왔던 다양한 창조물은 바로 융합의 산 물이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 창조물들은 지금까지도 또 앞으로도 우리의 자랑과 보물이 되고, 미래 지향적 지표를 제시하는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자랑스러운 세종대왕의 후손, 싸이(PSY) 우스개소리로, 저는 싸이(PSY)가 세종의 융합적인 역량을 물려받은 대표적인 후 손이라 생각합니다. 저는 싸이가 더 떴 으면 좋겠습니다. 사실 우리는 싸이가 이 렇게 세계적인 인물이 될 줄 몰랐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이렇게 한류가 뜨고 있 는 것을 좋아하고 있는데, 한류의 역사적 50 기술인문융합 창의형 인재 / Creative Leadership 실용적인 창조를 추구한 창조적 리더/ 세/ 종/ 대/ 왕/ 51
  • 인 근원은 어디서 왔는지 알고 있을까요? 싸이 개인이 잘나서? 아니면 SM이나 JYP 들이 먼저 깔아놓은 멍석이 있어서 그 위에서 싸이가 꽃 핀 것일까요? 저는 그렇지 않다고 봅니다. 왜냐하면 SM이나 JYP는 그판에 점입하는 길을 만들 어줬을지는 모르나 싸이가 세계를 사로잡은 근본적인 이유는 그가 가지고 있는 ‘ 흥, 서양의 리듬과 다른 한국적인 리듬’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럼 이것은 어디서 나온 것일까요? 결국에 싸이 같은 인물은 ‘한국적인 정서 그리고 서양문화가 결합’ 되어 나온 것이며, 자연스럽게 문화가 창조된 것입니다. 1960~70년대는 기타를 치며 비틀즈를 흉내 내는 ‘흉내문화’에 익숙했었지만, 30년 ~40년 흐른 지금, 우리는 받아들인 他문화에 ‘우리 것’을 접목시켜 세계화를 이루 어낸 것입니다. 그런 한류의 역사적 원류가 세종같은 사람이 아닐까요. 세종은 중 국 문화를 수용하는 가운데 그것에 함몰하지 않고, 조선의 고유와 독창성을 이룩 해 낸 인물이었습니다. 세종이 중국을 열심히 공부한 것은 중국문화를 체득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조선의 것을 찾기 위해서였습니다. 유구한 우리 역사에서 세종 은 누구보다 창의성이 왕성한 지도자였습니다. 그런 가운데 우리 문화가 꽃피울 수 있었으며, 세종의 리더십을 ‘한국의 세계화’를 여는데 뿌리로 삼아야 할 것입니 다. 세종은 한국 뿐아니라 세계적 지도자로서도 충분히 자랑할 만한 인물입니다. Q. 그럼 마지막으로 세종대왕의 리더십은 무슨 ‘유형’이라고 평가할 수 있나요? A. 세종은 소통을 통해 융합을 이루어내고, 그것을 바탕으로 창의를 이끌어낸 ‘융 합 창의적’ 리더였습니다. 세종은 기존의 틀에 머물지 않고 끊임없이 새로운 것을 추구하면서 문화를 창조해 나갔습니다. 군주와 신하의 관계를 뛰어 넘어 신하들의 학문을 권면하고, 대화를 통해 가치를 창출해 나갔습니다. 때론 신하들과 격론을 벌이는 일도 있었지만, 세종은 그것마저 소통의 길로 이끄는 탁월한 능력을 지녔습 니다. 세종의 창의는 그와같은 소통을 융합하여 이루어진 것이었습니다. 즉 소통을 통한 ‘합의’가 아니라, 융합 차원으로 발전시켜 창의에 도달한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Q. 융합적 관점에서 세종대왕의 리더십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하신다면? A. 우선 최근 화두되는 융합이란 무엇인가? 저는 융합이 란 물리적 변화가 아닌 화학적 변화라고 생각합니다. 수 소(H)와 산소가(O2)가 만나 전혀 새로운 물(H2O)이 탄 생하듯이, 융합적 관점은 종래의 것이 일정한 과정을 거 치면 새로운, 꼭 필요한 것을 만드는 창조의 요소인 것이죠. 그렇게 만든 사람들을 융합적 리더십이라고 해석해 본다면, 세종은 이질적인 인재를 데리고 화학적 변화 를 일으켜 그 시대에 요구하는 것들을 만들어 낸 전형적인 융합적 리더였다고 말 할 수 있겠습니다. 그 시대가 조선이 건국된 지 30~40년 밖에 안 지난 시점이기 때문에, 여러 가지 제 도적인 문제점들이 있었습니다. 대표적으로 ‘도량형·무기 제조·한글창제’와 같 은 문제점들이었는데요, 이러한 문제점들을 해결하기 위해 여러 가지 요소를 엮으 려고 만든 것이 바로 집현전이었습니다. 집현전과 같은 대표적인 ‘씽크 탱크(Think Tank)’의 인문학자들과 자연과학자들을 모아 각각의 특성을 완전히 변화시켜 새 로운 성과를 내게 하였기 때문에 저는 세종이 융합적 역사인물이라고 생각합니다. Q. 세종대왕은 소통형, 창조형, 도전형 중 어떤 유형의 리더인가요? A. 세종은 창조형 리더입니다. 창의(Imagination)와 창조(Creation)는 다른 것인데 요, 어떤 것이 필요하다고 상상(Imagination)한 다음, 리더의 기질을 발휘하여 만들 어 내면 창조(Creation)가 되는 것이죠. 소통의 미덕을 갖춘 창조형 리더 또한 세종은 단순히 창조형 리더였을 뿐만 아니라 ‘소통’하는 리더이기도 하였습니다. 장영실(측우기, 혼천의, 자격루 제작)이나 정인 지(훈민정음 창제 협찬), 이순지(달력 제작)와 같은 인재들의 의견을 듣고 공감하 여 힘을 실어 준 것이 창조적 성과로 나왔기 때문입니다. 사실 세종 때 ‘소통’이라 함은 조금 특별했습니다. 박현모 박사 한국학중앙연구원 52 기술인문융합 창의형 인재 / Creative Leadership 실용적인 창조를 추구한 창조적 리더/ 세/ 종/ 대/ 왕/ 53
  • 『나랏말싸미 듕귁에 달아 문자와로 서로 사맛디 아니할세』 그 당시 말로 ‘사마하다’가 소통이란 의미로 통했으며, 리더가 가고자 하는 방향을 제시 한 후 그 것이 왜 옳은지, 왜 필요한지를 마음에 사무치게 전달하는 뜻을 가 지고 있었습니다. 따라서 세종의 밑에 있던 인재들이 머리가 아닌 마음으로 듣고 정진하여야겠다는 다짐을 하고, 헌신하게 되는 것이었습니다. 이와 관련한 사례로 조선시대 문신이자 천문학자였던 이순지의 일화를 들 수 있는데요, 이순지는 달력 제작을 할 당시 어머니가 상을 당하여 3년 상을 치루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어머니 3년 상을 다 치루기도 전에 다시 나와 달력 제작에 매진을 하였습니다. 그 당시 3년 상이 의미하는 것은 사대부들의 특권이자 의무였기 때문에 주변의 시선은 따가웠 지만, 이순지는 ‘나를 알아주는 임금이 계실 때 이것을 완성 하여야한다.’ 는 사무 치는 마음이 있었기 때문에 이것이 가능했던 것이었습니다. 따라서 세종은 전형적인 창조형 리더이면서 동시에 소통의 미덕을 갖춘 리더라고 얘기할 수 있습니다. Q. 그렇다면 세종이 이렇게 위대한 리더가 될 수 있었던 본인만의 소양과 주위환경의 요소들이 있었나요? A. 네. 그렇습니다. 우선 환경적인 요인으로는, 아버지인 태조 임금이 다져놓은 정 치적인 기반이 있었습니다. 이러한 기반 덕분에 세종은 별다른 정쟁 없이 오로지 창조적인 성과만을 낼 수 있었죠. 다음은 본인의 소양이자 주위의 환경요소라고도 할 수 있는데요, 바로 세종이 ‘굉 장한 독서광’이었다는 사실입니다. 세종은 우리나라 전국은 물론 중국, 아랍지역 서적까지 수집하여 첨단지식정보를 집대성 하였고, 따라서 세종 시대에 의학, 약 학, 천문, 지리, 농업 등 22개 분야에서 350여 종의 책이 나오게 되었습니다. 지금 도 22개의 분야 별로 책을 편찬하기가 쉽지 않은 것을 고려해 보면, 이는 대단한 성과인 것이죠. 또한 세종은 다른 나라의 문화를 수용하는 경향도 보였습니다. 세종 시대 당시 원 나라는 동서양의 과학기술을 집대성한 나라였는데요, 세종이 이를 받아 들여 해 시계 등을 발명하게 한 것이죠. 이미 있는 것을 잘 집대성(Accumulation)하는 것, 그것이 융합의 전제 조건이었고, 여기에 집현전의 젊은 학사들에게 실험을 더하 게 하였습니다. 세종과 관련된 재미있는 일화가 하나 있는데요. 세종이 온양온천에 행차를 할 당시 였습니다. 세종은 행차 당시 수레 뒤에 나무 인형을 매달아 나무가 한 바퀴 돌 때 마 다 부딪히는 소리를 나게 하며, 거리를 측정하게 하였습니다. 그 이유는 바로 지도 제작에 활용하기 위해서였죠. 이 같이 주위의 환경적 요소와 지도자의 강력한 의 지 및 실천이 더하여졌기에, 그 시대의 위대한 성과를 가져오지 않았나 싶습니다. Q. 세종 시대의 리더십과 현대 리더십 변화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A. 리더십에는 시대를 뛰어 넘어 변하지 않는 원칙이 있습니다. 바로 지도자의 ‘진 정성 (Authenticity)’입니다. 아무리 리더십의 스킬이 뛰어나다 하더라고 신뢰를 잃 어버리면 안 되는 것 입니다. 언행이 일치해야 한다든가, 리더십의 목적이 대다수 국민들의 행복을 위한 것이라든가 등의 기본적인 원칙은 변하지 않아야 합니다. 진정성(Authenticity) 물론 시대적 요구와 관심이 다르기 때문에 리더십에도 변화는 있어야 합니다. 세종 시대의 정치 주체는 임금과 사대부에 한정되었었는데, 지금 은 국민으로 확산되었기 때문이죠. 따라서 보다 많은 국민들과 직접적으로 소통하 고 뜻을 받드는 것이 현대에는 매우 중요해 졌습니다. 결론적으로, 시대를 뛰어 넘어 진정성과 신뢰는 변치 않는 리더십의 원칙이며, 최 근 사회적 변화와 시대적 요구에 따라 ‘소통’ 덕목도 리더십의 중요한 요소라 할 수 있겠습니다. Q. 세종의 리더십을 현대적 관점에서 한 마디로 표현하신다면? A. 컨버젼스(Convergence)입니다. 기존의 인재들을 용광로로 잘 녹여 새로운 성과 를 낼 수 있게한 전형적인 리더십을 보여주었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성과적인 측 면에서 바라 본 것이지만, 그렇게 하기 위하여 소통하고 헌신한 것이 세종의 중요 한 리더십 덕목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54 기술인문융합 창의형 인재 / Creative Leadership 실용적인 창조를 추구한 창조적 리더/ 세/ 종/ 대/ 왕/ 55
  • 세종 시대에는 분명히 어떠한 창조를 가져와야 할 시기였고, 세종 본인도 그것을 천명할 정도로 잘 알고 있었습니다. 세종의 취임사가 ‘강소국(작지만 강한 나라)’ 였는데요, 작지만 풍요로운 나라 를 만들기 위하여 여러 인재들을 참여하게 한 리 더십을 발휘했습니다. Q. 융합 인재 양성을 위하여 세종대왕으로부터 벤치마킹해야할 것은? A. 우리나라가 300년 단위로 도약한다는 설이 있습니다. 12세기 고려 때는 팔만 대장경, 금속활자 등 동아시아의 문화강국으로 우뚝 섰고, 15세기 세종대왕 때는 과학기술성과가 세계 최고라는 기록이 있으며, 18세기 영·정조 시대에는 실학의 융성과 문예의 부흥을 가져왔다는 평가를 받았습니다. 그런데 한 가지 신기한 점 은, 이 중요한 시기마다 ‘씽크 탱크(Think Tank)'가 있었다는 점입니다. 따라서 21 세기 또 한 번의 도약을 위하여 씽크탱크의 역할을 할 수 있는 구심점이 필요하다 고 생각합니다. 시대적 요구에 부응하기 위해서는 국책 연구기관들을 효율적으로 운영해야 할 것 입니다. 현재는 인문학자들과 자연과학자들이 뿔뿔이 흩어져 있는데, 이들을 한데 모아 머리를 맞대고 연구하게 하여야 하는 것이죠. 세종대왕이 집현전을 바로 이 렇게 운영하였습니다. 따라서 저는 융합 인재를 양성하기 위하여 세종대왕으로부 터 ‘집현전’을 벤치마킹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Q. 구체적으로 융합 인재 양성을 위한 정책적인 방향을 제시해 주신다면? A. 앞에서 제가 새로운 도약을 위하여 ‘씽크 탱크’가 필요하다고 말씀드렸는데요, 이를 구체적으로 실현시키기 위해서는 다른 전공을 가진 학자 및 엔지니어들이 주 기적으로 모여 교류할 수 있는 ‘컨버젼스 포럼(Convergence Forum)과 같은 기회들 이 마련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세종 때 ‘원리’라고 하여 다양한 분야의 학자들을 한 곳에 모아 놓은 후 문을 닫아 걸고, 만장일치를 이끌어 낼 때 까지 문을 열지 않았다고 합니다. 컨버젼스 포럼 역시, 참가자들이 의무상으로 몇시간 잠깐 얼굴을 비치는 것에서 끝나는 것이 아 니라, 대 토론을 통해 성과를 낼 수 있도록 실질적인 워크숍(Workshop)형태가 되 어야 할 것입니다. 56 기술인문융합 창의형 인재 / Creative Leadership 실용적인 창조를 추구한 창조적 리더/ 세/ 종/ 대/ 왕/ 57
  • 르네상스의 의미 레오나르도 다 빈치가 살았던 르네상스는 ‘부활’ 또는 ‘재생’ 이라는 뜻이다. 르네상스란 말에는 ‘로마 문화를 재생 또는 부 활한다.’라는 뜻이 있는데 특히 인간성의 부활이라는 큰 의미 가 들어 있다. 다른 말로 르네상스를 인간 중심의 문화 또는 인본주의 사상이라고도 한다. 르네상스의 문화는 이탈리아 를 중심으로 발전하여 전 유럽으로 퍼져나갔는데 교회 중심 의 미술을 비롯하여 문학, 학문, 과학 등 전반에 걸쳐 눈부신 발전을 이룩하였다. 르네상스의 특징 르네상스의 미술 양식은 서양 미술사에 나타난 한 시대의 특 징에 지나지 않으나 근대 미술에 끼친 영향은 매우 크다. 르 네상스 미술은 교회 건축뿐만 아니라 일반 공공건물도 포함 하게 되었고, 교회의 건축에서 조각과 회화가 독립되어 하나 의 미술 영역으로 발전하였다. 또한 과학적인 발달로 회화에 서는 원근법이 발달하였고, 조각은 사물로서 입체가 아니라 공간감을 나타내는 미술로 발달하였다. 3대 혁명 서구 사회가 암흑의 중세시대를 접고 과감하게 근대라는 신 세계로 들어설 수 있었던 데는 크게 3가지 혁명이 있었기 때 시대배경 이탈리아 르네상스의 거장 레오나르도 다 빈치는 누구인가? 역사적 인물에 대한 융합적 관점에서의 리더십 재해석 레오나르도 다 빈치 시대를 100년 이상 앞서 살았던 역사상 최고의 천재 르네상스 과학 예술가 58 기술인문융합 창의형 인재 / Creative Leadership 르네상스 과학 예술가/ 레/ 오/ 나/ 르/ 도/ 다/ 빈/ 치/ 59
  • 문이었다. 하나는 타락할 대로 타락해버린 교회를 개혁하여 순수한 신심으로 돌아갈 것을 주창한 캘빈과 루터 등에 의해 시도된 종교개혁(Reformation)이고, 다른 하나는 고대 그리스 가 도달했던 학문과 문화예술의 정점으로 다시 올라가 보고 자하는 열망에서 발원한 르네상스(Renaissance)다. 이 두 가지 혁명에 뒤이어 우주와 자연세계를 완전히 다른 시각으로 바 라봄으로써 새로운 지식체계를 얻어내고 이를 기초로 자연을 정복하여 적극 활용하고자 했던 과학혁명이 나머지 하나다. 메디치 가문 이탈리아를 떠올리면 늘 등장하는 메디치 가문은 14세기 초 부터 직물 교역을 통해 부를 쌓기 시작했다. 조반니 메디치 (1360~1429)는 은행업을 통해 피렌체에서 가장 부유한 가문 으로 급성장했고 정치적으로는 평민의 권익을 보호하는 데 힘 씀으로써 시민들의 폭넓은 신망을 얻었다. 조반니 메디치의 뒤를 이어 수장이 된 코시모 메디치는 곧 유럽 전역으로 활동 무대를 넓혔으며, 교황청의 막대한 자금을 코시모의 은행을 통해 운용될 정도로 엄청난 부를 획득했다. 코시모는 은행업 뿐만 아니라 상품교역업에도 관여했는데, 그는 멀리 중동지 역으로부터 향신료, 설탕, 견과류를 수입해 판매 함으로써 커 다란 이윤을 남겼다. 은행업과 무역업을 통해 획득한 막대한 부를 통해 코시모 메디치는 점차 피렌체 지역의 권력을 장악 하게 되었다. 한동안 세간에는 코시모의 저택 안에서 전쟁과 평화가 결정되고, 누가 공직을 맡을 것인지 선택 된다는 말이 나돌았으며, 코시모는 그야말로 공식적인 칭호만 제외하면 사실상 피렌체의 왕이나 다름없었다고 한다. 그런데 흥미로운 것은 이 코시모 메디치가 학문과 예술을 후 원하는 데 경제적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는 “지 난 수십 년 간 자신은 돈을 벌고 돈을 쓰는 일 외에는 아무 것 도 하지 않았는데, 돈 쓰는 것은 돈 버는 것보다 훨씬 더 큰 즐거움을 안겨준다”고 말하면서 돈을 의미 있게 쓰는 것이 중 요한데 바로 학문과 예술을 후원하는 일이라는 것이다. 이를 위해 그는 유럽 전역은 물론 멀리 오스만 제국에까지 사람을 보내 각종 도서와 문헌들을 수집하게 했다. 그 결과로 모아들 인 자료들로는 고대 사본이 1만 점이 넘었고 파피루스 사본도 2,500여 점에 달했다고 한다. 그는 이렇게 모은 자료들을 토 대로 도서관을 설립하기도 했다. 그는 또 많은 필경사들을 고 용해서 고전 필사본을 펴내도록 했으며 스스로도 플라톤에 심 취해 플라톤 아카데미를 세우기도 했으며, 플라톤의 책을 번 역하도록 했다. 고대 그리스의 원전들을 복원하고 다시 번역 하는 바로 이러한 노력들이 이탈리아의 르네상스를 가능하게 한 철학적, 사상적 기풍이 되었다. 그는 또 당시 수공업 장 인( 匠人)에 가까운 처지였던 건축가 미켈로초 디바르톨롬메오를 비롯하여 필리포 브루넬레스키, 조각가 로렌초 기베르티, 도 나텔로, 화가 안드레아 델 카스타뇨, 프라 안젤리코, 프라 필 리포 리피, 베노초 고촐리 등을 자신의 집으로 불러들여 숙식 을 제공하며 작품 활동에 몰두하게 했다. 그 결과 당대 최고 수준의 예술가들이 자신들의 잠재력을 발휘할 수 있었고, 역 사상 가장 위대한 작품을 남길 수 있게 되었다. 브루넬레스키 가 산타 마리아 델피오레 대성당의 돔을 완성할 수 있었던 것 은 바로 코시모의 재력 덕분이었으며, 위대한 과학자 갈릴레 오 갈릴레이가 수학과 천문학 혁명을 향해 거인의 발자국을 내딛을 수 있었던 것도 바로 메디치 가문의 경제적인 후원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처럼 15세기에 이탈리아 피렌체에서는 메디치 가문이 문화예술가, 철학자, 과학자, 장인, 기술자 등 여러 다양하고 상이한 분야의 전문가들을 모으고, 이들을 후 원하는 일이 일어났다. 그러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이들 이 질적 집단 간의 교류가 일어나게 되었으며, 예측하지 못했던 다양한 결과들이 나타났다. 이러한 모임을 통해 서로간의 잠 재력이 발견되고 역량이 융합되면서 창조적이고 혁신적인 아 이디어와 작품이 출현한 것이다. 그리고 이로부터 르네상스 가 더욱 번성하여 전 이탈리아로 확산되었으며 바야흐로 유럽 은 르네상스라는 문예 부흥기를 맞이하게 되었다. 60 기술인문융합 창의형 인재 / Creative Leadership 르네상스 과학 예술가/ 레/ 오/ 나/ 르/ 도/ 다/ 빈/ 치/ 61
  • 밀라노 1480년대 밀라노는 무기·모직·명주를 수출하는 무역 중심 지로 막대한 부를 쌓은 도시였다. 밀라노는 이탈리아 반도에 서 북쪽 끝에 위치한 도시로 대부분의 궁전과 성당이 로마 네스크 양식이나 고딕 양식으로 이어졌다. 밀라노 공작령은 1450년부터 스포르차 가문의 지배를 받았으며, 메디치 가문 처럼 스포르차 가문도 약삭빠르고 무자비했지만 은행가 보다 는 군인이 많았다. 루도비코 스포르차는 가장 부유하고 강력 한 힘을 지닌 군주들 중 하나로 검은 머리카락과 피부 때문 에 ‘일 모로’라고도 불린 루도비코는 뛰어난 외교관이기도 했 다. 그의 아내 데스테와 더불어, 루도비코는 아름다운 궁전 을 유지하며 예술과 과학을 후원하는데 막대한 돈을 썼다. 피렌 체에서와 달리, 대학들은 윤리적 철학보다 물리적 세계의 연 구를 강조하였고, 메디치 가문은 토스카나어와 라틴어로 시 를 짓는 데 많은 시간을 보낸 반면 루도비코는 저명한 교수 들 간의 과학적인 토론을 권장했다. 이러한 환경에 자극을 받 은 레오나르도는 피렌체의 문화를 떨쳐내고, 자연을 한층 분 석적이고 이론적으로 이해하려 노력하는 밀라노 문화에 젖 어 들었다. 메디치가의 수장들은 각자의 재능과 능력을 갖고 있음에도, 아직 충분한 여건이 마련되지 않아 자신의 잠재력을 제대로 발휘하지 못하던 예술가, 기술자, 과학자들을 자신의 저택으 로 불러들였고, 그들에게 무료로 숙식과 작업공간과 재료들 을 제공하면서 각자가 할 수 있고 또 하고 싶은 것을 다 할 수 있도록 아낌없이 지원해주었다. 어떠한 보상이나 리워드 (Reward)를 바라지 않는 아낌없는 후원과 지지가 있었기에 바 로 오늘날까지 남아있는 위대한 작품들이 탄생될 수 있었고, 위대한 예술가들이 나타날 수 있었던 것이다. • 1452. 빈치(Vinci)에서 3Km 떨어진 안치아노(Anchiano)의 유명한 농장에서 세르 피에로와 카타리나 사이의 사생아로 탄생. 17살이 되던 해 가족과 함께 피렌체로 이사 한 후, 베로키오 작업실에서 일을 함 • 1476. 피스토이아 대성당의 제단화가 스승인 베로키오에게 의뢰 되었는데, 레오나르도는 클레디와 합작 <수태고지(受胎 告知)>를 그림 • 1489. 4월과 5월에 그림 데상에 인체해부학을 연구한 흔적이 보임 • 1493. 레오나르도의 생모 카테리나, 밀라노에 옴 • 11월30일, 독일 황제 맥시밀리안과 비앙카 마리아 스포루차의 결혼식 날 레오나르도의 <스포루차 기마상>이 성내 광장에 공개됨 • 1495. 이 해부터 <최후의 만찬> 제작에 본격적 착수 • 1497. <최후의 만찬> 거의 완성 파치올리의 <신성비례(神聖 比例)> 저술에 협력 • 1501. <성 안나> 화고(畵稿)를 그림, 소품 <紡車의 성모> 제작 • 1503. 모나리자등의 작품을 완성 • 1505. 새의 비행상태와 새의 생리학을 연구하여 비행기구에 관한 연구에 몰두 • 1514. <원의구적법>, <굴곡면의 기하학> 등 집필 • 1519. 4월23일 플레성에서 유언장 작성 • 5월 2일 사망 인물소개 62 기술인문융합 창의형 인재 / Creative Leadership 르네상스 과학 예술가/ 레/ 오/ 나/ 르/ 도/ 다/ 빈/ 치/ 63
  • 도제살이의 시작 레오나르도는 읽기와 쓰기, 상인이 되는 데 꼭 필요한 기초적인 산술을 배울 수 있는 ‘스쿠올레 다바코(수판학교)’를 다녔다. 다른 아이들은 대학 진학을 위해 ‘스쿠올라 디 레테레(인문학교)’에 진학했지만, 레오나르도는 사생아라는 이유로 대학에 진학할 수 없었기 때문에 공방에 들어가 도제살이를 시작하게 된다. 레오나르도는 어렸을 때부 터 예술과 과학의 접목에 재능을 보였는데, 한 일화를 들 수 있다. 어느 한 농부가 조 그만 나무 방패를 건네며 피렌체에 나가 그림으로 장식해 갖다 달라고 부탁하자, 피 에로 다빈치는 피렌체 화가에게 넘겨주는 대신 레오나르도에게 뭔가 그려달라고 부 탁했다. 그러자 레오나르도는 방패에 자신이 원하는 것을 그리기 위해 도마뱀·귀뚜 라미·나비 등 온갖 동물들을 가지고 들어가 이런저런 부분을 보고 무시무시한 분위 기를 띤 그림을 그렸으며, 이 작업에 열중한 나머지 동물들이 죽어 고약한 냄새가 나 는 것도 느끼지 못했다고 한다. 완성된 방패를 본 세르 피에로는 방패에 그려진 그림이란 것을 모르고 뒷걸음질을 칠 정도로 생생했다고 한다. 레오나르도가 열두 살이 되던 해에 할아버지가 세상을 떠났 고, 아버지같던 삼촌이 결혼하여 레오나르도는 빈치를 떠나 피렌체에서 아버지와 함 께 살게 된다. 수년 후 레오나르도는 유명한 화가이자 자신의 장인이 될 베로키오의 공방에서 도제살이를 시작한다. 14세가 되던 때 그는 당시 피렌체의 대표적인 화가이 자 ‘대스승(마스터)’이었던 베로키오의 공방에 도제로 들어가 그림을 배우기 시작했 다. 그곳에서 그는 화학과 금속학, 수학과 해부학, 시각생리학과 원근법 등 화가가 되 기 위해 필요한 아주 다양한 기술들을 배우고 습득하게 되었다. 나이 스물에 레오나 르도는 대가로 인정받아 1472년에는 산타마리아누오바 병원에 본부를 둔 의사와 약 사 길드의 한 조직인 화가 길드의 회원이 되어 레오나르도에게 병원과 긴 인연을 맺 는 계기가 된다. 영웅들의 시대 난세 16세기의 서구는 종교와 문화예술 그리고 과학에서의 획기적인 변화들로 지독한 혼 돈을 경험하면서 가장 역동적인 시간을 보냈다. 난세는 바로 영웅들의 시대라 하지 않 던가? 이 난세를 틈타 역사상 가장 위대한 인물들이 유럽의 여러 곳에서 나고 활동하 고 교류하다가 또 사라져갔다. 이탈리아를 대표하는 영웅이자 천재인 레오나르도 다 빈치 역시 이 혼돈 속에서 새로움이 싹트던 시대에 태어나고 성장하였으며, 인류를 위 해 거대하고 새롭고 또 멋진 세계를 열어주었다. 르네상스의 전형적인 인물로 평가받 는 그는 구질서와 신질서가 만나고 예술과 과학이 소통하며 과학이론과 기술적 실천 이 뒤엉키던 그야말로 융합과 섞임의 시대의 중심에서 때론 소박하고 또 때론 화려하 게 살아간 인물이었다. 다빈치의 신분 레오나르도 다빈치는 몬탈바노 언덕 비탈에 자리잡은 마을 빈치에서 1452년 4월 15일 에 태어났다.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아버지인 세르 피에로 다빈치는 젊은 공증인이었 고, 어머니는 시골여자였다. 레오나르도 다빈치는 사생아였기 때문에 직업의 선택이 제한적이었다. 레오나르도다빈치가 태어난 직후 아버지는 피렌체 부르주아 계층의 젊 은 여자와 결혼했고, 어머니는 그 지역 농부에게 시집을 갔다. 따라서 레오나르도 다 빈치는 농사를 짓던 조부모와 삼촌 프란체스코 밑에서 성장한다. 삼촌 프란체스코는 레오나르도다빈치와 열여섯 살이 많았지만, 다빈치에게는 아버지 같은 존재가 됐으 며, 다빈치에게 새와 도마뱀과 벌레 등 작은 동물들을 관찰했고, 꽃과 약용식물의 이 름과 특징을 가르쳐주며 생명에 대한 경외심, 호기심과 이러한 자연을 관찰하는데 필 요한 인내심을 가르쳐 주었다. ‘빈치 지방에서 태어난 레오나르도(Leonardo da Vinci· 1452~1519)이름이 말해주듯 레오나르도 다 빈치는 ‘성’도 가지지 못한 계층에서 출생했다. 이러한 신분은 그가 어 떤 길을 가야할 것인지에 대해 전혀 방향성을 갖지 못했음을 이야기해주는 것임과 동 시에 그런 만큼 그가 가야할 길이 자유로웠다고 할 수 있다. 64 기술인문융합 창의형 인재 / Creative Leadership 르네상스 과학 예술가/ 레/ 오/ 나/ 르/ 도/ 다/ 빈/ 치/ 65
  • 그리스도의 세례 작품의 주문자는 성 사르빅 성당이라고 전해 지며 신약성서 마태복음 제 3장 13절부터 17 절까지 기록된 그리스도 세례의 장면이지만, 레오나르도가 그린 천사가 곁에 있고, 등을 보이며 머리를 옆으로 묘사하는 수법이 레 오나르도의 독자성을 보여주며, 당시 유명한 화가였던 베로키오(Andrea del Verrocchio)가 그린 작품이지만, 인류 역사상 최고의 천재 로 평가받고 있는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데뷔 작으로 더 유명한 작품이다. 손을 들고 있는 그리스도의 옷은 그리스도 와 천사를 연결시키는 역할을 하고, 몸의 움 직임과 더불어 가운데 세례 장면을 강조하 려는 배려가 보인다. 이들은 조형적인 의미 지만 풍경도 요단강의 연장이고, 물 또한 정 화(淨化)의 상징이며, 암벽의 돌은 신의 존재 를 지칭하고 있다고 한다. 레오나르도가 그 린 천사의 아름다움에 놀란 스승 베로키오는 이 이후로 그림을 그리지 않고 조각에만 몰 두했다고 한다.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초기 작품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초기 작품 중 하나이다. 하늘에서 사뿐 내려와 마리아 앞에 무릎을 꿇고 성령 에 의해 아기를 배었음을 알려주는 천사의 모습을 나타낸 수태고지는 많은 작가들에 의해 자주 표 현되는 주제이다. 천사의 모습은 오른팔에 맨 리본의 움직임으로 동적인 반면 마리아의 모습은 딱 딱한 느낌이며 배경의 나무는 늘 푸른 향나무이다. 여기서 녹색이 가진 뜻은 희망과 더불어 긴 생명 을 가진 나무이므로 영원한 희망의 상징이 된다. 이 장면에서 성모마리아가 독서 중인 것으로 표현 하는 경우가 많지만, 실을 뽑는 장면으로 표현하기도 한다. 천사의 순결의 상징으로서 백합을 가지 고 있고, 천국으로부터 내려오는 빛이나 비둘기로 형상화된 성령이 그려지는 것이 많아, 성령에 의 하여 잉태한다는 사실을 상징한다. 모나리자 모나리자를 다른말로 라 조콘다(La Gioconda)라고도 한다. 모나리자의 모나는 이탈리아어로 유부녀에 대한 경칭, 리자는 피렌체의 부유한 상인 조콘다의 부인 이름이다. 모나리자의 본명은 리사 게라르디니(Lisa Gheradini)이다.다빈치는 이 그림을 3차원으로 표현하기 위하여 유약으로 여러 겹을 특수 처리하였고, 가장 바깥에 그려졌던 눈썹이 수백 년의 세 월이 흐르는 동안 화학반응을 일으켜 사라지거나 떨어져나간 것이라는 주장을 제기하기도 하였다. 다 빈치는 이 작품을 그리기 위하여 악사와 광대를 불러 부인의 심기를 항상 즐겁고 싱그럽게 함으 ▲ 그리스도의 세례 (The Baptism of Christ) 제작연도 _ 1472-1475 기법 _ Oil on wood 목판위에 유화 크기 _ 177 x 151 cm 소장처 _ uffizi Museum ▼ 수태고지 (L'annunciazione) 제작연도 _ 1472-1475경 / 기법 _ 유화 크기 _ 98 x 217 cm / 소장처 _ 우피치미술관 다 빈치의 업적 예술 역사상 가장 아름다운 여인을 그린 다빈치 66 기술인문융합 창의형 인재 / Creative Leadership 르네상스 과학 예술가/ 레/ 오/ 나/ 르/ 도/ 다/ 빈/ 치/ 67
  • 로써 정숙한 미소를 머금은 표정, 편안한 손 등 신기((神 技)를 표현할 수 있도록 했다고 하지만 모나리자는 4년이 걸리고도 미완성인 채로 끝났다고 한다.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대표작 ‘모나리자’의 모델의 것으로 추정되는 유해가 이탈리아 투스카니 피렌체의 옛 수도원 지하 무덤에서 발굴됐다. 실제로 알려진 리사 게라르디니 의 유골이 매장된 곳으로 추정되는 우르술라 수도원 터에 서 발굴 작업을 벌여 온 역사, 문화유산홍보 국가위원회 소속 발굴 팀은 지하에 매장된 유골 2구 중 하나가 ‘모나 리자’일 것이라고 설명했다. 최후의 만찬 최후의 만찬 또는 마지막 만찬, 주의 만찬은 기독교의 신 약성서에 기술된 장면 가운데 하나로, "너희들 중에 한사 람이 나를 팔리라"라는 말이 그리스도의 입에서 흘러나 온 직후 12제자의 놀라움과 동요와 그리스도의 슬픈 얼 굴을 테마로 하고 있다. 15세기 페렌체에서는 레오나르도 다 빈치 이전의 작가인 안드레아 델 카스타뇨(Andrea del Castagno)나 기를란다요(Ghirlandajp)에 의해 ‘최후의 만찬’ 이라는 주제는 거듭 그려졌는데, 이들 작품의 구도에서는 유다 한 사람이 식탁의 건너편에 위치하고 있지만, 레오 나르도 다 빈치는 전혀 새로운 형태의 ‘최후의 만찬’을 시 도했다. 즉 유다까지 열두 제자의 무리 속에 포함시켜 그 열두 제자를 세 명씩 작은 무리를 짓도록 하였고, 이전의 작가들이 ‘최후의 만찬’과 ‘유다의 배반’ 이라는 이야기에 초점을 맞추었다면 레오나르도 다 빈치는 화면의 조형성 에 역점을 두었다. 화면의 구도 화면의 구도는 대단히 수학적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3개의 창문, 4개의 무리를 이룬 12제자 등은 그리스도교의 삼위 일체, 네 복음서, 그리고 새 예루살렘의 열두 문 등을 각각 상징하는 것이라는 해석이 있다. 화면 전체의 손상이 심해 서 레오나르도 자신의 필치 는 20%내지 30%밖에 남아 있 지 않으나 구도, 공간 처리, 각 인물의 배치, 색채 같은 것 에서 레오나르도의 흔적이 역력하다. 기존의 전통적 방식을 뛰어넘는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독 창성, 그리고 예리하면서도 정확한 형식미, 숭고한 주제를 다루는 뛰어난 방식 등 ‘최후의 만찬’은 르네상스 전성기의 가장 뛰어난 성과로 평가되며 1980년 유네스코가 이 작품 이 소장된 산타마리아 델레 그라치에 성당과 함께 세계문 화유산으로 지정하였다. '최후의 만찬' 22년 만에 다시 복원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명작 ‘최후의 만찬’이 77년 복원작업 에 들어간 지 22년 만에 제 모습을 되찾고 99년 5월28일 공 개되 었다. '최후의 만찬' 작품 내용 그리스도의 오른편 첫 번째는 요한이 앉아 있고, 성격이 급 한 베드로는 요한의 귀에 무엇인가 속삭이고 있으며, 몸을 뒤로 젖힌 유다는 당황하여 그릇을 엎는다. 그 옆에 놀란 듯 열 손가락을 펴고 있는 안드레 아에 이어 야고보와 바르 톨로메오가 또 하나의 무리를 이루어 앉아 있다. 그리스도의 왼편에는 양 팔을 벌린 야고보가 있고, 그 뒤 에는 의심 많은 토마가 필립보와 함께 자신들의 결백을 주 ▲ 모나리자 (MONNA LISA) 제작연도 _ 1503-1506 기법 _ 유화 크기 _ 77 x 53 cm 소장처 _ 루브르미술관 ▲ 최후의 만찬 (The LAST SUPPER) 제작연도 _ 1495-1498 기법 _ 유화 크기 _ 421 x 910 cm 소장처 _ 밀라노 산타 마리아 델레 그라치에 성당 68 기술인문융합 창의형 인재 / Creative Leadership 르네상스 과학 예술가/ 레/ 오/ 나/ 르/ 도/ 다/ 빈/ 치/ 69
  • 장하는 예수를 바라보고 있으며, 네 번째 그룹 의마태오 와 다데오, 맨 마지막에 앉은 시몬은 냉정을 되찾으려 애 쓰고 있는 듯하다. 이러한 불안과 소란 속에서도 자신의 숙명을 받아 들인 듯 침착한 예수는 전체 화면의 중심이 된다. 다 빈치가 자신의 작품인 ‘최후의 만찬’에 자신의 얼굴을 그려 넣었다는 이론이 나와 이목을 끌고 있다. 영국 데일 리메일 보도에 따르면 한 미술사학자가 12사도 중 ‘의심 하는’도마와 ‘작은’야고보의 모델을 다빈치 자신으로 삼았 다고 주장했다. 화면의 주인공 지네브라 데 빈치 지네브라 데 빈치의 초상화는 레오나르도의 첫 번째 초 상화로, 양면으로 되어있으며 레오나르도의 만년의 여성 그림에 나타난 미소가 보이지 않고, 딱딱한 표정으로 있 다. 당시에는 뒷면에 꽃무늬 장식 안에 잠언이나 좌우명 같은 것을 새겨 넣었는데, 뒷면의 내용을 정확히 알기 위 해 내셔널 갤러리에서 X-Ray 분석을 한 결과 라틴어로 “VIRTUTEM FORMA DECORAT:Be auty adorns Virtue = 아름다움이 덕성을 장식해준다”라는 뜻으로 밝혀졌다. ‘세례 요한’은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마지막 걸작이다. 이 그림을 그릴 당시 이미 레오나르도가 화가로서의 일을 포 기하고 해부학이나 지질학 등 과학적인 일에 몰두하였을 때이다. 어두운 검정을 배경으로 사용 하였는데 무엇인지 모를 어두운 풍경을 그려 넣으려고 했던 것 인지도 모른 다. 세례 요한이 마치 예수가 오실 것을 예견하는 듯 오른 손 검지는 위를 향하고, 왼손은 가슴에 댄 채 십자가를 들 고 있는 젊은이의 모습이다. ‘성 안나와 성 모자’의 등장인물은 성 안나와 성모 마리아 그리고 아기 예수이며, 중앙에 정면을 향해 앉아있는 여인이 마리아의 모친 성 안나다. 어머니의 무릎에 앉아있는 성모마리아의 눈길에는 애처로움과 시름이 가득한데, 이것은 양이 그리 스도가 십자가에 못 박혀 죽게 될 희생양의 상징이기 때문이다. 아기예수가 어린 양을 끌어안는 것은 수난과 희생을 제몫으로 받아들이겠다는 올곧은 의지의 표현 이다. 할머니 성안나는 이런 광경을 물끄러미 바라볼 뿐이다. 처음부터 이미 알고 있었던 듯하다. 그림의 구도는 피라미드형이다. 성 안나의 머리를 정점으로 하여 삼각형의 오른편 은 성모 마리아와 아기 예수 그리고 어린 양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 구도 덕분에 성 안나는 자신보다 덩치가 큰 딸을 무릎에 앉혔지만 전체적으로 안정적인 느낌을 유 지할 수 있게 되었다. 이들이 앉아있는 곳은 결코 순탄치 못할 아기의 운명을 예고 하려는 듯, 아름다운 초원이 아니라 척박한 바위산이다. 그림의 배경은 마치 한 폭 의 동양화를 그린 듯 안개가 자욱한 풍경이다. ▲ 지네브라 데 빈치 (Ginevra de' Benci) 제작연도 _ 1474-1476 기법 _ 유화 크기 _ 37 x 42 cm 소장처 _ 워싱턴 내셔널 갤러리 ▲ 세례 요한 (Saint Jean Baptiste) 제작연도 _ 1513-1516 기법 _ 유화 크기 _ 69 x 57 cm 소장처 _ 루브르 박물관 ▲ 성안나와 성모자 (Virgin and Child with St. Anne) 제작연도 _ 1510년경 기법 _ 유화 크기 _ 168 x 130 cm 소장처 _ 루브르 박물관 70 기술인문융합 창의형 인재 / Creative Leadership 르네상스 과학 예술가/ 레/ 오/ 나/ 르/ 도/ 다/ 빈/ 치/ 71
  • 레오나르도 다 빈치에겐 예술이 과학이고 과학이 예술이었다. 과학을 행하는 예술가이며 동시에 예술 을 행하는 과학자였다. 그는“과학적 지식 없이 실습에만 매달리는 사람은 방향키나 나침반 없이 배에 오르는 조타수 나 다름없다”고 말하며 예술과 과학의 상호작용을 통해 창조 작 업을 해 나갔다. ●● 인간태아의 모습을 최초로 그린 다 빈치 레오나르도는 인간 태아의 모습을 최초로 그린 사람이었으며 20세기 들어서야 밝혀진 인체 의 수수께끼를 일찌감치 발견하였고, 인체의 연구를 통해 동맥경화가 심장질환과 죽음의 원 인이라는 것을 사상 최초로 밝혀냈다. ●● 다 빈치의 해부학 연구의 성과 이 여성 해부도는 1480년대부터 그 생애동안 열심히 연구한 해부학 연구의 성과중 하나로 보 인다. 시체를 해부하는 것을 교회법으로 금지시키고 있던 당시로서는 놀랄 정도로 정확한 각 기관과 각 혈관 계통의 자세한 그림이 그려져 있다. 그는 특히 여성의 임신 에 대해 흥미를 갖고 임신과 태아의 그림을 많이 그렸다. 이 그림은 투시도 로서 뿐만 아니라 형태의 아름다움으로도 충분한 가치가 있다고 한다. 그것 은 해부도로서의 정확성보다는 도상학적인 세부의 아름다움이 넘쳐흐르고 있기 때문이다. ●● 새가 나는 비행원리에서 찾은 오니솝터 다 빈치는 인간의 비행을 평생 꿈꾸었다. 기록에 따르면, 다빈치는 1505년 새 의 비행 생태와 생리학을 연구하여, “새는 수학적 법칙에 따라 작동하는 기 계이며, 그의 모든 운동을 인간 능력으로 구체화 할 수 있다.”라고 말했다. 그의 말은 글라이더나 비행기 발명자에게 영감을 심어주어 항공기 개발에 커다란 힘이 되었다. 또한 다 빈치는 새와 곤충 이외에는 날아다니는 것들이 전혀 없었던 시대에 살면서 비행 장치에 대해 연구를 했다. 그는 박쥐 날개의 기본도를 그렸으며, 새가 나는 비행원리를 연구 하여 오니솝터(ornithopter)를 설계했다. 다 빈치의 업적 과학 ◀◀ 자궁 안의 태아 (The Fetus and lining of the Uterus) ◀ 여성 해부도 (disegno di anatomia femminle) 제작연도 _ 1512 기법 _ 드로잉 크기 _ 47 x 32.8 cm 소장처 _ 윈저궁 왕실 콜렉션 ▲ 오니솝터 72 기술인문융합 창의형 인재 / Creative Leadership 르네상스 과학 예술가/ 레/ 오/ 나/ 르/ 도/ 다/ 빈/ 치/ 73
  • ●●다 빈치의 변형을 통한 헬리콥터 날개 레오나르도는 땅에 드릴이 회전하면서 들어가는 모습을 보 면서 “나선형의 회전력을 이용해서 공중으로 쏘아 올릴 수 는 없을까?”하고 생각 하다가 발견한 ‘나선형 날개’이다. 하 지만 공기는 땅과 다르게 손쉽게 변형하고 나선형 날개를 고속으로 회전시킬 수는 있어도 공기는 그 회전력에 따라 가지 못하고 단지 ‘공회전’해 버리는 것이었다. 그래서 생각 한 것이 나선형을 과감하게 두개로 나누고 역회전 시켜주는 개조를 통해 ‘헬리콥터 날개’가 만들어졌다. 이 헬리콥터는 스크루(screw) 방식을 이용한 헬리콥터를 설 계한 것인데 스크루 형태의 비행 장치는 프로펠러에서 발생 하는 토크(물체를 회전시킬 수 있는 능력)를 상쇄시키기 위 한 개념조차 포함되지 않은 것으로 보아, 다 빈치는 오직 수 작으로 날아오르는 꿈을 꾸었던 것으로 짐작된다. ▲ 비트루비우스적 인간 (Vitruvian Man ) 이탈리아 북부 빈치에서 일본 조종사 요코야마 야스토시가 세계에서 가장 작은 헬리콥터 'GEN H-4'를 타고 시험 비행을 했다. ‘GEN H-4' 헬리 콥터를 개발한 일본인 기술자 야나 기사와 겐나 이는 “다 빈치의 아이디어를 실현한 것을 기념 하기 위해 그의 고향에서 시험비행을 기획했다” 고 말했다. 다 빈 치 의 헬 리 콥 터 로 하 늘 을 날 다 74 기술인문융합 창의형 인재 / Creative Leadership 르네상스 과학 예술가/ 레/ 오/ 나/ 르/ 도/ 다/ 빈/ 치/ 75
  • ●●500년 전 다 빈치의 낙하산 1485년 다빈치는 불이 났을 때 탑 꼭대기 등 고립된 장소에 서 피할 수 있도록 낙하산을 구상했다. 연구 노트에 그려진 낙하산 도면은 정삼각형 모양의 천 조각 넉 장으로 이루어 진 피라미드 형태였다. ●●다 빈치의 낙하산, 낙하 성공 스위스의 아마추어 스카이다이버 올리비에 비에티 테파가 레오나르도 다 빈치가 구상하여 스케치한 그대로인 나무 뼈 대 4개와 낙하산의 천을 피라미드형으로 유지시킨 다음 가 로·세로 7m의 피라미드형 밑바닥을 만들고, 모기장을 설 치해 천을 잡아주었으며 새 같은 것이 안으로 들어가지 못 하도록 했다. 스위스 파예르네의 650m 상공의 헬리콥터에 서 뛰어내린 뒤 약 600m의 높이에서 낙하산을 펼쳐 군사공 항 활주로에 무사히 내려왔다. 비에티 - 테파는 “이 낙하산 으로 완벽한 점프를 할 수 있었지만 방향을 조종할 수 없 어 바람에 따라 착륙 지점이 결정되는 것이 한 가지 단점” 이라고 말했다.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직접적인 관찰 ‘비트루비아 맨’은 로마의 유명한 건축가 비트루비우스의 저서를 접한 다 빈치가 1485년 이를 드로잉으로 그려낸 것 이다. 다른 말로는 ‘인체 비례도’라고 하며, 가끔 ‘인체의 표 준비’라고도 한다. 15세기 다 빈치에 의해 그려진 인체의 수학적 비례의 재발견으로 여겨지고 있다. 다 빈치는 비트 루비우스의 글을 그대로 따르지 않고 실제 인체를 직접 관 찰하여 차이가 있다고 생각하는 부분에 대해서 수정을 가 했다. 관찰 결과 인체를 따라 그려진 원과 정사각형은 실제로 그 중심이 일치하지 않으며, 배꼽은 이 중심보다 약간 아래에 위치했다. 또한 비트루비우스는 팔을 아래로 내려 손끝이 배꼽을 통과하는 선에 맞춰 비례를 설명했다면, 다 빈치는 두 팔을 머리 높이까지 올림으로써 비트루비우스의 서술과 는 차이를 보인다. 다 빈치는 대상에 대한 직접적인 관찰을 매우 중요시하는 경험주의적 사고 관을 지녔으며 관찰에 어 긋나는 것은 과감히 혁신함으로써 과학에 한 발 더 다가가 고자 했음을 알 수 있으며, 비율에 대한 관심과 인간을 우주 의 원리와 연결시키려는 다 빈치의 시도를 볼 수 있다. 그는 인체 속에는 완벽한 질서가 숨겨져 있기 때문에 전체 질서 의 축소판이 바로 인체라고 믿었기 때문에 소우주인 인간 의 신체는 우주 만물을 재는 척도가 될 수 있다고 주장했으 며, 기본적인 측정단위로 손가락, 손바닥, 발, 팔꿈치의 길 이 등을 측정 단위로 설정했다. 복잡 한 듯 하지만 결코 복잡하지 않은 이 그림은 자체의 완 성도를 넘어서 비례와 균형의 표본으로 많이 인용되며 건 축이든, 예술이든 대부분의 미적 가치의 기준을 ‘인간’에게 두었던 고대 로마인들의 인본 사상을 엿보게 한다 하여 다 른 각도의 찬사를 받고 있다. 특히, 이탈리아 사람들 넓게는 유럽 사람들은 이 그림에 대한 애정이 각별하여 여러 가지 형태로 변형시켜 기념하고 있기도 하다. ●●최초의 자동차, 레오나르도 다 빈치 레오나르도 다 빈치는 1482년, 최초의 자동차인 ‘태엽 자동 차’를 스케치했다. 이 자동차는 레오나르도가 실제로 발명 했다기보다는 설계 스케치를 통해 그 가능성을 제시한 것이 다. 태엽자동차는 성당 대형 벽시계에 태엽을 감아 주다가 실수로 태엽이 튕겨 나온 것을 보고 아이디어를 얻어 태엽 ▼ 자동차 스케치 76 기술인문융합 창의형 인재 / Creative Leadership 르네상스 과학 예술가/ 레/ 오/ 나/ 르/ 도/ 다/ 빈/ 치/ 77
  • 의 풀어지는 힘을 이용하여 태엽자동차를 만들게 된 것이다. 역사학자들은 이 차를 오늘날 자 동차의 기원이라고 여기며, 그 후 본격적인 자동차 역사 발전의 계기를 마련했다. ●●다 빈치 자동차 시동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태엽자동차 설계가 생명을 얻었다. 미국에서 다 빈치를 연구하던 이탈 리아 과학자들이 500여 년만에 태엽자동차 설계도의 비밀을 벗겨 마침내 움직이는 자동차 모 형을 만들어 냈다. 비밀이 풀린 것은 해석이 구구하던 설계도의 원통 구조와 선들이 둘둘 감 긴 용수철임을 찾았기 때문이다. 즉 뒤쪽으로 바퀴를 굴려 태엽을 감으면 용수철이 풀리는 힘 으로 앞으로 달리게 되는 것이다. 장난감 태엽 자동차와 원리가 같지만 최초로 자제 동력원 을 가진 점에서 자동차의 선군임 셈이며, 이 자동차는 이탈리아 피렌체의 역사과 학박물관에 전시되었었다. ●●다 빈치의 전쟁 무기 연구 다 빈치는 1470년대 말부터 20여 년간 전쟁 무기에 대해 연구했다. 당시 밀라노는 이탈리아 에서 가장 막강한 군수품 보급처 이었으며, 막강한 군사력을 갖추고 있어야 통치자의 지위를 누릴 수 있었기 때문에 다 빈치를 후원했던 재력가들이 전쟁 무기를 제작하도록 요구하는 진 풍경을 만들어 냈다. 이 장갑차는 대략 1485년에 그려졌는데 다 빈치는 전쟁의 내분을 억제하고, 자국의 평화를 되 찾기 위해 전쟁 무기와 관련된 연구에 몰두하게 되었다. 무기를 통한 그의 과학적 원리와 다 양한 발명이 현재 인류 안보에 있어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레오나르도가 한 귀족에게 “제가 장갑차를 만들 수 있습니다.”라고 제안하였지만 실제로 제작 된 적은 없고, 수첩에 스케치만 남아 있다고 한다. 장갑차의 차체는 딱딱한 나무를 세로방향 으로 연결시켜 제작하여 전투 시 적이 전차에 매달리거나 기어오르지 못하게 경사 각도를 준 고깔 모양의 형태이며, 전차 내부에 사람이 들어가 적의 침입 시 발사 할 수 있게끔 총포들을 고정적으로 배치하여 적의 공격을 방어하면서 내 부에는 피해를 주지 않도록 묘사되어 있다. 하지만, 이 장갑차의 설계도대로 만들어졌다면 내부에 탄 사람이 아무리 크랭크축을 돌려도 앞으로 나가지 않고 제 자리에서 빙글빙글 돌도록 되어 있다고 한다. 이런 허점이 실수일 수도 있지만, 어떤 사람들은 다른 사람이 레오나르 도의 스케 치를 몰래 베껴서 만들어도 작동하지 않도록 하 기위해 일부러 그랬다는 이야기도 있다. 이 기계는 방어를 목적으로 설립 하였는데, 휠, 석궁, 방어 막으로 구성되어져 있다. 휠은 휠의 꼭대기에서 걸어 다니 는 사람에 의해 회전되고, 활을 쏘는 사람은 휠의 안쪽에 위 치하게 된다. 적이 주변에 오면 석궁은 불로된 화살을 쏘 는데 방어막은 휠 위에서 걷고 있는 사람에 의해서 보호되 는 원리다. ●●물이 움직이는 원리에서 찾은 선박 다 빈치는 당시 수력 공학에 뛰어난 면모를 발휘했다. 어 린시절 개울이 흐르는 패턴을 분석할 만큼, 물이 움직이는 원리에 대해 매우 관심이 많았다. 당시 엔지니어들의 관심 사는 기존에 없는 새로운 모양을 가진 배를 고안하는 일이 었다. 다빈치는 페달을 이용하여 움직이는 장치를 발전시 켜 선박에 적용시켰으며, 선체에 손상이 생기더라도 배가 가라앉지 않도록 막아주는 이중 선체를 개발 하였는데, 이 것이 타이타닉호를 비롯한 현대의 모든 배가 이중 선체로 이루어져 있는데, 이는 다 빈치가 설계한 장치 중 가장 독 창적인 상상력과 간결한 아이디어를 구체화한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 석궁 ▼ 선박 스케치 78 기술인문융합 창의형 인재 / Creative Leadership 르네상스 과학 예술가/ 레/ 오/ 나/ 르/ 도/ 다/ 빈/ 치/ 79
  • ●● 수학과의 융합 다 빈치에게는 예술이 과학이고 과학이 예술이었다. 그의 작품에는 여러가지 기 법과 구도 등의 특징이 나타난다. 다 빈치는 미술뿐만 아니라 수학, 과학 등의 여 러 분야에도 조회가 깊었다. ‘최후의 만찬’에는 수학적인 구도 배치가 나타나는데 그림 속의 12사도를 3명씩 4그룹으로 나누어그렸다. 하지만 이것이 이질감을 나 타내는 것이 아니라 12사도의 다양한 동작으로 인해 통일감을 주어 안정감을 준 다. 또한 다 빈치는 인물을 배경보다 높이 배치하는 새로운 시도를 하였는데 대표 적인 예로 ’모나리자‘를 들 수 있다. 모나리자의 얼굴은 황금비율인 1:1.618로 그려져 있어 균형 잡힌 느낌을 주며 구 도 또한 피라미드 형식으로 그려져 안정감을 더해준다. 피라미드 형식을 띄는 작 품의 또 다른 예로 ’성 안나와 성 모자’를 들 수 있다. ●● 과학과의 융합 다 빈치는 예술과 과학의 상호작용을 통해 창조 작업을 해나갔다. 그의 생애동안 연구한 해부학의 성과 중 ‘여성 해부도’가 있는데 정확한 각 기관과 혈관 계통이 자세하게 그려져 있다. 특히 여성의 임신에 흥미를 갖고 그림을 그렸는데 그 예로 ‘자궁 안의 태아’를 들 수 있다. 그는 인간의 비행을 꿈꾸어 새가 나는 원리를 연 구하여 오니솝터(ornithopter)를 설계 하였으며, 그 외에도 낙하산, 헬리콥터 날개 등 이 있다. 비례와 균형의 표본으로 인용되는 ‘비트루비우스적 인간’은 미적 가치 의 기준을 ‘인간’에게 두었던 고대 로마인들의 인본 사상을 엿볼 수 있다. 다 빈치 는 튕겨 나온 태엽을 보고 아이디어를 얻어 자동차의 설계 스케치를 하여 자동차 의 발전에 계기를 마련하였고, 장갑차, 석궁 등의 전쟁 무기를 연구하는 등 과감 한 혁신을 통해 과학에 한발 더 다가가고자 했다. ●● 지식기반의 확장 미래를 예측하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다. 세계적인 미래학자 앨빈 토플러는 다 가올 미래 시대의 핵심기반으로 3가지인 시간, 공간, 지식을 꼽았다. 미래사회에 서는 속도를 맞추는 일, 즉 동시화(synchronization)가 매우 중요하며, 한 개인이 선택할 수 있는 공간의 범위도 무한정 넓어질 것이다. 여기서 나아가 지식은 '미래 경제를 움직이는 동력원인 석유'라 할 정도로 중요하며 과거시대의 자원(석유)들 이 쓰면 쓸수록 줄어든다는 한계를 갖는다면, 지식은 융합과 창의를 통해 무궁무 진하게 확장될 수 있다는 특징을 갖고 있다. 바로 이 세 번째 심층기반인 지식을 어떻게 확장할 것인가가 중요한 과제이며, 지식을 새롭게 창출하는 능력은 이미 개인과 공동체뿐만 아니라 전 지구의 미래를 위해 갖추어야할 가장 중요한 가치 로 부상되었다. 오늘날 바로 이 시점에서 우리가 레오나르도 다빈치에게 다시 주 목하는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 즉, 다빈치는 여러 가지를 융합함으로써 새로 운 지식을 창출해냈고, 앨빈 토플러가 말한 지식이라는 핵심기반을 확장한 인물 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다빈치는 어떻게 다른 사람들과 달리 새로운 지식을 창 출할 수 있었을까? 그는 과연 리더라 할 수 있는가? 그가 보여준 리더십이라는 것 의 본질은 무엇인가? 그는 어떠한 리더인가? ●● 다빈치의 리더십 르네상스 시대의 융합작품으로서의 다빈치는 어떠한 리더인가? 리더는 일군의 그룹이나 조직을 앞장서서 이끌어내는 사람만이 아니다. 리더란 남들이 가지 않 는 길을 새롭게 보여주거나 새로운 길을 가는 사람이다. 마치 하얀 눈이 내린 들 판에 아무도 걷지 않은 길을 처음으로 내딛고 앞으로 나아가는 사람 같은 것이 바 로 리더인 것이다. 왜냐하면 다음에 눈길을 걷는 사람들은 그 사람이 걸었던 발 자국을 따라 가도록 되어 있기 때문이다. 사람들에게 기존에는 볼 수 없었던 새로 운 길을 제시해주는 사람들은 모두 다 리더인 것이다. 이런 점에서 볼 때 다빈치 는 분명 굉장한 리더다. 80 기술인문융합 창의형 인재 / Creative Leadership 르네상스 과학 예술가/ 레/ 오/ 나/ 르/ 도/ 다/ 빈/ 치/ 81
  • 다 빈치에게서 나타나는 또 다른 리더의 특징은 그가 자신이 갖고 있던 다재다능 한 능력을 적극 홍보하고 알렸다는 것이다. 그가 피렌체를 떠나 밀라노로 옮길 때, 그는 밀라노의 루도비코 스포르차 공작에게 직접 찾아가서 자신을 최고의 무기제 작자라고 자랑하면서 써줄 것을 요청했다. 그는 자기의 잠재력을 실현하기 위해 자신의 능력을 알아보고 또 그것을 지원해줄 수 있는 사람들을 찾아가 지원해줄 것을 적극 요구하고 나섰던 것이다. 이러한 점은 자기 피알, 자기 홍보가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해진 우리사회에 시사하는 바가 더욱 크다고 할 수 있다. 그는 가만히 앉아 세상이 그를 찾아주기를 원하던 소극적인 리더가 아니라 적극적으로 자기를 홍보하면서 자신의 작품 활동을 수행해나간 리더였던 것이다. 어찌 보면 그는 과 학과 예술, 과학과 기술을 융합한 것 못지않게 자신과 사회와의 융합에도 민첩하 게 대응한 정말로 융합형 인재였던 것이다. ●● 다빈치의 위대함을 만든 세 박자 오늘날 다빈치는 다양한 전시회와 다큐멘터리, 그림과 책을 통해 전 세계인에게 가장 널리 알려져 있는 인물 중 한 사람이다. 그야말로 르네상스를 열었던 방대한 지식의 소유자이자 위대한 인물로 평가받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사실 그의 위대 성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것은 다빈치 개인의 천재성이나 능력으로만은 결코 나타나기 어려운 것들임을 알 수 있다. 그의 숨겨진 능력이 발현되는 데에는 그 것이 발현되도록 이끌었던 배경 혹은 문화가 있어야했던 것이며, 바로 이점이 중 요하게 지적되어야 할 것이다. 앞서 논의한 것처럼 다빈치가 살았던 15, 16세기의 피렌체는 유럽에서 가장 활발하게 무역업과 은행업이 성행하던 상업지역이기도 했지만, 교황청과의 사업을 통해 부를 축척한 메디치 가문이 자발적이고 적극적 으로 문화적 후원자를 자청하고 나선 유일한 곳이기도 했다. 다빈치 그 개인은 예술적 천재성과 과학적 이성을 두루 갖추고 있었지만, 만약 그 가 그를 후원해주는 분위기와 여건을 만나지 못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레오나 르도 다빈치는 메디치 가문의 예술 활동에 대한 무조건적인 경제적 후원과 당시 피렌체 지역의 자유롭고 창의적인 여건과 분위기, 그리고 다빈치 그 자신의 잠 재적 능력이라는 세 박자가 함께 어우러져 이루어낸 그야말로 융합작품이라 할 수 있다. 역사학자들은 다빈치를 학문적 기술자라고 부른다. 이 말속에는 그가 기술을 학 문적으로 접근했음을 의미한다. 사실 16세기 이전까지 기술자는 그냥 기술만 익 히고 실행하는 사람이지 그 기술이 어떤 이론적인 틀을 가지고 있는지에 대해서 고민하거나 공부하는 사람이 아니었다. 스미스(Smith)라고 하는 대장장이들은 그 냥 경험과 경륜으로 철과 쇠를 만지고 그것으로 생활에 필요한 무언가를 만들어 내는 일을 수행하는 사람이지 철과 쇠가 갖는 과학적 원리에 대해서는 전혀 이론 적 지식을 갖고 있지 않다. 그런데 다빈치는 처음으로 기술의 이면에 숨어있는 과 학적 원리에 대해 고민하기 시작한 것이다. 다빈치는 과학이라는 이론적인 작업 을 실제적인 실행, 프랙티스(practice)라는 기술적인 작업과 연결한 것이다. 그는 화가이자 예술가였고 기술자이면서 무기제작자였으며, 수학자이자 과학자였다. 그는 또한 잘 알려진 것처럼 인문학과 자연과학을 넘나들었으며, 수학과 예술의 융합을 도모했고, 각종 군사무기나 비행기 등을 직접 설계하기도 했다. ●● 인재육성 방향 다빈치라는 융합형 인재를 통해 나타나는 리더는 남들이 가지 않은 길을 보여주 고 걸어갔던 사람이다. 그런데 그가 그럴 수 있었던 것은 그의 뛰어난 능력 때문 만은 아니었다. 그의 재능을 알고 아낌없이 장려하던 경제적 후원이 있었기 때문 이며, 그가 창의성을 발현할 수 있도록 격려하던 분위기와 문화가 있었기 때문이 다. 융합형 인재인 다빈치가 가능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이러한 요소들의 융합 의 결과인 것이며, 오늘날 인재교육에서 교육시스템과 사회적 협력 그리고 가정 과 공동체의 참여를 심각하게 고민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사실상 우리 개 개인은 모두 다 다빈치일 수 있고 또 사실 다빈치라 할 수 있다. 왜냐하면 모든 개 개인에게는 아직 발견되지 않은 인문학적 소양과 과학적 소양 그리고 예술적 소 양이 숨어 있기 때문이다. 82 기술인문융합 창의형 인재 / Creative Leadership 르네상스 과학 예술가/ 레/ 오/ 나/ 르/ 도/ 다/ 빈/ 치/ 83
  • 여기에서 굉장히 중요한 문제는 누가 그 어느 것을 얼마만큼 끌어당겨주고 발현 시키도록 할 것이냐라는 것이다. 예를 들면, 나에게 소설가로서 성공할 수 있는 재 능이 있는데, 만약 내가 책을 접하지 못하거나 글을 써볼 수 있는 여건과 만나지 않는다면 그리고 대신 실험실에서 실험만 하거나 공장에서 기계만 다루는 일을 하게 된다면, 나는 결코 소설가로서의 삶을 살아갈 수가 없을 것이다. 그렇지만 어떠한 이유에서라도 인문학적 소양을 이끌어내 줄 여건이나 분위기 속 에 놓이게 된다면 나는 글을 쓰는 사람이 될 가능성이 아주 높아진다. 결국 사람을 사람에서 인재로 키우는데 있어서 중요한 것은 아직 잠재되어있어 발현되지 못하 는 다양한 가능성들이 발현될 수 있게끔 여건과 분위기를 만들어주는 것이다. 이 것이 바로 교육이 필요한 이유이자 문화가 담당해야하는 몫이다. 사람을 인재로 키워내기 위해서는 우선 사람을 가능성 있는 인재로 바라보고 지속적으로 그리고 아낌없이 후원하는 경제적 지원이 있어야 하고, 또한 이들이 스스로의 잠재력을 발견하고 그것을 해낼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어주어야 할 것이다. ●●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교훈 (사고의 기술) 레오나르도 다 빈치는 화가, 건축가, 과학자, 발명가 및 엔지니어로 활약했으며, 이 모든 분야에서 전문가로 인정받았다. 요리와 악기 연주 실력도 프로수준이었 다. 물론 레오나르도 다 빈치가 천재였던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인간은 누구나 그 러한 능력을 갖고 있고, 단지 자신의 잠재적 능력의 극히 일부만을 사용하고 있을 뿐이다. 다 빈치가 많은 업적을 이루는 데 있어서 스스로 활용했던 방법들을 모방 한다면 구체적으로도 실질적인 성과를 거둘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이를 통해 예리 한 사고와 자유로운 지성을 얻고, 창의적으로 사고하며, 자기 자신을 효과적으로 표현할 수 있는 방법도 가능할 것이다. 레오나르도 다 빈치는 역사상 가장 창의적인 시대인 르네상스 시대를 살았다. 르 네상스 시대에는 인쇄술, 연필, 나침반, 대형 선박, 장거리 대포 등이 발명되었다. 이러한 발명들은 인간의 역사를 뒤바꾸는 혁신적인 것들이었다. 따라서 르네상 스 시대에 대한 고찰을 통해 현대 사회의 급격한 변화에 창의적이고 생산적으로 대처할 수 있는 방법을 배울 수 있을 것이다. 또한, 그 시대에 훌륭한 업적을 남 긴 다 빈치의 생애를 통해 현대 사회를 살아가는 데 필요한 지침과 영감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1. 근원적인 질문과 메모를 철저히 하라 _ 사람은 누구나 지적인 호기심을 가지고 있다. 삶과 관련된 문제들에 대한 근원적인 질문이 계속되어야한다. 레오날도 다 빈치는 메 모장이나 노트를 활용하였다. 그는 자신의 생각이나 아이디어를 그냥 지나치지 않고 기록했고, 현재까지 보존되고 있는 양만해도 7,000페이지가 넘는다고 한다. 2. 실제적으로 경험하고 실험하라 _ 지식과 노하우의 원천은 직접적인 경험이다. 또한 그 경험이 실제로 가치 있는 것이 되려면 본인의 공부 또는 관심 분야와 연관된 경험 이어야 한다. 실생활에서의 경험은 그 어떤 스승이나 책보다도 많은 것을 가르쳐준다. 3. 과학, 예술적 감각을 연결하라 _ 왼쪽 뇌가 논리를 관장하고, 오른쪽 뇌가 예술적 감각 을 관장한다는 사실은 널리 알려져 있다. 레오나르도 다 빈치는 양쪽 뇌를 모두 활용하 면 어떤 성과를 얻을 수 있는지를 잘 보여주는 예이다. 이와 관련하여 다빈치는 ‘브레 인 스토밍’, ‘창의적 사고’ 등의 개념을 처음 도입하고, ‘마인드 맵핑(mind mapping) 기 법’이라 불리는 문제 해결 기법을 개발했다. 4. 큰 그림으로 전체를 이해하라 _ 오늘날 우리가 전문화되고 소셜네트워크로 연결된 세 상을 살아가고는 있지만, 언제나 전체를 연결, 통합시키는 하나의 큰 그림과 그에 대한 통찰력을 가지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인간의 역사, 행동 패턴 및 관계에 대해 이해를 하는 자가 사업에서도 성공할 수 있다. 84 기술인문융합 창의형 인재 / Creative Leadership 르네상스 과학 예술가/ 레/ 오/ 나/ 르/ 도/ 다/ 빈/ 치/ 85
  • Q. 다빈치는 어떤 인물였나요? A. 조숙경 : 사람들은 레오나르도 다빈치를 ‘다재다능한 역 사적인 인물’로만 알고 있습니다. 물론 다빈치가 실제로 많 은 역량을 보유하고 있었던 것은 사실이지만, 그는 그의 다 재다능한 능력을 적극 홍보하던 인물이었습니다. 적극적 인재 그가 피렌체를 떠나 밀라노로 옮길 때, 밀라 노의 루도비코 스포르차 공작에게 직접 가서 자신을 최고 의 무기제작자라고 자랑하며 자신을 적극 홍보했습니다. 그는 자신이 가진 잠재력을 실현하기 위해 자신을 알아볼 수 있는 사람들을 찾아가 지원해 줄 것을 적극 요구했던 것이죠. 이처럼 다빈치는 가만히 있으면 찾아주는 소극적 인재가 아니라 적극적으 로 자기를 홍보하면서 자신의 작품 활동을 수행해 나갔던 적극적인 인재였습니다. Q. 그렇다면 다빈치가 ‘다재다능한 인재’ 평가를 받도록 도와준 배경이 있었다는 말씀이시네요? A. 조: 그렇습니다. 제가 2007년 여성 신문에 “세계 과학문화” 시리즈로 연재한 글 이 있습니다. 영국과 프랑스 그리고 이탈리아는 같은 유럽임에도 불구하고 과학과 관련해서는 상당히 많이 다른데요, 이렇게 각국에서 다르게 수행되었던 과학과 사 람들의 관계, 과학기술에 있어서 잘하는 점, 그리고 대표적인 과학자와 문화적 풍 토, 산업과의 관계 등의 상호연관성을 아울러서 칼럼을 쓴 것이죠. 이탈리아의 경우, 다빈치를 중심으로 이야기를 전개했습니다. 다빈치는 그야말로 르 네상스를 열었던 방대한 지식의 소유자이자 위대한 인물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하지 만 우리 개개인도 사실은 모두 다 다빈치일 수도 있고 또 사실은 다빈치입니다. 개개인 에게는 아직 발견되지 않은 인문학적 소양도 있고, 과학적 소양도 있는데, 그것을 누가 얼마만큼 끌어당겨주느냐가 굉장히 중요한 것입니다. 예를 들면, 나에게 인문학적 소 양이 있는데, 이러한 인문학적 소양을 이끌어내 줄 여건이나 분위기 속에 들어가면 나 는 인문학자로서 성공할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인문학적 소양이 전혀 발현될 수 없는 상황에 놓이면 나의 인문학적 요소는 전혀 나타날 수가 없는 것이죠. 즉, 인재를 키우 는데 있어서 중요한건, 그런 다양한 가능성들이 발현될 수 있게끔 ‘여건’을 만들어주는 것이고, 이것이 바로 ‘교육’이자 ‘문화’입니다. 특히 사람을 키워내기 위해서는 사람을 지원하는 문화가 중요합니다. 인재가 어떤 환경에, 어떤 맥락 속에 놓여 졌는지가 대 단히 중요하며, 그 인재의 리더로서의 잠재력을 후원하는 문화가 매우 중요한 것이죠. 다빈치는 이러한 문화 속에서 자란 인재였습니다. 다빈치가 살았던 16세기의 피렌체 는 가장 활발한 상업지역이기도 했지만, 활발한 ‘문화지역’이기도 했습니다. 그 때 당 시 교황청과 은행사업을 통해 돈을 많이 벌었던 메디치 가문이 문화적 후원자를 자청 하고 나선 유일한 곳이었기 때문입니다. 메디치 가문의 수장들은 재능과 능력은 있지 만 여건이 되지 못하여 활동하지 못하는 예술가, 기술자, 과학자들을 자신의 집으로 모으고, 이들에게 숙식과 작업공간을 제공하면서 각자가 하고 싶은 것을 할 수 있도록 무한한 지원을 아끼지 않았습니다. 여기서 착안한 말이 바로 요한센의 ‘메디치효과’( 서로 연관성이 없는 다양한 영역들을 결합하여 새로운 아이디어, 작품들을 만들어 내 는 것으로, 르네상스 시대에 메디치 가문이 여러 분야의 과학자, 예술가, 기술자 등을 모아 공동으로 작업하는 것을 후원함으로써 ’새로운 문화 창조 역량‘을 이끌어 낸 데 서 유래)입니다. 아낌없이 지원해주며, 보상(Reward)을 바라지 않는 아낌없는 후원과 지지가 오늘날의 이탈리아 르네상스의 배경에 있었던 것이죠. 다빈치는 개인의 천재성의 산물이라기보다는 ‘메디치 가 문의 전폭적인 후원’과 그로인한 당시 ‘피렌체의 자유 롭고 창의적인 분위기’, 그리고 ‘다빈치의 잠재력’이 라는 세 박자가 이루어낸 최고의 융합작품이라 말할 수 있습니다. 다빈치에 대한 전문가 재평가 전문가 재평가 (인터뷰) 조숙경 박사, 한국과학창의재단 86 기술인문융합 창의형 인재 / Creative Leadership 르네상스 과학 예술가/ 레/ 오/ 나/ 르/ 도/ 다/ 빈/ 치/ 87
  • Q. 다빈치 같은 리더가 탄생하려면 어떤 조건이 필요하다고 보시나요? A. 이: 다빈치 같은 인재가 탄생하려면 어느 정도 ‘시대사조’ 가 뒷받침 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피렌체 가문이 처음부 터 귀족 가문인 것은 아니었습니다. 중세시대에 귀족은 아니 었지만, 그 때 무역업이 성행하면서 돈을 많이 벌어들였고, 그 돈을 기반으로 ‘문예부흥의 기틀’을 만들었으며, 훌륭한 예술가 조각가부터 시작해서 다빈치까지 끌어 들여 연구 공 간도 주고, 교류도 시켜주고하는 역할을 잘 하였던 것이죠. 그리고 그러한 문화적 후원이 가문에게도 좋은 평가를 받 게 해 주었고, 다빈치와 같은 훌륭한 인재도 양성했습니다. 아·아·아 혁명 노벨상을 받은 사람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자기의 뛰어난 재능과 천재성도 있어야 하지만, 사물을 보 는 뛰어난 분석력 및 시대를 보는 통찰력이 뒷받침되지 않 으면 노벨상을 받을 수 없습니다. ‘아아아 혁명(아이폰, 아 바타, 아이패드)’도 시대적인 뒷받침이 있었기 때문에 탄생 한 것입니다. 아바타의 훌륭한 시나리오를 재현해줄 수 있 는 ‘3D 기술’과 같은 시대적 뒷받침이 없었더라면, 아바타라 는 대작은 탄생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또한 이러한 3D 기술 이 발전하면서 삼성과 엘지 등이 ‘3D TV, 3D 컴퓨터’를 만들 어 내며 크게 성장할 수 있었습니다. 따라서 저는 이러한 예 처럼, 인재 개인의 역량도 중요하지만 개인과 잘 맞는 ‘시대 사조’가 따라와야 ‘다빈치’와 같은 융합형 인재가 탄생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Q. 다빈치는 다양한 분야의 ‘융합’을 이끌어낸 인재였는데요, 구체적으로 어떠한 인재였는지 얘기해주신다면? A. 조: 흔히 다빈치는 ‘학문적 기술자’ 라고 합니다. 이 말은 그가 기술과 과학을 접 목했다는 것인데요. 16세기 이전까지 기술자는 그냥 기술만 하며, 그 기술이 어떤 이론적인 틀을 가지고 있는지에 대해서 한 번도 고민해본 적이 없습니다. 스미스 (Smith)라고 하는 대장장이들은 그냥 경험과 경륜으로 대장장이 일만 평생 하는 것 이지, 철의 과학적인 원리에 대해서는 이론적 지식이 없었던 것이죠. 하지만 다빈 치부터 기술의 이면에 숨은 과학적 원리에 대해 고민하기 시작했습니다. 다빈치는 과학이라는 이론적인 작업과 실제 프랙티스(practice)라는 기술적인 작업을 연결했 다는 점에서도 융합형 인물인 것이죠. 예술가이고 화가이며 분석기술자이자 수학 자이면서 무기제작자이자 예술가인 다빈치는 과학과 예술, 그리고 과학과 기술을 융합했던 진정한 융합형 인물이자 인재였습니다. Q. 다빈치가 융합 ‘인재’인 것은 맞지만, 융합 ‘리더’는 아니지 않았나요? A. 조: 아니요. 다빈치도 리더입니다. 저는 ‘리더’라는 것은 남들이 가지 않는 길을 보여주는 사람 이라고 생각합니다. ‘집단을 키워내는 것’만이 아니라, ‘주변에 있는 사람들에게 새로운 길을 제시해주는 것’ 또한 굉장히 중요한 리더의 덕목이라 생각 하기 때문입니다. 그런 점에서 다빈치는 굉장히 중요한 리더입니다. 스티브 잡스도 마찬가지입니다. 그가 리더인 이유는 거대한 기업의 CEO 이었기 때문이 아니라 ‘ 새로운 길을 열어주는 능력’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리더란 무엇인가 “리더란 무엇인가” 라고 사람들이 물어오면 저는 이렇게 답합니 다. ‘리더란 하얀 눈이 내린 들판에 아무도 걷지 않은 길을 내딛고 가는 사람이다. 왜냐하면 그 다음에 눈길을 걷는 사람은 그 사람이 걸었던 발자국을 따라 가기 때 문이다.’ 다빈치와 스티브잡스는 바로 이런 새로운 발자국을 낸 사람들입니다. 이렇게 볼 때 개개인은 누구나 리더십을 가지고 있다고 봅니다. 문제는 ‘누가 그 방아쇠를 당 겨줄 것인가’ 인 것이죠. 교육도 그렇고, 사회 시스템도 그렇고, 가정도 그렇고, 문 화도 그렇고, 어떻게 그런 것들을 잘 이끌어 줄 수 있는가를 진중하게 고민해야 할 때입니다. 이정규 박사, 한국과학창의재단 88 기술인문융합 창의형 인재 / Creative Leadership 르네상스 과학 예술가/ 레/ 오/ 나/ 르/ 도/ 다/ 빈/ 치/ 89
  • 스티브잡스 인간을 위한 기술의 시대 “Designed for Human” _ 삼성 Galaxy Ⅲ 광고 “세상의 모든 정보를 집대성하여 누구나 쉽게 이용하도록 하자.” _ Google 회사의 VISION) 세상이 변했다. 과거에 단순히 사람의 역할을 대신 하던 기술이 이제는 사람 을 위해 만들어지고 있다. 삼성의 ‘Galaxy Ⅲ'는 ’Designed for Human'(사람을 위해 디자인 됨)을 모토로 탄생한 스마트폰이고, Google은 누구나 정보를 쉽 게 찾게 하기 위해 탄생한 웹 브라우저이다. 과거의 기술이 기계중심이 었다 면, 이제는 기술이 인간의 기본적인 needs 파악을 중심으로 탄생하는 인간중 심으로 변해가고 있는 것이다. 시대 산업구조 경쟁력 1980년대 생산 중심의 산업구조 다양한 생산방식을 통한 생산 프로세 스 개선 1990년대 기술 중심의 산업구조 디지털 기술의 도입을 시작으로 기존 기 술의 심화 및 신기술 확보 21세기 ‘기술’과 ‘감성’의 융합 시대 ex)휴대폰(기술+의학+금융 등) 다양한 분야에 대한 지식의 이해 및 융·복합 실행 세기가 낳은 천재 CEO / 융합과 독창의 ICON 시대배경 세계가 낳은 천재 CEO, 스티브 잡스는 누구인가? 역 사 적 인 물 에 대 한 융 합 적 관 점 에 서 의 리 더 십 재 해 석 Interaction Creative Open-minded Needs-centered 90 기술인문융합 창의형 인재 / Creative Leadership 융합과 독창의 아이콘/ 스/ 티/ 브/ 잡/ 스/ 91
  • 21세기는 단순히 기술 중심의 시대가 아닌 ‘기술’이라는 실용주의 콘텐츠가 ‘ 감성’이라는 인문학적 콘텐츠와 결합하여 더욱 새롭고 편리한 창조물들을 만 들어 내고 있다. 그렇다면 사람들은 왜 기술에 ‘인문’이라는 새로운 영역을 융 합하려 한 것일까? 인문학이란 말 그대로 인간의 사상 및 행동 등에 대하여 연구하고 정의하는 학문이다. 넓게는 음악, 문학, 디자인 등 예술적인 측면이 포함되며, 좁게는 인간의 언어, 감성, 철학, 행동패턴 등이 속해있는데 이러한 인문학적 요소들이 21세기 산업계에서 주목받는 이유는 다음과 같다. 첫째, ‘다양한 접근방식’이 필요한 시대가 되었기 때문이다. 세계가 다변화되 고 글로벌화 되다 보니 단순한 수치 파악과 같은 기존의 방식으로는 미래에 대한 예측이 불가능해졌다. 특히 21세기에는 예측이 불가능하거나 변수가 많 아 단순한 ‘기술’적인 측면으로는 모든 것을 분석하지 못하는 시대가 되었기에 ‘인문학적 요소’ 에 따른 다양한 분석이 요구되고 있는 것이다. 둘째, ‘시대가 요구 하는 경쟁력’을 갖기 위함이다. 기존의 기술 중심 사회에 서는 ‘결과물’ 이 경쟁력이므로 이에 포커스를 맞췄지만, 모두가 ‘같은 수준의 경쟁력’을 갖자 새로운 경쟁력이 필요하게 되었다. 그리고 그 새로운 경쟁력 은 최종 사용자인 소비자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파악하는 ‘needs 파악’ 이라 는 점에 도달하였다. 따라서 이러한 경쟁력을 갖기 위해서는 결과물이 아닌 ‘ 과정’에 이라는 인문학적인 통찰력이 필요하게 된 것이다. Apple(애플)의 ‘스티브 잡스’는 기술과 인문학적 통찰력을 잘 발휘해 성공 신 화를 이룩한 대표적인 인물이다. 그는 대학 전공이었던 철학을 응용하여 인문 학에 대한 깊은 고찰을 하였다. 그 결과 인간의 기본 욕구인 ‘편리성, 재미’를 만족시킬 수 있는 기술, 디자인을 모두 갖춘 ‘제품들’을 탄생시켰다. 스티브잡스가 애플의 성공 신화를 이룩하자, 세계의 경영학자들과 CEO들은 스티브잡스의 경영철학 및 리더십을 배우기 위해 각종 연구 및 서적을 출판하 기 시작했다. 스티브잡스의 일대기, 성격, 리더십, 철학부터 애플의 일대기, 제품, 성공신화까지 잡스와 관련된 모든 것들이 주목받고 있으며, 잡스가 사 망한지 1주기가 된 지금은 Apple을 향해 ‘잡스 리더십의 부재’를 외치며 그를 추억하고 있다. 92 기술인문융합 창의형 인재 / Creative Leadership 융합과 독창의 아이콘/ 스/ 티/ 브/ 잡/ 스/ 93
  • • Apple 탄생 • 스티브 위즈니악과 함께 그의 부모 집 차고에서 $666.66의 애 플컴퓨터 탄생시킴 • Apple Ⅱ 개발 • 업그레이드 된 기능과 디자인으로 시장에서 주목받음 • Apple 상장 • Macintosh 개발 • 개인용 컴퓨터의 시조, GUI(그래픽 사용자 인터페이스)와 마 우스를 통한 편리한 사용이 특징 • 스티브 잡스 해고 • 애플 임시 CEO로 잡스 복귀 • iMac 발표 • 최초로 플로피디스크와 CD-Rom 탑재한 one-box 시스템 컴퓨터 • 이로 인해 주가 400% 상승 • 스티브 잡스 정식 CEO 취임 • Apple Store 출시 • Ipod & iTunes 출시 • PC시대의 종말 선언, 디지털 허브 전략 공개 • iPhone 공개 • MacBook air 공개 • iPad(Table Computer) 출시 • Apple 시가총액 > MS 시가총액 • iPhone 4 출시 • iPad 2 출시 • 시가총액 1위 • 시가총액 1위인 석유회사 Exxon Mobil을 제치고 일시적으 로 1위가 됨 • iPhone 4S, iCloud 발표 • Steve Jobs 사망 • New iPad 출시 • iPone5, iPod touch, new iTunes 발표 • iPad mini 발표 • 스티브 잡스 탄생 • 미국 캘리포니아 샌프란시스코에서 대학원생이던 시리아인 미혼모의 아들로 태어나자마자 양부모 님 폴, 클라라 잡스 부부에게 입양됨 • H.P의 설립자, 윌리암 휴렛과의 만남 • 12살의 나이에 과제에 필요한 부품 요청 위해 휴렛에게 직접 전화. 이를 통해 HP에서 일할 수 있는 기회를 얻었으며, 그곳에서 스티브 워즈니악(애플 공동창업자)를 만남. • 리드 대학 철학과 입학 후 1학기 만에 자퇴 • 가정형편으로 인해 자퇴 후 1년 반을 도둑 강의를 들으며 학교를 다님 • 애플 Ⅰ 개발 • Mos 6502 칩을 사용하여, 애플 Ⅰ을 개발했으나, 사업을 거절당하자 스티브 워즈니악과 함께 그의 집 차고에서 애플 Ⅰ 개발 • 애플 Ⅱ 개발 • 업그레이드 된 디자인과 기능으로 교육계 및 대중들에게 인정받음. • 팔로알토 연구센터 방문 • 당시 제록스회사에서 마우스, 프로토 타입을 발견하여 매킨토시라는 제품을 만들게 됨. • 애플 상장 • 매킨토시 출시 • 이를 통해 개인용 컴퓨터 시대를 염. • 스티브 잡스 해고, NexT 설립 • 자신이 고용했던 존 스컬리와의 마찰로 애플에서 방출 뒤 컴퓨터 개발업 체인 NexT 설립 • 픽사 인수 • 1995년 최초의 컴퓨터 애니메이션인 ‘토이스토리’ 출시 • 애플 임시 CEO로 돌아옴 • 정식 CEO 취임 • 포춘매거진 메인 모델 • PC 시대의 종말 선언(iPod&iTunes 출시) • 췌장암 수술 • 스탠퍼드대 졸업식 명예박사학위 수여 및 연설 • 픽사 매각 • 간 이식 수술 및 회사 복귀(06월) • 포춘지 선정 최고의 CEO 선정 • 스티브 잡스 사망 1955.02.24 1967 1972 1976.04.01 1977.04.17 1979 1980 1984.01.24 1985 1986 1996.12.20 2000.01 2000.01.24 2001.10.23 2004.07.31 2005 2006 2009.01 2009. 2009 2011.10.05 1976.04.01 1977.04.17 1980 1984. 01 1985 1996.12.20 1998 2000.01 2001.05 2001.10.23 2007.01.09 2008 2010.01.27 2010.05.26 2010.06 2011.03.02 2011.08.09 2011.10.04 2011.10.05 2012.03.07 2012.09.12 2012.10.23 What Is “Apple?” & Who Is “Steve Jobs?” STEVE JOBS (Apple Story와 중복사항 일부 제외) Apple‘s Story ▲ 1976. Apple Ⅰ 개발 ▲ 1984. Macintosh 개발 ▲ 2001. iPod 출시 ▲ 2001. iPod 출시 94 기술인문융합 창의형 인재 / Creative Leadership 융합과 독창의 아이콘/ 스/ 티/ 브/ 잡/ 스/ 95
  • 애플과 잡스 이야기 영웅의 비범한(?)탄생 1955년 2월 24일. 미국 캘리포니아 샌프란시스코. 세계를 놀라게 만든 위대 한 인물이 대학원생 시리아인 미혼모에게서 태어났다. 그의 이름은 'Steve Jobs(1955)'. 그는 태어나자마자 양부모 폴과 클라라 잡스에게 입양되었다. 스티브 잡스는 어릴 때부터 자신이 입양됐다는 사실을 알았다. 그는 열일곱 살 때 길 건너편에 살던 여자아이와 나눴던 말을 기억하고 있었다. 여자 아 이는 “너희 진짜 부모님은 널 원하지 않았다는 얘기야?”라고 물었고 잡스는 머리에 번개가 내리치는 것 같았다며 울면서 집으로 뛰어간 것이 기억이 난 다고 했다. 그러자 부모님은 그것이아니라 ‘우리가 너를 특별히 선택한 거란 다’라고 말했다고 한다. 버림받음, 선택받음, 그리고 특별함과 같은 개념들은 잡스에게 정체성의 일 부가 되었고 스스로를 바라보는 하나의 방식이 되었다. 누군가가 폴 잡스와 클라라 잡스를 그의 ‘양부모’라고 하거나 ‘진짜’부모가 아니라는 식으로 말하 면 잡스는 “그들은 1,000퍼센트 제 부모님입니다.”라고 말하였지만 생부모 에 대해 얘기할 때는 퉁명스러웠다. 될 성 부른 나무는 떡잎부터 다르다. 흔히 위대한 인물은 유년기의 성장시절부터 남다르다고 하는데, 잡스가 바 로 그랬다. 초등학교 4학년이 되어 만난 우등반의 담임 ‘이모진 힐’은 2~3주 간 잡스를 지켜보고 그에게는 뇌물로 동기를 부여하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 이라는 것을 알아채고 수업이 끝나면 잡스를 불러 수학 문제를 주며 집에 갖 고 가서 풀어오라고 했고, 잡스는 그런 선생님이 정신이 나갔다고 생각했다 고 한다. 그때 선생님은 막대 사탕을 꺼내어 보여주며 문제를 거의 다 맞히 면 이 사탕 뿐 아니라 5달러까지 주겠다고 했고, 잡스는 이틀만에 수학 문제 를 풀어갔다. 하지만 몇 달이 지나자 뇌물은 필요없어졌고 더 많은 것을 배 워 선생님을 기쁘게 해드리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4학년 말 잡스 가 수학 능력을 평가 받았는데 고등학교 2학년 수준의 수학 능력이 있다는 결과가 나왔다. 또한 1967년, 학교 과제물에 있어서 필요한 부품을 구하고자 HPHP의 설립 자 윌리엄 휴렛에게 직접 전화를 걸어 부품을 구했다. 휴렛은 그의 당당함과 추진력에 감탄을 금치 못하여 훗 날 HP에서 일할 수 있는 기회를 주었고, 그 곳에서 잡스는 운명의 동료, ‘스티브 워즈니악(애플 공동 창업자)’을 만났다. 이 후 스티브는 고등학교 졸업 후 리드 대학 철학과에 입학했지만 가난을 이 유로 1학기 만에 자퇴를 하고 만다. Apple의 탄생 세계적 기업이 된 Apple. 그 위대한 탄생은 어디에서 부터였을까? 신기하게도 위대한 창 업자 스티브 잡스와 그가 낳은 세기의 회사 ‘ 애플’은 1976년,그의 부모님 집 차고에서 시 작되었다. 96 기술인문융합 창의형 인재 / Creative Leadership 융합과 독창의 아이콘/ 스/ 티/ 브/ 잡/ 스/ 97
  • 스티브 잡스와 스티브 워즈니악은 4월 1일 만우절에 세기의 창조물 ‘Ap- ple Ⅰ'을 탄생시켰다. 기술적인 느낌이 풍기는 매트릭스, 또는 이그제큐텍 (Executek)같은 신조어, 아니면 아예 평범한 퍼스널 컴퓨터스 등등 여러 의 견이 있었지만 사업 등록 관련 서류를 제출하기로 한 다음 날까지 ’애플 컴퓨 터(Apple Computer)'라는 이름을 사용하게 된 이유는 당시 잡스는 과일만 먹 는 식단을 지키고 있었고, ‘애플’이라는 말은 재미있으면서 생기가 느껴지고 ‘컴퓨터’란 말의 강한 느낌을 누그러뜨려주기 때문이란다. 그런데 신기하게 도 이 ‘Apple' 이라는 회사는 최대의 기업공개액수를 기록한 세계 최대의 회 사가 되었다. 그들은 1976년 당시, 장난스럽게 만든 알파벳 5글자가 훗날 세 계에 영향을 끼치는 단어가 될 줄 상상이나 했을 것인가. 훗날 1977년 업그레이드 된 기능과 디자인으로 촉망받은 ‘AppleⅡ'는 향후 16 년간 다양한 모델을 출시하며 600만 대 가까이 판매된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이'Apple Ⅱ'가 PC업계를 탄생시킨 시발점이 되었다는 것이다. 그들은 1980년 Apple 이라는 회사를 상장하게 된다. 그리고 1984년, 개인용 PC의 세 상을 열어준 Macintosh를 출시하게 된다. 개인용 컴퓨터의 시대 초창기 Macintosh 를 기억하는 사람들은 모두들 처음 본 그 순간을 잊지 못한다고 한다. 이유는 바 로, 디자인 때문이다. 네모난 플라스틱 상자와 명 령어 입력 대신 편리하게 사용할 마우스. 그리고 GUI(그래픽 사용자 인터페이스)를 이용하여 그 림으로 작업할 수 있었던 Macintosh는 특히 교육 자들에게 크게 각광받았으며, 잡스와 워즈니악에 게 막대한 부를 안겨주었다. 창조물에게 쫓겨난 창조주 Macintosh 의 성공을 확신했던 잡스는 당시 펩시 콜라의 전문 경영인이었던 존 스컬리를 영입했다. 하지만 ‘굴러 들어온 돌이 박힌 돌을 빼낸다’ 는 속담 과 같이 존 스컬리, 직원들과의 갈등과 과도한 재고량에 따른 경영책임론에 부딪혀 결국 자신이 창조한 Apple 기업에서 해고 당하게 된다. 그리고1985 년, 그는 기업과, 고등교육 이용자들을 위한 UNIX 기반의 Workstation 을 생 산하는 'NeXT' 라는 기업을 설립한다. ‘넥스트’에 좀 더 독특한 색깔을 덧입히기 위해 브루클린 출신의 그래픽 디자 이너인 71세의 랜드에게 기업 로고 디자인을 만들어 달라고 하지만 랜드는 이미 IBM과 계약을 맺은 상태였다. IBM의 직원은 랜드가 다른 회사의 로고 를 제작할 경우 법적 분쟁이 발생할 소지가 있다고 하자 잡스는 IBM의 CEO 존 에어커스에게 전화를 걸어 끈질기게 요청한 끝에 부사장인 폴 리조의 허 가로 랜드가 넥스트의 로고제작을 하게 된다. 넘어져도 다시 일어나는 오뚝이 NeXT 설립 그 다음해인 1986년, 당시 단편 애니메이션만을 제작하던 회사를 95년 인수 하여 ‘Pixar'라는 이름을 붙였다. 그리고 최 초로 3D 애니메이션 작업에 착수를 하기 시 작했다. 당시 사람들은 스티브 잡스가 애플 도 모자라 ’Pixar'의 모든 돈을 낭비하고 있 다고 질타했지만, 확신이 있었던 잡스는 결 국 1995년 ‘토이스토리'를 흥행에 성공하며 재기하였다. 98 기술인문융합 창의형 인재 / Creative Leadership 융합과 독창의 아이콘/ 스/ 티/ 브/ 잡/ 스/ 99
  • 각 국의 유명인사들 뿐만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스티브 잡스의 죽음을 애도 하였고, 진심어린 존경을 표했다. 그리고 잡스가 사라진 ’애플‘에 대한 공허 함을 느끼며, 걱정하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애플‘에서 출시된 제품을 구매 하고 사용했지만 실제로 그들은 그 제품에 밴 ’잡스‘의 일부를 구매하고, 느 끼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 완벽주의자, 프리젠테이션의 말미에 항상 'One more'을 외치며 사람들을 흥분시킨 잡스가 세상을 떠난지 1년이 되었지만 여 전히 사람들은 잡스를 그리워하고 제2의 잡스를 기다린다. 사람들은 그의 ’무엇‘에 열광하였던 것일까? 그리고 CEO들은 잡스의 ’어떤 경영‘에 대해 본받아야 한다고 외치고 있는 것일까? 그는 “죽은 후에도 나의 무언가는 살아남는다고 생각하고 싶고, 그렇게 많은 경험과 약간의 지혜까 지 쌓았는데 그 모든 것이 그냥 없어진다는 생각을 하면 기분이 묘해진다고 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딸깍!‘ 누르면 그냥 꺼져 버리는 전원 스위치 같은 것일지도 모른다고 했다. 그는 희미하게 미소를 지으며 ”아마 그래서 내가 애플 기기에 스위치를 넣는 것을 싫어했나 보다“라고 했다. 왕의 귀환 “30대 혹은 40대에 들어선 예술가가 뭔가 놀라운 기여를 하는 일은 매우 드 물다.”서른 살에 접어들면서 잡스가 했던 말이다. 1996년 애플이 NeXT 를 인수함에 따라 잡스도 자연스럽게 애플에 복귀하였다. 그리고 1998년 성공 적으로 iMac(최초의 플로피 디스크와 CD-ROM을 탑재한 onebox 시스템 컴 퓨터)을 출시하며 400% 이상의 주가 상승을 이뤄냈다. 잡스의 복귀 전 줄곧 적자를 기록하던 애플은 iMac의 출시로 4분기를 흑자 전환하는 쾌거를 이 룩했으며, 잡스는 공적을 인정받아 ‘2000년 1월’ 애플의 정식 CEO가 된다. 세상을 바꾼 제품들 1998년 iMac 출시를 시작으로 2001년 대용량의 mp3인 iPod과 음악, 동영상 등을 손쉽게 재생, 구성하도록 만들어진 iTunes가 출시되었다. 또한 2007년 에는 스마트폰의 시초인 iPhone의 출시를 비롯하여 2007년 Tablet computer 인 iPad을 출시하며 또 한번 세상을 놀라게 했다. 그가 만든 'i시리즈' 제품들 로 인하여 사람들의 행동패턴이 바뀌고, 21세기의 삶이 변화되었다. 현재 각 각의 제품들은 iPod 5세대 touch 시리즈, new iTunes, iPhone 5, iPad mini 등 으로 점점 업그레이드 되어가는 중이다. 별이 지다? 사과가 떨어지다! 2011년 10월 5일. 애플의 창시자이자 세상을 변화시킨 스 티브 잡스가 췌장암으로 인해 향년 56세의 나이로 타계했다. 'Think Differ- ent', 'Stay hungry stay foolish', ‘The Journey is the reward' 등 수 많은 명언과 수 많은 제품들을 남기고 ‘Tim Cook' 에게 CEO 자리를 넘긴 후 세상을 떠 났다. 100기술인문융합 창의형 인재 / Creative Leadership 융합과 독창의 아이콘/ 스/ 티/ 브/ 잡/ 스/101
  • The Vision of JOBS : tech + 잡스의 tech + 애플의 성공신화를 일구어 낸 잡스의 경영 비밀은 다름 아닌 'tech + ' 이다. t는 Technology(기술), e는 Economy(경제), c(Culture; 문화 창조), h(Human; 인간 중심 마인드), +(그 외의 다른 영역들)의 약자 로써, 기술, 경제(수익), 문화, 인간(인간 중심)의 4가지 영역과 (+ ; 다른 영역들) 만나 시너지효과를 창출한다는 새로운 성장 패러다임이다. 잡스의 경우 t(기술)이라는 경영철학을 통해 ‘i시리즈'들이 라는 획기적인 그의 제품들을 탄생시켰 고, e(경제)라는 경영철학을 통해 애플의 시가총액 1위, 고부가 가치 중심의 수익률을 이끌어 냈으 며, c(문화 창조)라는 경영철학을 통해서는 iTunes, iCloud 등을 개발하여 새로운 음악 비즈니스 모 델 형성 및 모든 장치를 하나로 동기화 하는 새로운 문화를 형성했다. 또한 h(인간)라는 경영철학을 통해 ‘인간 중심의 디자인’을 갖춘 제품들과 ‘인간 중심의 기능’을 갖춘 서비스들이 탄생되었다. 그러 나 이러한 그의 업적들은 단순히 그 영역들이 낳은 업적이 아닌 +(다른 영역들)과 융합되어 더욱 시 너지 효과를 낳은 결과물들이다. t(Technical; 기술) : HIS PRODUCTS Apple 시리즈 애플 역사의 시작은 1976년, 청년 스티브 잡스와 스티브 워즈니악이 잡스 부모님 집의 차고에서 만든 AppleⅠ으로부터 시작된다. 그리고 잡스는 이후, Macintosh, iPhone, iPod, iPad 등 훌 륭한 기술력으로 세계를 놀라게 한 제품들을 탄생시킨다. 1. Apple Ⅰ AppleⅠ의 시작은 1976년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H.P에서 일하던 25살의 청년 스티브 워즈니악 과 Atari에서 일하던 21살의 청년 스티브잡스는 각각 일하던 회사에서 떠나 6개월 동안 회로도를 설 계하였다. 그 당시 컴퓨터는 대형크기에 매우 고가로 주로 대형 기업들의 전유물이었다. 그런데 이 2명의 젊 은 청년이 회로도 개발을 통해 최초로 개인용 컴퓨터를 만들어낸 것이다. 그러나 기쁨도 잠시, 그 들에게 문제가 발생했다. 판매를 위해 대량생산을 할 돈이 없었던 것이다. 따라서 여러 투자자를 물 색하던 중 H.P의 문을 두드렸다. 하지만 H.P가 아무런 관심을 보이지 않자 잡스는 자동차, 워즈니 악은 공학용 계산기를 팔아 자본금을 마련하고, 그들 스스로 1976년 4월 1일 직접 회사(애플)을 설 립하여 판매를 하기 시작했다. 가격은 666.66달러. 그래픽도, 키보드나 케이스도 없지만 모토로라 6502 프로세서를 처리장치로 사용하는 AppleⅠ은 1976년 12월 미국 내 10개 상점으로 판매망을 확 대하는 쾌거를 이룩했다. 이후 잡스는 놀런 부시넬, 돈 발렌타인 등과 같은 유명 투자가들에게 투자 유치를 홍보하며 애플 판 매에 박차를 가했다. AppleⅠ의 성공적인 데뷔였다. 2. Apple Ⅱ AppleⅠ의 성공으로 잡스와 워즈니악은 AppleⅡ개발에 착수한다. 그래픽이나 키보드가 없고, 허름 했던 디자인의 AppleⅠ에 비해 Apple Ⅱ는 컬러 그래픽 디스플레이, 키보드 장착과 성능, 디자인을 업그레이드 하여 1977년 6월 첫 시판하였다. 대신 가격은AppleⅠ 보다는 고가인 $1,298. 하지만 4KB 의 대용량 메모리에 내장 그래픽, 베이직 인터프리터 탑재 등 화려한 성능을 갖춘 Apple시리즈의 복 귀는 대 성공이었다. 그에 더하여 AppleⅠ과 달리 대규모 생산라인과 테스트라인을 구축하고 소비 *tech+ : 기술(technology), 경제(economy), 문화(culture),인간(human)이 하나가 되어 세상을 바꾸는 새로운 생각을 제시하는 통섭과 지식융합을 의미, 2009년 KITA에서 주장 102기술인문융합 창의형 인재 / Creative Leadership 융합과 독창의 아이콘/ 스/ 티/ 브/ 잡/ 스/103
  • 자 잡지 등에 광고하는 등 적극적인 홍보활동을 함으로써 애플 성공 신화의 디딤돌 역할을 톡톡히 해 준 효자 제품이 되었다. 3. Apple Ⅲ & Lisa AppleⅡ의 화려한 성공으로 안정된 자본을 구축하던 1980년, 경쟁사 IBM이 시장을 빠르게 확보 해 나가자, 후속 제품인 AppleⅢ를 출시하였다. 디즈니랜드 전체를 빌려서 출시 행사를 하는 등 회 사 전체를 걸고 개발한 제품이었지만, 결과는 참패였다. 첫째로 비싼 가격이 문제였다. $1,299였던 AppleⅡ에 비해, AppleⅢ는 기본라인($4,000), 고급라인($7,800)으로 매우 고가여서 AppleⅠ,Ⅱ에 비 해 가격의 대중성이 부족했다. 둘째는, 제품 자체의 하자 때문이었다. IBM에 맞서기 위해 너무 급하 게 개발되어 그런지 심각한 발열 증상과 호환성에서 문제가 제기됐다. 이러한 AppleⅢ의 여러 문제 점으로 인하여 판매가 원활하지 못했고 이는 곧 회사에 엄청난 손실을 안겨줬다. 잡스는 그러나 여기서 포기하지 않았다. AppleⅢ의 참패를 잊고 1983년 Lisa라는 제품을 출시한다. 기존의 Apple 라인과 달리 Lisa는 개인용 컴퓨터 최초로 GUI(그래픽 유저 인터페이스)운영체제인 ' 리사 OS'를 탑재하였다. 이는 문자가 아닌 그래픽으로 표시되는 인터페이스로서, 그 당시 매우 획 기적인 아이디어였다. 이에 더하여 용량 확장이 가능한 메모리 슬롯 장착, 하드디스크 지원 등 다 양한 기능이 추가 되었다. 잡스는 성공을 확신했지만 Lisa 역시 실패하고 말았다. 원인은 역시 ‘고 가와 기본성능의 문제’. 가격은 무려 $10,000 육박했고, 다양한 기능을 갖춘 대신, 이 기능들을 받쳐 주는 CPU 속도가 매우 느려져 이용에 불편을 초래한 것이다. 이렇게 애플Ⅲ와 Lisa가 연이은 참패 는 훗날 존 스컬리 등 경영진과의 마찰과 더불어 자신이 설립한 애플에서 쫓겨나는 큰 이유가 된다. Macintosh 시리즈 Mac시리즈의 시초 Macintosh 여기 애플만큼 그 이름의 유래가 특이한 제품이 있다. 바로 현존하는 Mac시리즈의 시초이자, 본격 적으로 개인용 컴퓨터 시대를 연 Macintosh이다. Macintosh란 이름은 당시 매킨토시 컴퓨터 프로젝 트 팀의 리더가 좋아하던 사과 품종 'Mcintosh'에서 유래되었다. 철자를 잘못 알아 Macintosh로 표기 했는데, 그대로 굳어졌고 나중엔 사과 이름보다 훨씬 더 유명해 졌다. 사과 이름이 사과(Apple)라는 회사 제품에 부여된 독특한 케이스이다. 편리한 개인용 컴퓨터의 시대를 열다 1983년까지 Apple Lisa로 참패를 한 스티브 잡스는 그간의 실패가 자신이 소비자를 고려하지 않았 기 때문이라는 것을 발견했다. 따라서 Macintosh(1984) 의 설계목적은 처음부터 ‘컴퓨터의 대중화’ 였다. AppleⅠ의 설계목적이 단순히 개인용 컴퓨터의 개발이었다면 Macintosh의 목적은 컴퓨터 전 문가들만이 아닌 개인도 컴퓨터를 쉽게 사용할 수 있도록 만들자는 업그레이드 버전이었던 것이다. 따라서 많은 기능들이 ‘편리함’을 위해 개발되고 발전되었다. 업그레이드 된 GUI 시스템 Macintosh가 기존의 Apple과 가장 큰 차이점은 마우스의 사용이었다. 하나의 버튼으로 컴퓨터를 자 유자재 사용할 수 있는 마우스는 Macintosh의 획기적인 기능이었다. 이러한 마우스는 GUI 시스템을 조금 더 편리하게 사용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역할을 했다. 아이콘과 메뉴를 마우스 하나로 클릭만 하면 컴퓨터를 사용할 수 있어 모두가 쉽게 사용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이러한 기능을 두 팔 벌려 환 영한 곳들이 있다. 바로 출판 분야와 교육 분야다. 먼저 출판 분야에서는 Macintosh 덕분에 컴퓨터 를 이용하여 보고서, 서적 등의 인쇄물을 만들어내는 ‘탁상 출판’이 출판계에 등장하며 혁명을 일으 켰다. 또한 쉬운 사용법과 컬러 그래픽 디스플레이에 의한 시각적인 자극이 어린이들과 교사들에게 크게 어필하여 많은 교육인들이 Macintosh를 교육용으로 사용하기 시작했다. Macintosh 시리즈 MacintoshⅠ은 출시 당시 엄청난 관심을 불어 모았지만 스티브 잡스의 기대와 달리 판매에서는 부진 을 면치 못했다. 우선 가격을 낮추다보니 컬러 화면이 아니었고 스크린 크기도 경쟁제품인 IBM PC 보다 작았다. 확장 슬롯도 없었다. 애플은 매킨토시 I의 부진을 만회하기 위해 매킨토시 II를 1987년 출시하는 한편, 보급형 ‘매킨토시 SE’, ‘매킨토시 LC’ 등을 잇따라 선보였다. 하지만 여전히 시장은 IBM과 마이크로소프트 연합군이 지배하고 있었다. 104기술인문융합 창의형 인재 / Creative Leadership 융합과 독창의 아이콘/ 스/ 티/ 브/ 잡/ 스/105
  • 레티나 디스플레이 (Retina Display) 애플사의 스마트폰인 아이폰 4에 탑 재된 디스플레이로, 인간의 망막으로 구별할 수 있는 인치당 픽셀수(pixels per inch)를 넘어서는 고해상도의 디 스플레이. 의미를 강조하기 위해 막이 라는 뜻을 가진 ‘레티나 (Retina)’와 ‘디 스플레이(Display)’라는 단어를 결합하 여 만든 용어 Mac(Computer) 시리즈 Mac의 진화 Macintosh는 Mac 시리즈로 그 명성이 이어지고 있다. 다만 Mac- intosh 때와 달라진 점은 기존의 Desktop만 개발 하던 방식이 아 닌 노트북 방식의 ‘MacBook Air’와 ‘MacBook Pro’, 본체+모니터 의 결합 제품인 ‘iMac’, 모니터를 없애고 Desktop을 강화한 ‘Mac Pro’, Desktop을 축소시켜 휴대할 수 있도록 만든 ‘Mac mini’ 제품 등으로 제품군을 확대해 나가고 있다는 점이다. 그리고 최근에 는 MacBook Pro에 Retina display를 결합시켜 고해상도의 디스플 레이를 탑재한 노트북을 생성하는 등 기존 제품의 기능에 안주 하지 않고 계속하여 기술을 발전시키고 있다. ●●Mac 시리즈 종류 및 비교 표 iPod(Mp3) 시리즈 손안의 작은 변화 잡스가 21C들어 처음으로 발표하며 세상 을 놀라게 한 주인공은 iPod이었다. 평상시 음악 듣기를 좋 아하던 잡스는 들고 다니기 무거운 카세트 라디오와 CD Player를 대신할 만한 제품을 연구하다가 iPod을 발명했다. 잡스는 iPod을 내놓고 음악을 들을 수 있는 프로그램 iTunes를 출시했다. 0.99달러 만 내면 언제 어디서나 원하는 음악을 들을 수있는 획기적인 서비스였다. 2001년 첫 iPod 출시를 시 작으로 최근 2012년 ‘iPod touch 5G’에 이르기까지 많은 기능들이 업그레이드 되었다. 특히 2012년 9 월에 출시된 ‘iPod touch 5G’는 기존 iPhone 제품에 탑재되어 있던 ‘Siri(비서 기능)’을 탑재하였고, 5 백만 화소의 iSight 카메라를 통해 파노라마 촬영을 가능하게 하였다. 또한 ‘Dual core A5’칩을 통해 처리 속도와 그래픽 능력을 향상시키고 알루미늄 바디에 컬러가 직접 결합되어 풍부하고 선명한 컬 러를 내는 디자인까지 선보이며 iPod의 화려한 복귀를 알렸다. ●●iPod 시리즈 종류 및 비교 표 106기술인문융합 창의형 인재 / Creative Leadership 융합과 독창의 아이콘/ 스/ 티/ 브/ 잡/ 스/107
  • iPhone(Mobile Phone) 시리즈 스마트폰 세상의 시작 ‘세상은 iPhone 출시 이전과 이후로 나뉜다.’ 잡스가 말했다. 그리 고 그것은 현실이 되었다. 2007년 첫 스마트폰인 iPhone3G을 시 작으로 3GS, 4G, 4GS 를 거쳐 2012년 LTE 방식의 iPhone 5G가 출 시되었다. 파워풀한 A6칩을 탑재하여 기존보다 성능은 좋지만 배 터리 소모는 적도록 만들었으며, 초고속 무선 네트워크 실현, 선 명한 4형 Retina 디스플레이 탑재 등 기존 제품에 비하여 기능 면 을 모두 발전시켰다. 매년 색다르고, 획기적인 모습을 보여주었 던 것과는 달리 기존의 제품과는 디자인이나 특징 면에서 다르지 않다며 애플의 색깔을 잃었다는 비난 여론이 적진 않다. 하지만 애플의 노하우, 철학, 기술이 담긴 스마트폰이 사람들의 생활, 행 동 패턴을 바꾸었으며 계속하여 그 삶의 질을 향상시키려 노력한 다는 점에는 모두가 이견이 없을 것이다. ●●iPhone시리즈 종류 및 비교 표 iPad(Tablet Computer) 시리즈 Mini의 시대 ‘이 바쁜 시대에 이동하며 업무를 할 순 없을까?’라는 고객의 needs에 귀 기울여 MacBook을 탄생시켰다. ‘MacBook은 편리해 서 좋은데, 좀 더 가벼울 순 없을까? 이동하며 책도 볼 수 있으 면 좋겠다.’라는 소비자 마음을 또 파악한 애플은 이번엔 더 작은 iPad(Tablet Computer)를 탄생시켰다. iPhone처럼 통화도 할 수 있 고 iPod처럼 음악도 들을 수 있는 진정한 Multi-Mini Computer 가 탄생한 것이다. 그러나 애플은 이제 만족하지 않고 기능은 유지 하되 휴대성은 조금 더 용이한 ‘iPad mini’를 출시하였다. 그리고 시대의 흐름을 쫓아 LTE 기능(Cellular)까지 탑재하며 ‘만능기계’ 임을 과시했다. 소비자들은 몇 년 후에는 더 작지만 더 기능이 다 양한 제품을 출시할 것이라 기대하고 있다. ●●iPad 시리즈 종류 및 비교 표 108기술인문융합 창의형 인재 / Creative Leadership 융합과 독창의 아이콘/ 스/ 티/ 브/ 잡/ 스/109
  • e(Economy; 경제) : 성과창출 차고에서 시작된 세계 1위의 기업, 2010년 5월 26일, 애플의 새 역사가 쓰였다. CNN : 애플은 IT업계의 최대 기업이 되었습니다. 시장가치가 오랜 라이벌인 마이크로 소프트를 넘어섰습니다. CNN은 애플의 영원한 라이벌인 MS를 이겼다는 소식을 전하였다. 사실 애플은 참으 로 고비가 많은 회사였다. 처음 PC 시대를 만들었으나, IBM, MS 등의 회사들과 경쟁 하며 밀리기 시작했다. 그러나 2000년 초반 이후, iPod, iPhone, iPad 등의 모바일 기 기를 바탕으로 다시 일어나기 시작했다. 1980년만해도 애플은 IBM의 상대가 되지 못하였다. 그리고 1986년 상장된 MS에게도 1989년 이후로 밀리기 시작했다. 잡스의 해고와 PC의 표준화가 진행됨에 따라 애플 의 시가총액은 고전을 면치 못하였다. 그리고 96년 말, 결국 구세주로 스티브 잡스를 재영입하기에 이른다. 잡스가 복귀한 후 꾸준히 성장가도를 달렸지만 최고치를 기록 한 MS의 시가총액(6,024억달러)에는 비교도 안되는 165억달러를 기록한다. 하지만 2000년 이후 모바일 시장에 뛰어들면서 애플은 무섭게 성장하기 시작한다. 결국 2010 년 애플 2,959억달러, MS 2,399억 달러로 숙명의 라이벌 MS를 이기게 되었다. 차고에 서 시작된 애플이 MS라는 거대기업을 이기게 된 역사적인 순간이었다. 또한 2011년 8월. 애플은 최초로 일시적이지만 시가 총액 1위인 석유회사 Exxon mobil 을 제치는 쾌거를 이룩한다. 그리고 다시 2012년 1월, $4237억달러(한화 약 477 조원)으로 1위 자리를 탈환했다. 그렇다면 APPLE 이처럼 경이로운 수익률을 낼 수 있던 이유는 무엇일까? 1. 변신의 귀재 ‘Apple’ 애플은 대표적인 PC회사였다. 2000년대 들어서 모바일 시장에 뛰어들기 전까지 애 플의 대다수의 매출 비중은 Macintosh 차지였다. 그러나 ‘iPod’, ‘iPhone’, ‘iPad’의 잇 달은 출시에 따라 애플의 사업 및 매출 구조가 변화하기 시작했으며, 2002년 애플 매출의 79%를 차지하던 매킨토시는 2009년 32%로 급감하였고, 2001년 출시된 ‘iPod’ 은 2002년 3%에서 'iPhone’이 출시되기전인 2006년에는 애플 전체 매출의 50%를 차 지하게 되었다. ▼ 애플 제품별 매출 비중 (2002~2009년) 단위: % 구분 2002 2004 2006 2007 2008 2009 매킨토시 79 59 38 42 38 32 아이팟 3 19 50 44 33 28 아이폰 - - - 3 18 30 기타 18 21 12 11 10 9 계 100 100 100 100 100 100 주 : 아이팟에는 아이팟, 악세사리, 아이튠즈 매출 등이, 아이폰에는 아이폰, 악세사리 매출 등이 포함 110기술인문융합 창의형 인재 / Creative Leadership 융합과 독창의 아이콘/ 스/ 티/ 브/ 잡/ 스/ 111
  • 그리고 2007년 출시된 ‘iPhone’은 3%에서 2009년 30%로 증가하였으며 2010년 'iPad'를 출시를 기반으로 애플 매출의 대다수는 모바일 제품이 차지하게 되었다. 이러한 모 바일 제품들의 성공으로 애플은 ‘애플 컴퓨터’에서 ‘애플’로 이름을 바꾸었고 이 변신 이 훗날 시가총액 1위의 기업을 만드는 중추 역할을 하였다. 2. ‘Apple'의 수익률 = Application, 디자인, 낮은 비용 모바일 시대가 시작되면서 너나 나나 모바일 시장에 뛰어들었지만 ‘애플’은 줄곧 그 경쟁사회에서 상위권을 차지하고 있다. 애플과 삼성(정보통신 모바일 사업부)의 2012년 3분기 시장 점유율. 애플은 16.6%, 삼성은 35.2%를 차지하여 누가 보아도 삼성의 승리였다. 그러나 자세한 내막을 살 펴보면 애플의 매출은 ‘39조 9000억원, 순이익 9조원’, 삼성의 매출은 ‘29조 9200억원, 순이익 5조 6300억 원’으로 애플의 압도적인 승리임을 알 수 있다. 영업 이익률 역시 애플은 30.4%, 삼성은 15.5%로 2배의 차이를 보이지만 애플의 수익이 삼성보다 더 큰 이유는 바로 ‘앱(Application)’과 디자인, 낮은 부품조달 단가와 인건비 덕분이다. ‘Application’이란 기존에 없는 기능은 아니었다. 하지만 애플은 이 기존의 기능을 조 금 더 사람이 사용하기 편리하도록 만들고, 사람이 원하는 기능을 탑재하며 소비자 들의 마음을 사로잡았으며,‘아름다운 것’을 추구하는 인간의 욕구를 반영하여 ‘사고 싶은 제품’을 만들었다. ‘저가로 부품 조달’하는 방식도 애플의 이익률 창출에 기여했 다. 애플의 제품들은 여러 기업의 부품으로 제작되고 있는데, 이러한 조달업체들을 경쟁 붙여 낮은 단가로 구매하고 있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낮은 인건비’ 전략이 애플의 경이로운 이익률에 일조하였는데, 이 부분 은 애플이 더 성장하기 위하여, 그리고 스티브 잡스와 같은 경영인을 육성할 때 보완 할 점으로써, 앞으로 개선해 나아가야 할 부분이다. c(Culture; 문화) : 문화적 요소 가미 유비쿼터스의 시초 ‘iTunes’ 언제나 어디서나 ‘iTunes’ 잡스는 음악을 사랑했다. 사실 사과 한 입을 물어 베어 만들어진 지금의 ‘애플 로고’ 도 잡스가 사랑했던 ‘비틀즈’의 앨범 자켓에서 영감을 얻었다. 당시 잡스는 이 로고를 얻어오기 위해 비틀즈가 운영한 ‘애플 레코드’ 와 계약을 맺었다. 그리고 계약의 내 용엔 이러한 문구가 있었다. ‘음악 산업에 진출하지 않겠다’. 그러나 2001년 iTunes를 출시하며 애플은 소송에 휘말렸다. 잡스는 이러한 아이튠즈 개발을 통해 21세기 유비쿼터스 시대를 창조했다. 이는 다 른 기업들이 시도조차 하지 못했던 혁신이며 문화였고, 애플의 경쟁력이었다. 또한 잡스는 iTunes 산업을 통해 새로운 음악 비즈니스 모델을 창조했다. 당시 ‘냅스터’라 는 P2P 사이트로 인해 음반 저작권이 침해당하고 있었다. 잡스는 iPod과 iTunes의 편 리한 구동화를 무기로 음악을 정식으로 구매하도록 자연스레 권유하며 음악 저작권 보호에도 힘쓰기 시작했다. 음반사에는 이익을 주고 소비자에게는 편리함을 주며 2 마리 토끼를 다 잡을 수 있었던것이다. 잡스는 여기서 멈추지 않고 iTunes 기반의 제품인 iPod touch 와, App Store 기반의 iPhone을 출시하였을 뿐 아니라 소셜 네트워킹 서비스(SNS)와 게임 등 각종 서비스 를 소비자가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도록 하여 아이폰 중독 현상의 바탕을 이루게 하 고 있다. 이제는 음악, 영상 뿐만 아니라 ‘iBooks'라는 서비스를 통해 iPad를 기반으 로 iBooks가 탄생했다. 잡스와 애플이 탄생시킨 iPhone, iPod, iPad 그리고 iTunes를 통해 사람들은 부엌에서 Macbook 으로 듣던 비틀즈의 'Let it be'를 자신의 방에서 이어 들을 수 있는 새로운 문화가 창조 되었으며, 2012년 3분기 현재, 아이튠즈를 통한 매출은 22억 9,600만으 로 전년 동기 대비 성장률이 37%나 될 만큼 지속 적으로 성장하고 있다. 회사명 Apple SAMSUNG 시장점유율(2012 년 3분기) 16.6% 스마트폰 35.2% 스마트폰 시장 총 수익(2012 년 3분기) 매출 순이익 매출 순이익 39조 9천억원 9조원 29조 9천2백억원 5조 6천 3백억원 영업 이익률 30.4% 특징 적은 시장 점유율, 높은 시장이익 = 고 부가가치 사업유형 높은 시장 점유율, 낮은 시장 이익 112기술인문융합 창의형 인재 / Creative Leadership 융합과 독창의 아이콘/ 스/ 티/ 브/ 잡/ 스/ 113
  • 나만의 가상공간 ‘iCloud’ iCloud의 기원은 2000년 개발된 서비스 iTools를 시작으로 2008 ‘모 바일 미’서비스부터 대중화되어 2011년 iCloud가 정식으로 출범되 었다. iCloud란 클라우드 서비스 시스템으로, 구매한 응용 프로그 램들이나 컨텐츠들을 iCloud라는 가상 공간에 저장한 후 자신이 필요할 때 다운로드 받는 서비스이다. 기존 iTunes가 애플제품에 서만 사용 가능했다면 iCloud는 MS Windows 에도 호환되는 장점 을 지니고 있으며, 어느 장소, 시간, 기기에 구애받지 않고 iCloud 에 접속만 하면 자신이 보관해 놓은 자료를 다운받을 수 있는 장 점이 있다. 이에 더하여 기존의 ‘모바일 미’라는 서비스에서 사용 했던 이메일, 연락처, 캘린더, 노트, 알림 기능등을 동기화하여 사 용할 수 있어 더욱 편리하게 사용할 수 있게 되었다. 즉 이제는 제 품을 가지고 다니지 않아도 어디서나 나의 동영상, 영화, 음악 등 을 내가 현재 지니고 있는 기기로 옮겨서 실행할 수 있다는 점에 서 PC 시대의 종말을 가져왔던 애플이 이제는 ‘Mobile(정보통신 에서 휴대성을 가진 것)의 시대의 종말도 가져올 것으로 볼 수 있 으며, 유비쿼터스의 진정한 시대를 초래한 것이다. h(Human ; 인간 중심) : 인간 중심의 디자인 인간을 위한 App. iPod의 디자인 공학 잡스와 생전에 절친했던 애플의 前 수석 부사장은 iPod이라는 제품의 탄생에 대한 회고를 보면 “잡 스는 ‘누구나 사용할 수 있는 작고 가벼우면서 버튼도 딱 하나만 있는 단 하나의 디지털 기기를 만 들고 싶다.’ 라고 했으며, 그는 iPod을 만들었다. 하지만 개발자들이 만든 샘플이 너무 크자 잡스는 그 것을 어항에 던져버리며, ‘어항에 넣으니 거품이 올라오는데 빈공간이 있으니 거품이 나오지 않 냐’ 면서 다시 만들자 했다. 그래서 지금의 iPod이 탄생한 것이다.”라고 회고했다. 이 일화를 통해 단순히 외관의 모형으로만 생각했던 ‘디자인’의 의미가 사람들을 편리하게 도와주는 ‘기능’으로 탈 바꿈시켰다. 이동하면서 음악을 듣게 해주는 기술에 단 하나의 버튼으로 누구나 조작할 수 있도록 만드는 ‘디자 인’. 이러한 기술과 사람을 생각하는 그의 인간 중심적 사고가 오늘날의 iPod 및 여러 제품들을 탄생 시킨 것이며, 이것이 그의 ‘H'경영철학이었다. 이젠 없어선 안될 Application. 요즘 현대인들의 일상생활을 보면 아침에 휴대폰 알람기능에 맞춰 일어나, ‘대중교통’앱으로 출근 할 때 타야할 버스의 도착시간을 살펴보며, 출근 하면서‘종합 신문’을 보기 위해 휴대폰 비서인 siri 에게 ‘신문’ 앱을 켜달라고 부탁한다. 현대인들에게 핸드폰은 단순한 ‘통화 기능’을 하는 기계가 아 니라, 모든 것을 함께하는 ‘일상 생활의 동반자’인 것이다. 이렇게 핸드폰이 ‘인생의 동반자’가 될 정 도로 중요해 진것은 그들이 가지고 있는 ‘Application'이라는 서비스 기능 덕분이다. Application(앱) 은 기존에 없던 기능은 아니었지만, 잡스의 iPod을 시작으로 점차 다양한 기능을 하기 시작 했다. 인간중심의 경영자, tech+ 형 CEO 스티브 잡스, 그가 보여준 경영철학과 그에 따른 업적들은 그가 죽은 지금, 세계의 많은 경영학자들과 CEO들에게서 회자되고 있으며 본받아야 할 점으로 주목받 고 있다. 그의 실질적인 리더십(ICON)은 오늘날 한국 CEO들에게 본받아야 할 리더십으로 각광받 고 있다. 유비쿼터스(Ubiquitous) 1. 만능 정보 통신망 2. 언제 어디서나 어떤 단말기로든 각 종 콘텐츠를 자유자재로 이용할 수 있 는 네트워크 환경 아이튠스 (i Tunes) 1. ‘디지털 미디어 플레이어’ 2. 자신이 원하는 노래나 동영상, 게임, 영화 등을 구입하여 다운로드 할 수 있 으며 이렇게 다운 받은 컨텐츠들을 재 생하고 관리하는데 주로 사용 3. 애플 스토어에서 다운 받은 애플리 케이션도 관리하며, 애플의 여러 제품 들에서 다운 받은 콘텐츠들도 모두 관 리하는 역할 4. 하나의 프로그램으로 여러 기기들을 관리할 수 있으며 모든 것들을 연결해 주는 중심의 역할 114기술인문융합 창의형 인재 / Creative Leadership 융합과 독창의 아이콘/ 스/ 티/ 브/ 잡/ 스/ 115
  • APPLE READERSHIP = I+C+O+N I+C+O+N (소통+창의+융합+고객생각) I : Interaction(소통) 사람, 직원, 세상과 소통하라 “혁신은 당신이 함께하는 사람들과의 관계에 있습니다. 그들과 얼마나 많이 소통 하고 얼마나 많이 공유할 수 있는지, 혁신은 그것과 관련이 있습니다.” <스티브 잡스, 1998년 포춘 인터뷰에서> 1. 사람들과 소통하고 또 그들을 소통하게 하라 Podcast(팟캐스트)가 만든 소통 스티브 잡스가 펼친 세상은 한 나라를, 아니 전 세계를 묶어주고 있다. 그가 스마트 폰을 만들지 않았더라면, 전 세계의 많은 사람들이 이동하며 쉽게 Youtube를 시청하 고, ‘글로벌 소통’의 덕을 가장 많이 본 ‘한류스타 싸이’가 탄생할 수 있었을까? 제주 에서 일어난 사건이 1초도 안되어 서울에 퍼지고, 1분도 안되어 전 세계에 퍼질 수 있는 이 놀라운 소통의 세상을 만든 이가 바로 스티브 잡스다. 먼저, 팟 캐스트란 iPod의 Pod, Broadcast의 cast가 만나 탄생한 신조어(Podcast)로서, 드라마나 라디오 등의 다양한 콘텐츠들을 인터넷을 통해 제공하는 서비스이다. 주 로 Podcast는 라디오 프로그램들을 듣는 방송으로 잘 알려져 있으며, 기존에 방송시 간에 맞춰 들어야 했던 라디오 시스템과는 달리, iPod이나 iPhone의 스마트 기기로 구독만 신청해 놓으면 자동으로 다운로드 받아 언제든지 들을 수 있다. 이러한 프 로그램들은 주로 각종 Application 마켓이나 iTunes에서 다운받을 수 있는데 이 Pod cast의 가장 큰 수혜를 본 사람이 바로‘나는 꼼수다’의 김어준씨와 같은 시민 방송가 집단이다. 하지만, 김어준씨는 애플의 어떤 제품도 사용하지 않고 여전히 구식의 휴대폰을 쓰 고 있다. 이에 대해 그는 ‘아이폰 등의 애플 제품을 쓰지 않아도 iTunes, Podast, 시대 의 흐름만 잘 파악하여 제공하는 서비스를 이용하면 ‘구식’에서 ‘신식’의 대표주자가 될 수 있다고 한다. 즉, 시대의 흐름을 잘 파악하여 이용하면 새로운 세상도 만들 수 있다고 얘기하고 있다. 고객과의 소통 잡스는 신제품을 출시할 때마다 직접 고객들에게 제품을 설명하고 싶어 한 것만 보 아도 얼마나 그가 고객과 소통하고 싶어 했는지 알 수 있었다. 고객과의 소통에 관한 몇 가지 일화를 보면 2008년, 한 고객이 잡스에게 ‘Blackberry 는 자기 전화와 컴퓨터를 테더링(휴대전화를 통해 컴퓨터 기기에 인터넷을 연결할 수 있는 기능)하여 무선인터넷(Wi-fi)에 접속 할 수 있는데 왜 iPhone은 안 되는가?’ 라고 묻자 잡스는 “나도 당신의 생각에 동감한다. 그 문제는 AT&T(미국의 통신사)와 논의하고 있다” 라고 답변했다. 그리고 이 서비스는 얼마 지나지 않아 출시된 iPhone 에서 실현되었다. 또 다른 일화로는 어떤 사람이 잡스에게 이메일로 ‘무선인터넷(Wi-fi)를 이용해 iP- hone 과 Mac컴퓨터를 동기화할 수 없느냐’라고 묻자 잡스는 그에 대해 긍정적으로 'Someday(언젠가는)‘이라고 답하였고 그 기술은 업그레이드 된 iPhone폰의 혁신 기 술로 등장하였다. 이처럼 잡스는 ’고객‘들과 소통하며 더 나은 더 좋은 제품을 만들 기 위해 노력하였으며, 그의 ’소통‘과 ’노력‘이 오늘날 고객이 사랑하는 기업 ’애플‘을 만든 것이라 할 수 있다. 2. 동료(직원), 그리고 나의 Team과 소통하라 최선의 아이디어를 위한 소통 잡스가 사망한 후 많은 사람들의 잡스에 대한 자서전을 쓰면서 그의 성격을 완벽주 의, 고집쟁이, 편집증이라 일컬으며 그의 아집 있는 행동들을 비판하기도 했지만, 생 116기술인문융합 창의형 인재 / Creative Leadership 융합과 독창의 아이콘/ 스/ 티/ 브/ 잡/ 스/ 117
  • 전에 그는 더 멋지고 나은 ‘제품’을 위해서라면 회사의 동료들과 소통하기를 마다치 않는 ‘소통형 리더자’였다. 생전에 잡스는 신제품이 출시되기 전 가장 먼저, 회사의 중역들, 중간 관리자, 엔지 니어 등 100명으로 구성된 사람들에게 보여주며 그들의 아이디어를 경청했다. 또한 그들에게서 나온 많은 의견들을 수렴하여 수정하고 또 수정했으며, 많은 제품이나, 매장 운영 등에 대한 아이디어는 그의 밑에 있는 사람들이 주도적으로 진행하게 하 여 많은 결정권을 주었다. 이것은 사람들에게 책임감을 주면서 그들이 회사에서 중 요한 사람이라는 것을 인식시켜주는 것이었다. 신제품 출시 당시, 자신 회사에서 내놓은 제품을 보며 ‘자신이 마들었다. 나는 대단 하다’ 라는 말 대신 ‘우리 회사가 만들었다. 우리 제품이다. 이렇게 멋진 제품을 당신 들은 본 적 있는가?’라고 말한다. 즉, 잡스는 자신 외에도 이 제품을 만들어내느라 수 고한 많은 직원들에게 칭찬과 격려를 아끼지 않았으며, 이것은 프로젝트를 함께한 직원들의 성과가 인 정되고 그들의 노력 또한 보상받는 것이다. 잡스가 생전에 친했던 월스트리트 저널 칼럼리스트 월트 모스버그와 나눈 대화 중 ‘소통’과 관련하여 나눈 대화를 보면 월트 모스버그가 “시판적인 기자 외에 직원들 이 당신의 잘못으로지적하기도 합니까?”라고 묻자 잡스는 “그럼요, 언제나 논쟁합 니다.”라고 답하였고 월트는 “논쟁할 때 당신이 언제나 이기지 않습니까?”라고 묻자 잡스는 “늘 그러면 참 좋겠지만, 그럴 수 없죠. 뛰어난 인재들과 함께 일하려면 그 들이 스스로 많은 결정을 할 수 있게 해야 되고, 위계질서가 아닌 그들의 생각, 아이 디어에 의하여 경영이 되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반드시 최선의 아이디어가 채택되 어야 합니다.”라고 답했으며, 이것은 그가 진정한 ‘소통 CEO'임을 입증하는 것이다. 한국의 기업도 세계적인 리더십 패러다임의 변화에 따라 ‘소통’을 외치기 시작했다. 그러나 오랜 전통의 유교문화에서 비롯된 ‘위계질서’를 타파하는 일은 그리 쉽지 않 다. 그러나 잡스의 말처럼, 위계질서가 있으면 더 창의적이고 혁신적인 아이디어를 지닌 부하직원의 말을 무시하게 되고, 그리하면 그들은 그 ‘최선의 아이디어’를 놓치 게 될 것이다. 잡스처럼 고객과 소통하고, 사람들을 소통하게 하고, 그리고 직원들과 소통했던 ‘소통’의 리더십이 세계를 변화시켰고, 새로운 리더십 패러다임을 구축했 고, 또 여러 혁신적인 제품들과 기능을 낳았다. 한국의 CEO들이 ‘잡스의 경영방식’ 을 따라가고 싶다면 먼저 ‘소통’하는 법부터 배워야 하지 않을까. I+C+O+N (소통+창의+융합+고객생각) C : Creative(창의적) 사람들은 스티브잡스를 한 단어로 정의하자면 무엇이라 대답할까. 아마 ‘21세기 창조자’ 이지 않을까 싶다. 1. 불가능은 없다. 28초의 기적 잡스는 ‘불가능은 없다’ 라는 말을 많이 했다고 한다. 이러한 그의 철학이 오늘의 'Mac, i시리즈 등'을 탄생시켰다. 잡스의 ‘불가능은 없다’라는 모토와 관련하여 재미 있는 에피소드를 보면, 하루는 잡스가 Macintosh 개발팀을 찾았다. 엔지니어들을 방 문하던 중 부팅 시간이 지연된 것에 한 엔지니어가 변명을 하려 하자 잡스는 그의 말 을 끊고, “500만 명의 Mac 사용자가 매일 컴퓨터 부팅 시간을 10초 덜 사용한다면 연 간 3억 분이 절약되며 이는 100명의 사람들의 일생에 해당 한다”고 일침을 놓았다. 결국 그 엔지니어는 몇 주 후에 부팅 시간을 28초나 줄여 놓았다. 잡스는 ‘불가능이 없다’라는 모토로 Macintosh 의 부팅시간 단축 달성은 물론 엔지니어에게도 그의 가 능성을 일깨워 주었다. 물론 자발적으로 개발하여 얻은 성취감은 아니었지만, 이는 엔지니어에게도 분명 큰 경험이자 자산이 되었을 것이다. 이러한 잡스의 고집스러운 ‘가능성 타령’에 괴롭힘에도 불구하고 애플 엔지니어들의 퇴사율은 업계 최저 수준이었다. 그들은 애플에 남아있는 가장 큰 이유는 ‘이런 기적 이 일어나는 세상의 중심, ’애플‘에 다니고 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118기술인문융합 창의형 인재 / Creative Leadership 융합과 독창의 아이콘/ 스/ 티/ 브/ 잡/ 스/ 119
  • 2. 고정관념을 깨라 Think Different ‘당연한 것을 당연한 것으로 보지 말고, 바꾸고 또 뒤집어 보아라, Think Different'. 애플 회사의 초기 구호이다. 모든 제품에는 그 제품에 맞는 기능이 있고, 그 제품만 이 나타내는 특징이 있지만, 잡스는 ’Think Different' 라는 초기 구호를 가지고 세상 에 없는 정의들을 만들기 시작하였다. 2001년 처음으로 스티브잡스가 iPod을 발표 하기 전까지 세상에는 ‘iPod, iPad, iPhone, iTunes, Podcast' 라는 단어들과 정의가 존 재하지 않았다. 처음 휴대폰이 나왔을 때, 그것은 혁신이었고 새로운 세계였다. 이동하면서 멀리 떨 어져있는 가족들이나 친구들과 통화를 하는 것 자체가 너무나 신기했고, 작은 기기 가 편지를 배달해주는 우편배달부 역할을 한다는 것이 놀라웠다. 그러나 이제 휴대 폰은 단순히 ‘연락’을 주고받는 수단이 아닌 인간과는 떼어낼라 뗄 수 없는 ‘수족(手 足)이자 비서가 되어버렸다. 그리고 이러한 사태를 반영하듯, 내 손안의 비서 ’Siri' 가 탄생하였다. ‘Siri 기능’이란, 사용자가 원하는 것을 말했을 때 그에 대하여 응답해주는 일종의 ‘비서’ 기능이 다. 예를 들어Siri에게 “배고파” 라고 얘기하면, 바로 현재 위치에서 가까운 음식점을 찾아준다. 또한 ‘오늘 우산을 가지고 나가야 하는지, 어느 야구팀이 우승을 했는지, 친구와의 약속이 언제 였는지’ 등 ‘설마, 이런 것 까지?’ 라고 생각하는 질문에도 모두 답해주는 ‘인공지능’을 가지고 있다. MP3 Player인 iPod으로도 이제 는 친구와 영상통화를 할 수 있다. 바로 'Facetime' 이라는 기능 덕분이다. 또한 Tablet Computer인 iPad로는 친구와 함께 피아노 합주도 할 수 있 다. 스티브 잡스가 만들어 놓은 세상은 더 이상 mp3 player는 ‘음악 듣는 기계’, 휴대폰은 ‘통화하는 기계’, iPad 는 ‘업무 처리하는 기계’가 아닌, 통화도 하다가 업무도 하다가 음악도 듣다가 연주 도 하는 등 ‘모든 기계가 만능’인 세상이 되었다. 즉, 기존 제품이 가지고 있던 ‘고유 한 특징’이 없어지고, 제품의 ‘정의’ 라는 경계선이 허물어진 것이다. 이러한 ‘신세계’ 는 잡스가 가지고 있던 작은 생각. ‘Think Different' 바로 이 한 문장에서 비롯되었다. 3. 진보하라 한발자국 더 “가능한 한 가장 위대한 일을 하는 것, 혹은 거기서 한 발자국 더 나아가는 것이 목표 였다”. 잡스가 생전에 남긴 명언 중 하나다. 이미 그는 세상을 놀라게 하고 사람들의 생활 패턴과 문화를 바꾸는 등 위대한 일을 하였지만 그는 나아가 더 크고 광대한 일 을 하기 위해 한 발자국을 내딛기를 원했다. 우리는 믿습니다, 기술 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고. 더 빠르고, 더 얇고, 더 가볍다는 것 모두 좋지만기술이 한발 물러나 있을때 모든게 더 즐거워지고 비로소 놀라워지 는 것이라고 그것이 곧 진보이고 새로운 결과를만들어 내는 것. 바로 이런 것처럼. <애플 아이패드 2 광고, "우리는 믿습니다." 中> 진보의 필수요건 : 통찰력 잡스의 진보적인 성향은 그의 탁월한 통찰력에서 비롯되었다. 그리고 그의 통찰력은 여러 산업의 판도를 바꾸어 놓았다. Macintosh는 훔쳐온 걸작품? 1979년 스티브 워즈니악과 스티브 잡스는 제록스 회사의 초청을 받아 제록스 Palo Alto 연구센터를 방문하였다. 잡스는 그곳에서 자신을 흥분시키는 제품을 발견하였 는데, 그것은 바로 'Alto컴퓨터‘였다. ‘Alto컴퓨터’는 당시 기존에는 없는 획기적인 기능들이 탑재되어 있었다. 1979년까 지만 해도 컴퓨터는 복잡한 명령어를 입력해야 하는 체계를 지니고 있었지만, Alto 컴퓨터는 그림으로 이루어진 명령체계(GUI)와 그러한 명령을 '마우스'라는 입력기 로 조작할 수 있는 획기적인 기능이 내장되어 있었다. 당시 제록스의 엔지니어는 “ 그 당시 잡스는 이 기능의 성공 가능성을 보고 몹시 흥분한 상태였으며, 돈방석에 앉 혀줄 기능인데 왜 활용하지 않는냐며 소리를 질렀습니다”라고 회상했다. 그리고 잡 120기술인문융합 창의형 인재 / Creative Leadership 융합과 독창의 아이콘/ 스/ 티/ 브/ 잡/ 스/121
  • 스는 이 때 접한 ‘마우스’와 ‘그래픽 인터페이스 체제’ 를 바탕을 Macintosh 라는 컴 퓨터를 만들었다. 훗 날 사람들은 잡스의 이런 행동을 'IT업계 최고의 도둑질‘이라 칭하며, 획기적인 기 술의 성공 가능성을 보지 못한 ’제록스‘보다 그 기술에 대한 해안으로 Macintosh라는 걸작을 만들어낸 잡스를 칭찬하고 있다. 죽음마저 통찰한 잡스 췌장암 진단 이후, 수차례의 수술과 입원을 반복하였지만 잡스의 건강은 악화되어 갔다. 그리고 그의 건강에 따라 ‘애플’의 주가도 덩달아 변동되었다. 그만큼 애플에서 빼 놓을 수 없는 존재가 된 잡스는 자신의 죽음이 멀지 않았다는 것을 예견하고, 예일 대학 교수 ‘조엘 포돌니’를 HR팀의 부사장으로 임명하여 ‘애플의 미래를 책임질 프 로젝트’를 지시하였다. 그리고 잡스가 사망한 지금, 그 때 프로젝트를 진행하던 팀은 애플의 중요한 사안들을 분석하고 애플의 미래를 책임지는 핵심 구성원들이 되었다. 이처럼 잡스는 통찰력을 가지고 일개 애니메이션 스튜디오를 ‘세계 최고의 애니메이 션 기업’으로 진보시켰고, 다른 회사가 묵혀두고 있던 기술의 가능성을 보고 세기의 창조물 'Macintosh'를 탄생시켰다. 또한 자신의 죽음 및 죽음으로 인한 애플의 어두 운 미래를 통찰력으로 예견했던 잡스는, ‘애플 미래 계획 프로젝트’를 설립하여 자신 이 죽은 후에도 애플이 잘 운영될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하였다. 만약 잡스가 ‘미래를 보는 눈’을 가지고 있지 않았더라면 지금의 iPhone, iPad 등의 걸작품들은 물론 애플, 그리고 잡스 자신의 그 화려했던 인생마저도 없었을 것이다. 창조주가 창조물들을 파괴하다 PC를 창조한 아버지 스티브잡스가 2001, iPod이라는 모바일 기기를 출시하면서 스 스로. ‘PC 시대의 종말’을 거론했다. 그리고 2005년, 당시 회사 총수익의 45%를 차지 하던 iPod을 스스로 죽이고 이를 대체할 스마트폰을 만들기로 결정한다. 사회 현상 에 대한 정확한 관찰과 이에 대한 확신이 없었다면 불가능한 결정이었다. 그리고 또 다시 자신이 창조한 모바일 시대를 iTunes, iCloud 등의 동기화 프로그램들로 파괴하 려 하고 있다. 일반 기업이라면 자신의 제품에, 그것도 가장 핵심적인 수익 창출 모 델 제품을 파괴할 수 있는 새로운 제품 또는 기능은 출시하지 않는다. 그러나 애플은 달랐다. 스스로가 만든 제품이 더 이상 시대 흐름에 맞지 않는다면 과감히 버렸고, 그렇게 계속 파괴와 창조를 반복해가며 진보했다. PC 왕국의 종말 2007년까지 애플은 Macitosh의 명성으로 'Apple Computer, Inc.,'라는 명칭을 달고 있 었다. 그러나 iPod의 성공, 그리고 iPhone의 개발로 명실상부한 최고의 모바일 업 계가 되어 더 이상 ‘컴퓨터 회사, 애플’이라는 칭호는 어울리지 않았다. 프리젠테이 션 당시 잡스는 “회사 이름이 회사 이미지에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그래서 저는 오 늘 'Apple Computer., Inc.,‘가 ’Apple;로 바뀌었음을 알려드립니다.”라며 선포하였다. 자신이 만든 PC 왕국을 무너뜨리는 순간이었다. 왕국을 무너뜨린 왕의 얼굴에는 좌 절과, 안타까움 대신 환희와 열정, 그리고 희열이 담겨있었다. 잡스는 iPhone(2008), iPad(2010), 그 외에 각 제품의 업그레이드 시리즈 등의 출시를 통해 ‘PC왕국보다 더 거대한 ’Mobiel'왕국을 만들어 나갔다. 애플은 iPod을 출시하자마자 iPhone를 출시하였고 iPhone를 출시하자마자 iPad를 출 시 하였고, iPad를 출시하자마자 iTunes와 iCloud로 이러한 모바일 기기들이 필요 없 는 세상을 만들었다. 애플의 끝없는 욕심과 진보에 대한 갈망은 자신이 만들어낸 ‘혁 신’이라는 기록을 계속하여 갱신한 것이다. 실제로 iTunes의 성장속도는 매우 빠르 다. 2012년 3분기 iTunes로 인한 매출은 22억 9,600만 달러로 전녀 동기 대비 성장률 이 37%나 된다. iPhone(56%) 다음으로 성장률 2위를 달릴만큼 꾸준히 영향력을 확 대해 나가고 있다. 같은 시대 안에서 제품을 파괴하여 새로운 제품을 만들거나, 그 시대 전체를 종식시 키고 새로운 시대를 창조한 잡스의 진보는 ‘사람이 살기 편한 세상’을 만들다 보니 ‘ 기술’의 진보가 덤으로 따라온 경우다. 즉, ‘진보’를 하고자 하는 목표가 다른 기업과 는 차이를 보였기 때문에 더욱 성장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성장은 하루 가 다르게 세상을 바꾸어 나가고 있다. 창조주가 창조물을 파괴하는 신기한 기업. 애 플의 진보는 지금도 1분1초마다 계속해서 진행되고 있는 중이다. 122기술인문융합 창의형 인재 / Creative Leadership 융합과 독창의 아이콘/ 스/ 티/ 브/ 잡/ 스/123
  • I+C+O+N (소통+창의+융합+고객생각) O : Open-minded (융합하라) To be intersection of technology and liberal arts. (기술과 인문학의 교차로에 있는 애플) <2010, iPad keynote 中> The Reason why Apple created Ipad : They've always tried to be intersection of technology and liberal arts. 기술과 인문학의 교차로에 서서 제품을 만들자는 애플社 철학 2010년 1월 27일. 잡스는 다시 한번 아무도 생각하지 못한 제품, iPad을 출시하였다. 프리젠테이션이 진행되는 내내 사람들의 박수와 탄성이 쏟아졌고, 프리젠테이션이 마무리 되어 갈 무렵, 잡스는 ‘세계 경영학자, CEO, 교수’들을 놀라게 하고, 수 천 개의 연구 보고서를 낳게 하고, ‘新 성장 패러다임’을 창출시킬 문장을 말한다. The Reason why Apple created iPad is they've always tried to be intersection of technology and liberal arts.(애플이 iPad를 만들 수 있었던 이유는 애플이 언제나 ‘기술과 인문학’ 의 교차로에 서 있고자 노력했기 때문이다. 대학에서는 ‘인문학과’들이 위기에 몰려 폐지되고 ‘인문학’은 구식, 촌스러운 이것으 로 인식되며 ‘경제, 경영 등’눈에 보이는 결과물이 있는 학문, 분야가 최우선시 되는 이 시대에 세계 최고의 기업이 ‘인문학’이 회사의 핵심 경쟁력이자 철학이라고 대답 한 것이다. 이후 애물단지로 여기던 ‘인문학’이 다시 재조명 되었고 잡스의 사례를 중 심으로 새로운 경영론에 대한 정의 및 해석이 시작되었다. 잡스는 단순히 ‘인문학’을 중시한 것이 아니라 ‘기술’과 ‘인문학’을 접목시켰다고 말하 였다. 서로 연관되어 보이지 않는 분야를 ‘융합’하여 ‘새로운 것(애플의 제품들)’을 창 출해 낸 것이다. 잡스는 인문학 중 특히 ‘철학, 예술, 심리’ 쪽에 관심이 많았으며 이 를 제품에 녹여내어 융합하였고, ‘인문학’외에도, 회사와 제품 개발에 도움이 된다면 ‘라이벌과 손을 잡는 일’도 마다치 않았다. 남들이 생각하지 못한 곳에서 ‘융합’을 시 도한 잡스의 리더십은 ‘성공적’이었다는 평가와 함께 미래 성장산업의 핵심 요인으로 손꼽히고 있으며 많은 경영자들도 시도하는 리더십 모델이 되었다. 1. 인문학과 융합하라(철학, 예술, 심리학 등) (a)나만의 ‘철학’으로 제품을 만들어라(철학 융합) 승려가 되고 싶었던 세기의 CEO 감탄을 자아내는 기술을 지닌 제품을 만들어내기에 많은 사람들은 잡스가 소위 말하 는 ‘이공계’였을 것이라 생각한다. 그러나 대학 시절 잡스의 전공은(비록 자퇴를 했지 만) ‘철학’과였다. 그는 평소에 대학생 시절 참여했던 ‘고전 읽기 프로그램’ 같은 것이 창의적 사고를 증진시키는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고 말했다. 잡스는 특히 동양 종교 에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동양 종교 중에서도 일본의 禪 (선)불교에 관심이 많 아 일본에서 승려 생활을 하는 것을 장래희망으로 삼을 정도였다. 그러나 주변의 만 류로 꿈을 접고 대신 후에 ‘불교식 혼례’로 그 아쉬움을 달랬다. 이렇게 잡스는 ‘철학’ 이라는 인문학에 깊이 심취해 있는 사람이었다. 124기술인문융합 창의형 인재 / Creative Leadership 융합과 독창의 아이콘/ 스/ 티/ 브/ 잡/ 스/125
  • Simplicity is the ultimate sophistication 그가 가장 좋아하는 단어는 ‘Simplicity, 단순함’이었다. 그래서 ‘원버튼 시스템’을 갖 춘 기기 iPod을 시작으로 이 후 iPad, iPhone 등도 모두 원버튼 시스템으로 제작 되 었다. 그가 이렇게 ‘단순함’이라는 철학을 가지고 제품을 만들게 된 것은 예술가이 자, 발명가이자, 철학자였던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명언에서 비롯되었으며, 잡스는 ‘단순한 것’이 ‘복잡한 것’과 반대 개념이 아닌 더 만들기 어렵고, 복잡함을 뛰어 넘 는 ‘초효율적인 것’이라는 상위 개념인 것을 깨닫고, ‘단순함’을 그의 제품 철학으로 삼았다. (b)디자인이 곧 기능이다.(예술 융합) 군더더기 없는 디자인 사람들은 잡스가 만들어낸 애플 제품의 디자인을 하나같이 ‘군더더기 없는 디자인’ 이라 부른다. 디자인은 간단하면서 아름다움으로 이목을 끄는 원버튼 기능의 iPod이 탄생하기 전 모바일 기계, 특히 휴대폰의 버튼은 매우 복잡한 구조로 되어있었다. 그 러나 잡스는 이렇게 복잡한 모바일 기기 형식에서 벗어나 ‘단순함’이라는 자신의 제 조 철학으로 ‘심플해서 배우기 쉽고 아름다운 디자인’을 지닌 제품을 만들고 싶어했 다. 몇 년의 연구와 개발 끝에 ‘원버튼’기능을 갖춘 iPod가 탄생했다. 사람들은 대부분 디자인을 겉포장쯤으로 생각한다. 하지만 이는 디자인의 진정 한 의미와 거리가 멀다. 디자인은 인간이 만든 창조물의 중심에 있는 영혼이다. by 스티브 잡스 iPod은, ‘디자인’이라는 단어가 단순히 외적인 모양만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제품의 ‘기능’ 그 자체임을 알리는 계기가 되었고 ‘예술(디자인)’이라는 인문학이 ‘기술(하나 의 버튼으로 모든 것이 가능)’과 만나 새로운 무언가(iPod)은 훗 날 인문학과 기술의 융합과 관련된 많은 연구에 참고자료가 되었다. 아름다움도 기능이자 경쟁력이다. 2012년 최근 출시된 iPod touch의 색감이 예사롭지 않다. 파랑, 노랑, 분홍, 회색, 진 회색, 그리고 한정판 빨강으로 총 6가지 색깔과 함께 iPhone touch는 더 다양한 기 능과 업그레이드 된 디자인으로 돌아왔다. 그런데 여기서 한 가지 주목해야 할 점은 iPod touch의 컬러가 단시 표면에 입힌 것이 아니라 직접 알루미늄 바디에 연결시키 는 기술로 탄생시킨 점이다. 직접 컬러를 알루미늄 바디에 연결하자 금속 광택을 지 속시켜주는 고채도의 컬러가 나왔고 재료가 컬러를 돋보이게 해주는 동시에 컬러 가 재질을 살려주며 서로 보완하는 역할을 하는 디자인이 탄생되었다. 즉, 디자인이 곧 기술이 된 것이다. 잡스는 인간에 대한 이해, 즉 인문학적 이해를 바탕으로 시각중심의 디자이너와 기 술 중심의 엔지니어 사이에서 인간의 본성을 제품에 주입하는 ‘인문학+기술’이라는 융합 프로세스를 잘 진행하여 혁신적인 누드디자인의 iMac과 최소한의 디자인으 로 다양한 기능을 즐기는 ‘미니멀리즘’ iPod 등의 제품으로 모바일 업계를 점령했다. (c) 감성마케팅(드라마광고)하라. (예술+심리 융합) 드라마 CF ; 1984 Macintosh 잡스는 철학, 예술이라는 인문학 외에도 인간의 마음과 생각이 담긴 ‘심리학’을 다룰 줄 알았다. 현재는 광고에 ‘드라마적인 요소’가 담기는 것이 일상 이지만 1980년대 당 시 광고는 말 그대로 회사의 제품을 ‘소개하는 시간’ 이었다. 그러나 1984년, 그는 광 고계에 엄청난 혁신을 불러 일으키는 광고를 제작하였고, 미국 사람들의 광고 시청 률이 가장 높다는 슈퍼볼 광고시간 때(1월) 첫선을 보였다. 광고 내용 ‘1984’라는 조지오웰의 동명 소설을 모티브로 삼아 ‘1984’에 나오는 거대한 126기술인문융합 창의형 인재 / Creative Leadership 융합과 독창의 아이콘/ 스/ 티/ 브/ 잡/ 스/127
  • 자본주의의 실체 ‘빅브라더’(IBM 役)에게 지배당하는 민중들(소비자役)을 해방시키 기 위해 영웅(Macintosh役)가 등장하여, 빅브라더의 대형 화면을 산산조각 내버리는 내용이다. 이러한 새롭고 독특한 방식의 광고는 곧 사람들에게 입소문을 탔고, 이는 곧 Macintosh의 매출로 연결되었다. 잡스는 인간, 즉 소비자의 ‘감성(심리)’을 자극하 기 위해 인간이 좋아하는 드라마틱한 예술적 요소와, TV 영상 기법이라는 ‘기술’ 이 3가지를 모두 사용하여 고객들의 마음을 사로잡았고, 이러한 계획을 성공시키기 위 해 저명한 SF 영화 감독인 ‘리들리 스콧’까지 영입하여 한편의 드라마같은 광고를 만 든 것이다. 이렇게 인간의 ‘감성에의 호소(심리)’와 ‘드라마(예술)’, 그리고 광고영상 기법(기술)의 융합을 오늘날에는 ‘감성마케팅’이라 부르며 이제는 대표적인 광고 기 법으로 사용되고 있다. 2. 경쟁사와 손잡아라. 적과의 동침 스티브 잡스가 다시 회사에 복귀한 후 진행된 연설에서 평생의 라이벌 인 ‘MS(Microsoft)’를 언급했다. 우리가 계속 전진하고 애플을 재건하기 위해서는 ‘애 플이 이기기 위해서 마이크로 소프트(MS)가 져야만 한다’ 는 생각을 버려야 합니다. 이러한 새로운 컨셉을 받아 들여야만 애플이 이길 수 있습니다. 그리고 더 많이 팔려 ▲ 1984년 Macintosh 광고 영상 고 하지 마십쇼. 대신 가장 좋은 것을 만듭시다. 잡스는 애플의 회복을 위해, 애플社 직원들의 사고 방식부터 고치려했다. 경쟁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최고의 제품을 만들면 되는 것이라는 가치관을 직원들에게 심어주기 시작했고, 이러한 그의 연설이 직원들에게 다시 재건할 수 있도록 용기를 주었다. 그리고 연설이 막바지에 이를 때 쯤, 따라서 저는 아주 의미있는 파트너를 소개합니다. 바로 MicroSoft입니다. 라고 외 치며 평생의 적수였던 MS사로부터 투자를 유치한다. 말 그대로 적과의 동침이었다. 이처럼 잡스는, 무너져 가는 회사를 위해서라면 적과의 융합도 마다하지 않았다. 그 리고 더 나아가 모두가 인정하는 라이벌을 ‘라이벌’로 보지 않고, 함께 협력하며 성 장할 수 있는 ‘동반자’로 인식하길 원했다. 진정한 융합 CEO로서의 면모를 보여주 는 세기의 사건이었다. 융합의 ‘i’ 요즘 애플과 삼성의 법정공방전이 매우 치열하다. 서로 기술에 대한 소유권을 주장 하며 양 측이 팽팽히 맞서 싸우고 있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애플 제품 iPhone에 ‘삼성’의 부품이 4가지 이상이나 들어있다는 점을 알고 있는가? iPhone의 구성 부품 을 자세히 살펴보면, 한국의 ‘삼성’기업 뿐만이 아니라 다른 부품 조달 기업, 영국, 독 일, 대만 등 다양한 나라의 다양한 회사의 부품이 자리잡고 있다. 이는 잡스의 ‘융합 리더십’이 반영되어 있기 때문이다. 최고의 제품을 만들기 위해서는 애플의 자체 기 술, 자체 부품으로만 구성하는 것이 아니라 원가, 기술 등을 고려하여 각 나라 최고 의 기능을 가진 부품들을 상호 결합해야 한다는 잡스의 철학이 담겨있는 것며, MS사 와의 협력이나, 경쟁 기업의 부품으로 이루어져있는 iPhone 은 잡스가 얼마나 ‘융합’ 이라는 부분을 강조했는지를 잘 보여준다. 128기술인문융합 창의형 인재 / Creative Leadership 융합과 독창의 아이콘/ 스/ 티/ 브/ 잡/ 스/129
  • I+C+O+N (소통+창의+융합+고객생각) N : Needs-centered (이익보단 고객의 마음을 먼저 생각하라) <2010, iPad keynote 中> “To be able to get the best of both to make it extremely advanced products.. From a technology point of view, also have them be 1. fun to use 2. easy to use ” “Fit the users, users don't have to come to them, they come to the users” “We hope you like an iPad as much as we do” 기술과 인문의 교차로에 있다고 말하며 애플의 융합철학을 말하던 2010년 iPad 발 표회 이 후 잡스의 ‘기술+인문’의 융합철학이 전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켰지만 그 대 목 뒤에는 잡스가 말한 또 하나의 중요한 리더십이 숨겨져 있었다. 바로 ‘고객 중심’ 의 리더십이었다. 잡스는 기술과 인문을 융합시켜 최고로 진보된 제품을 만들기 위해선 고객들이 ‘fun to use(사용하기 재미있고), easy to use(사용하기 편리해야)’ 한다고 말하였다. 또한 이 후, “Fit the users, users don't have to come to them, they come to the users”(애플은 고객이 제품에게 올 필요 없이 제품이 고객에게 가도록, 고객에게 눈높이를 맞춘다)’ 라고 얘기하며 다시 한번 고객중심의 경영철학을 강조하였다. iPad 발표 마지막에는 “We hope you like an iPad as much as we do" (우리는 당신이 우리가 iPad를 좋아하는 만큼 좋아 했으면 좋겠다.)라고 얘기하며 자신들이 제품을 만들면서 얼마나 고객을 생각하는지를 마지막으로 다시 언급하며 마무리했다. 잡스는 회사의 ‘이익’보다는 ‘고객’을 애플의 최우선 가치로 인식하고, 제품 및 서비 스들을 만들어갔다. ‘이윤 창출’이 목적인 기존의 기업들과는 다른 출발이었다. 그리 고 그러한 그의 ‘진심’은 통했다. 1. ‘나 = 고객’이라면 무엇이 필요한가를 생각해라 쉬운 컴퓨터 ‘매뉴얼이 필요 없는 컴퓨터‘ 잡스가 원한 컴퓨터의 모델이었다. 잡스가 'Macintosh' 을 개발하기 전만해도 컴퓨터는 개인들이 사용하기에는 아직 어려움이 많은 제품이 었다. 하지만 잡스는 컴퓨터가 누구나 사용할 수 있고, 사용하기 쉬운 제품이기를 바 랐다. 혹여나 매뉴얼이 필요하다면 어린아이들도 읽고 이해할 수 있을 정도여야 한 다고 생각했다. 따라서 잡스는 직접 ‘어린 학생’들을 초빙하여 사용자 대회를 열었 다. 그들이 얼마나 잘 이해하고 사용할 수 있는지를 보고 싶어서였기 때문이다. 이 러한 잡스의 ‘고객 중심’에 대한 노력으로 오늘날의 ‘Mac시리즈’ 가 탄생하였다. 그 리고 그의 소원대로 사람들은 연령, 성별, 학업 수준과 상관없이 편리하게 컴퓨터 를 사용하고 있다. 언제어디서나 함께 하고 싶은 음악 해고 후 회사에 복귀한 잡스는 자신의 실패요인이 예전 매킨토시를 처음 개발했을 당시의 ‘소비자중심 리더십’이 아닌 ‘기술 중심의 리더십’ 이었다는 것을 깨닫고 자 신의 눈높이를 ‘고객’에게 맞추기 시작했다. 그리고 탄생한 것이 ‘iPod’과 ‘iTunes’였 다. iPod과 iTunes로 형성된 새로운 음악 비즈니스 모델은 인터넷시대 이전 소니의 워크맨이 끌었던 인기 이상으로 각광을 받으며 애플의 존재를 확연하게 세상에 드 러냈다. 손 안에 들어오는 작은 기계는 ‘음악을 듣고 싶어 하는’ 인간의 욕구를 해소 시켜 주었고, 더 나아가 음악을 직접 제작하고 전 세계에 알릴 수 있는 역할까지 하 게 되었다. 130기술인문융합 창의형 인재 / Creative Leadership 융합과 독창의 아이콘/ 스/ 티/ 브/ 잡/ 스/131
  • 보고 싶은 가족 iPhone 발표회 당시, 잡스는 'FaceTime' 이라는 새로운 기능을 선보였다. 3G 시 대 이후로 가능했던 영상통화가 안고 있 는 문제점을 개선하여 인터넷만 가능하 면 어디서든지 보고 싶은 사람과 얼굴을 마주보고 통화할 수 있는 기능이었다. 아 내가 아이 낳은 후 군대에 있는 남편에게 화상통화로 보여주는 장면이나, 청각장 애인 연인들이 핸드폰을 통해 수화로 대화하는 모습을 보여주면서, 애플이 단순히 ‘ 기술 혁신으로 만들어진 첨단 제품’이 아니라 사랑하는 사람과 연결될 수 있는 ‘매개 체’임을 시사 하였다. 즉, 진정으로 기술로 사람에게 이로움을 줄 수 있는 기능이 무 엇인지 잡스는 알고 있었던 것이다. ‘고객’의 필요성을 인지하여 기술로 승화시킨 위 대한 리더십이 낳은 결과였다. 2. 고객의 편리함을 최우선시하며 감동&만족시켜라 아이맥의 디자인은 왜 아름다운가 미국 경제경영 전문지인 ‘Fast Company’에서 약 10년 동안 수록된 기고문을 엮어 ‘경 영의 창조자들’ 이라는 책을 펴내었다. 여러 창조적인 CEO들을 다루는 이 책 중 찰 스 피시먼이 쓴 ‘아이맥의 디자인은 왜 아름다운가’에서는 말 그대로 ‘애플의 디자인 은 왜 아름다운가’에 대하여 다루고 있다. 찰스 피시먼는 애플의 성공이 단지 ‘디자 인’ 때문만은 아니라고 주장한다. 즉, 애플은 디자인, 기술, 그리고 합리적인 가격을 모두 갖추고 있기에 성공할 수 있었다고 저자는 말한다. 최근 애플에서 개발한 'Ear Pods' 는 ‘고객 만족 정신’을 잘 발휘한 제품이다. 애플은 사람의 귀 모양이 모두 다르지만 같은 모양의 이어폰을 사용하고 있다는 ‘고객의 불 편성’을 인지하였다. 그리고 다양한 귀 모양에도 꼭 맞는 우수한 음질의 ‘Ear Pods’이 라는 이어폰 제품을 출시하였다. 이 제품은 수백 명의 사람들을 대상으로, 100개가 넘는 모형 디자인을 테스트하여 모든 사람들의 편안하게 우수한 음질의 음악을 들을 수 있도록 고안되었다. 보통 헤드폰을 개발하면 ‘스피커의 성능’부터 고려하는 기존 회사들과는 달리 ‘문제 인식’의 단계부터가 ‘고객 만족 서비스’ 이었기에 이러한 제품 이 탄생할 수 있었던 것이다. 이처럼 ‘고객의 편리함’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애플의 기능들과 디자인은 당연히 ‘고 객의 사랑’을 받게 되었고, 그것이 수익 창출로 이어지고 있다. 수익창출이 먼저가 아니라 ‘고객 만족’ 우선인 이 기업은 오늘도 고객과 함께 새로운 디자인의 가능성과, 아이디어들을 공유하며 새로운 제품들을 만들어 나아가고 있다. Apple Service하라 잡스가 애플로 복귀한 후 가장 중요시 했던 부분은 ‘소매스토어 구축’ 이었다. 따라 서 1999년, 당시 GAP 회장이었던 ‘밀라드 드렉슬러’를 고용하여 소매스토어 판매 전 략 보완을 시작으로 2000년에는 Target의 디자이너 ‘존 론슨’을 영입하여 ‘Genius bar’( 고객이 제품수리를 받을 수 있는 공간)를 만드는 등 새로운 소매 스토어를 구상해 나아갔다. 잡스는 “이제 고객들이 그냥 PC를 구입하는 시대는 지났다. 그걸 어떻게 사용할 수 있는지가 더 궁금하다.”라고 말하며 기존의 소매스토어가 가지고 있는 특성들을 모 두 버리고 ‘고객 만족&편리성’, 이 2가지를 최우선 목표로 하여 직원 및 매장 운영 을 시작했다. 고객과 기업이 재정의 되는 희한한 장소 2010년 1월 27일 iPad의 첫 발매 현장. 추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수 많은 사람들이 iPad 를 구매하기 위해 장사진을 치고 있다. 분명 이들은 고객이고 직원은 판매원인데, 입 장하는 사람들을 보며 당신은 행운아라고 박수를 쳐주고 있다. 몇 시간을 추위에 떨 132기술인문융합 창의형 인재 / Creative Leadership 융합과 독창의 아이콘/ 스/ 티/ 브/ 잡/ 스/133
  • 며 기다려 드디어 구매한 iPad 케이스를 채 뜯지도 않았는데 환호성을 지르며 기뻐 하는 고객들. Apple store는 수익을 내기 위해 있는 매장이 아닌, 그 제품을 사고 싶어 하는 고객들을 위해 탄생한 매장 같은 곳 일지도 모른다. 1분기 애플의 326개 매장의 방문객은, 월트 디즈니 테마 공원 4군데 방문자 수인 6000만명을 넘어섰다. 직원의 힘 2001년 처음으로 Apple Store가 출시 된 후 현재 전 세계 약 350여개의 매장에 4만 여 명 정도를 고용하고 있다. 애널리스트 호레이스 데디우가 운영하는 시장조사 전문 블로그 ‘Asymco(아심코)’에 따르면 애플 판매 실적의 상승세에는 애플 스토어 ‘직원 들의 힘’이 있다고 분석하였다. 그는 잡스의 말을 인용하여 ‘애플은 더 이상 전시회 에 나갈 필요가 없다. 왜냐하면 수백만 명의 고객들이 애플 매장에서 대화를 나누는 데, 이들이 대화를 나누는 사람은 바로 애플 매장의 직원들이기 때문이다.’ 라며 애 플스토어는 다른 소매 스토어와는 다른 경영 방칙을 선사했다. 즉, 매장 자체에서 제 품에 대한 전문가인 직원들이 고객의 궁금증, 제품에 대한 설명 들을 모두 해 줄 수 있기에 전시회를 나가지 않아도 충분히 성공한다는 자신감과 확신이 있었던 것이다. 물건을 팔려 하지 말고 고객의 문제를 해결해라 애플스토어의 결정적인 성공은 애플 판매의 최전선에 놓인 ‘직원들’ 뿐만 아니라 ‘직 원들을 운영하는 리더십’에 있었다. 잡스는 애플스토어가 ‘고객의 문제를 해결하는 곳’이라고 주장하며 이를 위한 ‘Apple service' 를 각 매장에 지시하였다. 그리고 이러 한 그의 리더십은 애플의 소매스토어 성공에 큰 역할을 하였다. 먼저 Apple Service 의 A는 Approach로써, 개인적이고 따뜻한 인사로 고객을 맞으라는 첫인사를 뜻하며 P는 Probe 로서, 고객이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이해하기 위해 정중하게 탐구하라는 뜻이다. 세 번째로 P는 Present의 약자로서 고객이 오늘 집에 가져 갈 수 있는 해결책 을 제시하라는 뜻이고 L은 Listen의 약자로 어떤 문제나 건의사항이라도 잘 듣고 해 결하라는 잡스의 경영철학이 담겨있으며 마지막으로 E는 End로서 살가운 태도의 작 별인사와 다시 찾아달라는 당부의 말로 마무리 하는 것이다. 'Apple serivice'에서 주목할 부분은 바로 Probe, Present 단계이다. 잡스는 Probe에서 고객의 ‘모든 필요’를 이해하기 위해 정중하게 탐구하라고 지시하였다. 단순히 제품 을 사기 위해 온 손님에게 정보 지식을 전달해주는 임무가 아니라, 그 손님이 필요한 모든 것을 파악하라는 것이다. 리고 파악한 손님의 need를 위해 'Present', 오늘 고객 이 집에 돌아가기 전까지 해결책을 제시하는 것이 주요 부분이다. 즉, 잡스는 단순히 애플스토어를 ‘제품 판매소’가 아니라 ‘고객 문의처’가 되길 원했던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그의 ‘고객’을 향한 마음은 수익으로 이어졌다. 2009년 소매업계의 판매는 평균적으로 -2.4$로 하락한 반면 애플스토어는 2009년 전 년 대비 4.5%가 증가했으며, 2010년 소매업계 판매율이 전년 대비 7% 증가한 반면 애플스토어는 70%의 증가율을 보이며 무섭게 성장해나갔다. 그리고 현재 2012년 매 장당 수익은 작년에 비해 19%가 증가한 연 $5,150만을 달성했으며 아시아에서의 순 판매량은 작년에 비해 47%나 증가하였다. (2011년 $4,330만) 이는 애플의 ‘고객 만족과 서비스’ 를 위한 리더십이 고객의 마음을 사로잡아 결국에 는 수익으로 이어진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그리고 이렇게 이익보다 ‘고객’을 중시하 는 잡스의 'Needs-centered' 리더십은 오늘날 많은 CEO들에게 이익 창출보다는 ‘고 객’이 더 우선시 되어야 한다는 근본적인 가르침을 주고 있다. 80.0% 60.0% 40.0% 20.0% 0.0% -20.0% 2009 2010 70.0% 7.0% 4.5% -2.4% 년도 ━ 소매업계 평균 ━ Apple 2009 -2.4% 4.5% 2010 7.0% 70.0% 134기술인문융합 창의형 인재 / Creative Leadership 융합과 독창의 아이콘/ 스/ 티/ 브/ 잡/ 스/135
  • 스티브 잡스가 평생 고민한 것은 자신의 ‘정체성’이었다. 태어나자마자 친부모에게 버림받고 양자로 입양된 그는 자신이 왜 태어났고, 왜 살아가야하며. 어떻게 살아가 야하느냐에 대해 평생을 고민하며 살아왔다. 부모에게조차 버림받은 그가 살아가야 할 이유를 찾는 게 그의 삶이었다. 스티브 잡스의 상상력과 리더십, 창작능력의 원천에는 이런 정체성에 대한 고민이 있다. 이처럼 흔치 않은 배경을 가진 인물로부터 어떤 함의를 이끌어내 이를 일반적 인 교육과 산업, 국가 정책 현장에 적용한다는 것은 부적절한 일일 수 있다. 하지만 그러기에 더욱 살펴볼 가치는 있다. 극단적인 상황에서도 삶을 통해 리더십과 기업 가정신의 새로운 지평을 연 한 인물의 사례가 열악한 우리의 현실을 적나라하게 들 여다보는 데 도움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나를 찾는 교육 스티브 잡스는 평생 평범한 것을 거부하고 살아왔다. 출생부터 비범했던 이 남자는 사실 자신이 융합형 인재라든가, 뭔가를 융합해 거대한 뭔가를 이루려고 하지는 않 았다. 태어나자마자 입양돼 성인이 될 때까지 친부모를 모르고 살았고, 사업을 하면 서 10년 동안 실패만 거듭했으며 스물다섯에 억만장자가 됐지만 자신의 첫 아이를 부인하고 아내와 딸이 됐어야 하는 사람들과 헤어졌다. 둘도 없는 친구이자 동업자 가 등을 돌리는가 하면, 자기가 만든 회사에서 쫓겨났고, 결국은 뜻밖의 암에 걸려 시한부 선고를 받은 채 생을 마감했다. 이런 삶을 살아온 그가 자신을 뭐라고 규정 했는지는 분명하지 않지만 어떤 독특한 성향으로 자신을 규정하지는 않았을 것이라 고 조심스럽게 추측해본다. 하지만 결론적으로 그에 대해 기술과 인문의 융합형 인재라는 말을 하고 그 대표 주자로 손꼽을 수 있는 것은 그가 그런 삶을 추구해서가 아니라 그의 삶이-본의 아 니게-융합 그 자체였기 때문이다. 사실 스티브 잡스의 이야기가 많은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는 이유는 그가 혼란과 불 확실, 자기 부정으로 가득찬 인생의 초반기를 극복하고 정상의 자리에 우뚝 섰기 때 문이다. 한 인간으로서 감히 생각하기 힘든 난관이 쏟아질 때도 굴하지 않고 자신이 뜻한 바를 이뤘기 때문이다. 그가 좋은 집안에서 태어나고 부모들의 사랑을 받으면 서 큰 어려움 없이 자라 사업에 성공했다면 그가 과연 생전에 이뤘던 그 많은 일을 이뤄냈을 지 짐작하기 어렵다. 아이러니하게도 그는 평생 돈을 많이 버는 것을 추구하지도, 위대한 CEO나 세계 최 고의 경영자가 되는 것을 꿈꾸지도 않았다. 다만 그는 끊임없이 자기 자신을 찾으려고 애썼다. 자신이 누구인지, 왜 사는지를 찾 아내고자 했다. 그는 자신의 정체성과 존재의 의미를 끊임없이 탐구하고 그리고 그 것을 세상에 기여하는 것으로, 세상을 바꾸려고 하는 시도로 표출했다. 흠이 많은 인 격에 상처가 가득한 인생 역정을 살아온 스티브 잡스. 그가 평생 다른 사람과 자신을 비교했다면 그는 아무것도 이루지 못했을 것이다. 남들이 해 온대로 살아가려 했다 면 그는 평생 남의 기준만 충족하며 살았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는 그런 삶을 살지 않았다. 스티브 잡스가 현재를 사는 우리들에게 주는 교훈을 한 가지만 꼽아보라면 그의 스탠포드 대학 연설문에서 찾을 수 있다. “인생의 시간은 한정돼 있습니다. 그 러니 타인의 인생을 살지 마십시오” 자신의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것. 그것이 가장 중요한 교훈이다. 기술이고, 인문이고, 예술이고, 융합이고, 모든 것을 떠나서 말이다. 자신의 삶을 살기 위해선 자신을 알 아야 한다. 최소한 자신을 만나기 위한 노력을 계속해서 해야 한다. 그래야 남이 세 워 놓은 기준에 자신을 얽매지 않고 늦더라도 자신의 길을 찾을 수 있다. 하지만 우 리는 이런 교육이나 사회 환경에 있지 못하다. 나를 찾는 교육의 방법이 뭔지 딱히 답을 내리기는 힘들다. 그렇다고 스티브 잡스가 겪었던 그런 슬픔과 역경을 모든 이에게 겪으라고 강요할 수도 없다. 같은 조건에서 같은 결과가 나오는 것도 아닐뿐더러 어쩌면 경험보다 그의 인성과 가정환경이 더 중요했을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를 찾는 교육, 나를 만나는 다 양한 시도들을 게을리 해서는 융합형 인재, 융합형 리더십의 목표달성을 위한 출발 조차 하지 못할 가능성이 높다. 자신의 정체성이 형성되지 않고서는 융합이란 애시 당초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136기술인문융합 창의형 인재 / Creative Leadership 융합과 독창의 아이콘/ 스/ 티/ 브/ 잡/ 스/137
  • 다양성에 대한 존중 스티브 잡스의 아버지는 시리아계 유학생이었다. 중동계는 인종이 다양하고 문화가 다채로운 미국에서도 배척받기 쉬운 약자였다. 스티브 잡스의 생모는 전형적인 백인 여성이었다. 중동계 유학생과 결혼을 해도 백인 여성이 겪는 어려움이 상당할 텐데 스티브 잡스의 생모는 결혼도 하기 전에 스티브 잡스를 낳게 된다. 미혼모로서 아이 를 키우기 어렵다고 판단한 잡스의 생모는 스티브를 입양시키게 된다. 외모에서도 보여지듯이 스티브 잡스는 다양성의 총합이라고 하는 미국에서도 그 극 단을 보여주는 인물이다. 아버지는 중동계 유학생이고, 어머니는 미혼모였으며 자 신은 자동차 수리공의 집에 입양이 됐다. 이런 조건만 따지고 보면 스티브 잡스는 아 주 불행한 어린 시절을 보냈을 거으로 추정할 수 있다. 하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았 다. 물론 양부모가 훌륭한 분이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하지만 미국사회가 갖는 다양 성과 다양성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문화가 스티브 잡스와 같은 인물도 포용했다고 보는 게 좀 더 정확하다. 스티브 잡스는 출생 시점부터 엄밀히 말하면 ‘실패자’였다. 하지만 그 실패는 그가 의도한 것이 아니었다. 실패자로 출발했지만 인생은 결코 실 패자로 살지 않았다. 그에게는 많은 기회가 주어졌다. 부모가 버렸지만 좋은 양부 모를 만나는 기회를 얻었고, 방황했지만 재기할 수 있는 기회를 얻었다. 친구들과 의 관계가 좋지 못했지만 좋은 사람들을 만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다. 승승장구하 다가도 한 번의 실패나 실수로 나락으로 떨어지는 우리 사회와 대비되는 모습이다. 물론 스티브 잡스도 고통을 겪었다. 자신을 사회의 ‘소수자(minority)’라고 생각했고, 실제로도 그랬다. 하지만 스스로 자신을 규정하는 것과 그로 인해 차별받는 것과는 엄연히 다른 문제다. 그는 분명 출생 시점부터 혜택을 받지는 못했고, 소수 그룹에 속 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로 인해 차별을 받지는 않았다. 그가 가진 다양성은 인 정됐고 그는 자신의 다양성을 기반으로 자신의 인생을 새롭게 개척했다. 그것은 그 의 양부모만의 힘이 아니고 지역 사회 커뮤니티, 친구들 등 교우관계, 선생님, 직장 등 사회 전반에 녹아 있는 다양성에 대한 존중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만약 이런 다양성에 대한 존중과 인정이 담보되지 않았다면 스티브 잡스는 어떤 삶 을 살았을까. 우리가 흔히 상상할 수 있는 그런 삶을 살았을 가능성이 높다. 그와 같 은 백그라운드를 가진 인물이 버림받았다는 자책감에 스스로를 망가뜨리고 아무도 가치를 인정하지 않으며 자신의 앞가림조차 하지 못하는 그런 삶을 살지 않을 것이 라고 누가 감히 자신할 수 있단 말인가. 경험에 기반한 통찰력 스티브 잡스는 어린 시절 부모와 함께 살고 있던 캘리포니아 주 쿠퍼티노 인근의 차 고에서 온갖 기계, 전기전자제품 등을 조립하고 분해하면서 창업에 대한 꿈을 키워 왔다. 미국이 한창 우주공학과 전자공학 산업을 발전시키고 경제가 급성장하던 이 시기 캘리포니아주는 컴퓨터 키드들에겐 천국이나 다름없는 곳이었다. 스티브 잡스가 자라난 쿠퍼티노 인근이 아니더라도 샌프란시스코 Bay Area를 중심 으로 동쪽(버클리) 지역부터 남쪽 지역(San Jose, Mountainview 등)에 이르기까지 어 디에서나 비슷한 환경이 조성되어 있었다. 중학교 시절 스티브 잡스가 이사를 간 로스앨터스 지역은 엔지니어들이 한 곳에 가 장 많이 모여서 사는 곳이었다. 아버지가 하루 종일 자동차를 수리하는 걸 보면서도 기계보다는 전자기기에 훨씬 관심을 가졌던 스티브 잡스에게는 최고의 환경이었던 셈. 그 지역에는 항공순수업체인 록히드사가 자리를 잡고 있었다. 당시 우주 개발에 열을 올렸던 NASA(미 항공우주국)에 핵심 기술과 주요 부품을 공급하던 회사였다. 록히드라는 큰 회사가 있었기 때문에 이 지역에는 우주선을 만드는데 필요한 다양한 부품을 제조하는 전자회사들이 많았다. 전자 부품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트랜지 스터의 개발과 트랜지스터 수백 개를 하나의 칩에 집어 넣은 집적회로(IC)의 개발이 시작된 곳도 이곳이었다. 이런 지역적 특성 때문에 스티브 잡스가 살고 있던 집 근처 에도 차고마다 중고 전자 부품들이나 쓰다 버린 전자기기들이 얼마든지 널려 있었 다. 스티브 잡스는 천혜의 환경이 갖춰진 이곳으로 이사 오면서 일찍부터 자신의 관 심사를 찾을 수 있었다. 스티브 잡스는 방과 후 곧장 이웃집의 차고로 달려가 여기저 기 뒹굴고 있는 부품들이나 못쓰게 된 장치들을 꺼내 분해하면서 하루를 보내곤 했 다. 스티브 잡스가 이렇게 전자제품을 분해, 조립하다가 부품이 없어서 HP 사장에게 전화를 해서 부품을 얻어냈다는 그 유명한 일화도 이 시기였다. 138기술인문융합 창의형 인재 / Creative Leadership 융합과 독창의 아이콘/ 스/ 티/ 브/ 잡/ 스/139
  • 스티브 잡스의 사례가 보여주듯 어떤 환경에서 자라나느냐가 그 사람의 관심사와 꿈 을 형성하는 데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 융합 인재라는 게 한 순간의 교육이나 경험, 짧은 경력 등으로 형성될 수 있는 게 아닐진대, 환경의 중요성은 더욱 커진다. 경험 이 모든 지식의 근간은 아니지만 너무 경험이 없으면 상대적으로 꿈의 여지조차 만 들기 힘들기 마련이다. 그런 점에서 보면 한국에는 이와는 너무나 상반된 환경이라고 할 수 있다. 지리적 이고 문화적인 여건도 있지만 한국에서는 기술을 기반으로 인문이나 예술을 융합 한 인재가 자라기에는 자라나는 환경부터 뒷받침을 해주지 못한다. 차고에서 물건 을 쌓아놓고 부품을 조립하면서 자라기는 커녕 동네마다 있던 철물점마저 사라지 는 형편이다. 학교에서 간접적으로 가끔씩 경험하던 과학 실습 실험 등도 거의 없 어지다시피 했다. 꼭 스티브 잡스의 사례가 아니더라도 경험이 갖는 중요성에 대해 일찌감치 간파한 미국은 이런 문화를 장려하고 확산하기 위해 공식적인 사업이 생 기기도 했다. 실리콘밸리에서 시작해 미국 곳곳에 확산되고 있는 테크샵(Techshop) 이 대표적이다. 미국 실리콘밸리 San Jose 공항에서 차를 타고 30분 정도 가면 ‘TechShop'이라는 간 판을 단 건물이 나타난다. 창업을 꿈꾸는 이들이 각종 공구와 장비를 마음대로 쓰며 자신들의 아이디어를 시제품으로 만든다는 'Techshop in Menlo Park'다. 조 머나드 테크샵 최고운영책임자(COO)는 “창업자들은 물론 대학생과 단순 흥미를 위한 이용 자도 많이 온다”고 말했다. 30여 개 방으로 이뤄진 이곳에는 어림잡아도 100만 달러가 넘는 가치를 가진 기계들 이 설치돼 있다. 용접기, 3D 프린터, 레이저 커터 등 고가 장비들도 다수 있다. 테크 샵 관계자들은 “이곳을 방문하는 창업자들이 나중에 벤처기업을 설립한 뒤 자신들 의 제품을 쓸 수 있다는 생각에 회사들이 홍보용으로 기계를 싸게 공급해준다”고 전 한다. 이 테크샵은 월 회비 100~150달러 정도 회원제로 운영된다. 개인 자격으로도 얼마든지 찾아와 실험을 할 수 있는 수준의 회비다. 그러다보니 학생부터 창업을 꿈 꾸는 직장인들까지 많은 사람들이 와 다양한 실험을 하고 있다. 중요한 것은 테크샵이 단순한 장비를 빌려주는 곳이 아니라는 것, 장비를 어떻게 사 용하는지에 대한 교육도 이뤄지고 각종 아이디어에 대한 컨설팅도 가능하다. 머리 속에 막연하게 갖고 있던 생각들을 어떻게 구체화할 수 있는지, 그 해답도 나름대 로 찾아볼 수 있다. 미국의 테크샵이 알려지기 시작하면서 한국에서도 최근 이를 본 딴 제작소가 만들어 지고 있다. 하지만 한국에서는 2가지 전제조건이 충족되지 않으면 사람들이 이를 활 용하기보다는 방치된 채 실패할 확률이 높다. 우선 교육 단계에서 실험 도구를 활용 하는 것이 보다 적극 장려되야 한다는 점이다. 그러기 위해선 물론 실험 시간을 늘려 야 하고 장비를 충분히 갖추야 한다. 우리들의 기억에도 있듯이 대부분의 학교에서 는 수십명의 학생들을 모아놓고 실험이랍시고 실험실에 가서는 한 두명이 대표로 실 험을 해 보고 그걸로 나머지 학생들도 ‘다 해본 것으로 치고’ 과정을 넘어가게 된다. 실질적인 경험의 과정이 생략되는 것이다. ▲ 캘리포니아주 멘로파크에 있는 테크샵의 내부 모습. 수많은 창업 준비생들이 아이디어를 실현하기 위해 공구를 들고 작업하고 있다. 두 번째는 제조업 기반의 창업 활성화를 위한 제도적 틀이 갖춰져야 한다. 제조업 을 완전히 무시하고 여기서 경험을 쌓아도 얻을 수 있는 게 없다면 이를 활용하는 사람들이 있을 리 만무하다. 테크샵의 관리자들이 일정 수준 이상 되어야 함은 물 140기술인문융합 창의형 인재 / Creative Leadership 융합과 독창의 아이콘/ 스/ 티/ 브/ 잡/ 스/141
  • 론이다. 관리자들이 수준을 갖추고 활용 방법을 잘 리드해야 안착할 수 있다. 자칫 하다간 어중이떠중이들의 체험 장으로 전락할 수 있다. 이런 분위기를 확산하는 방 법은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간단한 것부터 하면 된다. 우선 지나치게 스마트폰과 앱 등 IT 중에서도 소프트웨어에 치중한 창업 스쿨이나 각종 프로그램을 제조업으로 도 넓히는 것이다. 3D프린팅이나 전기 자동차 제작, 로켓 모형 제작, 로봇 만들기 등 이 대표적이다. 기업들이 이런 경험을 우대하면 더욱 좋다. 우리는 대부분의 통찰력이 책상물림에 서 나오는 경우가 많은데, 경험을 기반으로 하지 않은 통찰력이란 공허하기 짝이 없 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테크샵의 단순 도입이 아니라 이것을 어떻게 한국 현실에 맞 게 적용할 것인가가 좀 더 심도있게 고민해야 한다. 융합의 방향성 융합 인재, 융합 리더십이라고 말 할 때 융합이 뜻하는 바는 뭘까. 융합을 Conver- gence로 볼 때 대표적인 사례로 방송과 통신의 융합을 떠올릴 수 있다. 이때도 융합 은 망의 융합, 서비스의 융합, 기업의 융합 등 세 분야에서 살펴볼 수 있다. 망(network)의 융합은 본래 방송은 방송망을, 통신은 통신망을 통하여 행해지는데 자원의 공유, 망 간의 경쟁, 망 통합 효과 등을 위해 두 가지 망이 점진적으로 통합되 면서 각각의 망에서 서로 상대 서비스를 하는 현상을 뜻한다. 서비스의 융합은 방송 이 통신처럼 불특정 다수가 아닌 특정인을 대상으로 양방향 서비스를 제공하며, 통 신은 다수의 수신자에게 일방향성 서비스나 영상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으로, 양자 의 서비스가 서로의 영역을 침범하는 등 혼재된 현상을 뜻한다. 기업의 융합은 방송 사업자와 통신 사업자가 연합, 합병 등에 의해 다른 분야로 진출하는 것을 의미한다. 예를 들어 유선 방송(CATV) 사업자가 통신 사업에 진출하거나 통신 사업자를 합병 하여 두 사업을 겸하거나, 방송주파수의 여분의 대역을 통신 사업자에게 임대하여 간접적으로 통신 서비스를 제공하는것 등이 있다. 융합을 ‘Fusion’으로 해석하면 의미가 약간 달라진다. 이 경우 융합은 어느 쪽이든 하 나의 구심점이나 양식을 기반으로 다른 하나 또는 여럿이 녹아 들어갔다는 의미다. 물론 단순하게 2가지 이상의 물질이 결합되는 경우도 fusion이라는 말을 쓰기도 한 다. 융합을 정-반-합의 변증법적 과정으로 본다면 'Convergence'로 보는 것이 보다 타당할 것이다. 하지만 특정 분야나 특정 성향이 중심이 되고 다른 분야가 더해지는 과정으로 본다면 'Fusion'으로 해석하는 것이 보다 가까울 수 있다. 융합의 의미를 장황하게 설명하는 것은 융합의 방향성을 설정해야 하기 때문이다. 어느 쪽으로 방향을 정하느냐에 따라 정책이나 제도의 범위, 질 등도 달라진다. Con- vergence 융합이라면 정부나 공공기관이 정책적으로 풀어나갈 것은 많지만 그 외 직 접 player로 개입할 여지는 적어진다. 즉 융합이 일어날 운동장만 만들어주고 빠지면 그만이다. 하지만 Fusion 융합이라면 정부가 보다 깊숙하게 개입해야하는 어려움이 있다. 결국은 정부가 어디까지 개입하 느냐의 문제다. 융합에 대한 철학과 기준을 명확하게 하지 않을 경우 정책과 현실간 의 괴리가 커질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이 문제를 우선 해결 해야한다. 142기술인문융합 창의형 인재 / Creative Leadership 융합과 독창의 아이콘/ 스/ 티/ 브/ 잡/ 스/143
  • Q. 스티브잡스는 어떤 리더였나요? A. 스티브 잡스는 많은 사람들의 폭넓은 공감을 얻어내기 보단 ‘ 감동형 소통 리더’였습니다. 그런데 감동을 주는 방법이 특이하게 도 카리스마 형식의 감동이었습니다. 이를테면, 강제로 윽박지르 거나 권위를 내세우는 스타일이 아니라 감동을 주어 사람들이 따 라오지 않을 수 없게끔 만드는 것입니다. 해적이 되자! 예를 들어서 ‘카리스마를 지닌 감동형 리더’가 이끄는 그룹에서는 ‘해적이 되자!’ 라고 리더가 말하면 경우에 따라서 이게 좋지 않은 말일 수도 있지만, 구성원들은 이 사람의 인생과 가치관을 알기 때문에, 그게 무슨 뜻인지 알고 따라갑니다. ‘해적이 되자!’ 라고 했을 때, ‘거친 바다에 나가서 우리가 세상을 한 번 바꿔보자’라는 의미가 있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가 한번 해보자!’ 라는 부분이 감동을 주게 됩니다. 또한 ‘나를 따라오 면 그 과정 속에서 다 보상을 받을 수 있다’라는 이런 것들이 구성 원들에게 감동으로 전해져, 자발적으로 리더를 따라가게 됩니다. 잡스가 이러한 리더 유형에 속했습니다. 그는 카리스마를 지닌 감 동형 소통 리더였고, 그중에서도 특히 ‘창의적 카리스마형’에 해당 되는 리더였습니다. Q. 그러한 그의 리더십에 거부는 없었나요? A. 당연히 모든 사람들에게 감동을 줄 수는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 감동형 리더십’은 ‘공감형’이나 ‘설득형’이 아니기 때문에, 설득을 당 하지 않거나 감동을 받지 못하는 사람들도 물론 있었습니다. 그런 사 람들에게는 공통적인 특징이 있었는데요, 바로 스티브잡스보다 자 기가 잘하는 분야가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 즉 자기가 스티브 잡 스와 레벨이 비슷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예를 들어 ‘스 티브 잡스가 애플을 만들기는 했지만, 내가 없었으면 애플이 이만큼 성공하지 못했을 것이다’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이런 사 람들은 스티브 잡스가 깃발을 들고 ‘가자!’ 라고 외칠 때, ‘싫어!’라며 따라가지 않았습니다. 재주는 곰이 부리고 돈은 왕서방이 번다? 잡스가 1985년에 해고를 당한 결정적인 이유가 바로 이러한 사람들 과의 마찰 때문이었습니다. 직원들은 감동을 받고, 사람들은 잡스가 없는 애플은 상상도 못한다고 했지만, 경영진 등 잡스와 위치가 비 슷한 사람들은 ‘잡스가 한 것이 무엇이 있느냐’ 라고 그를 비판하기 시작한 것이죠. 사실 엄밀히 말하면, 물론 아이디어를 처음에 제공 한 사람은 스티브 잡스이지만 애플 공동 창업자 스티브 워즈니악이 컴퓨터를 만들지 못하였다면 지금의 애플은 없었을 것입니다. 잡스 는 그저 워즈니악에게 콜라를 제공했을 뿐이었습니다. 또한 그의 리 스티브잡스에 대한 전문가 재평가 전문가 재평가 (인터뷰) 임원기 한국경제신문 기자 144기술인문융합 창의형 인재 / Creative Leadership 융합과 독창의 아이콘/ 스/ 티/ 브/ 잡/ 스/145
  • 더십에 동의하지 못한 사람들은 경영과 마케팅 등 모든 면에서 ‘스티브 잡스가 주도 적으로 한 게 없다’라고 말하며 그의 ‘무능함’을 비판하였고, 이것이 결국 잡스가 만든 애플해서의 해고로 이어지게 되었습니다. Q. 해고 된 이후에 잡스가 변했나요? A. 네. 변했습니다. 사실 스티브 잡스의 리더십은 총 3단계의 변화 과정이 있었습니 다. 첫 번째 1단계는 창업 후 10년 동안의 ‘감동형 독불장군 리더십’이었습니다. 그래 서 해고를 당한 뒤, 2단계, 1996년 토이스토리로 복귀하기 이전까지의 ‘11년 공백기 동안의 리더십’이 발생합니다. 이 공백기 동안 잡스는 상처 입은 호랑이처럼 자신을 추스르는데 바빴고, 별다른 리더십을 발휘하지 않았습니다. 불행 중 다행이었던 것은 이 당시 잡스가 지금의 아내 로렌을 만났고 그녀를 통해 회복하며 달라지는 리더십을 차츰 보였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복귀를 한 후, 마지막 3단계 ‘융합력, 설득력 있 는 감동형’의 변모된 리더십을 펼쳤습니다. 공백기가 가져온 ‘설득력 있는 리더십’ 이러한 잡스의 리더십 3단계 변천사 중 가장 눈 여겨 봐야 할 부분은 ‘공백기를 스티 브 잡스가 어떻게 보냈는가.’ 입니다. 이전에는 잡스가 그래도 성과가 있었기 때문에 비판을 피해 갈 수 있었습니다. 사실 잡스는 컴퓨터를 만들었지만 공학박사도, 기술 자도, 디자이너도, 경영자도, 마케터도 아닌 그저 워즈니악이라는 천재 친구를 잘 둔 것뿐인 사람이었습니다. 따라서 당시 누군가 비판을 하면 잡스는 할 말이 없었을 것 입니다. 하지만 리더십의 공백기를 통해 잡스는 ‘이 시대 최고의 리더, IT기업의 CEO’ 로 도약했으며 많은 사람들이 배우고 싶어 하는 진정한 리더가 되었습니다. 그 이유 는 공백기 당시, 그가 다음 10년의 리더십을 발휘하기 위한 준비를 잘했기 때문이었 습니다. 기존 잡스에게 가장 부족했던 것은 자신의 어떤 아이디어와 창의적인 생각들을 특 정 분야에 접목시켜 전문성을 갖는 능력이었습니다. 그런데 11년 동안, 소프트웨어 NeXT 회사를 설립해서 모바일 시대를 대비하며 본의 아니게 미래를 잘 준비하게 되 었습니다. 애플 공백기 동안 모바일에 최적화된 소프트웨어를 만드는 가장 좋은 회 사를 만들었고, 거기서 전문성을 쌓아 자신감도 조금 생기게 된 것입니다. 또한 잡 스 자신도 모르게 Pixar와 관련한 애니메이션을 제작하면서 자연스럽게 ‘융합형 인 재’가 되었습니다. 설득력을 갖춘 감동형 리더십 잡스는 공부를 제대로 한 적도 없고, 본인이 개인적으로 했던 프로 젝트가 실패하기 도 하였지만, 공백기동안 이 실패들의 여러 요소를 결합하면서 사람들이 생각해 내 지 못한 아이디어를 생각해냈습니다. 드디어 사람들이 비판하지 못할 실력을 갖추게 된 것입니다. 모바일에서 가장 필요한 플랫폼이나 소프트웨어에서 가장 뛰어난 실력 을 갖추게 되었고, 애니 메이션을 통해서 사람들이 좋아하는 디자인, 색채 감각을 익 혀 진정한 ‘융합형 인재’가 된 것입니다. 따라서 후의 잡스가 지닌 리더십은 기존 1단 계의 독불장군형 감동형이 아니라 공백기(2단계)를 넘어 3단계의 실력을 갖춘 리더가 말하는 ‘설득력이 있는 감동형 리더십’이 되었습니다. 이제는 사람들이 ‘당신이 걸어 온 길을 봤을 때, 당신의 말이 맞다’ 라며 리더의 말에 고개를 숙이게 되는 것입니다. 예전 1단계 시절에는 수사적인 감동을 주로 줬다면 3단계인 이제는 ‘내공에 기반한감 동’을 주니까 같은 감동형 리더십이더라도 좀 더 효과를 발휘하게 되었습니다. 저는 그런 융합 실력을 갖춘 리더십이 나왔기 때문에 융합형 제품들인 아이폰, 아이패드과 아이튠즈도 나온 것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Q. 세종은 집현전이라는 집단 지성을 활용했는데, 잡스는 본인에게서 나온 것인가요, 아니면 외부의 협력, 지성을 활용한 것인가요? A. 스티브잡스는 좀 특이한 사람이었습니다. 왜냐하면 소통을 하면서도 자신의 주관 도 관철시키는 사람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는 생전에 ‘시장 조사를 많이 하지 말아라’ 라는 엉뚱한 말을 하곤 했습니다. 그 이유는, 고객을 만족시키려면 고객이 원하지만 146기술인문융합 창의형 인재 / Creative Leadership 융합과 독창의 아이콘/ 스/ 티/ 브/ 잡/ 스/147
  • 고객이 생각지도 못했던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야 하기 때문에 기존 정보인 시장 조사 는 필요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새로운 것을 만들어 내기 위한 소통형 독불 장군 리더십 애플Ⅱ를 만들 때도, Macin- tosh를 만들때도 그렇고, 물론 회의도 하긴 했지만 기본적으로는 시장조사를 하지 않 았다고 합니다. 직원들에게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잡스는 생전에 총애했던 디자이너 나 현재 애플 CEO인 팀 쿡과 같은 사람들에게 늘 의견은 구했지만 항상 그들에게 물 어보기에 앞서 직원들도 상상하지 못했던 아이디어를 주는 특징을 지녔었다고 합니 다. 왜냐하면 아무도 생각하지 못한 새로운 것을 만들기 위해 늘 고민한 후, 발견한 그 아이디어를 직원들과 공유하거나, 진행시키길 원했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잡스 의 이런 면을 때론 ‘독불장군 같은 리더십’이라고도 표현합니다. 잡스는 소통을 하며 타인의 의견을 받아들였지만, 근본적으로 ‘더 좋은 것, 새로운 것’을 창조하기 위해 자 신의 의견을 관철시키는 사람이었습니다. 천재 제왕이 세운 세상에서 가장 큰 스타트업 회사를 설립하는데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회사의 생태계를 어떻게 만들지를 먼저 구상하는 것입니다. 그 다음, 제품 컨셉과 회사의 방향과 전략을 구상하는 것인데 잡 스는 이렇게 중요한 결정을 즉흥적으로 했습니다. ‘애플’이라는 이름을 처음에 즉흥 적으로 지었듯이 복도를 걸어가다 생각나는 아이디어를 바로 실전에 투입시키는 등 ‘아이폰5는 앞으로 이런식으로 만들어라’ 라고 기록으로 남기는 리더는 아니었습니 다. 즉, 자신의 천재적 영감과 그때그때 떠오르는 아이디어로 큰 그림을 그려나가는 것이 잡스 리더십의 특징이었습니다. 잡스 자신도 애풀을 세상에서 가장 큰 스타트업 이라고 말하는 것이 바로 그러한 이유 때문입니다. 그는 정치를 좋아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정치를 싫어하는 리더가 오히려 모든 권력 을 자기가 갖고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권력을 조금씩 나눠주면 자기네들끼리 분배하 고 줄서고 하는데, 잡스는 자신이 혼자 모든 것을 다 가진 상황이었고, 나머지 사람들 은 사실상 권력이 없는 형태였습니다. 자신의 욕심으로 갖는 권력이 아니라 ‘새로운 것, 더 나은 제품’을 만들기 위한 관리 용 권력이긴 했지만 현재, 그러한 권력을 가진 제왕이 죽으니까 애플이 흔들리고 있 는 것입니다. Q. 스티브 잡스를 예술가적 기질이 많은 엔지니어라 부를 수 있나요? A. 잡스가 예술적 기질이 매우 많은 것은 사실이지만 엔지니어라고는 볼 수 없습니 다. 오히려 잡스는 ‘엔지니어’ 라기 보단 ‘엔지니어의 감이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왜 냐하면 엔지니어라고 부르려면 코드를 짤 수 있어야 하는데, 잡스는 하나도 할 줄 몰 랐기 때문입니다. 잡스는 그냥 컴퓨터를 좋아하는 ‘컴퓨터쟁이’일 뿐이었습니다. 그냥 컴퓨터가 매력적이고, 기능이 뛰어나서 단순히 그것이 좋았던 것입니다. 예전에 해고 후, NeXT 라는 회사에서 소프트웨어를 개발할 때도 잡스는 ‘이 회사가 SW를 잘 만들어서 활용을 해야겠다’라는 생각보단 SW를 만드는 컴퓨터가 좋아보여 서 그 회사를 산 것이라 합니다. 그런데 우연히도 이 팀이 훌륭한 SW를 만들어낸 유 능한 팀이었고 그러다보니 잡스의 안목도 서서히 높아지게 되었습니다. 따라서 잡스 인생의 배경을 자세히 알지 못하는 일반 사람들은 막연히 잡스를 ‘엔지니어인데 예술 적 감각이 있는 사람이다’ 라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우스갯소리를 더하면, 사실 잡스 도 납땜질을 조금 할 줄 알았던 엔지니어 지망생이었지만, 스티브 워즈니악이라는 천 재 엔지니어를 만나고 나서 좌절한 후 일찌감치 엔지니어를 포기 하였다고 합니다. Q. 기술·인문 융합적 관점에서 잡스가 엔지니어들을 올바른 방향으로 이끌어 갈 수 있는 융합의 대가라고 보시나요? A. 네. 그렇다고 생각합니다. 엔지니어는 주로 자신의 세계에 빠져있으며, 코드로 세 상을 이해하려는 특징을 지니고 있습니다.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이 좁은 것이죠. 그 러나 잡스는 자신이 그 코드는 몰라도 코드를 봤을 때, 어떤 것이 ‘좋고 나쁜지’ 구별 할 수 있는 눈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에 더하여 그 다양한 코드들을 융합할 수 있는 능력 또한 지니고 있었습니다. 따라서 잡스가 엔지니어들을 올바른 방향으로 이끌어 갈 수 있는 ‘융합의 대가’라고 생각합니다. 이 모든 것은 어떻게 보면 잡스가 ‘ 148기술인문융합 창의형 인재 / Creative Leadership 융합과 독창의 아이콘/ 스/ 티/ 브/ 잡/ 스/149
  • 컴퓨터 박사’가 아니었기에 가능했던 일이라 생각됩니다. Q. 요즘의 연구원들을 보면 대부분 잡스와 같은 융합인재보다는 워즈니악과 같은 한 분야의 전문가들인데, 이러한 엔지니어들에게 해주실 말씀은? A. 잡스와 워즈니악은 상반된 길을 걸었잖아요? 워즈니악은 평생 컴퓨터를 만드는 것이 즐거운 사람이었고, 20세기가 낳은 컴퓨터 천재이자 애플의 공동 창업자인데, 공로는 잡스가 다 가져갔습니다. 그 이유는 잡스에게는 있고, 워즈니악에게는 없었 던 ‘무엇’ 때문입니다. 이 무엇이란 바로, ‘세상을 바꿀 기술을 사람들에게 전파하고, 그들이 쓰기 쉽게 하고, 자신이 그 방법에 대해서 창의적으로 고민하는 과정’입니다. 이과정이 잡스에게는 있었지만 워즈니악에게는 없었기 때문에 그들의 인생은 상반 된 길을 걸었던 것입니다. 잡스와 워즈니악의 차이 워즈니악과 같은 엔지니어들은 기술만 달랑 만들고 끝냅니다. 알렉산더 그레이엄 벨 이 전화기를 만들었을 때도 집에 혼자 놓고 쓸 수는 없지 않습니까? 즉, 기술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사람들이 사용할 수 있게 변화시키는 것이 세상을 바꾸는 일인데, 잡 스는 이 역할을 잘했습니다. 21세기에는 기술적으로 완성된 형태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그 보다는 어떻게 하면 사 람들이 편하게 쓸 수 있는지, 사람들에게 어떻게 설명할 것인지를 설명할 수 있는 것 이 더욱 중요하며 이를 위해 ‘융합적 사고방식’이 필요합니다. 이러한 융합적 사고방 식을 통해 이제는 기술뿐만 아니라 사람의 감성까지 파악할 줄도 알아야하는 세상이 되었습니다. 잡스는 이러한 ‘융합적 사고방식을 통한 경영’을 하는 선도 및 대표주자 였기에 워즈니악과 다른 삶을 살았던 것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한국에도 잡스와 같은 ‘융합적 사고방식’ 을 가진 인물이 있습니다. 바로, Naver 검색 창의 창조자 이자 현재는 JOH 회사 대표인 조수용 디자이너입니다. 이 분도 잡스처 럼 디자인을 단순히 디자인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디자인은 사람의 마음이 어디로 향 하는가를 알려주는 것이다’ 라며, 인간의 행동방식과 마음가짐을 연구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보기에 아름다운 것을 좋은 디자인이라 생각하는데, 조수용씨는 ‘사람의 마음 가짐과, 습관적인 행동’ 까지 고려해서 디자인을 연구하는 것입니다. Q. 그렇다면 스티브 잡스는 선도 융합형 CEO 인가요? A. 그렇습니다. 잡스 본인이 디자이너, 엔지니어, 마케터도 아니고, 그렇다고 특별한 전문 분야도 없었지만 모든 분야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융합하여 새로운 것을 만들 어 냈기 때문에 잡스는 선도 융합형 CEO라 할 수 있습니다. Q. 마지막으로 연구개발을 잘 하기 위해, 잡스처럼 한국도 기술개발자들을 잘 이해하는 리더가 연구원들을 관장해야 한다고 생각하시나요? A. 한국이 잡스와 같은 인물을 배출하려면, 기술개발자들을 잘 이해하는 동시에 확신 을 가지고 종합적인 자신의 결과물로 사람들을 이끌 수 있는 인재를 길러야 합니다. 즉, 단순히 종합만 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뛰어넘는 아이디어를 내서 개발자들에 게 감동을 주고 설득 할 수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단순히 이사람, 저사람 말을 합한 것은 융합이 아닙니다. 1+1을 해서 3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최소한 4이상을 만들어야 사람들이 감동하기 때문입니다. ‘한 차원 높은 새로운 것이 나오는구나’, 거기서 자연 스럽게 리더십이 나오는 것입니다. 150기술인문융합 창의형 인재 / Creative Leadership 융합과 독창의 아이콘/ 스/ 티/ 브/ 잡/ 스/151
  • 기술인문융합 가치창출을 위한 Future Discovery Research 2020 대한민국의 기술인문융합을 선도하는 모바일 시대, 커뮤니케이션으로 가치를 창출하는 카카오톡 김범수 새로운 가상국가, 대한민국 영토를 넓히는 SM 이수만 여러 사람의 Wonder한 생각을 모아 꿈과 희망에 도전하는 네오플 강신철 과학은 소통과 설득의 연속이다 서울대 임지순 물리학자 ‘된다’보다 ‘될까’의 연구에 투자하는 하버드대 박홍근 분자전자과학 권위자 미래 인터넷 기술의 새 지평을 열고 있는 KAIST 문수복 전산학 교수 3D 가상입력장치의 선두주자 셀루온 차래명 대표 소통으로 ‘창의’ 바람을 몰고오는 포스코 정준양 회장 한국 영화의 신 르네상스를 열고 있는 CJ E&M 이미경 부회장 1%를 채우기 위한 ‘도전’의 연속 한경희생활과학 한경희 대표 혁신적인 마케팅 문화 기업 현대 카드·캐피탈·커머셜 대표이사 정태영
  • 모바일 컴퓨팅 시대 도래 현재(2012년 10월 말 기준) 국내 스마트폰 가입자 수가 314만 명, 태블릿PC 가입 자 수는 71만명을 넘어 폭발적으로 증가하며 모바일 미디어의 新 르네상스를 몰 고 왔다. 스마트폰을 통해 언제 어디서나 인터넷과 앱 등 다양한 데이터 및 콘텐 츠를 접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이러한 현상은 최근 4세대 LTE 보급이 확산되면 서 더욱 가속화되고 있다. 모바일 메신저로 소통하는 시대 모바일 컴퓨팅의 이용형태 중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이 모바일 메신저이다. 모바일 메신저는 기존의 문자서비스를 대신할 뿐만 아니라 사진·동영상 공유 및 무료 음성·영상 통화가 가능해 전 세계적으로 인기를 끌고 있다. 대부분의 모바일 메신저들은 1,000만명 이상의 가입자를 보유하고 있으며, 국내 사용자의 경우 대부분 카카오톡을 사용하고 있다. 카카오톡이 기존 컴퓨터 기반의 SNS보 다 간편하고 즉각적인 소통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출생 (서울특별시) 서울대학교 산업공학 석사 졸업 삼성 SDS 입사 한게임커뮤니케이션 설립 네이버컴 공동대표 NHN 공동대표 NHN 대표이사 아이위랩 설립 카카오 이사회 의장 소프트웨어산업발전 유공자 대통령 표창 수상 제 6회 포니정 혁신상 수상 1966. 03. 08 1992 1992. 03 1998. 11 2000. 07 2001. 11 2004. 01 2006. 12 2011. ~ 2003 2012. 2012 시대배경 인문소개 현존인물에 대한 융합적 관점에서의 리더십 재해석 카카오톡 김범수 의장 하루 메시지 10억건 톡!톡! 모바일시대, 커뮤니케이션으로 가치를 창출하다 154기술인문융합 창의형 인재 / Creative Leadership 대한민국 기술인문융합을 선도하는/ 인/ 물/155
  • 김범수 의장은 1966년 서울 출생으로 온라인 포털 ‘한게임 커뮤니케이션’과 국내 1등 포털사이트인 네이버 NHN의 창업자로서 인터넷 세상을 평정한 후, 더이상 웹에서는 승 산이 없다는 판단 하에 모바일로 시선을 돌려 카카오톡이 라는 커뮤니케이션 서비스를 만들었다. 생각과 토론, 결정과 집중 김범수의 이러한 성공에는 스스로 ‘생각’하는 것과 그것을 다른 사람들과 공유하며 ‘토 론’하는 것, 신속한 ‘결정’과 그것을 발전시키기 위해 ‘집중’하는 역량이 뒷받침 되었다. 김범수의 하루 일과을 보면, 아침 5시 30분에 일어나 1시간 정도 산책하고 30분 정도 샤 워를 하는데, 이 시간을 오로지 사색하고 계획과 결단을 하는데 쓴다. 그러고 나서 30 분 정도 신문 등 뉴스를 읽고 1시간 동안 책을 읽는다. 이렇게 아침 3시간을 생각과 독 서로 보낸다. 또 김범수가 NHN에 있을 당시 만든 전략위원회는 격렬한 토론과 그 자리에서 결정을 내리는 것으로 유명했다. 김범수는 대화도 중시했지만 그 못지 않게 충돌을 중요하게 생 각했다. 충돌한다는 것은 자유로운 의사 표현이 가능한 조직이라는 것이다. 책임의식 함께 일하는 직원들을 책임져야 한다는 책임의식도 한 몫했다. 이러한 의지가 커쳐 벤 처기업인 100인을 키우겠다는 계획으로 확대됐다. 2012년 4월 벤처캐피탈인 케이큐브 벤처스를 설립하고 투자자들을 모집해 모바일을 중심으로 인터넷, 게임 등 다양한 분 야의 신생기업들에게 아낌없이 투자하고 있다. 2012년 말까지 총 50억원 수준의 투자가 이루어질 것으로 보인다. 유니텔 대학원에서 PC통신을 처음 접한 김범수는 ‘사람과 사람을 연결’해 주는 것. 여기에 흥 미를 느껴 신입사원 선발이 끝난 삼성SDS에 무작정 가서 원서를 내고 얼마 후 합격 통 보를 받았다. 삼성SDS에 입사한 김범수는 동료들이 프로그래밍에 집중할 때 PC통신인 유니텔 개발에 참여하여 기술개발은 물론, 기획, 설계, 유통까지 거의 모든 것을 담당 했다. 유니텔은 text 위주였던 천리안, 하이텔과 달리 국내 최초로 GUI 기반의 전용 에 뮬레이터(UNIWIN)를 도입해 모든 서비스를 클릭만으로 가능하게 해 PC통신의 판도 를 바꾸어 놓았다. 한게임 김범수는 ‘좋아하는 것을 해보자’는 마음에 삼성SDS를 나와 한양대학교 앞에 국내 최 대규모의 PC방을 차리고 PC방 관리 프로그램과 한게임을 만들었다. 1999년 12월 한게 임의 첫 서비스를 시작한 김범수는 전국의 PC방을 돌아다니면서 한게임을 PC방 컴퓨 터 초기화면으로 설정하는 조건으로 PC방 관리 프로그램을 무료로 깔아줬다. 첫 서비 스를 시작한지 3개월 만에 100만명의 회원을 확보했고, 1년 반 만에 1,000만명을 돌파 하는 성공을 가져왔다. NHN NHN 한게임 회원수가 하루에 10만명씩 증가하면서 트래픽 과부하가 일어났다. 이에 대한 돌파구로 삼성SDS 입사동기인 이해진 의장이 운영하던 네이버와의 합병(2000.4) 을 선택하고 5년 넘게 공동대표를 하며 NHN의 성공을 이끌었다. 아이위랩 아이위랩을 창업(2006.12)한 김범수는 NHN을 나오면서 본격적인 프로젝트에 돌입한 156기술인문융합 창의형 인재 / Creative Leadership 대한민국 기술인문융합을 선도하는/ 인/ 물/157
  • 다. 미국에서 동영상과 사진을 공유하는 웹 2.0 블로그 ‘부루닷컴’을 선보였고, 한국에서 는 집단지성 정보추전사이트인 ‘위지아’를 내놓았지만 실패로 돌아간다. 이는 아이폰의 등장과 맞물려 웹에서 모바일로 눈을 돌리게 되는 계기가 된다. 카카오 모바일로 눈을 돌린 김범수는 어떤 앱을 만들어야 할지 고민하게 된다. 스마트폰은 통 신기기인 만큼 커뮤니케이션이 중요하다는 생각에 1:1 대화를 위한 카카오톡을 출시하 였다. 카카오톡 출시 이전에 국내에 M&Talk이란 모바일 메신저가 있었지만 서비스가 원활하지 못해 ‘무료+원활한 서비스+그룹채팅’이 가능한 카카오톡이 빠르게 시장을 점 유해 나갔다. 카카오톡은 ‘11년 국내 앱스토어 소셜네트워크 시장의 77%를 점유하며 압 도적으로 1위에 올랐으며, 2012년 9월 카카오카카오 모바일로 눈을 돌린 김범수는 어떤 앱을 만들어야 할지 고민하게 된다. 스마트폰은 통신기기인 만큼 커뮤니케이션이 중요 하다는 생각에 1:1 대화를 위한 카카오톡을 출시하였다. 카카오톡 출시 이전에 국내에 M&Talk이란 모바일 메신저가 있었지만 서비스가 원활하지 못해 ‘무료+원활한 서비스 +그룹채팅’이 가능한 카카오톡이 빠르게 시장을 점유해 나갔다. 카카오톡은 ‘11년 국내 앱스토어 소셜네트워크 시장의 77%를 점유하며 압도적으로 1위에 올랐으며, 2012년 9 월 카카오톡 출시 2년 반만에 가입자가 6,000만명을 넘어섰다. 또한 애니팡, 캔디팡, 드 래곤 플라이트 등의 카카오 게임이 전 국민적인 신드롬을 일으키면서 처음으로 흑자 전 환에도 성공했다. 카카오톡의 성공요인은 디자인, 타게팅, 네이밍 등 여러 가지가 있지만 다른 소셜네트 워크 앱과 차별화된 사용자 편의 위주의 서비스를 제공한다는 점이다. 카카오톡의 그룹 채팅과 보이스톡이 대표적이다. 그룹채팅은 네이트온에 익숙한 국내 사용자들에게 Killer app이었고, 비싼 전화요금 때 문에 골치를 앓고 있는 수많은 스마트폰 사용자들에게 보스이톡이야 말로 소비자가 원 하는 서비스였다. 또한 10대에서 50대까지 남녀노소가 즐기는 ‘국민게임’이 된 애니팡의 성공엔 카카오톡에 기반을 했다는 점과 단순한 게임 규칙, 시간 제한 등도 주요했지만, 무엇보다 사람을 연결하는 매개체 역할을 하며 경쟁구도를 만들어 냈기 때문이다. 애니 팡은 2012년 7월 출시된 이후 40일만에 가입자수 1,200만명이라는 대기록을 세우며 국 내 스마트폰 게임 문화를 확대했다. 이러한 성공을 발판삼아 카카오는 2013년 1분기 음악·책·뉴스·동영상 등 각종 콘텐 츠를 제공하는 ‘카카오 페이지’ 서비스를 시작하며 콘텐츠 유통 플랫폼으로 확대해 나갈 계획으로, 파트너사·콘텐츠 제작사·앱 개발자·사용자들이 모두 윈윈할 수 있는 건 강한 ‘모바일 상생 생태계’를 구축할 것으로 기대된다. 158기술인문융합 창의형 인재 / Creative Leadership 대한민국 기술인문융합을 선도하는/ 인/ 물/159
  • 새로운 관점 김범수 의장의 성공에는 똑같은 현상을 남들과 조금 다르게 보는 ‘새로운 관점’의 눈이 있었 다. 남들이 모르는 엄청난 것을 만들려고 하기보다 이미 사람들이 바라고 있던 것들 중에서 잘 충족되지 않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를 찾으려 했다. 이 외에도 김범수 의장의 성공 뒤에는 다음과 같은 자신만의 철학이 있었다. •관점의 차이가 인생을 바꾼다. •꿈의 크기가 인생의 크기를 결정한다. •혼자서 할 수 있는 것은 없다. 좋은 팀을 만든다. •충돌을 두려워 말고 대화에 나선다 •남에게 물어서 인생의 답을 구하지 않는다. 사용자 생각 읽기 김범수 의장은 한게임이 위기를 맞은 원인을 서비스 철학의 부재에서 찾았다. ‘사용자가 진짜 원하는 것이 무엇인가?’ 이것이 가장 중요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러한 깨달음이 카카오톡 에 반영되어 성공으로 이어졌다. 모바일에서 사용자들이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커뮤 니케이션이고, 이것이 다양한 사람들과 원활하게 이뤄지게 하는 것이 기본이었다. 여기에 다 양한 앱을 통해 재미를 더한 것이다. 주위와의 상생 벤처캐피탈을 통해 벤처기업에 아낌없이 투자하며 벤처 창업 생태계의 선순환 구조를 만들 고 있으며, 카카오를 모바일 콘텐츠 유통 플랫폼으로 발전시켜 참여하는 모두가 윈윈할 수 있는 건강한 모바일 생태계를 구축하고 있다. 함께 하는 사람들에 대한 책임의식이 밑바탕 이 된 것이다. 소통 소통과 공감의 리더십 = 신뢰·충돌·헌신의 소통문화 김범수는 NHN 시절 ‘전략위원 회’라는 걸 만들었다. 지금까지도 NHN의 의사 결정 시스템 중 가장 큰 특징으로 꼽히는 전략 위원회는 경영진의 집단 토론이라고 할 수 있다. NHN의 역사에서 중요한 결정은 대부분 전 략위원회에서 이뤄진 것이 많다. NHN의 집단적 의사 결정의 장점은 바로 속도에 있다. 의사 결정의 속도보다 더 놀라운 것은 NHN 시절 전략위원회의 운영 방식이었다. 당시 전략위원회 가 열리는 16층 회의실에서는 회의가 열릴 때마다 항상 큰 소리가 났다고 한다. 아이디어 아이디어보다는 실행이 더 중요하다 “아이디어만 갖고는 아무 소용이 없죠.” 카카오톡을 만 들 때도 그는 모바일 세상에서 사람들이 궁극적으로 원하는 것은 굉장히 복잡한, 또는 엄청나 게 새로운 뭔가가 아니라 좀 더 편하게 자기가 친한 사람들과 연결되고 이들과 소통하는 것 이라고 생각했다. 기발한 아이디어라고 하더라도 인간의 본질이나 세상을 움직이는 근본 원리와 동떨어져 있 으면 아무 의미가 없다. 본질을 꿰뚫어보는 평범한 아이디어가 실제로 세상을 변화시킨다는 것이 김범수의 생각이었다. 정부 정책도 마찬가지다. 인간의 본질을 도외시한 채 그저 눈앞의 성과만 내려고 하거나 이익 집단의 이해관계에 휘말려서 정책을 펼칠 경우 일을 그르칠 수밖 에 없다. 대표적인 게 게임 산업에 대한 규제다. 어디에서나 ‘게임’은 아주 골치 아픈 산업이 다. 게임은 건전한 놀이에서 출발하지만 중독성이 강해 도박과 마찬가지로 개인을 위험에 빠 뜨릴 수 있다. 하지만 보통 게임의 부정적인 효과만 강조된다. 본질을 고민한 정책이 과연 가 능할까. 어쨌든 김범수의 리더십이 보여주는 시사점은 아이디어에 앞서 본질을 고민해야 한 다는 것. 그리고 그것에 맞는 실행을 펼쳐야 한다는 것이다. 김범수가 생각하는 리더십 김범수가 생각하는 리더십의 기준은 무조건 듣기, 문제 제대로 파악하기, 결정하기 세 가지 이다. 무조건 듣기는 들을 줄 아는 데서 리더십이 시작하며, 듣고 공감하고 지지해야만 구성 원들이 자발적으로 따른다. 문제 제대로 파악하기는 문제가 생기면 문제의 답을 찾기보다 그 문제가 정확히 뭔지 파악하는게 훨씬 중요하다. 문제를 정확히 파악하면 새로운 각도에서 해 결책을 찾을 수 있다. 리더로서의 경영 방침 • 최악의 리더는 결정하지 않는 리더이다. • 의사결정은 6개월 이후를 생각하고 결정하는 것이 최적이다. • 기발한 아이디어를 중요시 하는 것이 아니며 세상을 놀라게 할 만한 깜짝 아이디어도 없다. • 소통이란 조언하거나 가르치는 것이 아니다. • 소통의 3원칙 - 경청, 공감, 지지 • 충돌이 없는 조직은 죽은 조직이다. 단, 서로 신뢰해야 한다. • 해결책을 찾는 것보다 문제를 어떻게 인식하느냐가 더 중요하다. • 평생 벤처기업인을 육성하겠다. 160기술인문융합 창의형 인재 / Creative Leadership 대한민국 기술인문융합을 선도하는/ 인/ 물/161
  • 주식회사 SM 엔터테인먼트(SM Entertainment)는 가수 출신의 이수만이 설립한 연예기획사이다. 초기에는 연예 매니지먼트 사업을 주력으로 하였으나 현재는 자회사 신설, 계열사 편입 등으로 사업영역을 지속적으로 확대하고 있다. 외국 현지법인으로 SM JAPAN, ASIA, USA가 있다. SM엔터테인먼트는 1995년 자본 금 5000만 원으로 세워진 엔터테인먼트 기업이다. 2001년 국내 최초로 100억 원 규모의 음반투자 펀드를 결성하여 이해 일본 합작법인을 세웠다. 출생(서울 종로) 경복고등학교 울대학교 농과대 농업기계 학사 미국 캘리포니아대학교 대학원 컴퓨터 엔지니어링학 석사 SM 기획 설립 아이스크림엔터테인먼트 공동 설립 SM엔터테인먼트 설립, SM엔터테인먼트 MBC 대학가요제 심사위원회 위원장 SM엔터테인먼트 프로듀서 SBS 서울가요대상 인기가요기획상 SBS 가요대전 프로듀서상 제 23회 골든디스크상 제작자상 제 2회 대한민국 서울문화예술대상 대중가요프로듀서 대상 제 1회 한국음악저작권대상 음반제작자상 제 1회 가온차트 K-POP 어워드 K-POP 공헌상 코리아 소사이어티 문화상 1952. 6. 18 1971 1979 1985 1989 2000. 8 2005 2006. 1977 2004 2008. 2011 2011 2012 2012 시대배경 가수에서 출발하여 연예기획사 설립과 문화산업기술로 한류를 확산시킨 대표 인물로 평가된다 인문소개 현존인물에 대한 융합적 관점에서의 리더십 재해석 SM 엔터테인먼트 이수만 회장 IT와 CT의 만남 새로운 가상국가, 대한민국 영토를 넓힌다. 162기술인문융합 창의형 인재 / Creative Leadership 대한민국 기술인문융합을 선도하는/ 인/ 물/163
  • 우연과 일회성에서 벗어나는 시스템화 그는 디지털음원 시장을 적극 활용하고 유투브를 통해 K-POP 문화를 세계로 퍼뜨렸다. 그 결과 SM엔터테인먼트는 코스닥 시가총액 10위권 기업으로 자리 매김했고, 그 자신도 부를 쌓았다. 세계 주요 도시에서 콘서트를 열고 한류를 널 리 알리는 데 성공했다. 잠재력 있는 인재에 투자하고 글로벌 마인드와 도전의 식을 심어준 것도 그다. 인내 이수만 회장을 오랫동안 지켜본 이장우 경북대 교수(경영학)는 그의 성공 비결 을 “최고를 위한 인내의 경영”이라고 표현했다. 엔터테인먼트 산업은 선택의 연 속이다. 좋은 가수를 고르고, 좋은 스태프를 고르고, 좋은 음악을 고르는데 그 선택에 극도의 인내심을 발휘하는 사람이 이수만 회장이다. 선택을 위해 과하다 싶을 정도로 많은 선택지를 검토하지만, 그래도 답이 없다고 생각하면 깨끗이 포기한다. 어정쩡한 제품에 목을 매는 리스크를 감수하기보다는 시간과 비용이 들어도 최고가 될 때까지 투자하고 기다린다는 것이다. 소녀시대(少女時代, Girl's Generation)는 SM 엔터테인먼트 소속의 9인조 걸 그룹 이다. 소녀시대라는 이름은 “소녀들이 평정할 시대가 왔다”는 의미를 갖고 있다. 대개 줄여서 소시라고도 하고, 한자권에서는 少女時代로, 영어권에서는 SNSD 나 Girl's Generation이라 부른다. 2007년 8월 2일 데뷔 싱글 <다시 만난 세계>를 발매하고, 8월 5일 정식 데뷔했다. 주/요/성/과/ 문화적 영향 음악 웹진 100BEAT의 김정위는 소녀시대를 “록키드들도 당당하게 아이돌을 좋 아한다고 말할 수 있게 된 계기”로 꼽았으며 모노클의 편집장인 타일러 파이낸 셜타임스에 ‘나의 멋진 한국의 비밀’이란 칼럼에서 한국이 세계에 수출해야 할 10가지 문화 상품 중 하나로 소녀시대를 들었다. 특히 후루야 마사유키는 그들 이 일본 젊은 여성들의 패션 아이콘 이라고 말했고, 일본 영어 교과서에 “전 세 계에서 인기를 얻고 있는 K-POP 스타들”이라 는 제목으로 K-POP의 대표로 소 녀시대를 소개하며 사진이 삽입되었다. 164기술인문융합 창의형 인재 / Creative Leadership 대한민국 기술인문융합을 선도하는/ 인/ 물/165
  • 문화기술(CT: Culture Technology) 이론 도입 문화기술은 이 회장이 만든 신조어이다. 그는 14년 전 자신과 함께 하던 아티스 트들과 문화 콘텐츠를 가지고 아시아 진출을 시작할 때 IT(정보기술)와 구별하 기 위해 만든 용어라며, “IT가 지배하던 90년대 이후에는 IT보다 더 정교하고 복 잡한 테크놀로지인 CT의 시대가 올 것이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이 용어는 국내에서 만들어진 것으로서 세계적으로 통용되지는 않는다. 그 의 미는 좁게는 문화콘텐츠를 디지털화하는 기술을 뜻하며, 넓게는 문화예술·인 문사회·과학기술이 융합하여 인간의 삶의 질을 향상시키고 더 나은 방향으로 변화하게 하는 기술을 뜻한다. 문화기술과 관련된 산업은 소프트웨어, 인터넷, 무선통신, 컴퓨터 분야는 물론 영화·방송영상·게임·음악 분야의 콘텐츠, 패 션·완구·공예·스포츠 등의 생활문화, 시각예술·공간예술·공연예술 등의 예술 산업, 문화유산 및 관광산업, 의료산업 및 복지산업 등으로 광범위하다. 문화기술 이론에 근거한 ‘한류 3단계’ 발전론 한류 문화상품을 수출하는 1단계, 현지 회사 또는 연예인과의 합작으로 시장 을 확대하는 2단계, 현지 회사와 합작회사를 만들어 현지 사람에게 한국의 CT 를 전수하는 3단계를 거쳐 한류 현지화를 이룸으로써 그 부가가치를 공유한다 는 것이다. 그는 “이제 ‘made in’(원산지)이 아닌 ‘made by’(제조가)가 중요하다”며 “3차 한류 의 스타가 중국인 아티스트나 중국 회사가 될 수도 있지만 그 스타가 바로 SM의 CT로 만들어질 것”이라고 강조했다. 문화기술 이론을 통한 이수만의 꿈 이 회장은 큰 꿈이 있다. SM네이션을 만들어 레이디 가가 네이션과 경쟁하겠다 는 구상이다. 그는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SNS)와 클라우드 환경이 기존의 국가 와 국민의 개념을 바꾸고 있으며 여기에 맞춰 세계 최초로 가상 국가 선포식을 가진 바 있다. 가상 국가는 물리적 영토를 초월해 SM 소속 가수들의 음악을 즐 기는 각국 팬들을 국민으로 삼는 문화적인 개념의 국가를 의미한다. ▲ SM 가상국가 선포식 이 회장은 한국경영학회 컨퍼런스에서 “지금 전 세계 젊은이는 새로운 동영상 매체인 유투브로 시청한다. 남아프리카공화국부터 중국까지 피부색, 언어와 상 관없이 전 세계 지구인이 SM의 콘텐츠를 즐겨 보고 있다.”고 말했다. 앞으로는 원론적이고 물리적인 성격의 국가보다 ‘버추얼 네이션’이라는 가상 국 가가 급부상한다. 이러한 가상 국가 속에 SM타운이 중심에 설 것이다. SM 음 악을 중심으로 프랑스인, 중국인, 미국인이 모여들고 동질감을 느끼는 것이다. 과거에는 마이클 잭슨의 네이션, 브리트니 스피어스라는 네이션이 제일 컸다. 이제는 SM의 네이션이 마이클 잭슨의 네이션과 경쟁하는 셈이다. 물론 SM이라 는 버추얼 네이션의 근거지는 한국이며, 한국은 버추얼 네이션으로는 최고가 될 것이다”라고 강조했다. 166기술인문융합 창의형 인재 / Creative Leadership 대한민국 기술인문융합을 선도하는/ 인/ 물/167
  • 새로운 사람들이 만드는 새로운 재미 네오플은 온라인 게임 개발사이다. 네오플(NeoPle)이라는 사명 은 '네오(Neo)'와 '피플(People)', '네오(Neo)'와 '플레저(Pleasure)' 의 합성어. 즉 '새로운 사람들이 만드는 새로운 재미'를 뜻한다. 네오플의 모토는 남들이 가지 않은 길을 도전하는 자세로 임하겠 다는 이 회사가 추구하는 'We Make Wonders!'이다. 글로벌 게임 업체로 도약 네오플은 2000년 12월 충무로의 한 빌딩에 4명의 대학 동문, 3명 의 개발자, 웹기획자 등 서로 다른 9명의 젊은이가 패기 하나로 뭉쳐 창업했으며, 2001년부터 네오플이라는 이름으로 본격적인 게임 개발에 착수했다. 처음 만든 게임은 ‘러브러브스튜디오’라 는 미팅게임이다. 개발이 완료되지 않았음에도 투자를 받게 됐 고, 그 투자를 바탕으로 2003년에 개발한 ‘캔디바’라는 게임이 속 칭 대박이 났다. 이후 캐주얼 야구게임 ‘신야구’로 인기를 이어 가던 네오플은 2005년 던전앤파이터로 신화를 만들기 시작했다. 한국을 비롯 중국, 일본, 대만, 북미 등 해외 각지로 서비스 되며 글로벌 회원수 3억명(‘11.5)을 돌파하는 초대박 흥행 기록을 세 웠으며, 2005년 4분기 디지털 콘텐츠 대상, 2007년 대한민국게임 대상 우수상을 수상하며 한국 최고 온라인게임으로 인정받았다. 한참 전성기를 달리던 네오플은 ㈜넥슨의 자회사로 편입(‘08.7), 네오플의 뛰어난 게임 개발력에 넥슨이 그동안 국내외 시장에서 쌓아온 온라인 게임 퍼블리싱 노하우와 인프라가 더해져 글로 벌 게임업체로 발돋움하고 있다. 2011년 매출액 기준 국내 온라 인 게임 업계 5위이며 순이익 기준으로는 넥슨과 NHN-한게임 에 이어 3위에 올랐다. 시대배경현존인물에 대한 융합적 관점에서의 리더십 재해석 네오플 강신철 대표 여러 사람의 ‘Wonder’한 생각을 모아 꿈과 희망에 도전하다 168기술인문융합 창의형 인재 / Creative Leadership 대한민국 기술인문융합을 선도하는/ 인/ 물/169
  • 인물소개 1972. 출생(서울) 1995. 서울대 컴퓨터공학 학사 졸 1996. 쌍용정보통신 개발팀 입사 1999. 엠플레이 입사 2001. 엠플레이 대표이사 취임 2006. 넥슨시스템 개발 본부장 2006. 넥슨 대표이사 취임 2009. 네오플 이사 겸임 2010. 네오플 대표이사 글로벌 게임업체로 도약 ‘05년 8월 ‘던전앤파이터’를 런칭한 이래 한국을 비롯 중국, 일본, 대만, 북미까지 총 5개 지역에 서비스되고 있으며 글로벌 회원수 3억명(‘11.5)을 넘어 섰다. 또 중국 시장에 진 출한지 1년 만에 동시접속자수 300만명(‘12.8)의 초대박 흥행을 거듭하고 있다. 던전앤파이터의 커다란 성공 뒤에는 강 대표의 ‘재미’를 추구하는 게임사로서 ‘유저’가 즐길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신념이 있었다. 2011년 7월 던전앤파이터의 인기가 여전한 데도 유저가 좀 더 쾌적하게 즐길 수 있게 하기 위해 640×480의 저해상도였던 게임 화 면을 16대9 비율의 800×600 해상도로 끌어올리는 일명 ‘던파 혁신’을 감행한다. 던전 앤파이터 같은 2D 그래픽 게임에서 해상도를 높인다는 것은 단순히 화면을 늘리는 것 이 아니라 이미지를 처음부터 다시 그리는 수작업이 필요했다. 새로운 그래픽 작업에 는 60여 명의 개발인력이 반년 넘게 투입되었으며, 결과 한국 내 동시접속자수가 29만 명을 넘는 신기록을 세웠다. 글로벌 온라인 엔터테인먼트 기업으로의 첫 단계 강 대표는 네오플이 넥슨의 자회사에서 멈추지 않고 글로벌 온라인 엔터테인먼트 기업 으로 성장할 거라는 목표를 가지고 이를 위한 준비 작업을 하나하나 실행에 옮기고 있 다. 그는 ‘재미’를 추구하는 게임사로서 초심을 잃지 않으면서 한 단계 한 단계 밟아 나가 다 보면 ‘한국의 디즈니’로 세계에 이름을 알리는 글로벌 기업이 돼 있을 것이라고 믿고 강신철 대표는 1972년 서울 출생으로 서울대 컴퓨터공학과를 졸업하고 1996년 쌍용정 보통신 개발팀에 입사해 NCMS, 라우터/스위칭 허브 등을 개발하였다. 1999년 엠플레 이로 옮겨 세계 최초로 인터넷 퀴즈게임인 ‘퀴즈퀴즈’를 개발하였으며, 2001년 대표이 사로 취임한 후 크레이지 아케이드, 큐플레이를 발표하였다. 2006년에는 넥슨 대표이사로 취임하여 신작 라인업 강화로 내실을 다지는데 주력하고 네오플을 인수합병하는 등 공격적인 사업 행보를 이어갔다. 네오플의 킬러 콘텐츠와 개 발력이 넥슨의 새로운 성장동력이 돼줄 것이라고 확신했다. 2010년 네오플 대표이사로 취임한 이후 글로벌 서비스 확대, 게임 콘텐츠 라이센스 사 업 확대 등을 통해 온라인 게임이 단순한 오락물의 차원을 넘어 게임 캐릭터 자체가 생 명력을 가짐으로써 경쟁력 있는문화상품으로 거듭나도록 했다. 이러한 노력으로 네 오플은 국내 온라인 게임 업계 5위(‘11년 매출액 기준)의 자리에 우뚝 설 수 있게 됐다. 2005 2005 2005 2005 0.1억 0.5억 2억 3억 ━◦━ 누적 회원수(명) 170기술인문융합 창의형 인재 / Creative Leadership 대한민국 기술인문융합을 선도하는/ 인/ 물/171
  • 있다. 이를 위해서 제한된 몇몇 게임에 회사의 역량을 집중하기보다는 게임 장르를 다 양화하고 온라인 게임의 경계를 넓혀 글로벌 서비스에 집중하겠다는 전략을 드러냈다. 이를 위해서 제한된 몇몇 게임회사의 역량을 집중하기 보다는 게임 장르를 다양화하고 온라인 게임의 경계를 넓혀 글로벌 서비스에 집중하겠다는 전략을 드러냈다. 한편, 게임분야에 머물지 않고 게임 콘텐츠를 활용한 라이선스 사업을 지속적으로 실시 하고 있으며 인형, 학용품, 보드게임 들을 비롯해 서적, 식음료, 의류 등으로 그 범위를 지속적으로 넓혀가고 있다. 한국코카-콜라사와 제휴를 통해 던전앤파이터 네스티를 선 보였으며, CU(구 훼미리마트)와 제휴를 통해 던전앤파이터와 사이퍼즈의 캐릭터가 그 려진 삼각김밥을 출시(’11.7)했다. 또 오뚜기와 제휴를 맺고 던전앤파이터 뿌셔뿌셔를 출시하고 공동 프로모션을 진행('11.12)하였으며, 최근에는 롯데칠성음료와 제휴를 맺 고 던전앤파이터 캐릭터를 음료 3종에 삽입했다. 초고속 성장 네오플은 2011년 매출 2,935억원, 순이익 1,960억원, 영업이익률 87%라는 기록을 세웠 다. 뭇 기업들이 감히 상상하기 힘든 꿈의 실적이며, 던전앤파이터라는 하나의 게임으 로 이 정도 성과를 낸 것은 전무후무한 일이다. 이에 세계적인 컨설팅 기관 딜로이트가 선정한 고속성장 500대 기업(Deloitte Technology Fast 500)에 선정(‘11.12)되기도 했다. 독서경영 책을 읽는 것은 세상을 여행하는 경험과 같다고 생각하여 책읽는 문화를 형성하기 위 해 독서지원제도를 시행하고 있으며 사내 인트라넷 게시판을 통해 자발적으로 책을 읽 은 소감을 공유하고 있다. 멘토링 제도 '10년 7월부터 멘토링 제도를 도입하고 있다. 기존 OJT의 업무중심으로 짜여진 신입사 원 프로그램이 아닌 OJT와 멘토링 제도를 50:50으로 장점들을 섞은 보완형 제도로 자리 잡고 있다. 또한 멘토링 다이어리를 통해 멘티와 멘토의 활동이 편안한 분위기 속에서 이루어질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고 있다. 홈퍼니 경영 근무환경을 집처럼 편안하게 만드는 ‘홈퍼니’ 경영을 지향하며, 카페테리아를 통해 부 드러운 회사분위기를 조성하고 수유실 등을 갖춰 육아 및 출산을 지원하고 있다. 독일 헤르티에재단은 가족친화 기업이 그렇지 않은 기업보다 30% 가량 생산성이 높다는 연 구결과를 내놓은 바 있다. 다양한 아이디어 수용 던전앤파이터 관련 일러스트, 영상 같은 창작물을 비롯해 캐릭터 및 던전앤파이터에 대 한 번뜩이는 아이디어를 공모하는 하는 ‘아이디어 배틀'('11.5)과 던전앤파이터 후속인 사이퍼즈 캐릭터를 활용해 특정 제품의 디자인을 구성하는 ‘리얼 사이퍼즈’ 등 다양한 공모전을 통해 유저의 참여를 유도하고 유저의 아이디어를 수용함으로써 개발진의 발 상에 전환을 꾀할 수 있는 일거양득의 효과를 보고 있다. 출처 : 코참비즈 2009 ▒매출 ▒순이익(억원) 1,558 2.117 2.935 1,960 1,481 999 2010 2011 172기술인문융합 창의형 인재 / Creative Leadership 대한민국 기술인문융합을 선도하는/ 인/ 물/173
  • 임지순 교수는 경기중·고등학교를 수석으로 졸업하고 서울대 물리학과를 수 석으로 입학한 수재 중의 수재였다. 대학 3~4년때는 사회과학에 매력을 느껴 한참 동안 진로에 대해 고민했으나 결론은 역시 과학이었다. 미국 U.C 버클리 대학에서 석·박사 과정을 밟을 때 독창적인 아이디어가 넘 쳐나는 친구들을 접하며 외우고 이해하고 문제를 푸는 것에서 탈피하는 계기 가 되었다. 석·박사 과정을 마치고 AT&T 벨연구소에서 연구원으로 근무하 였는데, 그곳 연구원들이 서로의 연구에 대해 활발히 대화하고 토론하는 모습 이 낯선 충격으로 다가왔다. 임 교수의 대표적인 연구성과인 탄소나노튜브의 반도체 성질 이론 규명(‘98) 과 세계 최소형 탄소나노튜브 트랜지스터 제작(’00)도 U.C 버클리 대학 연구 팀과의 공동 연구를 통해서 였으며, 이러한 성과는 임 교수의 대화를 중시하 고 타 연구·학문을 포용하는 열린 마음에서 비롯된 것이다. 1970. 경기고등학교 졸업 1974. 서울대학교 물리학 학사 1977. 미국 캘리포니아대학교 버클리 캠퍼스 대학원 물리학 석사 1980. 미국 캘리포니아대학교 버클리 캠퍼스 대학원 물리학 박사 1980~1982. 미국 MIT물리학과 연구원 1982~1986. 미국 AT&T벨연구소 및 벨코어 연구원 1996~ 서울대학교 자연과학대학 물리학부 석좌교수 1998~2001 대통령자문 정책기획위원회 위원 2011. 5~ 미국 과학학술원(NAS) 회원 1995. 제5회 한국과학상 물리학 부문 수상 1999. 제5회 운경상 산업기술 부문 수상 2004. 제18회 인촌상 자연과학 부문 수상 2007. 포스코 청암상 과학상 수상 2007. 대한민국 최고과학기술인상 수상 2009. 제5회 아시아 전산재료과학총회 총회상 수상 2012. 올해의 선도과학자 펠로십 수상 시대배경 인물소개 현존인물에 대한 융합적 관점에서의 리더십 재해석 서울대학교 임지순 교수 21세기 과학적 리더십을 내세우는 세계적 물리학자 과학은 소통과 설득 174기술인문융합 창의형 인재 / Creative Leadership 대한민국 기술인문융합을 선도하는/ 인/ 물/175
  • 한국 나노기술 분야 최고 권위자인 임지순 교수는 1951년 서울 출생으로 수재라는 수식어가 항상 따라다녔다. 최고 명문 학교였던 경기중·고등학교를 수석으로 졸업하고 서울대 물리학과를 수석 으로 입학, 졸업하고는 미국 U.C 버클리에서 물리학 석·박사 과정을 밟았으며 MIT물리학과 연구 원, AT&T 벨연구소 및 벨코어 연구원을 거쳐 현재 서울대 물리천문학부 석좌교수를 지내고 있다. 세계 최소형 ‘탄소나노튜브 트랜지스터’ 제작에 성공해 세계적 석학으로 떠올랐으며 세계에서 가장 권위 있는 과학학술단체인 미국과학학술원(NAS)에 국내 물리학자로는 최초로 외국인 회원으로 선 출됐다. 한국 과학자 중에서 노벨상에 가장 접근해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연구 실적 1979. 운동량-공간에서의 고체 총에너지 공식 계산법 제시 1998. 세계 최초로 탄소나노튜브의 반도체 성질 발견 1999. 티타늄 탄소-질소 화합물의 구조와 결합에 대해 전자띠구조의 기초적 이론 규명 2000. 세계 최소형 탄소나노튜브 트랜지스터 제작 2006. 새로운 수소저장물질 구조 발견 계산재료물리학 분야 개척 임 교수는 1970년대 후반부터 자체 충족적인, 제일원리적 유사 퍼텐셜 방법을 이용해 다양한 응집 물계의 전자구조를 양자역학적으로 정밀히 계산하는 분야의 선구자적 역할을 해 왔다. 특히, 1979 년 ‘운동량-공간에서의 고체 총에너지 공식’이란 논문을 발표하며 계산재료물리학(computational materials physics) 분야를 새롭게 개척하였으며, 논문에서 제시한 고체의 총에너지 계산법은 국제 공인 학술지에 무려 800회나 인용되면서 한국 과학자 논문 중 가장 많이 인용된 것으로 알려졌다. 세계 탄소나노튜브 연구분야 선도 버클리 대학 연구팀과 공동으로 1998년 전도체인 탄소나노튜브를 다발로 묶으면 반도체 성질을 띤 다는 사실을 이론적으로 규명함으로써 실리콘 반도체의 기술적 한계를 극복할 수 있는 차세대 나노 소재로서의 가능성을 제시, 국내외적으로 많은 주목을 받았다. 2000년에는 탄소나노소자를 십자형 으로 포개면 트랜지스터 기능을 한다는 사실을 밝혀내고 세계 최소형 탄소나노튜브 트랜지스터 제 작에 성공하면서 세계 탄소나노튜브 연구 분야를 선도하였다. 미래 녹색에너지 연구 2005년부터는 수소 저장장치 분야를 연구하고 있으며, 2006년에는 수소를 고체 상태에서 저장할 수 있는 물질 구조를 발견하고 이와 관련된 논문을 물리학계 최고 권위지인 미국 ‘피지컬리뷰레터 (Physical Review Letters)’에 발표하였다. 글로벌 완성차 업체들이 차세대 그린카로서 수소자동차 개 발을 시도하고 있으나 수소를 가스 상태로 탱크에 저장하면 폭발 위험성이 있어 개발에 큰 걸림돌 로 작용해 왔다. 그러던 중 임 교수가 발견한 물질 구조를 수소자동차 상용화 개발에 응용하면 이 문 제를 해결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되어 큰 관심을 모았다. 과학은 대화와 설득 과학적으로 새로운 이론이 확립되려면 연구 결과에 많은 과학자들이 인정하고 상호동의해 줘야 한 다. 그러기 위해서는 대화와 설득이 필수적이다. 시간이 좀 걸리더라도 설득하는 과정, 과학에서 굉 장히 필요한 것이다. 또한 과학은 혼자 연구하는 것이 아니다. 임 교수가 AT&T 벨연구소에서 연구원으로 일할 때 그곳 과학자들은 항상 서로 대화를 많이 했다. 거기에서 과학은 골방에 틀어막혀 혼자 깨달음을 얻는 것 이 아니라 다른 사람과의 대화를 통해 나의 ‘틀린’ 부분을 알고 겸허히 수용할 때 비로소 발전할 수 있는 것이다. 교양교육 중시 임 교수는 발전을 위해서는 영역 간의 경계를 너무 나누려 하면 안되고, 따라서 교육 제도에 있어 서도 장기적으로는 문과·이과 구분을 철폐하고 단기적으로는 교양교육을 강조해야 한다고 생각 한다. 고등학교에서 문과·이과를 나누다 보니 대학에 와서 이과 학생들은 문과계열의 교양수업을 졸업하기 위해 어쩔수 없이 듣는 과목쯤으로 생각하는데, 당장 눈 앞의 공식을 푸는 데는 도움이 안 될 지 몰라도 인문학적 소양을 쌓음으로써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일생 동안 도움이 된다는 것이다. 1. 창의적인 사고의 중요 창의적인 사고는 상상력이 바탕이 된다. 창의력은 무언가에 몰두 하고, 전공 분야의 지식, 체력, 관용의 마음에서 생겨나며 꽉 짜인 삶이 창의력을 막는 것이라고 한다. 2. 과학은 소통 과학은 골방에 들어가서 혼자 깨달음을 얻는것이 아니다. 다른 사람들과의 대화를 통해 알아가는 것이다. 3. 과학은 설득과 커뮤니케이션 스스로가 똑똑하더라도 개인의 한계가 있고 잘못 알고 있 는 것도 있을 것이다. 또한 누군가가 ‘틀리다’의 코멘트를 한다면 담담하게 받아들이는 것이 지속적인 발전의 기본이다. 4. 교양 교육 중시 학문의 경계를 나누지 않고 공부를 하는 것은 발전을 위한 큰 기본기가 되며 은연중에 자기도 모르는 사이 일생 동안 도움이 된다. 176기술인문융합 창의형 인재 / Creative Leadership 대한민국 기술인문융합을 선도하는/ 인/ 물/177
  • 분자전자과학 최고 권위자인 박홍근 하버드대 교수는 의사 집안에서 태어났지만 어렸을 적 ‘ 학생과학’이라는 잡지를 읽으며 과학자가 되겠다는 꿈을 키웠다. 원래는 서울대 물리학과를 가려다 화학과로 진로를 바꿔 결국 하버드대 화학·물리학과 겸임 교수란 특이한 이력을 갖 게 되었다. 화학과 물리가 교차되는 분야를 연구하여 세계 최초로 단분자 트랜지스터를 개발 하는 놀라운 성과를 얻어냈다. 최근에는 재미있을 것 같다는 이유로 뇌 연구 쪽으로도 분야를 넓혀 새로운 영역에 도전하 고 있다. 완전히 새롭다고 할 수는 없다. 나노기술을 이용해 뇌 세포간 신호전달체계를 연구 하는 것으로, 박 교수가 강조하는 ‘연구주제의 융합’인 것이다. 박 교수는 현대과학에서는 많 은 경험을 쌓아야 연구주제의 융합을 통한 새로운 연구결과가 나올 수 있다고 생각하며 그것 을 몸소 보여주고 있다. 1967년 서울 출생으로 서울대 화학과를 수석으로 입학해 서울대 전체수석으로 졸업하고 스탠 포드대에서 4년 만에 박사학위를 땄으며, 로렌스 버클리국립실험소에서 포스닥(박사 후) 과 정을 거친 후 1999년 32세의 나이로 하버드대 교수가 됐다. 하버드로 와서는 세계 최초로 단 분자 트랜지스터를 개발해 2000년 세계적 과학저널인 네이처 표지논문을 장식하며 분자전자 과학이라는 새로운 분야를 개척했다. 과학자들이 평생 한 번 논물을 싣기도 어렵다는 과학저 널 사이언스와 네이처에 지금까지 무려 5편의 논문을 발표했다. 또 관심있던 뇌 연구 쪽으로 도 분야를 넓혀 뇌 세포간 신호전달체계를 연구하고 있다. 국내 과학자 중 노벨과학상에 가 장 근접한 인물로 꼽히고 있다. 1967. 서울 출생 1990. 서울대학교 화학과 학사 1996. 스탠포드대학교 대학원 화학 박사 1996. 미국 로렌스 버클리국립실험소 포스닥(박사 후) 1999.~ 現 하버드대학교 화학과, 물리학과 교수 2000. 세계 최초 초소형 단분자 트랜지스터 구현 2003. 제13회 호암상 과학상 수상 2004. World Technology Award 수상 시대배경 인물소개 현존인물에 대한 융합적 관점에서의 리더십 재해석 하버드대 박홍근 교수 분자전자과학 최고 권위자 ‘된다’ 보다 ‘될까’의 연구에 투자하라 178기술인문융합 창의형 인재 / Creative Leadership 대한민국 기술인문융합을 선도하는/ 인/ 물/179
  • 연구 실적 ● 세계 최초로 초소형 단분자 트랜지스터 개발 ● 바나듐 분자 이용해 정보를 더 입체적으로 기억할수 있는 단분자 트랜지스터 개발 ● DNA나 생화학 무기를 검출할 수 있는 단분자 센서와 탄소나노튜브 센서 개발 ● 뇌 세포간 신경전달체계 연구 단분자 트랜지스터 구현 박 교수는 세계 최초로 풀러렌(60개 탄소분자가 축구공 모양으로 결합한 물질)을 이용해 세계에서 가장 작은 단분자 트랜지스터를 개발해 2000년 세계적 과학잡지인 네이처의 표지눈문으로 실렸으 며, 2003년에는 금으로 만든 2개 전극을 2나노미터(㎚) 정도 서로 떨어뜨린 뒤 그 사이에 바나듐 분 자를 배치하여 정보를 더 입체적으로 기억할 수 있는 단분자 트랜지스터를 구현해 다시 한번 네이 처 표지를 장식했다. 단분자 트랜지스터는 두 전극 사이에 1억개의 전자가 이동하는 일반 트랜지스 터와 달리 전자 하나로 정보를 저장하기 때문에 크기가 1나노미터로 극초소형이고 전력소모도 거 의 없다. 시점은 확신 할 수 없지만 이것이 상용화될 시 시계만한 슈퍼컴이 등장하고 한번 충전으로 1년을 쓸 수 있는 컴퓨터가 나올 수 있다. 가히 혁신이라 불리울 만한 성과이다. 최근에는DNA나 생 화학 무기를 검출할 수 있는 단분자 센서와 탄소나노튜브 센서를 개발하는 등 분자전 자과학의 세 계적인 권위자로 꼽히고 있다. 나노기술을 이용한 뇌 연구 박 교수가 하버드에 온 후 뇌과학 기초연구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하버드 대학의 전폭적인 지원 으로 의과대학 연구진과 함께 뇌의 신경세포로부터 정보를 얻어내 세포들간의 신호전달체계를 연 구하고 있다. 2010년 4월 하버드대 의대 연구팀이 사이언스지에 발표한 ‘백혈병암 줄기세포’에 대 한 연구에 박 교수도 참여했다. 반도체의 전기적인 성질을 이용하여 세포들끼리 어떤 정보를 주고 받는지 알아내 백혈병 암세포의 증식 원인을 찾아내 치료법을 만들도록 돕는 것으로, 박 교수는 나 노기술을 이용해 기존 반도체에 6개 정도의 세포를 심었던 것을 100개, 1,000개까지 가능하게 해 세 포들 간 신호를 더 잘 잡아낼 수 있게 하였다. 나노와 반도체, 생명공학의 영역을 넘어서는 융합 프 로젝트인 것이다. 일반적으로 학자들은 한 우물만 파는 경우가 많고 과거에는 이것이 ‘통’했다. 오히려 그 래야만 성공할 수 있었다. 하지만 과학이 고도로 발전하면서 세분화되는 한편, 기존의 경계가 흐려지면서 하나의 연구주제만으로는 기술을 선도하기 힘들게 됐다. 그런 측면 에서 박홍근 교수는 ‘연구의 융합’ 속에서 현대과학 속에서 필요한 연구적 리더십을 보 여주고 있다. 박 교수의 연구적 융합 리더십이 발휘될 수 있었던 데는 다양성을 추구하 는 박 교수의 사고와 이를 실천으로 옮길 수 있었던 지원 시스템이 뒷받침 되었기 때 문이다. 다양성 추구 박 교수는 연구 및 교육의 깊이와 함께 다양성도 중요하다고 생각하고, 본인 스스로가 나노, 반도체, 생명공학 등 다양한 학문 분야를 아우르고 있으며, 학생들에게는 집에서 는 전공이 아닌 분야의 책도 읽기를 권하고 있다. 사고가 유연해지고 창의적인 연구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아이디어에 과감한 투자 필요 박 교수는 ‘된다’라고 하는 연구보다는 ‘될까’하는 연구에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고 강조 한다. 박 교수가 단분자 트랜지스터를 연구하다 하버드로 와서 3년 동안 하버드 의대에 서 강의를 들으며 뇌 연구에 대한 준비를 하는 동안 대학은 박 교수에게 조건 없이 연구 비를 지원했다. 일반적으로 연구비를 지원받기 위해서는 정량적 분석이 필요하지만 이 번 뇌 연구는 아이디어만으로도 지원을 받을 수 있었다. 국내에서도 아이디어만으로도 지원을 받을 수 있는 시스템이 갖춰져야 한다. 대개 선 진국에서 2~3년 전에 추진한 연구주제를 국내에서 따라가는 경향이 있는데, 추격형에 서 탈피해 선도형으로 탈바꿈하기 위해서는 개인의 과감한 아이디어에 투자하는 환경 이 마련되어야 한다. 신기술, 신시장을 선도하려면 작고 새로운 생각을 가지고 있는 개 인에 투자하는 펀딩 메카니즘이 필요한 것이다. 180기술인문융합 창의형 인재 / Creative Leadership 대한민국 기술인문융합을 선도하는/ 인/ 물/181
  • 문수복 교수는 1965년 서울 출생으로 서울대학교 컴퓨터 공학 학·석사를 거쳐 매사추세츠대학교 암허스트캠퍼스 (Univ. of Massachusetts at Amherst)에서 박사학위를 딴 후 1999년부터 4년 동안 캘리포니아 Sprint ATL(Sprint Ap- plied Research & Advanced Technology Labs) IP Group의 IPMON 프로젝트 참여하였다. 2003년 현재 부교수로 재직 하고 있는 KAIST 전산학과 조교수로 부임하여 Advanced Networking 연구실을 운영하고 있으며, 전산학 네트워크 분 야의 선두주자로 미래 인터넷 기술 연구를 이끈 공로를 인 정 받아 제16회 한국공학한림원 젊은공학인상을 수상했다. 1965.09 1988 1990 2000 1999.10~2003.07 2003.08~2006.08 2006.09~ 現 2007.09~2008.02 2008.03 2008.04~2008.08 2007 2009 2010 2012 서울 출생 서울대학교 컴퓨터공학 학사 서울대학교대학원 컴퓨터공학 석사 매사추세츠대학교 암허스트캠퍼스 컴퓨터공학 박사 美 캘리포니아 Sprint ATL, IP Group 카이스트 전산학과 조교수 카이스트 전산학과 부교수 美 UCSD SysNet Group 방문연구원 스페인 Telefonica Reserch 방문연구원 美 UCSD SysNet Group 방문연구원 ACM SIGCOMM IMC 최우수논문상 수상 아모레퍼시픽 여성과학자상 과학기술상 수상 ACM SIGCOMM 최우수 포스터상 수상 제16회 한국공학한림원 젊은공학인상 수상 인문소개현존인물에 대한 융합적 관점에서의 리더십 재해석 KAIST 문수복 교수 전산학 네트워크 분야 선두주자 미래 인터넷 기술의 새 지평 182기술인문융합 창의형 인재 / Creative Leadership 대한민국 기술인문융합을 선도하는/ 인/ 물/183
  • SSL 가속기 개발 2011년 KAIST 전기·전자공학과가 전자 분야에서 선정한 ‘올해 10대 신기술’에 문 교 수가 박경수 교수와 함께 개발한 SSL 가속기가 들어갔다. 범용 CPU와 GPU를 이용해 세계 최고 성능 SW 기반 시큐어 소켓 레이어(SSL) 프락시 서버인 표준 암호화 프로토 콜(SSL) 헤더(가속기)를 개발한 것이다. 헤더는 전용 하드웨어 가속기를 탑재한 장비의 20분의 1 정도 가격으로 같은 성능(초당 2만7,000개 SSL 연결 처리)을 낼 수 있어 눈길 을 끌었다. 소셜 네트워크(SNS) 정략적 분석법 제시 문 교수는 지난 2012년 3월에 제16회 한국공학한림원 젊은공학인상을 수상하였는데, 이 는 소셜 네트워크(SNS)의 정량적 분석법을 제시하는 등 전산학 네트워크의 선두자자로 미래 인터넷 기술 연구를 이끈 공로를 인정받은 것이다. 문 교수는 싸이월드, 유투브, Daum 등 인터넷 사이트의 통신량과 수익 관계 등을 정확 하게 알아냈으며, 트위터 사용자 네트워크의 구조적 특성과 정보 전파의 특성을 분석 하여 트위터 사용자들은 오프라인에서의 이슈와 관련된 트윗들을 활발히 기록하며, 많 은 팔로어를 갖는 허브(Hub) 사용자들이 풍부하게 존재하고, 팔로어를 많이 갖지 못한 사용자들도 리트윗을 통해 정보를 빠르고 넓게 퍼뜨릴 수 있다는 것을 정량적으로 밝 혔다. 관계의 단방향성과 낮은 상호성, 그리고 빠르고 넓은 정보 전파는 다른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트위터의 고유한 특성으로서, 새로운 정보 전파 매체로 서의 가능성을 보여줬다. 문 교수는 주로 인터넷 망 성능 측정 및 분석, 온라인 소셜 네트워크의 정량적 분석법, 네트워킹 시스템을 연구하고 있다. VoIP 성능 개선 2000년 메사추세츠대학교 암허스트캠 퍼스 대학원에서 인터넷 망 성능 측정과 관련하 여 End-to-End 패킷 지연 및 손실간의 이론적 trade-off를 제시하는 박사학위 논문을 썼는데, 논문에서 패킷 지연을 측정하는데 있어서 근본적인 문제로 지적되어온 clock synchronization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clock skew estimation 알고리즘을 개발, VoIP 및 VOD streaming media의 근본적인 성능개선의 토대를 마련했다. 백본망 성능 향상 1999년 10월부터 캘리포니아 소재의 Sprint ATL 연구소의 IP Group에서 백본망 성능 에 관한 연구 IPMON 프로젝트에 참여하였다. IPMON 프로젝트를 통해 기존의 망성능 측정을 통해 얻을 수 없었던 대규모의 패킷 레벨의 데이터를 수집하여 상용망에서의 singlehop 및 multi-hop 패킷 지연을 처음으로 측정, 분석하였다. 또한 라우팅 프로토콜 운용시 생기는 한시적인 라우팅 루프의 정량적 분석을 통하여 인터넷 성능의 기본적인 한계를 지적하기도 하였다. 그외 패킷레벨 데이타의 공개공유를 위한 첫 단계로 IP 주 소의 익명성 보장, 트래픽의 scaling behavior 분석을 통하여 패킷 지연에 영향을 끼칠 수 있는 요건들을 지적하였다. * ATL Lab은 새로운 미디어, 소셜 네트워킹 서비스 및 미래 인터넷 설계를 위한 측정 과 인프라 구축에 관해 연구 184기술인문융합 창의형 인재 / Creative Leadership 대한민국 기술인문융합을 선도하는/ 인/ 물/185
  • 셀루온 차래명 대표는 스마트기기용 가상입력장치를 개발해 ‘제10회 글로벌 IT CEO상’을 수상(‘12.10)하였다. 셀루온은 3D 전자인식기술을 적용해 카드 반 정도 크기의 기기를 컴퓨터 옆에 두면 레이저로 사람의 손동작을 인식해 키보드나 마우스와 똑같이 움직일 수 있도록 하였으며, 특히 고유 특허기술로 가상 멀티터치를 최초로 구현하였다. 스마트 기기는 데이터 입력에 한계가 있지만, 셀루온이 개발한 솔루션을 활용 하면 사용 확장성이 커져 활용분야가 다양해 질 것으로 기대된다. IT기술의 발전과 인터넷의 보급으로 우리는 현실공간과 가상공간이 결합된 제4의 공간에서 살고 있다. 셀루온은 이러한 환경 속에서 강력한 특허 및 양산기술을 바탕으로 가상 키보 드를 제공함으로써 유비쿼터스 시대의 모바일 입력장치 분야에서 확고한 선 두주자의 위치를 확보 했다. 시대배경 인물소개 현존인물에 대한 융합적 관점에서의 리더십 재해석 셀루온 차래명 대표 글로벌IT CEO 혁신적인 데이터 입력 솔루션 ‘3D 가상입력장치’ 선두주자 186기술인문융합 창의형 인재 / Creative Leadership 대한민국 기술인문융합을 선도하는/ 인/ 물/187
  • evoMouse 진화된 컴퓨터 마우스 ‘에보마우스(evoMouse)'는 단 두 손가락을 사용하여 커서를 클릭 하고 선택하는 등 멀티 터치 마우스 작업을 수행 할 수 있다. 마우스를 많이 사용하게 되면 발생하는 수근관 증후근 같은 손목 부상을 줄일수 있다. ▼ 에보마우스 사용 예시 Prodigy 프로젝션 키보드와 보조배터리를 하나로 구성한 아이폰용 올인원 케이스 ‘프로디지 (Prodigy)’는 장시간 사용으로 인한 문제를 해결하여 노트북을 대신해 아이폰을 통한 빠 른 타이핑이 가능하도록 하였다. 입력장치의 혁신 ‘3D 가상입력장치’ 셀루온은 3D 전자인식 기술을 이용하여 다양한 제품 포트폴리오를 구축하고 있으며, S/W에서부터 H/W, 모듈, 완제품 양산까지 모든 과정을 내재화하고 있다. Magic Cube 프로젝션 키보드 ‘매직큐브(Magic Cube)’는 스마트폰, 태블릿PC 등의 가상 입력장치로 거추장스럽게 휴대해야 했던 키보드 대신 장난감 큐브 만한 크기의 기기를 컴퓨터 옆 에 두면 프로젝션 처럼 가상의 키보드를 투사해 준다. 이 제품은 출시(‘11.8) 4개월 만에 단일제품으로 36억원의 매출을 달성했으며, 2012년에는 일본 일레콤 (Elecom)에 OEM 공급하면서 상반기에만 44억원의 매출을 올렸다. 매직큐브는 블루투스 또는 USB를 통해 스마트폰, 태블릿PC, 노트북 등과 쉽게 연결이 가 능하고 키보드뿐만 아니라 마우스 기능도 함께 구현한다. ▼ 매직큐브 사용 예시 프로젝션 키보드 개발과 관련하여 미국, EU, 한국 및 기타 아시아 주요 국가 등 전 세 계적으로 총 5개의 특허가 등록되었고 7개의 특허가 출원 중에 있다. 188기술인문융합 창의형 인재 / Creative Leadership 대한민국 기술인문융합을 선도하는/ 인/ 물/189
  • 차래명 대표의 성공 키워드는 ‘글로벌화’, ‘기술 차별화’, ‘신뢰와 존경’이다. 기술 차별화 국내는 물론, 미국, EU, 중국 등 주요 국가에 특허등록을 마친 고유의 3D 전자인식 관 련 기술을 이용하여 가상 키보드, 가상 마우스를 개발함으로써 스마트폰, 태블릿PC, 노 트북 등의 입력방식에 혁신을 가져왔으며, 프로젝션 키보드의 전용 SoC를 포함한 핵심 부품을 국산화하는 등 S/W와 H/W는 물론이고 핵심 모듈에서 완제품 양산에 이르기까 지 독자적인 기술을 구축했다. 글로벌화 차 대표는 벤처 설립 초기부터 글로벌화에 매진했다. 해외 시장 진출을 고려해 국내는 물론 미국, EU 등 주요 국가에 특허 출원을 활발히 진행하였고, 매년 CES와 IFA에 참 여해 신제품을 선보이며 해외 시장을 개척하고 있다. 결과 2012년부터 일본 일레콤에 OEM 공급하면서 매출이 껑충 뛰어오르는 성과를 가져왔다. 신뢰와 존경 특화된 기술을 바탕으로 동양과 서양의 장점을 배합한 독특한 기업 문화를 구축하여 직 원들의 신뢰와 존경을 받는 기업으로 성장하는 리더십을 발휘하였다. 현존인물에 대한 융합적 관점에서의 리더십 재해석 포스코 정준양 회장 이 시대에 가장 필요한 ‘소통’의 달인 소통으로 ‘창의’ 바람을 몰고오다 190기술인문융합 창의형 인재 / Creative Leadership 대한민국 기술인문융합을 선도하는/ 인/ 물/191
  • 제7대 포스코 회장으로 취임할 당시는 글로벌 금융위기 여파로 세계 철강시 장이 불황에 서 헤어나오지 못할 때였고, 또 2011년 이후 메나(MENA: Middle East·North Africa) 사태와 일본의 대지진·원전사고, 유로존(Euro Zone) 국 가들의 부도 우려, 중국의 부동산 버블붕괴 우려 등이 이어지면서 세계적인 경기침체가 장기화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 이로 인해 건설, 자동차, 가전산업이 위축되면서 철강산업은 공급과잉에 따 른 수급불균형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이러한 불확실·불안정·불연속의 3 不의 경영환경 속에서 포스코는 주저않느냐, 아니면 새롭게 도약하느냐 변곡 의 기로에 서 있다. 하지만 열정과 도전, 창조의 정신으로 긴 불황의 터널을 가장 먼저 탈출하는 기업이 될 것이다. 실제 포스코는 세계적인 철강전문 분석기관인 WSD(World Steel Dynamic)에 서 선정한 ‘세계에서 가장 경쟁력 있는 철강사’ 1위(‘12)에 3년 연속 올랐다. 1 위로 선정된 가장 큰 요인은 근로자 숙련도·생산성, 혁신 기술력, 고부가가 치 제품 확대, 친환경 경영 등에서 높은 점수를 받았다. 1948. 2. 3. 경기 수원 출생으로 1948년 서울대학교 공업교육과 학사 졸업 후 1975 년 공채 8기로 포스코에 입사하여 30년 넘게 줄곧 생산현장에서 보낸 ‘아이언맨’ 으로, 2009년 사상 유례없는 불황의 파고 속에서 포스코 회장에 취임 후 선제적 투자를 단행함으로써 글로벌 철강사 중 가장 빠르게 위기에서 벗어났다는 평가 를 받고 있다. 정 회장은 독서경영인으로 잘 알려져 있다. 경영, 경제나 전공과 관련된 책 뿐 아 니라 서양 역사, 기독교 역사 등과 같이 인문·예술 분야도 골고루 섭렵하고 있다. 소통의 달인으로도 유명하다. 소통이란 상대방의 작은 목소리에도 귀를 기울이는 ‘경청’의 열란 자세로 공적은 물론 사적인 자리에서도 다른 사람의 의견을 많이 들 으려고 노력 한다. 이를 위해서는 자아성찰과 자기반성이 우선시 돼야 한다는 생 각에 매일 일기를 쓰고 직원들이 속마음까지 터놓게 이야기 할 수 있도록 이메일 을 주고받는 습관을 들였다. 열린·창조·환경경영 정 회장은 2009년 제7대 포스코 회장에 취임하면서 세계적인 경기침체로 인한 철 강산업 불황을 극복하기 위해 열린·창조·환경 3대 경영이념을 내세우며 기술혁 신, 제품 고부가가치화, 사업 다각화 및 글로벌 투자를 추진하여 2011년 사상 최고 매출인 39조 2천억원의 실적을 거두었다. 열린경영 정 회장의 열린경영은 소통을 통한 개방적 조직문화 조성과 밸류체인(Value 1948. 2. 3. 출생(경기 수원) 1948. 2. 서울대학교 공업교육과 학사 졸업 1999. 2. 순천대학교대학원 금속학과 석사 졸업 1975. 3. 포항종합제철 주식회사 입사 1991. 7. 제강부장 1998.12 기술연구소 부소장 2004. 3. 광양제철소장(전무이사) 2007. 2. 생산기술부문장(대표이사 사장) 2008.12. 포스코건설 대표이사 사장 2009. 2. 포스코 대표이사 회장 시대배경 인물소개 192기술인문융합 창의형 인재 / Creative Leadership 대한민국 기술인문융합을 선도하는/ 인/ 물/193
  • Chain)·이해관계자·지역사회와의 상생·협력이다. 소통채널 다각화 우선 소통을 통한 개방적 조직문화 조성을 위해 기존 직원 소통 채널인 노경협 의회, 영보드, 주니어 보드, 토크 채널 통통통 등의 활성화와 함께 사내 트위터 PIRI(POSCO In(人, in) Real time Interaction)를 개설 (2010.11)했다. 스킨십 경영 신입사원들과 만나 대화의 시간을 갖고 매일 아침 10여명의 일반직원들과 아침식 사를 하며 직접 애로 및 건의사항을 들으며 수시로 현장을 방문해 직원들을 격려 하는 스킨십 경영을 펼치고 있다. 동반성장 중소기업의 역량강화를 위해 지난 2004년 국내 최초로 성과공유제도를 도입해 2011년까지 총 459개사에 826억원의 성과보상을 했으며, 중소기업의 자금난 해소 를 위해 1조 3,800억원의 금융펀드 및 2,000억원의 대중소기업 동반성장 투자펀 드를 조성했다. 창조경영 World First·Best·Most 정 회장은 ‘속자생존(速者生存)’과 ‘법고창신(法古創新)’을 강조하며 현재 철강산업 의 불활 속에서 위기 극복 이후에 찾아오는 새로운 기회를 잡기 위해 ‘최고급 AND 최저가 제품혁신’, ‘World first·Best·Most 기술개발’, ‘미래 신수종 사업 확대’를 적극 추진하고 있다. 결과, 2011년 전년보다 40% 이상 상승한 원료가격에도 불구하고 1조 4,977억원의 원가절감을 실현했으며 자동차 강판 등 고부가가치 제품 판매를 확대했고 World First·Best 제품을 99종에서 124종으로 늘렸다. 대표적인 World First 기술로 UV 고광택 도금강판 ‘POSCOTEUV’ 와 LED TV용 방열강판 ‘POSCO-RH’, 친환경 비 스무스(Bi) 쾌식강 등이 있다. 환경경영 기후변화에 대응하기 위해 에너지 소비량과 CO2 배출량이 많은 철강산업으로서 당연하다는 윤리의식에서 비롯되었으며, 금연·자전거 타기 등 작은 실천부터 시 작하여 제철공정에서의 오염물질 배출을 대폭 줄인 친환경 파이넥스 공법 개발, 바다의 사막화를 막기 위해 갯녹음 피해를 입은 지역의 바닷속 환경을 복원하는 바다숲 조성사업 등을 추진하고 있다. 이러한 노력의 결실로 글로벌 지속가능성 평가지수인 샘-다우존스 지속가능경영 지수(SAM-DJSI) 2012년 평가에서 8년 연속 글로벌 우수기업으로 선정됐으며, 특 히 환경부문에서 철강업계 최고점을 기록하였다. 194기술인문융합 창의형 인재 / Creative Leadership 대한민국 기술인문융합을 선도하는/ 인/ 물/195
  • 문리통합형 인재 육성 정 회장은 기술과 공학 같은 전문지식뿐 아니라 인문·예술 영역으로 사고가 폭 넓게 확장된 문(文)·리(理)통합형(Consilience) 인재를 육성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통섭학습 단순히 문과와 이과의 통합이 아니라 예술을 보고 거기서 기술적 영감을 얻어낼 수 있는 인재를 기르겠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대학 2·3학년생들을 대상으로 포 스코 학부 산학 장학생을 선발하여 졸업까지 문리통섭과목(문과생은 이과 과목, 이과생은 문과 과목)을 이수토록 하고 있다. 또 사내 전략대학 ‘트리즈대학’에서 병법, 전쟁론 등의 고전연구와 현대경영전략 에 바탕을 두고 전략 마인드와 통찰력을 배양하고 있으며, 직무통창력과 리더십 향상을 위해 토요학습, 월례학습, 수요 인문학 강좌를 운영하고 있다. 창의력 계발 이뿐 아니라 창의력 계발과 창조적인 조직문화 조성을 위해 창의력 체험 프로그램 인 창의캠프를 운영하고 있다 . 창의캠프는 ‘상상창의캠프’와 ‘테크노창의캠프’로 나뉘는데, 상상창의캠프는 인문·예술의 접목을 통해 개인의 잠재된 상상력과 창 의력 발현을 체험 위주로, 테크노창의캠프는 다른 분야와의 소통과 융합을 이루는 방법이 중심이 되어 진행된다. 명곡·명화 감상하기, 작곡하기, CF만들기, 시나리 오 쓰기, 창의연극놀이 등의 프로그램이 있다. ◀ 창의캠프에 참여한 직원이 자신만의 이야기가 담긴 음악을 작곡하는 모습 개방적인 조직문화 환경조성 최고의 성과를 창출할 수 있도록 창의적이고 자유로운 환경을 조성하였다. 대표적 으로 포레카로 스마트오피스가 있다. 창의놀이방 포레카 ‘잘 놀아야 창의성이 나온다’는 정 회장의 생각에서 비롯되어 2009년 9월 사내 창 의놀이방 포레카(POREKA)가 문을 열었다. 휴식(Refresh)·펀(Fun)·창조(crea- tivity) 공간으로 구분되어 이용자들에게 휴식은 물론 다양한 놀이와 학습 프로그 램을 제공하고 있다. 자연정원을 조성하고 다양한 분야의 장서 1,000여권을 비치 해 편하게 독서할 수 있는 ‘북카페’, 여럿이 함 께 악기 연주, 댄스 등의 경험을 공유하고 새로 운 아이디어를 창조하는 ‘브레인 샤워’, 격의 없 이 토론을 벌이는 ‘아이디어샘’, 아이디어 수렴 을 위한 ‘케이제이(KJ) 룸’, 트리즈 툴을 활용해 토론을 벌이는 ‘트리즈 룸’ 등이 있다. 스마트오피스·스마트워크 기존 사무공간의 칸막이나 통로, 정형화된 회의실 등 죽은 공간을 없애고 여유공간을 직원들의 소 통과 창의력 향상을 위한 공간으로 활용하며 변동좌석제를 도입해 업무능력과 협 업 효율성을 높일 수 있는 스마트오피스를 시범운영 중이다. 변동좌석제는 업무목 적에 따라 자유롭게 좌석을 선택할 수 있으며, 2~3명이 협업해야 할 경우 마주 보 거나 삼각구도로 자유롭게 배치가 가능하다. 또한 유연 근무제, 페이퍼리스(Paperless) 등의 스마트워크를 도입하여 운영 리스 크를 줄이고 있다. 196기술인문융합 창의형 인재 / Creative Leadership 대한민국 기술인문융합을 선도하는/ 인/ 물/197
  • 시대배경현존인물에 대한 융합적 관점에서의 리더십 재해석 CJ E&M 이미경 부회장 아시아 No.1 콘텐츠 기업을 향한 한국 영화의 新르네상스를 열다. 1953년 국내 최초로 설탕을 생산하며 이름을 알린 CJ(옛 제일제당)가 1993년 삼성으로 부터 독립을 하면서 ‘제2의 창업’을 선언하였는데, ‘고객의 입을 즐겁게 해주는 식품기업 에 그치지 않고 고객의 눈과 마음까지 즐겁게 해줄 수 있는 생활문화기업으로 거듭나자’ 란 슬로건 아래 종합생활문화그룹이라는 큰 변신을 선언하며, 영상 사업에 진출하게 되었다. 이때부터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 바로 現 CJ E&M 이미경 부회장이다. 한국 영화·미디어 콘 텐츠 사업 성장에 기여하며 영향력 인물로 평가 받고 있는 이 부회장은 CJ 그룹의 전신인 제 일제당 시절, 신사업 부문 진출을 모색하는 과정의 해였던 1995년에 엔터테인먼트업계 비즈 니스 감각을 입증 하게 되었다. 1995년 이 부회장은 미국 하버드대 유학 시절부터 구축하였던 할리우드 인사들과 폭넓은 네 트워크를 토대로 세계적인 영화감독 스티븐 스필버그, 월트 디즈니 애니메이션의 거장 제프 리 카젠버그, 美 음반업계의 거장 데이비드 게펜(David Geffen)이 참여한 드림웍스 설립에 직 접 자본 참여 하며 지분을 확보하고 해외 배급을 시도하는 등 본격적인 엔터테인먼트 경영 일 선에 뛰어들었다. 특히 영화를 배급하는 데 있어서 자연스럽게 멀티플렉스 극장인 CGV도 탄생하였는데, 1996 년 말 홍콩 골든하베스트, 호주 빌리지로드쇼와 함께 국내 최초의 멀티플렉스 체인 회사 CGV 를 투자 설립하고, 1998년 4월 CGV 강변점이 성공함으로써 복합 영화관 사업의 대성공의 조 짐이 보이기 시작하였다. 한국 영화의 新 르네상스 시대를 이끌었다고 할 수 있는 이부회장에게 한국 문화에 대한 남 다른 열정은 오늘날의 엔터테인먼트&미디어(이하 엔터미디어) 사업 성장의 밑거름이 되었다 고 볼 수 있다. 이 부회장은 소비자 접근성이 높은 영화와 방송사업의 특성을 통해 CJ그룹을 단순 유통·판매의 ‘소비재기업’에서 영화, 오락, 음악 등의 ‘문화소비재기업’으로 각인시키는 데 결정적 역할을 하였다고 볼 수 있다. 198기술인문융합 창의형 인재 / Creative Leadership 대한민국 기술인문융합을 선도하는/ 인/ 물/199
  • 인물소개 1958.04.08 1981 1987 1992 1995 1998 2005 2007 2006 2007 2008 2012 미국출생 서울대학교 가정교육학과 졸업 하버드대학교대학원 동아시아지역학 석사 중국 푸단(復旦)대학교대학원 중국역사학 박사 제일제당 입사 제일제당 엔터테인먼트 사업부 이사 CJ엔터테인먼트&미디어 부회장 예술의 전당 부회장 세계여성상 경영부문 수상 한국능률협회 한국의 경영자상 수상 한국을 움직이는 여성 7인 선정 포브스아시아, 아시아 파워 여성기업인 50인 선정 이미경 부회장은 삼성 창업주인 고(故) 이병철 전 회장의 맏손녀로서 1958년 4월 미국에서 출 생하여 서울대 가정교육과를 졸업하고, 미국 하버드대에서 동아시아 지역연구학 석사와 중 국 푸단(復旦)대에서 역사교육학 박사 과정을 마치는데 이때쯤 보아도 전혀 사업과는 무관 해 보이기까지 하였다. 하지만 이 부회장은 이미 글로벌 경영인으로서 면모를 갖추었다고 볼 수 있는데, 미국에서 나고 자라기도 하였지만, 타고난 언어 감각으로 프랑스어, 중국어, 일 어 등을 자유자재로 구사하기도 한데다 오랜 해외 생활을 통해 자연스럽게 글로벌 인맥을 쌓 을 수 있었다. 학업을 마친 뒤 삼성의 미국 법인에서 근무하다 1995년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 등과 함께 ‘드림 웍스’를 공동 설립하면서 해외 파트너와의 네트워크를 구축하였고 그 후 CJ에 합류하여 엔터 테인먼트 사업에 뛰어들었다. CJ E&M은 CJ미디어, CJ인터넷, CJ엔터테인먼트등을 흡수 합 병하면서 철저히 콘텐츠에만 집중된 국내 유일의 종합 콘텐츠 기업으로 미디어 패러다임 변 화의 선두에 놓여진 기업으로 볼 수 있다. 2006년 이미경 부회장은 ‘세계 여성상’ 경영 부문을 수상하였는데, 이 상을 통해 그동안 이 부 회장의 한 발 앞선 감각과 리더십을 여실히 보여주었다고 할 수 있으며, 안주 하지않고 끊임 없는 도전과 성과를 내었던 우먼파워를 엿볼 수 있다. 아시아 No.1 문화·콘텐츠 기업 문화를 향한 신념과 철학 영화 영화 <공동경비구역 JSA>, <살인의 추억>부터 <어거스트 러쉬>, <해운대>, <써니>, <광해> 등 한국 영화사의 굵직한 흥행기록을 담아내고, 투자·배급한 인물이 바로 이미경 부회장이 다. 또한 종합 오락채널 ‘tvN’, 케이블 채널인 ‘Mnet’ 채널을 중심으로 오페라스타, 슈퍼스타 K 등 서바이벌 오디션 프로그램의 한 획을 그은 아이디어를 제안 한 인물도 이 부회장이다. 이처럼 이 부회장은 안목과, 신견, 인맥 등을 바탕으로 엔터테인먼트와 미디어 분야의 ‘성공 신화’를 이끌어오며 음악·게임·영화·공연 등 관심을 가지고 ‘문화·콘텐츠’라는 新성장 영 역을 확장하였다. 이 부회장은 한류의 다양한 콘텐츠 보유와 동시에 해외 네트워크를 확장 및 강화해 나가는 교차점에서 고(故) 이병철 전 회장의 ‘문화가 없으면 나라가 없다’라는 확고한 신념과 경영철학인 ‘사업보국’ 정신을 콘텐츠 사업 글로벌화로 이어 나가고 있다. 한국과 세계 시장을 잇게하는 중요한 다리 역할을 하고 있는 이 부회장은 ‘한류’라는 문화·콘텐츠가 세계 속에 빛을 내보이게 함으로써, 이러한 글로벌 마켓에 추진하는 과정이야 말로 사업보국의 길 을 실천에 옮기고 있다고 볼 수 있다. 해외 진출을 위한 도약 한류라는 거대한 물결 속에 해외 수출이 증가함에 따라 콘텐츠의 글로벌화가 급속히 진행되 고 있는 가운데, 콘텐츠 시장의 지배력이 강화됨에 따라 CJ E&M은 다양한 형태로 해외 진출 을 구축하고 있다. 브랜드화 이 부회장은 한국인 특유의 역동적인 문화를 세계시장에 상품으로 내놓는 것이 꿈이라 말 할 정도로 기반을 닦아 나아가고 있다. 특히 이 부회장은 ‘할리데이비슨’이 고객 감성에 맞추어 포지셔닝 된 ‘브랜드 이미지’를 파는 것처럼 한국도 문화·콘텐츠 사업을 적극 육성해 국가 브 랜드를 높여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이미경 부회장의 아이디어로 시작된 슈퍼스타K는 아시아 최고의 스타를 찾는 공개 오디션으 로 성공의 행진을 가고 있는 중인데, 공중파 포함 동시간대 시청률 전 회차 연속 1위를 유지 할 정도로 인기를 유지하고 있으며, 오늘날 전 국민이 1년에 한 번씩 즐기는 음악 축제의 장 으로 즐기게 되어 CJ 뮤직 엔터테인먼트의 막강한 영향력을 볼 수 있다.또한 CJ E&M이 주최 로 K팝, K드라마와 한국영화들을 포함한 한류의 인기있는 엔터테인먼트&미디어들이 컨벤션 컨셉으로 LA에 ‘K-con 2012’ 페스티벌로 참여하게 되었는데, 다양한 이벤트를 통해 미국 내 한류 문화의 현주소를 보여 주었다. 200기술인문융합 창의형 인재 / Creative Leadership 대한민국 기술인문융합을 선도하는/ 인/ 물/201
  • 혁신적인 생각 이미경 부회장은 오늘날 ‘혁신’을 무기로 기업의 새로운 성장 방향을 제시하는 글 로벌리더로서 그 역할을 수행하는 다양한 시도를 해보이며 문화·콘텐츠 사업을 이끌었다. 그 중 한국 최고의 오디션 프로그램 ‘슈퍼스타 K’, Mnet 아시아 뮤직 어 워드 ‘MAMA', 국내 최대 음악 축제 ‘지산 밸리 록 페스티벌’, 불법 음원 근절 운동 인 ‘불끈운동’, ‘Non-DRM 서비스’ 등이 혁신성을 찾아 볼 수 있는 예이다. 끊임없는 변화 CJ E&M은 여러 기업들과 제휴와 협력, M&A, 수직 계열화와 사업 다각화를 적극 추진하는 등 사업 영역들 사이에서 시너지 효과가 극대화를 이루었다고 볼 수 있 다. 그 중 기아차와 CJ E&M은 ‘차량-IT 서비스 및 마케팅 부문 제휴 협력’을 양해 각서(MOU)를 체결하였는데, 이로 인해 각 사의 차량 IT 기술과 콘텐츠를 결합하 여 고객에게 맞춤형 콘텐츠를 제공하는 하게 되었다. 이러한 이종 산업 간의 제휴 마케팅과 공동 브랜딩을 통해 다양한 욕구를 충족시키고 새롭고 차별화된 고객 가 치를 창출함으로써 브랜드 경쟁력이 한층 강화되는 것을 볼 수 있다. 철저한 준비와 계획 2011년 한 해와 2012년 올 상반기 동안 국내에서 영화를 본 전체 관객 중 35%, 27% 는 이미경 부회장이 이끄는 CJ E&M이 배급한 영화를 볼 정도로 영화 배급사별 관 객점유율에서 지속적인 시장점유율 1위를 유지하고 있다. 이러한 끈질기었던 성 공 뒤에는 이미경 부회장의 뚝심과 치밀한 투자 방식, 팀워크가 바탕이 된 점이 한 몫 하였다고 볼 수 있다. 특히 <슈퍼스타K>는 임원들의 반대를 무릅쓰고 이미경 부회장의 ‘뚝심’으로 밀어 붙여 공중파 시청률을 앞지르며 역대 케이블 시청률 기록을 갱신하면서 화제의 프 로그램으로 알려져 있다. 수평적 조직문화 2006년 미국 뉴욕에서 열린 세계여성상 경영 부분에서 아시아인 최초로 수상한 이 미경 부회장이 언론과 가진 인터뷰에서 이미경 친동생인 CJ 회장을 ‘이재현님’이 라 하여 화제였다. 이러한 직급 호칭 파괴는 2000년 당시 CJ는 외환위기 이후 치 열해졌던 경쟁 환경에서 생존을 위한 방법을 고민할 때에 나온 아이디어로 ‘호칭 민주화’를 통해 수평적이고 대등한 관계로 조직문화의 틀을 바꾸어 진정한 소통을 이뤄보자는 취지로 시작되었다. 또한 사옥 내부 곳곳엔 접착식 메모지가 놓여 있어, 직원들이 오가며 어떤 아이디 어든 생각날 때마다 바로 써서 벽면에 붙일 수 있도록 하였다. 이처럼 인재 육성에 변화와 혁신에 대해 인문학적 요소가 가미된 기획이나 인문학 사내강좌 진행을 통 해 문화 콘텐츠 양산하는 발전의 원동력 되도록 지원 하고 있는데, 융합과 다양성 에 대해 이해력이 높고 통합적인 소통 능력을 강조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습 관에 길들여지지 않는 창조문화를 추구하는 이미경 부회장의 정신처럼 CJ E&M 의 조직 문화는 창의와 열정, 오픈마인드로 도전하는 인재 육성을 통해 진정한 소 통을 위한 준비가 되어있다고 볼 수 있다. 20 15 10 5 0 01 03 05 07 09 11 13 단위 % 단위 : 방송 횟수 800 600 400 200 0 2001 2011 2012(대상) 2013(예상) 단위 원 방송 콘텐츠 전년대비 26% 상승 202기술인문융합 창의형 인재 / Creative Leadership 대한민국 기술인문융합을 선도하는/ 인/ 물/203
  • 시대배경 인물소개 현존인물에 대한 융합적 관점에서의 리더십 재해석 한경희생활과학 한경희 대표 1%를 채우기 위한 ‘도전’의 연속 열정을 넘어 ‘창의’의 시대로 주식회사 한경희생활과학(HAAN)은 여성의 생활과 삶의 질 향상을 추구하는 대한민국 대표 생활가전 전문회사로 한경희 대표이사는 ‘살림’이란 평범한 소재를 비즈니스 모델로 바꾼 ‘살 림의 여왕’인 한국의 미사 스튜어트로 불리기도 한다. 당시, 한 대표는 직장 생활과 집안 일 을 병행하는 것에 힘이 들었고 특히, 무릎을 끓고 하며 삶고 하는 데에 반복이였던 물걸레질 이 너무 힘이 들었다. 이 때 마침 ‘걸레질 좀 안 하고 살 수 없을까?’는 생각이 아이디어로 발 전되었다. 간편하게 걸레질을 하면서도 평소 뜨거운 물로 청소를 하던 것을 떠올리며, 깨끗하게 곰팡이, 진드기, 세균 등을 없앨 수 있는 ‘스팀청소기’로 말이다. 이 계기로 한경희 대표는 ‘주부들의 걸레질에서 해방’을 결심하며, 스팀청소기의 개발을 위하여 1999년 9월 한영전기(現 한경희생 활과학 전신)라는 이름으로 창업을 시작하게된다. 2004년 홈쇼핑을 통해, 주부들의 입소문을 통해 퍼지기 시작하면서, 2005년에는 1천억 원이 란 판매 누적 매출을 달성하는 기염을 토하며 국민청소기라는 애칭을 얻었다. 지난 2010년에 는 스팀청소기 누적 판매 1,000만 대라는 대기록을 거두면서 대중화를 이끌며, 한경희생활과 학은 청소기 시장에서 압도적인 70% 이상의 시장점유율을 휩쓸었다. 1964. 9. 30. 서울 출생 1986. 이화여자대학교 불문 학사/국제올림픽위원회 1990. 캘리포니아주립대학교 대학원 경영학 석사 1998. 국제고시 합격, 교육인적자원부 교육행정사무관 1999. 한경희생활과학 대표 2004. 벤처 대상 신지식인 수상 2005. 발명의 날 대통령 표창 2008. 월스트리트저널 Top 50 Women to Watch 2008. 한경희뷰티 대표 2009. The most powerful women summit 초청 2012. 포브스아시아 Asia's 50 Power Businesswom 204기술인문융합 창의형 인재 / Creative Leadership 대한민국 기술인문융합을 선도하는/ 인/ 물/205
  • 한경희 대표의 삶은 '도전의 연속'이라 볼 수 있다. 1964년 9월 30일 서울에서 출생 하여 1986년 이화여자대학교 불문과 학사 졸업 후, 첫 직장은 스위스 제네바에 있 는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사무국이었다. 당시 해외여행 자유화 이전이라서, 한 대표는 외국에 직장을 얻어 넓은 세상을 무대로 일해야겠다는 생각을 꿈꾸고 있을 때였는데, 이때만 해도 현재의 제조업 CEO와의 연관성은 전혀 없었다. 그러던 와중 더 많은 기회를 얻기 위해 IOC에서 2년동안 일한 후 미국으로 건너 가 MBA 과정을 밟으면서 동시에 호텔과 부동산 등 여러 다양한 직장 생활을 경험 을 하게 되었는데, 이 때부터 도전적인 삶으로 가까워져가고 있었다고 볼 수 있다. 한경희 대표는 주부들의 고충을 일부 해소해주기 위해 사업을 시작하였는데, 오 늘날 시장 상황을 빠르게 파악하고, 새로운 시장을 개척해 나가는 기업인으로서 인정받고 있다. 일상생활 불편함 해소에 대한 ‘꿈’의 실현은, 사업으로 이어져 성공하기까지에는 수없이 고비와 난관을 두고 있었지만 그 과정에서 한 대표를 강하게 만든 것은 ‘긍 정적인 마음’ 의 힘이었다. 인류의 편의와 행복 추구 한경희생활과학은 인류의 편의와 행복을 제공하는 초일류 기업이란 비전 아래 성 장하자하는 한편, 열정과 창의로 편의라는 가치를 제공하여 삶의 질을 향상 시켜, 행복을 공유 하고자 하는 미션을 가지고 있다. 한 대표의 일상 생활 속에서 찾은 아 이디어가 기술을 통해 ‘스팀’ 제품 시리즈로 만들어지면서 점차 쪼그려 앉아 하던 걸레청소에서 서서 편하게 스팀청소로 하는 청소 문화로 바뀌게 되었다. ‘주부’ 공감 한경희 대표는 주부의 입장에서 주부들의 마음을 읽어낸 아이디어를 바탕으로 생 활가전업계에서 기린아로 불리워 지고 있는데, 이처럼 한경희생활과학은 살림의 여왕인 주부들이 가장 필요로 하고, 가장 가려운 곳을 시원하게 긁어주는 듯한 제 품들을 탄생시키고 있다. '무릎 끓고 하는 걸레질의 해방'이란 계기에서 나온 아이디어는 2001년 국내 최초 스팀청소기로 탄생되었고, 이후 주부들의 마음을 사로잡게되면서, 스팀청소기는 ' 국민청소기'로서 자리잡게 되었다. 이러한 점은 한 대표 또한 일을 하였더라도, 한 가정의 집안일을 해 나가야 하는 여자이었으니 가능하였으리라 볼 수 있지만 결코 주부들의 마음을 선점하는 것은 쉬운 것이 아니었을 것이다. 하지만 한 대표가 '주 부'란 위치에서, 그래서 주부들의 마음을 잘 읽어내고, 여자만이 공감 할 수 있는 점을 추진 하였기에 가능케 된 것이며 한 대표의 경쟁력은 여자의 입장에서, 주부 들의 공감하는 마음을 꿰뚫는 것일 것이다. 한경희생활과학에서 새로운 아이디어 최고 제품으로 꼽는 스팀청소기의 한 제품 인 듀얼스팀은 단순히 바닥만 청소하였던 스팀청소를, 기존에 없던 소형헤드가 있 어 이젠 가스레인지, 싱크대, 욕실, 장난감 등 핸디스팀으로 분리해서도 사용할 수 있도록 한 제품이다. 특히 이 제품은 손이 닿지 않는 틈새나 비좁은 곳도 가능케 하여 청소 시간 단축은 물론 위생적인 면에서 안전 하게 만들어 준 제품으로 고객들의 브랜드 인지도 를 굳건하게 만들어 주었다. 스팀 시리즈 제품으로 서 제2의 스팀청소기와 같이 고객들의 많은 사랑 을 받고 있는 스팀다리미는 주부들의 가사 노동의 불편함을 덜어주고자 허리를 구부릴 필요없이 단 시간에 서서 간편하게 끝낼 수 있도록 갖추어져 손 쉬운 다림질과 살균 기능까지 더해 효과적으로 다 림질을 할 수 있게 하였다. 2011년 한경희생활과학 은 포스코 신성장동력인으로 육성중인 마그네슘의 소재에 주목하며, 공동 개발 끝에 세계 최초로 친 206기술인문융합 창의형 인재 / Creative Leadership 대한민국 기술인문융합을 선도하는/ 인/ 물/207
  • 창의로 새로운 도전을 쓰다 도전 정신 한경희 대표는 여성 특유의 섬세함으로 고객 입장에서 제품을 탄생시키 는 것으로 많은 고객들의 사랑을 받고 있는데 온화하고 편안한 인상 뒤로 한 번 시 작한 일에서는 끝까지 포기 하지 않는 끈기와 인내가 숨겨져 있다고 볼 수 있다. 한 경희 표의 여러 제품들은 지난 시간 속에서 좌절 하지 않고 뚝심으로 끝까지 여러 가지 시도를 하며 모색하였던 도전 정신이 깃들어져 있어, 이는 미래를 향하여 전 진하는 모습으로 탈바꿈하려는 한 대표의 모습으로 비춰지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책을 통한 삶의 간접 경험 평소 읽는 신문·경영 잡지만 10여종이 며, 지금까지 모아둔 기사 스크랩북이 50 권이 이르기까지, 한경희 대표는 ‘2008 신 문 읽기 캠페인’의 모델로 발탁될 정도로 ‘신문 광’이다. 한 대표는 어릴 때 칭찬을 듣기 위해 독서를 하였는데, 초등학생 때 책장에서 우연히 꺼내든 펄벅의 ‘대지’를 읽다가 우연히 칭찬을 받았기 때문에 그 후로 부터 책을 놓지 않았다고 하였다. 그 러한 시작으로 다독(多讀)을 통해 한 대표 는 여성들의 마음을 읽고 이해할 수 있게 되어 오늘날의 한국 대표 여성 기업인으로 만들어 지게 되었다고 볼 수 있다. 오픈 이노베이션 급변하고 불확실성이 특징인 초경쟁환경에서 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것은 남들 보다 빠른 '스피드'일 것인데, 이러한 환경 속에서 한경희생활과학은 살아남기 위 환경 마그네슘 팬을 선보이며 주방용품 시장을 개척하였는데, 친환경적인 소재로 고온서도 연기나 유해가스가 발생되지 않고 내마모성이 강한 점으로 세계 각계에 서 호평을 받고 있다. 같은 해에, 한경희 대표는 한경희뷰티 브랜드로 여성들이 꼭 필요한 제품인 화장 품에 그동안 생활가전 기술력을 결합하여 국내 최초로 ‘스마트 뷰티’를 도입시켰 다. 하이테크 미용 아이템으로 히팅&스핀 마스카라는 스마트 뷰티의 대표적인 제 품으로 열 전달 효과와 함께 360도 회전 기술로 풍성한 속눈썹을 연출 시켜 주고 있어 여성들에게 뜨고 있어 또다시 대박을 내고 있는 실정이다. 이러한 스마트 뷰티 제품 중 화장품과 진동기기방식을 결합한 진동 화장품의 성공 가능성을 입증한 것은 ‘한경희 진동 파운데이션’으로 2011년 5월 홈쇼핑에서 런칭 한 진동 파운데이션은 분당 5,000회 이상 두드려주는 퍼프를 무기로 시장을 개척, 판매를 하였다. 이와 같이 한 대표의 역발상의 아이디어로 아름다움에 기술을 더 한 것이 혁신적인 화장 품으로 소비자 트렌드에 주효하였다. 새로운 동력 한경희 대표는 이제껏 일상 속의 여자들의 불편함을 편리한 가전제품으로 만들어 왔으며 주요 기술인 '스팀' 기술을 중심으로 친환경 주방용품, 여성헤어가발 및 화 장품 시장 등 다양한 사업 영역으로 확장하고 있어 대표는 ‘제2의 창업기’처럼 새 로운 신사업 영역에서 활발히 활동 중이다. 특히 국내 최초로 ‘스마트 뷰티’를 표방한 하이테크 미용제품은 뷰티와 기술을 접 목하여 여성으로서 공감하게 하는 화장품 영역에 진출함으로써 ‘예뻐지는 기계’를 만들고 싶다던 한 대표의 바람처럼 또 한 번 도전을 하는 세계라고 볼 수 있다. 한 대표는 지금까지 가지고 있던 기술 노하우와 미용이란 분야를 융합하여 히팅뷰러 마스카라, 진동 마스크 팩, 진동 파운데이션 등 차별화된 제품이 출시하였는데, 맞 벌이 부부나, 바쁜 여성들에게 화장 시간 단축과 편리성 극대화로 인기가 많아 필 수품으로 자리잡고 있다. 208기술인문융합 창의형 인재 / Creative Leadership 대한민국 기술인문융합을 선도하는/ 인/ 물/209
  • 창조적 조직문화 한경희생활과학은 창조성이 강조되는 기업으로 한 대표가 아이디어로 '스팀청소 기'를 먼저 내놓아 블루오션을 창출한 것처럼 오늘날 치열한 시장 경쟁 환경에서 창조성이 더욱 중요해지고 있는 실정이다. 따라서 한 대표는 임직원들의 창의적이 고 혁신적인 아이디어를 발견하여, 경영 성과를 극대화 함으로써 창조적인 기업으 로 거듭나기 위한 창의력 제고시킬 수 있는 환경을 만들었는데, 이러한 창조성을 뒷받침 하기 위하여 '자율성'이 강조되는 조직 문화가 형성 되었다. 그 예로 ‘아이 디어 경영 제도’, Think Time 직원 가족 아이디어 공모 등이 있다. 결국 임직원들이 기업의 미래의 '현실'이라는 중요한 경영 방침 생각이 한 대표의 결정적 리더십의 핵심일 것이다. 해 신제품 전략 개발 속도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이처럼 개발함에 있어서 '제휴 와 협력'은 빠른 변신에 대한 밑거름을 더해주는데, 스팀형청소기는 살균형 청소 기로 바뀌고, 살균형 청소기는 다시 아토피 예방, 듀얼 타입 청소기로 진화한 것 이 그 예이다. 또한 친환경 히트상품인 워터 살균기 '크리즈'도 대표적인 전략적 제휴를 통해 탄 생된 제품이다. 한 대표는 자사의 기술을 폐쇄적 혹은 일방향적으로 역량을 이끌었던 기존의 방 식에서 벗어나 외부의 중소기업과의 공동 연구 개발 및 기술 제휴를 통한 양방향 의 오픈 이노베이션을 형성하여 혁신을 모색하였다. 이러한 한경희생활과학의 비 즈니스 모델의 진화는 중소기업의 개방과 협력, 상생을 통한 창의적이고 혁신적인 기술로 실현시킴으로써 시너지 효과 창출이 가능하다. 조직의 창의성 제고 소통 한 대표는 여성 특유의 섬세한 경영 방식으로 ‘소통’을 강조 하고 있다. 또한 한대표는 여성 리더십을 포용의 거미줄이라는 개념으로 표현하며, 여성 리더들이 이끄는 조직은 거미를 중심으로 주변을 끊임없이 돌아 완성되는 거미줄 같은 모 습을 갖춘다란 여성 리더십의 강점을 소통으로 꼽은 리더십 개발 전문가인 샐리 헬게센의 저서 '여성의 장점(The Female Advantage)'에 따라, 소통을 통해 길을 안 내하는 동행자가 되고 싶다며 소통을 중요시하고 실천하려고 노력한다 하였다. 한 대표는 내부소통을 중요시 여기는데, ‘한(HAAN) 마음 캠페인’을 통해 사내 커 뮤니케이션 강화를 꾀하고 있는데, ‘한마음 캠페인’은 비전과 미션 달성의 바탕이 되는 기업문화가 올바르게 정착하고 발전 할 수 있도록한경희생활과학의 전 임직 원이 한마음이 되어 펼치는 新문화 창조 운동이다. 결국 전 임직원들의 소통 활성 화로 화합을 꾀하고, 궁극적으로 자유로운 커뮤니케이션 문화를 만들어 창의적인 발상을 극대화 하는데에 있다고 볼 수 있다. 210기술인문융합 창의형 인재 / Creative Leadership 대한민국 기술인문융합을 선도하는/ 인/ 물/ 211
  • 시대배경 인물소개 현존인물에 대한 융합적 관점에서의 리더십 재해석 현대 카드/캐피탈/커머셜 정태영 대표이사 혁신적인 마케팅 문화 기업 국내 문화 마케팅 역사를 만들다. 1960년 서울에서 태어난 정태영은 어릴 때부터 공부 잘하는 수재는 아니었다. 중학교 성적 은 반 60명 중에 30등이었는데, 어느 날 전교 부회장에 당선되어 부모님이 학교에 방문하였 는데, 선생님이 “부회장은 성적이 좋아야 하는데 댁의 아들은 그렇지 못하니 자진 해서 관둬 라.”라고 했다고 한다. 그 말에 충격을 받은 정태영은 일주일 내내 밤을 새워 공부를 했고, 그 다음 시험에 전교 1등을 한 후 1,2등을 유지하였지만 고등학교 때는 시와 유화에 빠져 성적 이 뚝 덜어졌다고 한다. 정태영의 아버지는 수학교사다. 그렇다 고해서 수학을 알려주신 적은 없다고 한다. 오히려 ‘ 수학적인 논리’위주로 알려주셨고, 일상이나 사회에서의 생각을 A=B=C=D라고 하면 A와 D 도 같다는 방식의 논리로 이해시키곤 했다고 한다. 미적분을 알려달라고 말하면 아버지는 “미 적분을 알아서 뭣하게? 그런게 중요한 게 아닌데”라고 말씀하셨다는데, 이런 논리력은 정태 영 사장이 그동안 일하면서 큰 도움이 됐다고 한다. 1960. 04. 11. 출생 1979. 고려대학교 사범대학 부속고등학교 졸업 1983. 서울대학교 불문학 학사 1987. MIT대학원 경영학 석사 MBA 2000.01~12. 현대모비스 전무, 기획재정본부 본부장 2003. 10~ 현대카드 대표이사 사장, 현대캐피탈 대표 이사 사장 2007. 03~ 현대커머셜 대표이사 사장 2012. 매경이코노미 선정 올해의 CEO 212기술인문융합 창의형 인재 / Creative Leadership 대한민국 기술인문융합을 선도하는/ 인/ 물/213
  • ▼ 슈퍼콘서트 1 2007년 1월 알디보 2 2007년 11월 비욘세 3 2008년 11월 빌리 조엘 4 2009년 1월 플라시도 도밍고 5 2009년 8월 크렉 데이빗 6 2009년 9월 빈 필하모닉 & 조수미 7 2010년 1월 그린데이 8 2010년 2월 휘트니 휴스턴 9 2010년 5월 안드레아 보첼리 10 2010년 7월 어셔 11 2010년 8월 스티비 원더 12 2010년 10월 이차크 펄만 13 2011년 1월 스팅 14 2011년 5월 마룬파이브 15 2012년 2월 로열 콘세르트허바우 & 정명훈 16 2012년 4월 27일 레이디 가가 17 2012년 8월 19일 에미넴 18 2013년 2월 6일~7일 시카고 심포니 오케스트라 & 로린 마젤 꼴찌의 현대카드 2위로 올려놓다 2001년 다이너스티 카드를 인수하며 카드시장에 뛰어든 현대카드는 시장점유율 1.8%의 꼴찌회사였다. 그러나 지금은 업계 2위로 올라서며 카드업계의 강자로 떠 오르고 있다. 월스트리트 저널은 정태영 사장을 가리켜 전통적인 한국방식에 도전하는 CEO라 고 표현 한다. 취임 후에 9억 달러 손실에 직면했을 때, 과감하게 GE캐피탈에 지 분 43%를 팔고 위험관리체계를 받아들인 것을 예로 들 수 있다. 문화 마케팅 현대카드의 슈퍼콘서트 세계가 알아주는 레이디 가가, 비욘세, 빌리 조엘, 스팅, 스티비 원더, 휘트니 휴 스턴. 이틀 모두가 현대카드 슈퍼콘서트의 한국 무대에 섰다. 이들의 몸값 때문에 웬만한 공연 기획사도 엄두를 내지 못하는데 금융 회사인 현대카드가 초청하겠다 고 나섰을 때 놀라운 반응을 보인 전문가들이 적지 않았다. 슈퍼콘서트 티켓을 구매할 때 현대카드로 결제하면 20~40%의 할인 혜택을 받을 수 있다. 슈퍼콘서트 티켓 결제 시 현대카드의 사용 비율은 매년 꾸준히 증가하는 추세이며, 2006년 첫 콘서트 때는 티켓 구매자 64%가 현대카드로 결제했지만 2009 년 4회 때는 이수치가 84%까지 올라 3년 사이 20%가 상승하였고, 2011년 ‘스팅’의 콘서트에는 90%가 현대카드로 티켓을 구매했다. 또 하나의 주목할 것은 고객 경험으로 ‘남들과 다른 제품’, ‘차별화된 서비스’를 실 제 경험하게 해주는 것이다. 현대카드 슈퍼콘서트는 현대카드 회원 외에는 어떤 제휴카드나 서비스도 혜택을 주지 않아 오직 현대카드 회원만이 콘서트의 수혜자 가 되는 것이다. 2007년 시작된 현대의 슈퍼콘서트에 자극을 받은 기업들이 유사한 문화 이벤트를 개최 할 만큼 국내 문화 마케팅 역사에서 가장 극적인 성공 사례로 꼽힌다. 100 90 80 70 60 50 40 30 20 10 0 01 02 03 04 05 06 07 08 09 10 11 12 13 64 70 74 84 79 86 74 88 82 80 91 88 90 214기술인문융합 창의형 인재 / Creative Leadership 대한민국 기술인문융합을 선도하는/ 인/ 물/215
  • 팔로워를 보유하고 있다. 한 일화로 고등학생이 정태영 사장에게 직접 메일을 보 내, 자신의 꿈이 경영인인데 조언을 해달라고 하자 정태영 사장은 주옥같은 말들 로 화답을 했다고 한다. 이처럼 정태영 사장은 많은 학생들의 멘토가 되고 있다. 2012 한국 100대 CEO 정태영 사장은 국내 대기업 CEO 가운데 가장 실험정신이 투철한 선봉자다. 매경 이코노미가 매년 뽑는 한국 대표 금융 CEO 창의 경영 부문에서 언제나 선두권이 다. 이번 금융 CEO 창의경영 평가에서 정태영 사장은 박현주 미래에셋금융그룹 회장, 김승유 하나금융지주 회장을 제치고 1위에 올랐다. 또한, 100대 CEO선정에 있어서 8번째로 1회부터 단 한번도 제외된 적이 없다. 요즘 VVIP 대상 카드가 쏟아지지만 그 시작에는 정태영사장이있다. 2005년 연회 비 100만원인 블랙카드를 출시했고, 이를 토대로 퍼플, 레드 등 다양한 프리미엄 상품을 선보였고, 국내 최초 선포인트 제도의 시작도정태영 사장이다. 혁신 리더 현대카드 직원 존중 현대카드가 이번엔 직원 배려의 리더로 나섰다. 정태영 현대카드 사장은 지난 2012년 콜센터의 성희롱 보호 정책 관련해 “콜센터에 전화 걸어서 직원들에게 성 희롱이나 험한 욕을 퍼부으면 두 번 경고 안내 후 전화 차단하는 정책 입안. 비록 민원지수가 떨어져도 어쩔 수 없다. 선진국에서는 생각도 할 수 없는 일들. 직원들 과 선의의 고객들을 지키는 것이 진짜 서비스다.” 라는 트윗을 날렸다. 그 후 2012년 3월 현대카드와 현대캐피탈은 악성 고객에 의한 선의의 고객 피해 를 방지하고 3600명의 콜센터 직원을 보호가기위해 ‘콜센터 성희롱 보호 정책’을 내놨을 뿐 아니라, “직원과 고객이 충돌할 때 직원 편을 든다.”는 등 직원 존중 방 침을 채택하고 있다. 현대카드만의 기업문화 변화만이 살길이다 정태영 사장은 혁신적인 기업문화를 만들어낸 것으로 유명하다. 현대카드의 평균 결재시간은 10.5시간으로 굉장히 빠른데, 스피드에 편집증이라 볼 수 있지만 이것 이 지금의 현대카드를 만든 원동력이다. 현대카드에서는 좋은 기획이 있으면 말단 이든 팀장이든 중간을 거치지 않고 다이렉트로 사장에게 보고하는데, 24시간 내 에 결재를 하지 않으면 감사실에서 경고 메일이 온다. 또한 정태영 사장은 디자인 경영으로 유명한데, 사옥의 모든 것을 현대카드에 맞춰 일반 생수통도 'It water(잇 워터)‘라는 현대카드 물 브랜드까지 따로 디자인을 할 정도로 디자인에 대한 집착 이 심하다. 하지만, 이런 집착이 카드에 고스란히 적용되며 다른 카드와 차별화되 는 디자인들을 선보이고 있다. 경기 이천 LG인화원에서 1월 16일~17일까지 이틀간 열린 ‘글로벌 최고경영자 (CEO) 전 략회의’에 초빙되어 제품 디자인과 회사 지향점을 일치시켜야 한다는 점 을 전달했다. 정태영 사장은 “CES에서 다시 확인한 점은 외롭게 홀로 서있는 디자 인은 힘이 없다. 회사의 지향점을 표현하는 디자인이어야 하며 좋은 디자인을 위 해서는 회사가 추구하는 지향점이 먼저 정리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태영 사장의 강의를 들은 한 LG CEO는 “독특한 제품과 디자인, 마케팅이 결국 기업의 지향점을 보여줄 수 있다는 점과, 시장을 선도하기 위해 조직에 적잖은 변 화가 필요한 것 같다.”고 했다. 대중과 소통하는 CEO 정태영 사장은 트위터로도 유명하 다. 그는 바쁜 와중에도 하루에 8개 이상의 글을 틈틈이 올려 대중과 소 통한다. 실없는 농담에서부터 자신 의 일상에서 느끼는 경영 철학 등 많은 이야기를 하기 때문에 수많은 216기술인문융합 창의형 인재 / Creative Leadership 대한민국 기술인문융합을 선도하는/ 인/ 물/217
  • 스피드경영을 추구하다 결정을 빨리 하기위해서는 직관과 판단력이 필요하다. 회사가 추구하고자 하는 방향과 전략, 그리고 해야 하는 일과 하지 않아야 하는 일들에 대한 가이드라인을 늘 고려해야한다. 그에 못지않게 중요한 것이 소통인데, 대화가 잘되고 생각을 공유하고 있는 집단은 결정이 빠르고 정확하다. 결국 결재시간이 짧다는 것은 평소 커뮤니케이션이 원활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현 대카드의 평균 결재시간은 10.5시간이다. 이 시간을 보고 스피드 편집증이라 볼 수 있지만 지 금의 현대카드를 있게 만든 원동력이 바로 이 ‘스피드’다. 카드 포트폴리오 등 역발상을 시도하다 “전체 카드사들이 ‘모든 고객을 위한 하나의 카드’라는 전략을 들고 나올 때 우리는 반대로 고 객군을 촘촘히 나눠 여러 카드를 개발했다. 그래서 카드 포트폴리오라는 새로운 개념을 만들 어 낼 수 있었다”고 말했다. 과감한 변화만이 살길이다 당대 최고의 아티스트들을 초대한 ‘현대카드 슈퍼콘서트’인 문화 마케팅은 벼랑 끝 생존 위기 에서 탄생한 것이다. 1000억 원 대의 적자와, 카드 사태가 터지면서 적자의 규모는 눈덩이처 럼 불어났다. 이에 정태영 사장은 “2003년 터진 카드 사태 당시 ‘황산벌 전투’를 치르는 절박 한 심정으로 뛰었다”고 말했다. 그해 현대카드 M을 내놓으며 반전의 기회를 잡았지만 그것 만으로는 부족했다. 2005년 9월 첫 번째 문화 마케팅인 ‘현대카드 슈퍼매치’는 여자 테니스계의 세계적인 스타 마 리아 샤라포바와 비너스 윌리엄스의 맞대결을 한국에서 개최하는 것이었다. ‘카드사가 웬 테 니스 경기?’냐는 냉소가 쏟아졌지만 언론의 뜨거운 관심 속에 대성공을 거뒀고, 이듬해 슈퍼 콘서트가 슈퍼매치의 뒤를 이었다. 2005년 이후 현대카드의 성장 속도는 눈부셨고, 2008년 76%의 브랜드 인지도도 2009년에는 88.1%로 상승했으며, 2011년에는 3236억 원이라는 영업 이익을 기록하기도 했다. 또한, 취 임 후에 9억 달러 손실에 직면했을 때, 과감하게 GE캐피탈에 지분 43%를 팔고 위험관리체계 를 받아들였다. 이는 직원을 제대로 배려해야 믿을 수 있는 회사를 만들고 이것이 고객에게도 이 익이 된다는 노리에서 나온 것이다. 직원을 배려한 통화부스 대표적으로 현대카드 현대캐피탈 사온 곳곳에 통화부스가 설치되어있다. 직원들 이 사무실 내 자기 자리에서 통화하기 어려운 개인적인 용무의 경우 직원들은 사 내 비상구나 계단, 화장실 등 여러 곳에서 소곤대며 통화한다. 현대카드는 사옥에 층별로 통화부스를 설치하여 개인적인 통화라도 마음 편히 할 수 있도록 직원들의 사생활을 최대한 보호하자는 취지에서 만든 것이다. 218기술인문융합 창의형 인재 / Creative Leadership 대한민국 기술인문융합을 선도하는/ 인/ 물/219
  • 트위터 경영 정태영 사장은 트위터로도 유명하다. 그는 바쁜 와중에도 하루에 실없는 농담에서부터 자신 의 일상에서 느끼는 경영 철학 등 많은 이야기들로 8개 이상의 글을 틈틈이 올려 대중과 소통 한다. 한 일화로 고등학생이 정태영 사장에게 직접 메 일을 보내, 자신의 꿈이 경영인인데 조 언을 해달라고 하자 정태영 사장은 주옥같은 말들로 화답을 했다고 한다. 이처럼 정태영 사장 은 많은 학생들의 멘토가 되고 있다. 홀로 서있는 디자인은 힘이 없다 정태영 사장은 디자인 경영으로 유명하다. 사옥의 모든 것을 현대카드에 맞춰 일반 생수통도 'It water(잇 워터)‘라는 현대카드 물 브랜드까지 따로 디자인을 할 정도로 디자인에 대한 집착 이 심하다. 하지만, 이런 집착이 카드에 고스란히 적용되며 다른 카드와 차별화되는 디자인 들을 선보이고 있다. 정태영 사장은‘글로벌 최고경영자 전략회의’에 초청되어 강연을 펼쳤다. 정 사장은 강연 중 “CES에서 다시 확인한 점은 외롭게 홀로 서 있는 디자인은 힘이 없다는 것”이라며 “회사의 지 향점을 표현하는 디자인이어야 하며 좋은 디자인을 위해서는 회사가 추구하는 지향점이 먼 저 정리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태영 사장의 강의를 들은 한 LG CEO는 “독특한 제품과 디자인, 마케팅이 결국 기업의 지 향점을 보여줄 수 있다는 것과 시장을 선도하기 위해 조직에 변화가 필요한 것 같다”고 했다. 남들보다 한발 앞서 시작하다 요즘 VVIP 대상 카드가 쏟아지지만 그 시작에는 정태영사장이 있다. 2005년 연회비 100만원 인 블랙카드의 출시를 시작으로 퍼플, 레드 등 다양한 프리미엄 상품을 선보였고, 국내 최초 선포인트 제도를 선보이기도 했다. 220기술인문융합 창의형 인재 / Creative Leadership 대한민국 기술인문융합을 선도하는/ 인/ 물/221
  • 사업주최 산업통상자원부 사업주관 기술인문융합창작소 발행인 김용근 한국산업기술진흥원 원장 이남식 소장 편집인 김한주 부소장 사업총괄 여인국 한국산업기술진흥원 단장 허 규 한국산업기술진흥원 팀장 자문위원 김왕동 과학기술정책연구원 박사 문운석 한국산학연합회 박사 박현모 한국학중앙연구원 박사 이신철 숭실대학교 교수 이정규 과학창의재단 교수 임원기 한국경제신문 평론가 정석홍 국민대학교 교수 조광현 전자신문 미래기술연구센터 센터장 조경숙 과학창의재단 박사 조정열 숙명여자대학교 교수 조현욱 코리아메디케어 본부장 차명수 전자부품연구원 박사 연구총괄 최진섭 실장 연구참여기관 알앤디비즈 (김정근 대표) 연구지원 임병혁 실장 장영수 실장 이희준 실장 발행처 기술인문융합창작소 110-809 서울특별시 종로구 동숭동 1-93번지 더브릭스빌딩 4F Tel. 02-6260-1010 / Fax. 02-6260-1099 편집·디자인·출력·인쇄 금풍문화사 02-2264-2306 (주)근아프린팅 02-2271-2700 문의 기술인문융합창작소 Tel. 02-6260-1010 이 서적은 산업통상자원부에서 시행한 ‘인문·산업 융합연구 활성화 기반구축 사업’의 일환으로 기술인문융합창작 소에서 발행한 서적입니다. 본 서적 내용은 연구진의 주관적인 의견이 개입되어 있으며 활용의 책임은 이용자들에게 있습니다. 서적에 쓰인 이미지는 연구, 분석 목적으로 쓰여 졌으며 출처는 참조 사이트에 표기하였습니다. 이 서적의 내용을 대외적으로 사용하실 때에는 반드시 산업통상자원부 및 기술인문융합창작소에서 시행한 연구결 과임을 밝혀야 합니다. 그 밖의 저작권관련 별도 협의가 필요하신 사항은 기술인문융합창작소로 연락 주시기 바랍니다. Copyright Ⓒ atelier t*h 2013 All rights reserved 국립중앙도서관 출판시도서목록(CIP) Creative leadership / 기술인문융합창작소 [편]. -- 서울: 기술인문융합창작소, 2013 -- (기술인문융합 창의형 인재 ; 1) (Techno humanities atelier ; 5) ISBN 978-89-6271-232-2 93500 : 비매품 창의성[創意性] 리더십[leadership] 325.24-KDC5 658.4092-DDC21 CIP2013013144